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태풍의 눈 (1)
의사의 지시대로 나와 조원들은 며칠 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래도 점점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 이제는 문제없이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발로 마음대로 걸을 수 있으니까 살 것 같다.
그럼에도 속력을 늘릴 수 없는 탓에 천천히 복도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수용한 환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헌터 전문 병원은 언제나처럼 한적했다.
어느덧 입원한 지 삼 일째가 되는 오늘은 달리 찾아오는 이들이 없는 듯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잘 모르는 애들까지 쫓아와서 하루 종일 귀찮게 굴더니.
혹시 정건후가 무슨 수를 썼나?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이런 섬세한 배려까지 하기에 그는 이미 바쁠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학교에 다른 일이 생겼다고 할 수 있는데. 역시 정도윤 때문인가.
수액이 걸린 지지대를 끌면서 산책 삼아 저층 복도를 걷던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조원들이 머무르는 병실 근처에 익숙한 교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진짜 그렇게까지 했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한 것 아니야?”
“그만큼 진짜 작정했다는 뜻이겠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아마 학교에서 벌어진 일은 언급하는 듯한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정도윤은 그 수모를 겪고도 가만히 있었대?”
듣다 보니 오늘 오전 내가 속한 교실에 교사 두 명이 들이닥쳤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들은 학교의 지시라며 정도윤의 물건을 전부 압수하기 위해 상자에 담았다고 한다.
“처음부터 저렇게 강압적인 건 아니었다는데? 정도윤 걔가 오늘 아침에 불법 마석 가공물 가지고 있던 거 걸렸대. 그거 걸리고 나서 선생님들 개빡쳐서 저렇게 쫓아온 거고. 쟤 못 믿겠으니까 직접 뒤져서 다 가져오라고 한 건 차민훈이었대.”
“불, 불법 뭐? 그게 말이 되는 거야?”
“그 왜, 도해월이 먹는다고 소문났던 거 있잖아. 난 그거 진짜 허무맹랑한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봐. 저걸 대체 왜 먹는지, 진짜 먹는 게 맞는지, 뭐에 쓰는지는 나도 모르니까 묻지 마.”
그래, 소문의 주인공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소감이 어때.
나는 자연스레 지지대를 끌면서 모여 있는 이들 근처로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떠나 버렸다.
아무튼 사춘기 청소년이란…….
“이번 타깃은 정도윤인가 봐.”
누군가 속으로 하고 있던 생각을 소리 내어 읊으면서 나타났다.
나는 눈가를 찡그리면서 곁에 선 서애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정도윤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 때문에 말이 돌고 있을 때도 사람들이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어져. 그러다 보면 기분이 묘해지고.”
팔짱을 끼운 채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인 서애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번 일로 성문의 기틀이 흔들리게 되면 그것대로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 동시에 그 선배들이 건드리는 게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해. 이기적인 것 알지만 별수 있나.”
두 팔을 한층 단단하게 얽으며 손끝을 숨기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어떤 모양으로 떨리고 있을지 가늠이 되는 듯해 일부러 눈길을 거뒀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정말 몰랐어?”
나는 눈꺼풀을 느릿하게 여닫으면서 서애란에게 묻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계속 거기 있진 않았을 거야.”
서애란은 의외로 선선히 대꾸했다. 이어서 그녀는 정면으로 트인 통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눈송이가 그치면서 하늘이 맑게 갠 상태였다.
그 곁에서 한가득 쌓인 눈밭에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에서 눈길을 두었다가 금세 거두었다. 지지대를 고쳐 잡으면서 서애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난 먼저 올라가 있을게.”
* * *
나는 이때까지 들린 이야기를 곱씹으며 조원들이 머무르는 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천천히 걷고 있으니 이런저런 상념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전에 마주친 서애란이 정도윤을 언급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런 식으로 차진명의 술수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궁지에 몰려가는 일이 나와 서애란을 지나 정도윤까지 벌써 세 번째였다.
수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때가 되면 대상이 갱신되고 다시 그와 관련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끝나지 않는 희생 제의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에 다시금 환멸을 느낀 나는 몸을 틀어 병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해월 안녕. 여긴 무슨 일이야? 나 보러 왔어?”
병실에서 막 빠져나오던 홍원하가 손을 흔들었다.
“의외로 다정한 타입이네. 너도 힘들 텐데 매번 우리 있는 쪽으로 내려와 주고.”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사이 홍원하가 팔을 내밀어 저지했다.
“들어갈 거면 같이 들어가.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저쪽 복도만 금방 보고 올게.”
“그래.”
혼자 들어가면 되지 나는 왜 여기 세워 두는 거야.
속내를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 한숨을 내쉰 뒤 홍원하를 기다렸다.
금방 온다던 홍원하는 몇 분이 지나고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 미안. 화내지 말고 얼른 들어가자.”
걸음을 앞서 내디딘 홍원하가 병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이들이 손을 흔들어 반겼다.
“해월이 안녕. 원하랑 같이 왔네.”
“왔어? 두 사람 다 몸은 좀 어때.”
“아우, 또 뭐 이렇게 다 모이고 그래. 너희는 매일 봐도 안 질리냐? 징그러워 죽겠어.”
나는 김미솔과 설연호에게 눈짓을 보낸 뒤 공희찬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영 징그러우면 먼저 들어가도 돼. 멀쩡한 것 봤고, 더 궁금한 건 없으니까.”
“저 자식 또, 또 말 저따위로 하지. 어? 재수 없어, 진짜.”
공희찬은 말과 달리 주머니에 손만 꽂아 넣을 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들 헌터 아카데미랑 리호 길드랑 결탁해서 소송한다는 얘기 들었어?”
설연리가 했던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녀가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으나 이런 식으로 현실이 되니 당황스럽기는 했다.
“그렇게 되면 마석이 묻혀 있던 던전에 다녀온 우리도 조사받아야겠네.”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설연호가 덧붙였다.
“그렇겠지. 우리 길드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좀 들었는데, 우리가 그 던전을 공략한 덕분에 위험한 상황은 막아서 천만다행이라고 하시더라.”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가 내심 부정하고 있던 가설이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사람의 의지로 던전 브레이크를 발생시킬 수 있다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 배후로 지목된 성문은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식이 있는 헌터라면 그토록 위험한 발상을 시작한 집단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곱씹어 생각할수록 처세술이 노련하다니까.
차진명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고 있으니 공희찬이 입을 열었다.
“너희 그럼 그것도 들었냐? 이번에 정도윤이 던전 공략한 것도 부정 의혹 중 하나로 제기돼서 규칙 위반으로 징계받을 거라고 하던데. 아, 진심 존나 통쾌해! 내가 손 안 써도 알아서 자폭해 주니 속이 다 후련하네.”
공희찬과 달리 나는 그 지점이 가장 찝찝하게 느껴졌다. 전생에서의 성문 길드는 용산 던전 브레이크 사태를 기점으로 인식이 나빠지기는 했으나 그 위엄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도리어 차진명이 이능청장으로 부임했을 즈음부터는 다시금 이전의 기세를 되찾고 활개를 쳤다. 이후에도 강효서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 흔적을 몇 번이고 발견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해. 성문 길드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있던 곳이었고 그만큼 유명하기도 했잖아. 또 정도윤 걔 별명이 괜히 도련님이었던 것도 아니고. 듣기로는 매일 걔 데려다주던 장성들 없이 혼자 왔다고 하긴 하더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상황이 어디까지 나빠지는 거지.
무엇보다 이 모든 건 정말 사실일까? 일부러 꾸며 낸 쇼라면?
“졸업 코앞에 두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헌터 아카데미에서 보낸 마지막 한 해는 정말 꽉 차게 소란했던 것 같다.”
창틀에 팔꿈치를 걸친 채 허공을 바라보던 김미솔이 말했다.
“너 졸업하는 대로 달해 길드인가? 거기로 가는 거 아니냐? 거기서 이번 알게 되면 너한테 컨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데려가려고 난리일 것 같은데. 와, 너 기분 찢어지겠다?”
“근데 선배는 기분이 찢어진다는 말 같은 건 어디서 배우는 거예요?”
공희찬의 말에 김미솔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홍원하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삽시에 발끈한 공희찬과 홍원하가 다투는 사이 김미솔에게 조용히 물었다.
“선배, 졸업하고 달해로 바로 넘어가는 거 확정된 거야?”
그럼 안 되는데. 일 년 동안 다른 길드에서 활동하다가 내가 만들 길드로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희찬이가 말만 저렇게 하는 거야. 아직 결정된 것 없어.”
나는 안도하면서도 염려를 온전히 거두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관리자를 구하겠다고 말한 것도 김미솔이었으니 따로 만나서 설득해 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법도 하다.
설연호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애써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어제 만난 설연리를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할 만한 방법을 찾은 듯했다. 전생에도 입대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설연리였으니까.
모쪼록 이제 졸업하는 선배들은 어떻게 포섭할지 궁리해 봐야겠네.
“우리 이번에도 방학식 날 결과 발표하겠지? 이번에는 일이 이렇게 돼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고개를 느릿하게 꺾어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던 설연호가 말했다.
“이번 방학식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을 듯해. 그때 차정주가 다시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 화제가 될 테니까. 다들 느꼈겠지만 차진명 선배 관련한 소문은 성문이랑 정도윤 일로 완전히 묻혀 버렸거든.”
“그러네. 그것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어. 너무 자연스럽게 넘어가서.”
“나도 그것까지 들으니까 생각났어. 차진명 선배 진짜 무서운 사람이구나.”
차진명의 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시간을 역행한 건 나 한 사람뿐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해월이 너 여기 있었네. 병실에 없어서 한참 찾으러 다녔어…….”
저마다 생각에 잠겨 침묵하는 사이 문이 열리면서 강준희가 나타났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홍원하가 입구에 멈춰서 숨을 헐떡이던 강준희에게 물었다.
이내 숨을 한참 고르면서 목을 가다듬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우리 실습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조사한다고 했어. 병원 직원분들이 어디로 가면 되는지 안내해 주실 거래.”
“설마 그 소송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아오, 왜 또 이런 일에 엮여 버리고 지랄이야. 가만 보면 우리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