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태풍의 눈 (2)
“저번 학기처럼 길드에서 나온 사람이 와서 조사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만 해도 너무 무서운데…….”
병원 직원의 안내를 따라 긴 복도를 걸어가던 강준희가 말했다.
“그때 일은 다시 생각해도 무섭다니까. 리호 길드 사람이 도해월만 집요하게 추궁하던 거 기억나지. 이번에도 우리 잘못이라고……. 몰아가면 어쩌나 싶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선배. 알죠?”
말하다가 문득 따라서 걷는 설연호를 의식하던 홍원하가 어색하게 말끝을 흐렸다.
“그때 만났던 사람은 나도 별로 안 좋아해서 괜찮아. 어느 길드가 됐든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책임 소재가 자기들한테 있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더라고.”
설연호는 예의 그 나긋한 어투로 응수하더니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야, 설마 이번에도 우리 잘못이라고 하겠냐? 어디서 공수했을지 모를 마석이 묻혀 있던 것까지 우리 탓이라고 몰아가면 진짜 혀 깨물고 죽어 버리든가 해야지, 썅. 추궁할 거면 우리 말고 내부 고발인지 뭔지 인터넷에 글 올린 새끼한테 먼저 하라고 해.”
나는 말꼬리가 점점 길어지는 공희찬을 흘긋 바라보았다. 말투도 험악해지고 숨결도 점점 거칠어지는 걸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장한 듯했다.
“설령 우리 잘못이라고 추궁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백하니까 그대로 얘기하면 돼. 곤란한 질문에는 내가 대답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와 조원들보다 앞서 걷던 병원 직원이 복도 끄트머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서둘러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움직임을 멈추고 기다렸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 두 사람이 나에게 문을 가리킨 뒤 직접 열어 주었다.
나는 선두로 걸음을 옮겨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걸어오는 동안 나눴던 이야기 때문인지 공연히 긴장되는 듯해 숨을 흩뜨렸다.
뒤이어 무리가 모두 들어설 즈음 바깥에서 대기하던 직원이 소리 없이 문을 닫았다.
“어, 선생님? 선생님이 왜 여기 계세요?”
홍원하의 호명을 따라 고개를 들자 연한 상아색으로 꾸며진 면담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목을 사로잡은 건 중앙에 놓인 테이블 가운데 앉은 정건후였다.
“왜 여기 있긴. 현장 실습에서 너희한테 있었던 일이 정확히 어떤 건지 조사하려고 앉아 있는 거지. 괜한 트집 잡지 말고 얼른 앉아.”
검은색 파일철을 열면서 남은 손으로 자리를 손짓한 정건후가 말했다.
차례로 의자를 빼고 착석한 뒤 저들끼리 얼굴을 기울이면서 무어라 속닥거렸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지난 학기에 리호 길드에서 추궁당하는 동안 잔뜩 겁먹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마침 내가 소송 관련한 업무를 맡게 돼서 겸사겸사 조사도 진행하기로 했어.”
이렇게 속전속결로 일이 진전될 수가 있다니. 차정주의 지시가 내려왔나 보네.
“소송이라는 거 진짜로 진행하는 거예요? 명목은요?”
한층 수척해진 얼굴을 반쯤 기울이며 머리카락을 넘기던 서애란이 말했다.
“명목이라면 셀 수 없이 많지. 중점으로 내세울 건 너희에게 일부러 고장 난 귀환석을 배부한 건이 될 거다. 성문이 상식이 있는 놈들이라면 그런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테니까. 이번 면담도 그와 관련해서 너희의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생긴 일정이야.”
고개를 떨어뜨린 채 서류를 한 장씩 넘겨 보던 정건후가 서애란을 보며 대답했다.
“그럼 다른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따라서 상체를 조금 빼고 서애란을 돌아보던 김미솔이 말했다.
정건후는 대답하는 대신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면서 김미솔에게 시선을 옮겼다.
“학교에서 성문에게 바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요? 우리랑 다른 학생들한테 사과하게 만들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마침 김미솔이 허를 찔렀다. 계절을 넘길수록 점점 유능해지는 것 같다니까.
“음, 그건 말이다…….”
평소와 다르게 말끝을 늘리며 고심하던 정건후가 모두와 시선을 나누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고, 그것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가 더 있어. 지금 너희에게 말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정도야.”
검은색 파일철을 손끝으로 감싸면서 차분하게 설파하던 정건후가 이어서 말했다.
“하나는 이때까지 십수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모른 척 발뺌하며 버틴 성문이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려는 거고, 두 번째는.”
그즈음에서 말을 멈춘 정건후는 주위를 둘러보며 한참 경계한 뒤 입을 열었다.
“이 사태를 계획한 또 다른 배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오로지 내 사견이니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말도록 해.”
또 다른 배후.
정건후가 그 단어를 언급하던 순간 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상 정건후가 헌터 아카데미에서 꾸린 조사단에 합류한 것 자체가 다소 이상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말을 듣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정건후는 지금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시밭에 제 발로 들어간 것이었다.
저토록 무모하고 그만큼 단단한 결의를 가진 사람이니 차정주의 눈에 거슬렸겠지.
“다들 조용. 오늘은 너희 병문안을 온 것도 아니고,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러 온 거니까 조사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 * *
“와, 나 진짜 영혼 빠져나가는 줄 알았어. 선생님 왜 이렇게 무서워?”
정건후가 모습을 감춘 뒤 자신의 책상에 늘어지듯 엎드린 홍원하가 말했다.
“내 말이. 진심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냥 있었던 일 묻는 건데도 존나 무섭더라.”
그 곁으로 따라서 엎어진 공희찬이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동조했다.
“우리 조사만 두 시간 정도 한 거지? 확실히 수업할 때보다 기가 더 많이 빨리는 것 같더라. 얼른 병실 가서 눕고 싶어.”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던 김미솔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직원이 우리 부르러 온다고 했었죠. 조금만 더 기다려 봐요.”
이미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우고 있던 서애란이 나지막한 소리로 덧붙였다.
똑똑―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나와 조원들이 모인 면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조사가 마무리되었으니 퇴장해 주셔도 좋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문이 반쯤 열리면서 모두가 속속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누군가 문가에서 제지했다.
“도해월 학생은 잠깐 남아 주세요. 차정주 이사장님께서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지금 나한테 누가 뭘 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요새 귀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순간적으로 되물을 뻔한 걸 겨우 입을 다물어 삼켰다.
“알겠습니다.”
이럴 때는 총사령관으로 지내며 다방면으로 다진 사회적 처세술이 도움이 되었다.
그대로 문가를 돌아보며 다른 이들을 배웅하니 조원들이 나보다 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사장님이 해월이는 왜? 뭐 잘못한 건 아니겠지?”
“설마. 지난번 방학식에도 직접 와서 상 줬잖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저는 학교 다니는 동안 이사장님이랑 같은 공간에 있어 본 게 오늘로 두 번째예요…….”
“그보다 이사장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학교에도 코빼기 하나 안 비치는 인간이 병원까지 찾아왔다고?”
웬일로 공희찬이랑 생각이 통할 때가 있네.
자기가 세운 학교에도 코빼기 하나 안 비치는 인간이 병원에는 왜 행차하는 건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오 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문간을 돌아보았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서 들어선 차정주가 고개를 한 차례 까딱거렸다.
그는 언제나처럼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모양새로 서 있었다.
차정주의 검은 눈동자는 오늘도 사람을 꿰뚫어 볼 것처럼 깊고 투명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우선 앉아요. 몸도 성치 않을 텐데.”
그가 나를 찾았다는 소식이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그마저도 잠시였다. S급 헌터이자 재단 이사장인 차정주의 모든 행동에는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의 시선, 숨결, 손짓, 발걸음을 포함한 모든 것이 계산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도 이 만남이 끝나기도 전에 알음알음 퍼져 나갈 것이다.
당연하게도 차정주를 날마다 예의 주시 하는 차진명에게도 이 소식이 들어가게 되겠지.
내게 찾아온 이 기회는 훗날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수도 있을 테다.
이때부터 초석을 잘 쌓아 두면 차진명과 차정주를 사이의 갈등도 촉발할 수 있겠지.
결론을 내린 나는 전생에서의 차정주를 떠올리며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었다.
문가로 다가가 그가 앉을 자리를 안내하자 차정주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 * *
예상했던 대로 차정주가 내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사과였다. 그는 헌터 아카데미의 책임자로서 현장 실습에서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그는 사고 현장에서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일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이자 보호자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저버렸다는 것이 논지였다.
나는 그가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는지에 따라 미래의 내 행보가 달라질 거라고 혼자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나를 자신의 패로 들인다면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구동할지 고심하고 있겠지. 차진명의 습관의 대부분은 차정주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번 현장 실습에서도 상당한 기지를 발휘했다고 들었습니다.”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답은 이 정도면 됐다. 그의 칭찬에 과찬이니 뭐니 하며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에게 굽신거린다면 순식간에 말려들 것이다.
차정주는 얇은 입술로 호선을 그리더니 희미한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비로소 본색을 드러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도해월 학생을 지난 학기 현장 실습에서부터 눈여겨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쪼록 관련 사안은 학교에서 전부 해결할 테니 여기서는 편하게 휴식해요.”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문득 동아리실에서 지선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사장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학교 일에 뒤늦게 반응하냐고 했었던가.
“지난 학기에는 학교가 움직여 주지 않을까 봐 며칠 내내 마음 졸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사장님께서 직접 나서 주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듣기로는 차진명 선배도 실습하면서 크게 다쳤다고 하던데. 여러모로 심려가 크실 줄로 압니다.”
이 정도면 지나가던 개한테 말해도 알아듣는 수준이겠지.
이런 식으로 행간과 맥락에 숨겨진 의중을 파악하는 일에 능숙한 차정주가 곧바로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차정주는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언급된 탓인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뜸을 들이며 고심하던 그가 내뱉은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혹시 졸업 이후의 진로는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이건 또 뭐야. 차진명도 아니고 차정주가 이런 소리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