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경계 너머의 약속 (1)
며칠 전부터 교정이 떠들썩해진 건 당연하게도 현장 실습 때문이었다.
실습 하루 전날인 어제는 하루 종일 그와 관련한 화두만 오르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헌터 등급 측정 이후로 학교 전체가 소란해지는 건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과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문제혁의 눈으로 분류한다면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현장 실습을 스포츠 경기와 같은 오락거리로 소비하거나, 지레 긴장하며 말을 아끼거나.
전자는 5학년이 되어서도 헌터로서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연구자 혹은 길드 사무직 등으로 진로가 확정된 이들은 현장 실습에서의 점수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반면 후자는 졸업 이후의 행보를 결정하는 데 있어 현장 실습 점수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학년이 높아질수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상위권에 속한 이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길드 관계자에게 눈에 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듬해 여름에 헌터 아카데미에 중도 입학한 문제혁은 이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건 같은 반에서 지내는 지선일도 마찬가지였다.
교실에 앉아서 조회를 기다리던 문제혁은 문득 지선일이 앉은 자리로 시선을 틀었다.
정면을 바라보는 나머지 표정을 읽어 낼 수 없었으나 아마 그와 같은 심정일 것이었다.
지난 현장 실습에서 동아리원들이 겪었던 일은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사건이었다. 도해월이 워낙 대수롭지 않게 넘겼기에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문제혁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 것도 지선일이었다.
‘지선일이 아니었으면 영영 모르고 지나갈 뻔했지.’
문제혁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도해월은 어릴 적부터 의지해 온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런 자신과 다르게 도해월은 깊은 속마음은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 자신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가늠하던 문제혁이 눈을 깊이 감았다가 떴다.
자잘한 생각은 흩뜨려 버리고 근처에서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번 실습 정말 정도윤 선배한테 몰아주려는 건가?”
“에이, 그렇게 대놓고 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사방에 보는 눈이 있는데.”
“얘가 아직도 뭘 모르네. 학교에 5년이나 다녔으면 이제는 좀 눈치채야지. 언제부터 우리 학교가 사람들 눈치를 봤다고.”
조금은 한심하게 여기는 목소리에 부루퉁한 소리를 내던 누군가 대답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그건 눈치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넌 등급도 높고 눈치도 빨라서 참 좋겠다. 부러워 죽겠네.”
“허, 얘 또 비꼬네. 너야말로 이딴 식으로 열등감 표출할 때마다 뭘 어쩌라는 건가 싶은 건 나야.”
“야, 그만해. 정도윤 선배 얘기하다가 왜 또 삼천포로 가는데.”
손뼉을 부딪어 소리를 내고 화두를 돌린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아무튼, 하던 얘기부터 마저 해. 학교에 성문 길드 사람 찾아왔을 때 정도윤 선배만 따로 보고 갔다는 얘기도 있어.”
“아, 진심?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길드 사람이 여기까지 왜 찾아와? 보통 학교에서 가지 않아?”
“그러니까. 리호 길드에서는 찾아오는 사람 없었잖아. 빨리 6학년 돼서 리호 길드 건물 들어가 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어서 또 다른 누군가 운을 떼려는 찰나 교실 앞문이 요란스레 열렸다.
“다들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현장 실습이 무슨 소풍이라도 되는 줄 알아? 조용히 하고 빨리 자리에 앉아.”
교탁에 다다른 담임은 소란한 내부를 탐탁지 않게 쳐다보다가 조회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거니까 잘 들어. 오늘 실습에 들어간 선배들이 전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에 실습 얘기 퍼뜨리지 마라. 채점 끝나기도 전에 선배들 찾아가서 추궁하는 것도 금지야. 다들 알아들었으면 대답해야지.”
곳곳에서 반쯤 불성실한 어투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어서도 몇 번이고 당부한 담임이 모습을 감춘 뒤 교실은 다시금 소란해졌다.
* * *
“내가 지금 밥을 입으로 먹는 건지, 코로 먹는 건지.”
푸념하듯 중얼거리며 젓가락을 먼저 내려놓은 건 지선일이었다.
비슷한 심정으로 젓가락 끝으로 반찬을 건드리던 문제혁이 고개를 들었다.
“너 혹시 돌아다니면서 정건후 선생님 본 적 있어? 오늘 하루 종일 안 보였대.”
지선일의 질문에 영 입맛이 돌지 않는 나머지 물을 몇 모금 마시던 문제혁이 대답했다.
“나도 못 봤어. 현장 실습 담당이 학기 중에 바뀐 거라 수업도 따로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출근하지 않을 분도 아니고.”
“그러게. 지금쯤이면 선배들도 던전에 들어갔을 텐데. 아침에 해월 선배한테 뭐 들은 거 없어? 다들 난리인데 그 선배만 잠잠해 보이길래.”
그 말을 들은 문제혁은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떨어뜨렸다. 그래도 어릴 적부터 함께했으니 도해월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구석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별다른 언질이 없었다.
“대답 없는 것 보니까 말한 게 없나 보네. 나도 어제 미솔 선배 잠깐 만나서 얘기해 봤는데 선배들도 특별히 더 아는 건 없다더라.”
“그래서 더 걱정이기도 해. 이런 식으로 현장 실습 일자가 당겨진 적이 또 있었어? 듣기로는 처음인 것 같기는 한데.”
그에 지선일은 허공을 응시하며 눈가를 미약하게 찡그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말대로 이런 일은 전혀 없었어. 내가 아는 어른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하나같이 학교가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잠자코 경청하던 문제혁은 순간 지선일이 아는 어른들은 누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 부모님, 그리고 그분들의 지인이나 직장 동료들이겠지…….’
지선일에게는 언제라도 도움을 구하면 자신의 경험을 들려줄 어른들이 있는 듯했다.
아는 어른이라고는 보육원 원장 최성일과 헌터 아카데미 교사들밖에 없는 문제혁으로서는 그 자체로 부러운 일이었다.
문제혁은 이따금 지선일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해 보았다.
그녀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각자 가진 것을 생각하며 나란히 견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열등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마음의 모서리가 유난히 날카로워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언젠가 평소보다 느지막하게 기숙사에 귀가한 도해월은 지선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와 동아리에 들고 싶다고 얘기했다던 일을 전해 들었을 때 문제혁은 자신의 실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눈부신지 직접 보지 알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도해월 선배가 기숙사에서 나가기 전에 인사 정도는 했을 것 아니야. 뭐라고 하면서 나갔어? 이렇게 중요한 날에도 평소랑 똑같았다고 할 건 아니지?”
물론 아니었다. 오늘 아침 문제혁은 도해월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자신만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변화였으므로 쉽사리 말할 수도 없었다.
“음, 그러니까…….”
* * *
오늘 아침은 유난히 눈이 일찍 떠진 날이었다.
평소에도 부지런한 두 사람은 학기가 시작된 이후 늦잠을 잔 적이 없었다.
눈을 뜬 문제혁의 시야에 가장 먼저 담긴 건 먼저 일어난 도해월의 뒷모습이었다.
“형, 일찍 일어났네.”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하자 도해월이 그를 돌아보았다. 이어서 자신의 책상에 놓인 컵을 가리켜 보인 뒤 욕실로 마저 들어갔다.
“너야말로 알림 아직 안 울린 것 같은데 왜 벌써 일어났어.”
문제혁은 비척거리며 책상에 다가가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면서 의식을 깨우고 있으니 닫힌 욕실 너머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분명 다른 사람에게는 베풀지 않는 호의였다. 어렸을 적 먼지가 많은 보육원 건물에서 지내다 보니 목이 쉽게 잠기던 자신을 위해 꼬박 물을 준비해 주던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지난여름 각성하게 되면서 신체 능력 또한 운동선수를 웃도는 수준이 되었다. 고로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호의였으나 도해월은 아침마다 물을 챙겨 주었다.
그러면서도 도해월이 자신에게만 살가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도해월은 자신이 맞닥뜨리는 모든 사람을 한결같은 태도로 대했다.
문제혁은 그런 그와 늦은 여름부터 겨울에 이르러 세 계절 동안 함께 보내는 동안 그에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거기 가만히 서 있어. 할 말 있어서 기다린 거야?”
수건으로 목덜미에 남은 물기를 닦으며 나온 도해월이 말했다.
문제혁이 고개를 저어 보이자 더 묻는 대신 수긍하면서 할 일을 마저 했다.
지금과 같은 일상적인 순간에는 알아채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달라진 점이 있었다. 가끔은 뭔가를 숨기는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뒤 욕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하던 문제혁은 잠시 손을 멈추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도해월은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묻는다고 대답해 줄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으므로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느끼는 미묘한 혼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해 볼 수 있었다.
그와 문제혁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경계가 존재했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답은 도해월이 그어 놓은 경계 너머에 있을 것이었다.
“다른 선배들은 어제부터 무진장 긴장하던데. 형은 괜찮아?”
등교할 준비를 먼저 마친 문제혁이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물었다.
자신의 책상을 살피면서 무언가를 하던 도해월이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솔직히 난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어.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낸 것만 보면 오늘 실습을 빌미로 위험한 일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잖아. 혹시라도 저번처럼 형이랑 선배들한테…….”
“문제혁.”
“응?”
대뜸 호명하는 동시에 도해월이 뒤를 돌아보았다.
책상에 반쯤 기대어 선 그가 문제혁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니까.”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던 도해월이 말했다.
“너도 배워서 알다시피 현장 실습이라는 것 자체가 워낙 위험한 일이라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식의 장담은 못 해. 그래도 멀쩡하게 돌아올 거야. 약속해.”
이어서 말하던 도해월의 눈동자에 순간 알 수 없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약속’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하는 건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도해월이 스스로 그어 놓은 경계 너머에서 튀어나온 조각일지도 몰랐다.
* * *
“별 탈 없이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하더라.”
한참 고심하던 문제혁은 기다리던 지선일에게 간단히 답했다.
고작 그것뿐이었으나 무리 없이 수긍한 지선일이 한숨을 쏟아 냈다.
“그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런 거겠지. 우리도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 말에 가벼운 미소로 응수하던 문제혁이 젓가락을 쥐었다.
“그나저나 차진명 선배도 던전에 들어갔겠지? 아직 점심밖에 안 되기는 했지만 다들 하루 종일 성문 길드 얘기랑 차진명 선배 얘기만 하는 것 같더라.”
이어서 무어라 대답하려던 순간 휴대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동시에 지선일의 것도 울린 건지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 잠시만. 누가 인터넷에 성문 길드 얘기 올렸다는데?”
“분명 실습 끝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근데 이거 선배들 얘기가 아니고 좀 다른 얘기야.”
지선일은 설명하는 대신 화면을 직접 내밀어 보여 주었다.
“성문 길드에서 높은 등급의 마석을 고의로 던전에 묻었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익명으로 올라온 거라서 나도 잘 모르겠어. 근데 너도 뭐 연락 온 것 아니야?”
고개를 갸웃거리던 문제혁이 다시 한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정건후 선생님이야. 상담실에서 잠깐 볼 수 있냐고 하시는데. 중요한 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