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복귀 (1)
나는 깊은 물속에서 건져 올린 듯 헛숨을 쏟아 내며 깨어났다.
“헉!”
벅차게 차오르는 숨을 간신히 고르면서 심장 부근에 손바닥을 얹었다.
거세게 박동하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는 듯했다.
여기는 또 어디야.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손을 얹은 뒤에야 품이 넉넉한 환자복 차림인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윽고 주위를 둘러보자 쾌적하게 정돈된 1인용 병실의 내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고개만 이리저리 돌렸을 뿐인데 근육이 찢어진 것만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이전 학기 실습처럼 목숨은 무사히 건진 듯했으나 고통의 정도는 확연히 달랐다.
지난번에는 깨어난 직후 느릿느릿하게나마 거동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상체를 일으키는 것도 버거웠다. 사지를 이룬 뼈를 산산조각 낸 뒤 다시 조립한 것만 같은 통증에 시달리던 나는 다시금 허리춤을 짚었다.
하필 그 중요한 순간에 내구도가 닳아 버리다니.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버텨 주기는 했다. 물론 무기 없이도 스킬을 전개하여 공격할 수 있으나 사령관이었을 적부터 총을 다루는 게 익숙한 만큼 결정적인 순간에 손이 비어 있으니 그것대로 당황스러운 노릇이었지.
이내 차분하게 숨을 내쉬면서 힘겹게 침상에서 발을 내린 뒤 커튼이 덮인 창가로 다가갔다.
두 다리를 절뚝거리는 채로 간신히 다다른 창가에서 커튼을 걷고 나니 환한 빛이 쏟아졌다.
그 눈부심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나는 손날로 차양을 드리우면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은 용산구 일대에 위치한 헌터 전문 병원일 것이다.
내가 입원한 병실이 높은 층수에 자리한 것인지 병원 주위의 전경을 한눈에 들어왔다.
12월 중순을 지나면서 한층 서늘해진 바람을 타고 수많은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그 눈송이를 목도하는 것만으로 숨결에 냉기가 섞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럼에도 바람에 맥없이 날리며 고요하게 쌓여 가는 모습만큼은 던전에서 보았던 것과 달랐다.
머지않아 쉼 없이 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우뚝 선 남산타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몇 번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그 모습이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온몸에 힘이 풀렸다.
내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어. 바라던 미래로 무사히 다다른 거야.
나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한 것을 창틀을 붙잡고서 중심을 잡은 뒤 침상으로 돌아갔다.
끄트머리에 걸터앉은 채 커튼이 걷힌 창문 너머를 한참 내다보면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마지막에 살아 나갈 수 있었던 건 분명……. .-
던전 브레이크를 막을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천칭의 심판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내 손끝에서 번진 금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그토록 넓고 광활한 들판을 밝혔다.
끝내 설원에 드리운 모든 그늘을 낱낱이 밝힌 금빛은 마지막으로 그림자를 감싸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빛에 그림자가 전부 갉아 먹혀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다른 조원들은 전부 기절한 상태였다.
이미 취약해진 상태에서 강력한 마나 에너지와 그에 상응하는 신성한 힘이 충돌하는 걸 지켜보느라 그렇게 된 듯한데.
희미하게 남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뜨고 있던 건 아마 설연호였을 것이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이 성물에서 비롯된 강한 힘의 정체를 묻는다면 어떻게 둘러대는 게 좋을까.
그 부분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그때의 내게 가장 명징하게 남은 건 성물 칭호 부가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나만의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유스티티아의 검이 같은 이름의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올리면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혹시 그 이름을 가진 성물에 깃든 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당장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느꼈던 기묘한 감각에 대해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무엇인가 나를 돕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체감만큼은 분명했다.
빛이 번졌던 오른쪽 손끝과 검지에 착용하고 있던 반지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이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깨어나셨네요. 이쯤이면 의식을 되찾으실 것 같았습니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안도한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덤덤하게 읊조리는 내 말을 듣던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환자분은 체내의 마나 수치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갑작스러운 쇼크 증세에 시달리셨습니다. 마지막에 던전을 공략해 내지 못했다면 모두에게 큰일이 벌어질 뻔했어요. 성문 길드나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상태라 여기까지 오게 되신 겁니다. 함께 이송된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구요.”
설명을 마친 의사는 한쪽 팔에 들고 있던 차트를 내려다보면서 나의 상태를 점검했다.
들여다보는 동안 대놓고 한숨을 쉬는 걸 모르는 척한 나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같이 들어온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차트에 대고 간략한 메모를 남긴 뒤 가까이 다가와 내 상태를 살피던 의사가 답했다.
“전부 같이 실려오기는 했지만 상태가 가장 심각한 건 환자분과 다른 학생 한 명뿐이었어요. 나머지 다섯 분은 6인용 병실에서 휴식하고 있으니 면회가 가능할 겁니다.”
다른 한 명이라면 아마 설연호를 말하는 거겠지.
“환자분보다 더 심각한 상태로 들어온 학생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대체 그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내가 답을 유예하고 있으니 의사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면서 덧붙였다.
“그래도 예후가 나쁜 건 아닙니다. 절대 안정을 취하다 보면 금방 깨어날 거예요. 필요한 조치는 마쳤고, 회복 단계만 남았으니 기다려 보시면 됩니다.”
던전에서 나오기 직전 설연호가 치유 필드를 전개한 것이 신체에 큰 타격을 입힌 듯했다.
그때 분명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사람이 무슨 짓이냐고 다그쳤건만.
“환자분도 오늘 하루는 입원하셔야 합니다. 저녁에도 상태 체크해 볼 테니 그렇게 알고 계세요.”
설명을 마무리한 의사는 나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한 뒤 문을 열고 나갔다.
남산타워도 멀쩡하고, 다른 사람들 상태도 확인했으니 조금만 쉬어 볼까…….
똑똑똑―
아무래도 휴식은 글렀나 보네.
“형, 우리 왔어.”
“선배, 괜찮은 거예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는 옆으로 쏟아질 것처럼 흔들리는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부여잡고 들어서는 이들을 반겼다. 문제혁과 지선일의 뒤를 이어 정건후까지 모습을 드러낸 뒤에야 병실의 문이 닫혔다.
“왔어? 선생님도 오셨네요.”
간신히 몸을 움직여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뒤 세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반겼다.
“지선일 말이 맞아. 어떻게 된 건지 얘기부터 해 봐.”
“음, 그것보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보고 왔어? 걔네는 나보다 먼저 깨어났던데.”
병실에 들어선 뒤 협탁에 음료수 세트를 내려놓은 정건후가 대신 대답했다.
“다행히 예후가 나쁘지 않아. 너무 걱정할 건 없다.”
이내 허리춤에 손을 얹은 정건후가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침상 근처에 간이 의자를 끌고 와서 앉은 지선일과 문제혁도 걱정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우리 둘 다 형이랑 선배들 기다리면서 얼마나 초조했는지 몰라. 그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말 형이 들어간 던전에 S급 마석이 묻혀 있었어?”
음, 문제혁이 그 얘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갑자기 우리 눈 피하면서 선생님 봐도 소용없어요. 그날 점심시간 끝나갈 즈음에 인터넷에 성문 길드 얘기가 올라왔거든요.”
나는 고개를 반쯤 기울이면서 정건후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짓을 보냈다.
“지선일 말이 맞아. 인터넷 사이트에 성문 길드 소속 헌터로 추정되는 사람이 폭로하는 글을 올렸어.”
이후로 간단한 설명이 덧붙는 것까지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감이 잡혔다.
“누가 그런 글을 올렸는지 확인됐나요? 차민훈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눈가를 찡그리며 고심하던 내가 묻자 정건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인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발뺌하더라. 이제 너희가 학교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부터 다시 시끄러워지겠지.”
우리가 던전에서 나오기도 전에 손을 쓰다니. 애초에 성문은 쓰다 버릴 패였던 건가.
거기까지 듣던 나는 반사적으로 한쪽 입꼬리를 솟치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진명의 속내를 가늠해 보려 했으나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듯해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다른 선배들이 지난 학기에 일 있었을 때는 차정주 이사장이 뒤늦게 반응했다고 들었어. 근데 오늘은 사태가 파악되자마자 언론에 보도 자료부터 뿌렸대.”
차정주가 이렇게 빨리 반응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니. 물론 차진명 때문이겠지만.
“아침에 올라온 기사 보니까 또다시 헌터 아카데미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서 성문 길드에 엄중한 책임을 묻고 학생들을 위험에 빠뜨린 대가를 치르게 한다던데요.”
지선일의 말까지 듣고 보니 차정주 또한 차진명에 대해 돌고 있는 소문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차진명이 이번 실습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알아봐야 하겠지만 지금 반응만 봐선 서둘러 화두를 돌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즈음에서 이런저런 상념을 갈무리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세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설연호 선배는 아직 안 깨어난 거죠? 절대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고 하던데. 혹시 보호자는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은 문제혁과 지선일도 모르는 것인지 나를 따라서 정건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설연호 보호자로는 리호 길드의 설연리 헌터가 재실하고 있다고 하더라. 듣기로는 아예 실습 며칠 전부터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던데. 그리고 네가 깨어나는 대로 잠깐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 혹여 불편하다면 내 선에서 거절할 테니 편하게 고민해 봐라.”
설연리가 어떤 성격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 상태로 만나게 되면 감당하기 버겁겠지만 에둘러 거절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뇨. 우선 다른 조원들 상태부터 확인한 뒤에 만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나는 침상에서 조금씩 움직인 뒤 문제혁에게 팔을 내밀었다. 따라서 일어난 문제혁이 나를 부축해 주는 동안 다시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자세한 건 다른 사람들부터 확인하고 얘기해 줄 테니까.”
얼떨결에 따라붙은 지선일까지 합해 두 사람의 부축을 받은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오른 정건후는 다른 볼일이 있다며 우리를 먼저 보내고 모습을 감췄다.
똑똑―
“들어오세요!”
조원들이 머무르고 있다던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해월아!”
“도해월?”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김미솔과 서애란이었다.
두 사람의 음성에 잠들어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누구야……. 어, 도해월? 너 괜찮아?”
“아이, 씨! 방금 막 기분 좋게 잠들었는데 어떤 새, 도해월이네? 야! 너 왜 이제 내려와!”
공희찬을 마지막으로 모두의 얼굴을 살펴본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해월이까지 멀쩡하게 깨어난 것 보니까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제야 실감이 나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우리가 그 큰일을 막아 내다니……. 어후,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소름 돋는다니까.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된 이상 다시는 못 할 짓인 것 같아.”
나를 반겨 주는 것도 잠시 금세 저들끼리 떠드는 모습을 보니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때까지도 내 팔을 단단히 부축해 주던 문제혁과 지선일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다들 이번 학기 실습도 고생 많았어. 두 사람도 걱정하면서 기다려 줘서 고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