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22
오행반선이 사라진 후 백자안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분신술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실제는 눈속임에 불과했다.
아직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양신을 만들 수준은 못 되었던 것이다.
백자안이 조금 전 상황을 돌이켜봤다.
분명 죽음의 순간이 임박해있었다.
하지만 그때 깨달음에 진전이 있었다.
생사초월의 마음이 들자, 자신의 몸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느껴진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 느낀 것으로 분명 선천적이었다.
처음에는 선천진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잠력과는 달랐다.
선천진기는 잠력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번의 기운은 뭔가 차원이 달랐다.
놀라운 것은 새로운 기운의 생명력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기의 소통이 이뤄졌다.
하지만 백자안은 기뻐할 틈이 없었다.
오행반선이 신선비수로 자신의 목을 자르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환영술을 이용해 가짜 육신을 내버려 두고 본래 몸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이때 사용한 신법은 이형환위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은잠술도 펼친 그는 외상마저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었다.
그때 오행반선은 백자안의 가짜 육신을 독을 이용해서 완전히 제거하고 있었다.
백자안이 결단을 내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물론 그것은 모험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아직 완전한 회복은 되지 않아 오행반선을 누를 정도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모험을 했고 오행반선의 착각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백자안이 분신술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해 겁을 먹고 물러난 것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운공요상을 더해야겠구나. 쉽게 회복될 내상이 아니다. 다만 이번에 새로 발견한 기운을 이용한다면 기존 공력을 빠르게 되찾을 수도 있겠군.’
백자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바로 다시 운공요상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손에 쥐고 있는 옥비녀를 봤다.
다시 봐도 악미미의 것이 분명했다.
‘악 소저가 실종되었다고 하더니 신선계로 끌려갔구나. 중원반선의 짓인 것 같은데, 오행반선 그자가 옥비녀를 가지고 있었다니. 나 때문에 고생이 많겠군. 마음의 상처도 입었을 테고.’
백자안이 악미미를 생각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신선계로 갈 상황도 아니었다.
‘악 소저를 해치고자 했다면 벌써 그랬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무림의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많은 생명이 달린 일이다.’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리며 운공에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하 광장에 들어온 지 하루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드디어 운공요상이 끝났다.
도중에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무명폭잠공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후유증도 이겨냈고 원래 공력을 되찾았다.
아니 새롭게 발견한 기운까지 더하면 무공의 경지가 더욱더 높아진 것 같았다.
특히 생사의 순간에 높아진 깨달음은 무공의 깊이를 더욱 새롭게 했다.
흥미로운 것은 새롭게 발견한 기운의 이름이었다.
단전에 꿈틀거리고 있는 새로운 기운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그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갖자, 뜻밖에 천상여의주가 답을 보내주었다.
‘천력(天力)이라고 했던가. 천력이라면 오행반선 그자가 말한 천족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생각 같아서는 좀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동방무맹과 마교 무사 육십만이 계속 대야벌에 주둔해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어서 올라가자. 많이 늦었다.’
백자안이 비상 통로를 통해 총단 위로 올라왔다.
한데 뜻밖의 상황에 백자안이 무척 놀랐다.
놀랍게도 총단 전체가 비어 있었다.
다시 말해 전각은 그대로인데 대인자문 무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철수한 것인가. 어떻게 된 일이지?’
백자안이 총단 내부를 좀 더 살핀 후 밖으로 나와 성문 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성문에도 대인자문 무사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급히 성곽 위로 올라간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멀리 보이는 동방무맹과 마교 무사들의 주둔지는 건재했다.
백자안이 성문을 열어둔 후 곧바로 대야벌로 향했다.
얼마 후 도착한 대야벌에는 육십만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성문을 향해 막 진격하려는 것 같았다.
“맹주님!”
“맹주님!”
백자안을 발견한 풍류도인, 부채도사, 불패마왕, 임요요 등이 그를 반겼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아 공격하려던 찰나였습니다. 놈들의 동태는 어떠합니까?”
“대인자문 놈들이 모두 사라졌더군요. 대인자문주와 그의 아들은 제가 죽였습니다.”
백자안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 어찌 그런 일이······ 놈들이 사라진 것은 저희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정탐무사들의 보고로 성곽 위에 놈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놈들의 계략으로 생각하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요. 일단 총단부터 탈환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무사들을 이끌고 입성을 했다.
아무도 그들을 막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성안의 백성들은 동방무맹 무사들의 복귀에 열렬히 환영했다.
얼마 후 동방무맹 총단에 들어온 무사들은 백자안 말대로 텅텅 비어 있자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도 놈들이 대인자문주의 죽음을 알고 본국으로 철수한 것 같습니다. 수장이 죽으면 본토로 돌아가는 것은 왜구들뿐만 아니라 대인자문의 전통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어떤 길로 철수했냐는 겁니다.”
풍류도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대인자문주의 죽음을 그들이 알았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지하 광장에 그의 시체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저밖에 없었으니까요. 아, 물론 오행반선이란 자도 있었지만······.”
“그러면 오행반선이라 자의 소행이 아닐까요?”
김지혜의 말이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소. 총군사께서는 정탐무사들을 보내 놈들의 흔적을 찾도록 하십시오. 만약 놈들이 육로로 남하해 왜국으로 철수하자고 한다면 가는 길에 백성들의 피해가 막심할 테니, 추적해 궤멸을 시켜야 합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풍류도인이 대답한 바로 그때였다.
총단 주위에 붉은 안개가 갑자기 나타나 주위를 감쌌다.
무사들이 다들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붉은 안개는 어느새 총단 주위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봉쇄진법!”
백자안이 소리쳤다.
문득 대인자문주가 준비했던 봉쇄진법이 생각난 것이다.
“맹주님. 뭡니까? 혹시 조금 전 말씀하신 그 화약 폭발 작전입니까? 화약과 폭발 기관은 이미 오행반선에 의해 제거되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풍류도인이 다급히 물었다.
백자안이 대답 대신 기파를 일으켜 주위를 경계했다.
그때 지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백자안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설마 화약 폭발이란 말인가. 오행반선 그자가 나를 속인 것인가.’
당황할 만도 했다.
화약이 실제로는 제거되지 않았고 이대로 폭발한다면 육십만 무사들이 몰살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오행반선 그놈이 대인자문 무사들을 특수 이동대법으로 어디론가 옮겨놓고 화약을 폭발시켜 우리를 몰살시키려 하는 것인가. 아니다. 놈의 목표는 바로 나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폭발을 막아야 했다.
그가 두 발을 통해 공력을 땅 밑으로 흘려보낸 것은 그 직후였다.
거대한 양의 폭약이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쾅.
지반이 크게 흔들리며 무사들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폭발력이 지하에서 억제된 것이었다.
붉은 안개 역시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으윽!”
백자안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불패마왕이 탄식했다.
“이런 무모한 짓을! 백 맹주가 폭발력을 몸으로 받아낸 것 같네. 아마 내장이 다 터졌을지도 모르겠네.”
“아!”
부채도사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백자안을 서둘러 업고 맹주 처소로 들어갔다.
불패마왕, 임요요, 풍류도인 등이 급히 뒤따라갔다.
* * *
백자안이 깨어난 것은 사흘 후였다.
많은 사람이 기뻐했으나, 백자안은 의미 모를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몸 상태를 묻는 말에는 그저 괜찮다는 대답뿐이었다.
“대인자문 놈들의 동향은 파악이 되었습니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왜국으로 돌아간 것도 아닌 것 같고,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으음, 어쩌면 제 추측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추측 말입니까?”
“신선계 반선인 오행반선이 그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간 것 같습니다. 인원이 무려 백만이라 다른 반선들의 도움을 받은 것 같은데, 천혈곡에서 삼십만 무사들이 그대로 끌려간 것을 생각하면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벌어진 것이군요. 하지만 이번에 복귀한 무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더군요. 바로 그 특수 이동대법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네. 하지만 백만 무사들을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신선계 아니면 중원이겠군요. 아무래도 맹주님께서 중원으로 복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네. 그럼 내일 아침 작전 회의 때 뵙겠습니다.”
풍류도인이 인사한 후 집무실에서 나갔다.
불패마왕과 부채도사 등 다른 사람과는 종일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마지막으로 풍류도인을 집무실로 불러 긴밀한 이야기를 나눴던 그였다.
풍류도인마저 처소로 돌아가자 백자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났구나.”
오늘 아침 사흘 만에 깨어났을 때 그는 바로 알아차렸다.
그의 무공이 폐쇄되었다는 것을.
이유는 주화입마 때문이었다.
주화입마 역시 일종의 내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내상과 달리 치명적인 것으로 회복은 거의 불가능한 게 대부분이었다.
‘수십만, 아니 수백만 근 화약의 폭발력을 맨몸으로 받아냈으니,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다.’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기혈이 완전히 뒤엉켜 있었다.
공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나 모든 혈맥이 막힌 것이다.
기경팔맥 모두가 그랬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모든 기관이 움츠러들었다고나 할까.
완전히 얼어붙은 기혈 때문에 내공을 전혀 모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단전이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의 통로가 막힌 것이므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무공폐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바로 백자안의 무림에서의 위치 때문이었다.
중원무맹, 동방무맹, 마교의 수장이 바로 그였다.
삼의맹주인 그가 곧 무림이라는 말도 전혀 엉터리는 아니었다.
‘일단 내 몸 상태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무공폐쇄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 천하는 더욱더 혼란해질 것이다. 아직 적들이 건재한 마당에 사기가 무척 떨어질 것이다. 어떻게든 다시 무공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맨 마지막에 얻은 새로운 기운은 억제가 되지 않았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랬다.
무공이 폐쇄되어 내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운 측 천력은 남아 있었다.
매우 적은 양이었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에게 무공 상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분명 잃은 것만큼 얻는 것도 있을 것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백자안이 마음을 편히 하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무명심법을 운공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조용히 명상에 잠기면서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래도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아져 있군. 자의는 아니었지만, 몸속의 기운을 모두 비운 것과 마찬가지 상태이기 때문인가. 차분하게 생각하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