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69
반년 후.
호남성 성도 장사성에는 천하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무림인들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흘 후 이곳 장사에서 무림의 운명을 결정지을 영웅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침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무림을 구원하기 위한 최후의 저항 모임이었다.
이미 지난 반년간 호남성을 제외한 중원 전역은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반년 전 서장무맹을 배후에서 지원해주던 서불마신이 백자안에게 소멸되자, 서장무맹주 불사대불이 전격적으로 또 다른 마신인 황궁마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것이 그 시초였다.
승상을 사주해 당금 황제를 폐위시키는 데 성공한 후 무림에 관심이 있던 황궁마신이었다. 불사대불의 충성 맹세를 흔쾌히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었다.
아직 절대황녀를 중심으로 전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저항 세력이 상당했기에 그들의 토벌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선 것도 있었다.
물론 서장무맹 세력을 휘하로 두기 위해서는 황궁마신이 반야마신을 견제해줘야 했다.
천축무맹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반야마신은 이를 묵인했다. 그 대신 묵묵히 강북무림을 제패하려는 천축무맹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현재 강북무림은 완전히 천축무맹의 세력권 아래로 들어가고 말았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무림인들도 이제는 대부분 강북무림에서 빠져나와 강남무림의 중심지인 이곳 장사로 모여들고 있었다.
힘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다행히 호남성은 무림인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아직 서장무맹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기 전에 몰듯 무림인들을 이곳 장사로 모이게 해 일망타진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림인들은 이를 알면서도 올 수밖에 없었다.
중원 각 성 중 유일하게 외세 무림의 침공을 받지 않는 곳이 바로 호남성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호남성 성도인 장사에는 전 황제의 여식인 절대황녀가 군사들을 이끌고 주둔하고 있었다.
새롭게 황제가 된 승상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직접 이곳 장사로 향하고 있었다.
이는 서장무맹주 불사대불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남무림을 거의 제패한 그로서는 마지막 남은 호남성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본격적인 침공이 가시화되자 무림인들은 영웅대회 개최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이에 따라 최후의 저항을 위해 사흘 후 영웅대회가 개최되게 된 것이었다.
이른 아침.
막 성문을 통과한 두 명이 관도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삼십 대 사내 한 명과 소녀 한 명이었다.
한데 소녀는 바로 청성촌 촌장의 손녀딸인 방일화가 아닌가.
방일화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관도에는 비장한 표정의 무림인들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중 상당수는 천하 각지에서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에 의해 사문이 초토화되어 복수심에 불타는 자들이었다.
“사부님. 벌써 많은 무림인이 도착한 것 같네요. 이분들이 사부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까요? 다들 사부님이 서불마신을 제거하고 절대마인이 되어 죽었다고 하던데, 언제 본래 신분을 밝히실 건가요?”
“죽을 뻔한 것은 사실이었지. 그때 일화 네가 없었다면 아마도 심맥이 터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사내가 눈을 빛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랬다.
다시 새로운 얼굴로 역용했지만, 사내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반년 전 주화입마로 인해 절대마인이 되었던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청성촌이었다.
새롭게 거주지를 마련한 청성촌이야말로 그가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절대마인이 되어 혈광을 발산하는 백자안을 본 청성촌 마을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백자안의 본 얼굴을 처음 봤기 때문에 그들은 처음에 당연히 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계곡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을 잃은 백자안을 죽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생명을 구한 사람이 바로 방일화였다.
백자안에게 무공을 배울 때 내공까지 얻은 그녀는 기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괴인이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백 무사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이후 방일화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물론 초보 무림인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치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백자안으로부터 배운 기본적인 내공 치료는 할 수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러한 치료가 효과를 발휘했다.
절대마인이 되어 폭발 직전이었던 심맥이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된 것이었다.
백자안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석 달 후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백자안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본이름과 신분을 밝힌 후 다시 회복운공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영웅대회 개최 소식을 듣고 이곳 장사로 오게 된 것이었다.
방일화가 함께 오게 된 것은 아직 백자안의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아서였다.
백자안은 이제 괜찮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치료의 대가로 정식 제자가 된 방일화의 고집은 완강했다.
백자안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방일화의 무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는 데다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동행을 허락했다.
그렇게 며칠이 걸려 이곳 장사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일화야. 때가 될 때까지 내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삼의맹은 이미 해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아마도 이번 대회에서 새로운 맹이 결성될 것이다. 내가 실력이 아닌 이전 명성으로 다시 맹주가 되면 반발할 사람이 분명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말조심해야 한다. 이제부터 나는 만상문(萬象門)의 문주로 행세할 것이다. 별호는 만상서생(萬象書生)이다. 알겠느냐?”
“네. 사부님. 그럼 저도 만상문의 제자가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너는 내가 정식으로 받아들인 첫 번째 제자이니 영광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이지요. 호호호. 천하제일고수를 사부님으로 모셨으니까요. 한데 정말 이제 몸은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 칠할 정도 회복했다. 네가 진기로 내 몸속에 있던 천상여의주를 깨우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 천상여의주란게 정말 신기하네요. 한데 정말 이제 완전히 사라진 건가요?”
“그렇다. 원래 천상여의주는 신선계에 있는 천음반선에게 보검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빛이 바랬었다. 한데 이번에 내가 죽을 운명에 처하자 남은 힘을 내게 준 후 완전히 소멸했다. 하지만 여러 번 말했듯이 일화 네가 때에 맞게 나와 같은 기운을 넣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한다.”
“그 덕분에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저도 좋고 사부님도 좋은 것이지요. 세상에 어디 저만한 제자가 있나요?”
방일화가 활짝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 수줍음으로 말도 잘 못 하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였다.
“일단 요기부터 하도록 하자.”
“네. 저기 객잔이 보이네요.”
* * *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객잔 안은 무림인으로 가득했다.
외세 무림의 침공으로 숨죽여서 지내야 했던 다른 곳과 달라서 그런지 무수히 많은 말이 쏟아지고 있었다.
가히 저잣거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내심 최신 정보를 기대하고 있었던 백자안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실 그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가족들의 생사였다.
이곳 장사로 오면서 나름대로 소식을 알아봤는데, 확실한 것은 없었다.
물론 특수 이동대법으로 본가가 있는 풍운장원으로 가보는 것이 가장 확실했으나, 아직 그 정도로 내상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가족이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사실로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 가족이 놈들에게 붙잡혀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가지고 협박할 텐데, 그러지는 않는 것을 보니 모처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구나. 어쩌면 이번 영웅대회 때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가 무사함을 기대하는 것은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악미미와 백리설아, 단목수련 등 그와 친분이 있는 사람 모두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여전히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생사불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살아있다면 이번 영웅대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백자안이 영웅대회 소식을 듣고 아직 내상 회복이 덜 되었음에도 곧바로 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삼의맹주로서의 임무에 많은 과오가 있었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현재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반드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세요? 사부님.”
“아, 아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게 많아서 말이야. 일단 이곳에 오긴 했는데, 조금 막막한 게 사실이구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사부님을 믿어요. 어디로 먼저 가보실 생각인가요? 대회가 열리는 무림맹 장사지부로 가실 건가요?”
“아니다. 그곳 지부장인 우문호 대협과는 친분이 있긴 하지만 아직 내 신분을 드러낼 수 없으니, 일찍 가봤자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실 건가요?”
“공주님을 뵈러 관아로 가볼 생각이다.”
“절대황녀 말씀인가요?”
“그렇다. 이전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큰 어려움에 부닥쳤으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하다. 하기야 황궁마신이란 자가 서장무맹를 후원하고 있으니, 어차피 부딪혀야 할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승상이 이끄는 황군이 정말 이곳 장사로 쳐들어올까요?”
“물론이다. 공주님과 황룡선생이 보유하고 있는 십만 무사는 절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게다가 승상이 새 황제가 된 후 거느리게 된 황군 중 상당수는 상황 변화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라 할 수 있지.”
“하기야 그 때문에 전대 황제를 아직 죽이지 못하고 황궁 모처에 가둬놓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 하지만 공주님마저 놈들에게 당한다면 더는 살려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황궁이 우리 무림보다 더 위기라 할 수 있지.”
“동방과 마교 무사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분명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에요. 중원무맹 소속 무림인들은 워낙 천하에 넓게 퍼져있어 이번 영웅대회에 대거 참가하는 것 같지만, 동방과 마교 무사들은 영 소식이 없는 것 같네요.”
“나 역시 궁금하다. 하지만 동방무맹과 달리 마교의 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게 퍼져있다. 아마 내 생각에 이번 대회 때 그 실체를 볼 수 있을 것 같구나. 동방무맹 무사들 역시 마교의 도움을 받아 힘을 비축하고 있을 것 같고 말이야. 물론 이 모두가 나의 희망 사항이지만 말이다.”
“사부님 말씀대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기야 삼의맹의 생존 무사들이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사실 백만 명이 훨씬 넘는 무사들이 천축무맹에게 전멸에 가깝게 패했다는 게 조금 의아했어요.”
“총군사 만박서생은 재주가 많은 분이다. 훗날을 위해 전사자 수를 속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실 여부 또한 이번 영웅대회 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그야말로 이번이 무림을 수호할 마지막 기회이니까.”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건 그렇고 사부님의 정혼녀인 악 소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분을 가장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방일화가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처음부터 백자안이 음파차단을 해두고 있었다.
이미 그 사실을 알렸지만, 방일화가 무의식적으로 다시 주의를 한 것이었다.
“악 소저는 분명 살아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적인 일을 우선시할 때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지. 대회 기간 동안 한번 수소문해볼 생각이다. 아마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실종이 된 무림인들의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가장 관심을 모을 사람은 바로 사부님일 거예요.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게다가 어쨌든 사부님께서 상상하기 힘든 고수인 서불마신을 제거하셨으니, 놈들 역시 사부님의 생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거예요. 어쩌면 이미 간자들이 성내로 들어왔을 수도······.”
“간자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지. 양민들을 괴롭히는 흑도 놈들이 근절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요. 흑도 중에 괜찮은 사람도 많은데, 꼭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 오면서 제가 제거한 흑도 놈들만 벌써 수십 명이니 말을 다 했지요.”
“흑천방 잔당 말이냐?”
“네. 혈교와 사사천교의 멸망으로 놈들의 휘하로 들어갔던 흑천방 역시 멸문했다고 들었는데, 잔당들이 있더라고요. 흑천방주가 살아있다는 소문도 있고 말이에요. 사부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들어보면, 흑천방 그놈들이야말로 발본색원해야 할 놈들 같던데 말이에요.”
“으음, 아마도 흑천방주가 살아있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어쩌면 흑도 일부 세력처럼 서장무맹이나 천축무맹의 간자가 되어 있을 수도 있겠지.”
“어디 흑천방주 뿐이겠어요? 제가 듣기로는 무적세가의 독고준 그 자도 천축무맹 휘하로 들어갔다면서요?”
“그런 것 같더구나. 하지만 보다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야 상황 판단이 가능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산속에 너무 오래 있었던 같다. 반년 동안 중원 무림 거의 전부가 놈들의 손에 들어갔으니, 모두가 내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