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Hunter's Checkmate RAW novel - Chapter 8
8화. 현장 실습 (6)
수락 이후 일련의 과정이 순탄하게 이어졌다.
노를 젓던 조원들을 소집한 후 가장 먼저 행한 일은 강준희의 스킬을 통해 선체의 모습을 감추는 것이었다.
지속 시간은 30분. 그사이에 해독제를 만들어야 한다.
스킬라는 먹잇감을 놓쳤다는 것이 분했는지 잠시간 난동을 피우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선체 가운데는 김미솔의 스킬로 구현한 식물과 약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주위로 둥글게 모여 앉은 가운데, 설연호는 솥에 담긴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어 보글거리는 물거품과 함께 김이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즉시 재료들을 차례로 집어넣었다.
설연호의 굳은 입매를 바라보던 강준희가 내게 속닥거렸다.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괴물이 저렇게 큰데. 고작 이런 마법약을 던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까…….”
순진하게 묻는 목소리에 강준희를 잠시 하찮게 바라보던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도 모르게 멍청한 질문이나 할 거면 정신 줄이나 똑바로 붙잡으라고 할 뻔했네.
다시 되새겨 본다. 나는 지금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실력도 뒷배경도 그저 그런 D급 헌터이자 어쩌다 현장 실습 조장이 되어 많은 책임을 지게 된 어린 학생일 뿐이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강준희에게 답했다.
“일부러 작게 말할 필요 없어. 그리고 몬스터의 몸집이 얼마나 큰지, 작은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고유의 특성이야. 물론 몬스터의 특성을 파악한 다음 전면에서 공격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 약하니까 일종의 우회를 하자는 거지.”
“아, 아…….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모든 면에서 출중한 헌터들 사이에 섞여 있다가 이런 백지장 같은 얼굴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다들 스킬라가 어쩌다 몬스터가 되었는지 알고 있지?”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모를 거였다.
“키르케라는 마녀가 만든 마법약을 먹고 저주에 걸려서 저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거야. 뛰어난 헌터였다면 곧장 저 다리부터 하나씩 절단하고, 그 틈을 파고들어 목을 잘랐겠지만 지금 우리로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야.”
그러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던 공희찬이 거들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면, 아니, 가까이 가기도 전에 저 문어 다리에 감겨서 한입에 꿀꺽 삼켜지고 말겠지.”
나는 웬일로 맞는 말을 하는 공희찬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공희찬, 불길 좀 올려 줘.”
묵묵히 솥에 담긴 내용물을 젓던 설연호가 지시했다.
집중하느라 퉁명해진 말투가 거슬리는지 눈살을 찡그리는 공희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어라 입을 떼 불만을 토로하려던 공희찬도 내 눈길을 느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돼?”
제법 얌전해진 공희찬이 불을 올렸다. 주위로 후끈한 열기가 퍼져 나갔다.
“응. 강준희, 시간 얼마나 남았어?”
그 말에 불이 따뜻해졌다며 헤죽거리던 강준희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이제 십오 분 정도 남았어. 다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강화 스킬을 통해 강준희가 두른 실드를 보다 두껍게 매만졌다.
강준희가 스킬로 만든 선체를 둥글게 덮은 불투명한 반구의 돔 덕분에 호흡을 방해하던 해무와도 잠시 차단된 상태였다.
둥근 막으로 창문에 김이 서리듯 해무가 달라붙어 하얗게 물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던전에 입장했을 때보다 한층 짙어진 해무였다.
이는 곧 우리의 목적지인 섬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잠시지만 안개에서 벗어나니까 살 것 같아. 어떤 때는 안개가 너무 무거워서 팔도 가누기 힘들더라.”
김미솔이 무덤덤한 투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평범한 안개는 아닌가 봐. 살에 닿을 때마다 너무 불쾌하고 기분이 나빠. 누가 작정하고 날 잡아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것까지는 괜한 착각인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홍원하가 덧붙였다.
역시 우리 중에 제일 쓸 만한 녀석다웠다.
“착각 아니야. 해무가 이렇게 짙은 건 던전 이름과도 관련이 있어.”
자꾸 나서면 꼰대처럼 보일까 봐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D급 주제에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나 싶어 의심을 사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아, 진심 아는 척 개쩌네. 너 진짜 뭐 잘못 먹었냐? 얘 말투 진심 정건후 삼킨 것 같다니까. 말하는 투가 개똑같아. 존나 개꼰대.”
공희찬의 투덜거림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동조는 안 해도 모두가 공감하는 모양새였다.
“지금이 웃을 때야? 다들 집중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문 헌터들 사이에 섞여 있다가 아카데미로 돌아오니 꼭 갓 태어나 털이 보송한 병아리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해무에 잠식된 비탄의 신전. 그게 뭘 의미한다고 생각해?”
나는 모두를 보며 질문했다. 역시나 모두가 내 눈을 피했다.
이건 다 큰 부대원들이나 어린 학생들이나 똑같았다.
“홍원하, 너 똑똑하잖아. 네가 말해 봐.”
음, 하고 입소리를 내던 홍원하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내내 비탄이라는 단어가 걸렸어. 아까 피라미 죽일 때 사람 소리가 났던 것도 그렇고. 난 지금까지 죽어 가는 순간에 사람 목소리를 내는 몬스터를 본 적이 없거든.”
그야 당연하다. 홍원하는 아직 헌터 아카데미조차 졸업하지 못한 일개 학생이다.
“맞아. 잘 얘기했어. 그럼 우리가 가려는 신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
그러자 한참 부루퉁한 얼굴로 있던 공희찬이 말했다.
“신전은 그냥, 신전 아니야? 뭐 더 알아야 할 게 있나? 뭐,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너야말로 공부 좀 했다고 잘난 척 으스대지 마라.”
나는 말없이 공희찬을 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난 기억 속에 공희찬의 모습이 희미하게만 남아 있던 것을 보면 졸업한 이후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지는 못한 듯했다.
학교가 일군 울타리 내에서만 으스대다가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로 끝난 거겠지. 굳이 기억해 내지 않아도 훤했다.
“비탄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괜히 생긴 건 아니지 않을까? 비탄이라는 이름만 본다면 그 주위에서 엄청 슬픈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근데 아닐 수도 있고…….”
강준희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말했다.
“정답이야. 제법이네, 강준희.”
내내 옹송그려 있던 강준희가 수줍게 웃는 것이 보였다.
그것까지는 차마 오래 보지 못하고 눈길을 틀었다.
“스킬라는 그 주위를 지나가는 뱃사람들을 전부 잡아먹는 몬스터야. 스킬라가 사는 해협을 지나가면서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열 명의 선원이 그 앞을 지나갔다고 하면, 살아서 돌아오는 건 늘 한두 사람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설연호에게 잠시 눈길을 주었다. 열중한 옆얼굴에 땀이 맺혀 있었다.
나는 굳이 방해하지 않으면서 김미솔이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눈짓했다.
“매번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다 보니 사람들은 이 바다를 두려워하게 됐어. 그런 와중에도 끔찍한 괴물을 물리치고 해협을 넘어서겠다는 욕심을 가진 뱃사람들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죽는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났지.”
김미솔이 쥐고 있던 손수건을 설연호에게 건넸다.
설연호는 그제야 숨을 고르면서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사람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다 보니 남겨진 사람들도 그만큼 많아졌어.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 바다에 대고 원통해하며 울부짖었고, 동시에 기도했지. 끔찍한 괴물에 잡아먹혀 죽었을지라도 그 이후에는 평안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빌었어.”
나는 고개를 젖혀 선체를 둥글게 덮은 실드를 바라보았다.
그 위로 계속해서 안개가 부딪히며 하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바다 앞에서 어찌나 오랫동안 통곡했는지 처음에는 얕게 드리웠던 안개가 이제는 바다를 전부 뒤덮을 만큼 짙어진 거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해무는 보통 안개랑은 전혀 다른 거라는 거네.”
“맞아.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안개에 온전히 대항하는 게 쉽지 않아. 이 바다를 덮은 해무는 사람의 정신을 건드리니까. S급 헌터라도 버거웠을 거야.”
마지막 말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만큼 지독한 나머지 대한민국에서 실력자로 손꼽히는 S급 헌터 중 하나였던 나조차 죽을 위기에 처했던 거겠지.
“거의 다 됐어. 원래는 상온에 두고 그대로 식혀야 하는데, 지금은 급하니까 빨리 식혀 버리자.”
“그래. 강준희가 도와주면 금방 식을 거야.”
그 말을 들은 강준희는 눈을 감았다. 머지않아 둥근 막 내부로 바람이 불어왔다.
공희찬이 서서히 불길을 꺼뜨리자 솥 주위로 바람결이 둥글게 맴돌았다.
“조금만 더 차갑게 해 줘.”
설연호의 지시가 이어지자 한층 서늘해진 바람이 불어왔다.
김미솔이 미리 만들어 두었던 유리병을 집어 든 설연호는 완전히 식은 솥을 기울여 완성된 해독제를 따랐다.
해독제가 담긴 유리병을 단단히 밀봉하자 선체를 둘렀던 반구의 실드도 흩어졌다.
손바닥을 짚고 훌쩍 기립한 나는 손을 털면서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계속 얘기했다시피 우리의 목표는 정면 돌파가 아니야.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돌아서 가 보자. 그럼 될 거야.”
* * *
뱃머리는 어느새 스킬라가 머무르고 있는 해협에 다가서고 있었다.
양옆으로 산처럼 솟은 바위 사이로 한쪽에 매달린 스킬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성 없는 몬스터인 스킬라에게 사람은 허기진 속을 채울 요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설연호, 해독제 들고 있지?”
“응.”
“다들 잘 들어. 우리는 방금 만든 해독제를 스킬라의 뱃속에 던져 넣을 거야.”
이전보다 훨씬 거세고 높은 파도에 선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힘껏 솟았다가 꺼지는 물살은 거대한 손처럼 온몸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해독제를 던지고 나면 아주 잠깐이지만 스킬라는 고통에 몸부림치게 돼. 그 사이에 해협을 지나가는 게 관건이야.”
스킬라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독제는 머리통 가운데에 있는 숨구멍에 던져 넣어야 해. 기회는 한 번뿐이니까 실수는 금물이야.”
나는 시스템 창을 끌어 화면을 띄운 후 조원들을 상대로 스킬을 시전했다.
“설계 스킬을 시전하면 가장 이상적인 전법이 너희 머릿속에 스쳐 지나갈 거야. 내가 구상한 전투 패턴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면 돼. 그게 어려울 때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대로 행동해도 되지만 쉽게 포기하지 마.”
간략한 설명을 마친 뒤 차례대로 설계 스킬을 시전했다.
다들 잘할 수 있을까. 저 어린 햇병아리 같은 것들을 대체 어떻게 믿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쏟아졌다. 어떻게 믿기는. 그냥 믿는 거지.
지금 당장은 머릿속으로 그린 새로운 전략을 무사히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다들 준비해.”
쾅!
콰지직―!
쿵!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검붉은 다리가 뱃머리를 감아 왔다.
“설연호, 던져!”
내 목소리를 신호탄으로 설연호가 들고 있던 해독제를 상공에 던졌다.
곁에서 대기하던 강준희가 대기의 흐름을 조종하는 듯 해독제가 호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나는 그 해독제가 스킬라의 뱃속에 떨어질 확률을 조종하며 지시를 이었다.
“공희찬, 홍원하! 너희 둘은 상성이 다르니까 최대한 떨어져서 공격하는 게 유리해. 계속해서 타격 넣어!”
공희찬이 불로 빚은 둥근 구를 힘차게 날리며 울부짖던 머리통을 가격했다.
스킬라가 화기에 움찔거리는 사이, 반대편에 있던 홍원하가 물로 빚은 창을 날렸다.
“계속 시선 끌어! 김미솔 선배, 할 수 있지?”
뱃머리가 바위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줄기를 길게 뻗어 스킬라의 다리를 옭아맨 김미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줄기가 한층 굵어지더니 삽시에 가시가 돋아났다.
“시선만 끌어서 되겠어?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으니까 지시 안 해도 돼.”
스킬라는 비명을 지르며 김미솔이 있는 쪽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어서 재빨리 허리춤에 손을 얹어 총을 꺼낸 나는 해독제의 근처를 아슬하게 빗나가도록 총구를 겨누었다.
탕!
조준을 마치는 즉시 방아쇠를 당겼다.
해독제 주변을 휘감았던 바람 사이로 버프를 덧입은 탄환이 스쳐 지나갔다.
버프에 힘입은 바람결이 다시금 가닥을 잡더니 해독제를 스킬라의 숨구멍에 내리꽂았다.
컥! 커헉!
켁!
숨구멍을 관통당한 스킬라가 순식간에 공격을 멈추고 바위에 매달렸다.
해독제가 퍼지기 시작한 것인지 다리로 바위를 끌어안듯 감싼 채 날카롭게 솟아난 부분에 대고 자신의 머리통을 짓이겼다.
쿵! 쿵! 쿵!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조원들은 이내 나의 지시 없이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합을 맞춘 것처럼 순식간에 뱃머리를 다잡더니 해협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선체의 뒷부분이 두 개의 바위 사이에서 온전히 빠져나올 즈음이었다.
무엇인가 귓가를 파고들어 심장까지 옭아매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희끄무레 다가온 새벽처럼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것은…….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신비로운 노랫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