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57
청성산.
산 전체에 안개가 얕게 깔린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무사가 오르고 있었다.
바로 백만에 달하는 서장무맹 무사들이었다.
사천성을 침공한 지 사흘 만에 서부 지역 무림문파들을 초토화하고 이곳 청성산을 거점으로 삼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특히 어제 벌어졌던 무림맹 무사 십만 명과의 대결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서장무맹 선봉대가 이끄는 성성이 괴수 십만 마리가 말 그대로 무림맹 무사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무림맹 무사 십만 명은 전멸되고 말았다.
총지휘자였던 태상장로 천수노인과 총순찰 영호광이 전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풍류도인을 비롯한 백여 명의 생존자가 도주하는 데 성공했지만, 워낙 수가 적어 큰 의미는 없었다.
한편 어제 청성산에서 희생된 사람은 무림맹 십만 무사뿐만이 아니었다.
청성파 본산에 남아있던 청성파 무사 수백 명도 몰살당하고 말았다.
청성파 건물을 서장무맹 지휘부에서 사용하기 위해 공격을 가했던 때문이었다.
“하하하. 맹주님. 성성이 괴수 덕분에 우리 무사들의 피해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경하드립니다.”
서장무맹 총군사 만통자(萬通者)의 말에 서장무맹주 불사대불(不死大佛)이 미소를 지었다.
“모두 마신님 덕분이지. 우리 서장을 관장하시는 서불마신(西佛魔神)께서 봉인에서 풀리신 후 성성이 괴수 십만 마리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침공을 주저했을 것이야. 그렇지 않나?”
“맞는 말씀입니다. 천축무맹 그놈들이 마지막에 우리와의 동맹을 거절하는 바람에 중원 정벌 작전이 취소될 뻔했지요. 하지만 뜻밖에 전설의 마신이신 서불마신께서 부활하실 줄이야. 신선계란 곳이 정말 실재하는 것 같습니다.”
“신선계의 존재는 이미 입증이 되었네. 얼마 전까지 중원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심회 반선들이 바로 신선계에 있지. 하지만 그자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네. 우리는 오직 서불마신님의 명만 받으면 될 것이네. 비록 지금 신선계로 통하는 문이 모두 닫혀 있다고 하나, 서불마신님은 어떻게든 이곳으로 오셔서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실 것이네.”
“물론입니다. 다만 정심회 반선들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정심회 반선들 역시 마신들의 부활을 바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 신선계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불마신께서 성성이 부대를 보내주신 것만으로 모든 게 잘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네. 이번에 봉인이 풀린 마신들은 서불마신님 말고도 백 명이 더 있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구십 구명이려나. 아무튼 신선계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우리는 중원무림 정복을 끝내야 할 것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네. 모든 게 계획대로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애초에 서불마신님의 도움으로 전체 무사들의 무공이 최소한 두 배, 많게는 열 배까지 올라간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적의 성성이 부대까지 있으니 삼의맹 놈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방심은 금물이네. 특히 삼의맹주인 백자안 그자는 무서운 놈이네. 포달랍궁의 궁주이기도 한 내가 불사대법(不死大法)을 연마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다면, 그놈 때문에 출정을 망설였을 것이야.”
“백자안 그놈은 허명만 가득한 놈입니다. 절대 맹주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그야 당연하지. 사실 서불마신께도 도움을 받은 바 있어 자신은 있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신선계 문이 닫혀 서불마신께서 무림으로 다시 오기 힘들다는 것이지. 사실 그때 잠시 오신 것도 폐쇄진법이 중원보다 우리 서장 쪽이 더 늦게 가동된 덕분이었지.”
“하지만 곧 마신의 종주인 천마신이 부활한다고 하니, 그때는 신선계의 폐쇄진법 또한 풀려 아무 장애가 없어질 겁니다.”
“그렇지. 그러니 그때까지 최대한 점령지를 넓혀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일단 이곳 청성산을 우리 서장무맹의 본거지로 개조한 후 곧바로 성도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백자안 그놈을 비롯한 삼의맹 무사 백삼십만이 지원을 온다고 해도 열흘은 걸릴 것이니까, 그때까지 사천성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중요할 듯합니다.”
“물론이네. 총군사만 믿겠네.”
“감사합니다.”
만통자가 고개를 숙였다.
불사대불 역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실로 오래도록 꿈꿔왔던 중원무림 정복이었다.
외세의 공격이 있으면 정사마를 막론하고 단결하는 중원무림의 전통 때문에 그동안 공격을 미뤄왔었다.
하지만 최근 서불마신의 도움을 받아 무력이 급격하게 높아지자 전격적으로 침공을 개시한 것이었다.
한편 청성파 총단 취의청에 모여 있는 사람은 두 사람 외에도 삼백여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바로 서장무맹의 지휘부 고수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서장무맹에 속한 문파들의 수장들로, 휘하 무사들을 이끌고 이번 출정에 참여했다.
출정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세력 확대였다.
서장무림 역시 포화상태에 이르러 그 힘을 분출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점은 대인자문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문파 수나 전력 면에서 대인자문보다 월등하다는 게 중평이었다.
“내일 새벽에 선발대가 성성이 괴수 십만을 이끌고 성도를 공략하시오. 본진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뒤따르도록 하겠소.”
불사대불의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휴우! 생각보다 늦게 왔구나.”
백자안이 안개에 쌓인 청성산을 보며 눈을 빛냈다.
전날 성도를 출발했던 그가 이제야 도착한 것은 바로 서장무맹의 정탐대 무사들 때문이었다.
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그들은 백여 명씩 조를 짜서 수색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백자안으로서는 무시하고 청성산으로 올 수도 있었으나, 문제는 그들의 횡포였다.
수색 도중 마을을 만나면 마치 마적처럼 노략질을 일삼았다.
마적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백자안이 이를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
양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그는 빠르게 경공을 펼쳐 서장무맹 정탐무사들을 주살했다.
그 인원만 천여 명이 넘었다.
워낙 빠르게 처리했기 때문에 아직 서장무맹주에게 그 소식이 전달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백자안은 근처에 있는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갔다.
청성산 쪽을 향해 기감을 펼친 결과.
예상대로 수많은 무사의 기가 느껴졌다.
그 수만 해도 백만 명이 훌쩍 넘는 게 확실했다.
나무 위로 올라간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였다.
‘이대로 무작정 산으로 올라가 놈들과 전면전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잠복하고 있다가 선발대부터 처리할 것인가.’
백자안이 잠시 고민했다.
처음에는 곧바로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주살하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서장무맹 정탐무사들을 상대해본 결과 생각이 달라졌다.
무사들 개개인의 무공이 소문대로 매우 강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강하다 함은 바로 백자안의 내공이 적게라도 소모된다는 뜻이었다.
‘적의 수는 무려 백만이다. 게다가 서장무맹주는 불사대법을 익혔다고 들었다. 그런 자를 척결하려면 내공의 소모가 막심할 것이다. 게다가 성성이 괴수들 또한 강적일 것 같으니, 나 역시 힘의 안배가 필요하다. 일단 여기서 놈들의 선발대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각개격파하는 것이 좋겠구나. 어차피 성도로 가려면 이 길을 꼭 거쳐야 하니까, 다른 길로 우회할 수도 없을 것이다.’
백자안이 주위를 둘러봤다.
갈대가 군데군데 자라나 있는 허허벌판이었다.
‘청성벌이라고 했던가. 이곳을 내가 차단한다.’
백자안이 기감을 더욱더 넓게 퍼뜨리며 나무 위에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기본적으로 천 명 이상의 무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공력이 필요했다.
게다가 한 번에 그런 공력을 분출할 수 있는 폭발력이 필요했다.
‘어쩌면 선발대를 보내면서 성성이 괴수들을 앞세울지도 모른다. 괴수들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나, 자신들의 병력 희생을 최소화할 방법일 테니까.’
백자안이 차분히 전방을 쳐다보며 계속 운공에 들어갔다.
하지만 서장무맹 무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산기슭에 서장무맹 무사 수십 명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통상적인 순찰 같았다.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정탐무사들이 궤멸한 것을 알게 되면 골치 아파질 수 있다.’
백자안이 청성산에 직접 들어가려다가 다시 멈췄다.
‘내일 새벽 때까지만 기다려본다. 선발대를 보낸다면 더는 늦추지 않을 것이다.’
백자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음날 새벽 무렵.
안개를 뚫고 산에서 내려오는 무사들이 보였다.
바로 서장무맹 선발대 무사들이었다.
비록 백자안이 있는 청성벌까지 오려면 아직 한시진은 더 있어야 했으나, 분명 무사들의 이동이었다.
‘십만 명 정도 되는 것 같군. 서장무맹의 선발대 무사들이다. 과연 나 혼자서 감당이 될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대군을 상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만했다.
아무리 천하제일고수라 해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의 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 한계는 대략 천 명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다가오고 있는 적의 수는 십만 명.
천 명의 백 배였다.
백자안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었고, 지난 석 달간 무공도 다시 늘었다.
‘십만 명이나 백만 명이니 하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독 안개를 만들어 벌판 가득 메운다면 그 속에 있던 적들은 모두 죽게 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나를 믿는 것이다.’
백자안이 다시 한번 내공을 가다듬었다.
그 내공은 바로 천력이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천력을 끌어올릴 때 그가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발대 십만 무사가 끝인 줄 알았는데, 그 뒤로 괴수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성성이들이었다.
보통 사람 두 배 정도의 키를 가진 놈들은 곰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곰보다 날쌔 보였다. 게다가 어떤 병장기보다 날카로워 보이는 발톱이 인상적이었다.
‘성성이 괴수들이군. 이전에 보았던 늑대괴수들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신선계에 있던 괴수 중 일부인 것 같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신선계 괴수들이라면 장풍처럼 경력을 스스로 발출할 가능성이 컸다.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듯하다. 싸움을 최대한 빨리 끝내지 않으면 놈들의 본진 무사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겠군.’
백자안이 천력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마치 무명폭잠공을 일으킨 것처럼 최대의 공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기를 잘했다. 일단 저놈들부터 궤멸시킨 후 조용한 곳을 찾아가 회복운공을 한다. 그다음 다시 놈들을 각개 격파할 방법을 찾는다. 저놈들을 그대로 성도로 보내면 그 안에 있는 사천무림연합 무사들이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저 괴수 놈들의 배후를 알지 못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만약 배후에 있는 자가 마지막에 나타난다면 내가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이럴 때 지존검과 천마검이 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백자안이 허리에 찬 검을 만졌다.
성도에서 출발하기 전 병기점에서 산 평범한 검이었다.
‘여태 그래왔듯이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번뇌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