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79
백자안의 천서 수련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중간지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구름을 타고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나 똑같은 풍경뿐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과 수많은 봉우리.
구름을 타고 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수색을 하면서도 천서 연마는 계속되었다.
그의 거처는 제2의 무자천서가 발견된 초가였다.
봉우리 이름도 지었다. 바로 봉우리 아래에 있는 망부곡을 본 따 망부봉(望夫峰)이라 지었다.
특수 이동대법을 통해 중간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림 상황을 고려할 때 그의 복귀가 시급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특수 이동대법을 펼쳐 중간지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간지대 내부에서 이동대법을 펼치는 것도 불가능해 분명히 어떤 진법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석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천서에 수록된 무공과 비술 연마 속도는 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구 하나하나의 해석이 너무 심오했다.
백자안이 이전에 비슷한 법문과 구결을 익히지 않았더라면 아예 연마할 시도조차 못 했을 정도였다.
틈틈이 이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배웠던 무공들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 무공 중 가장 큰 진보를 보인 것은 바로 팔대무공이었다.
천서와 함께 연마하니 덩달아 그 무공들도 수준이 올라간 것이었다.
백자안은 이번 기회에 그동안 그가 습득한 무공 전체를 최고 수준까지 올리기로 했다.
이는 혼자서 이 넓은 공간에서 지내는 답답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는 것일까.
중간지대로 들어온 지 반년이 지나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천서 수련과 기존 무공 재연마를 통해 그의 무공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림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다시 중간지대 안을 조사해봐야겠구나. 반드시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 무공 연마만 하며 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백자안이 운운술을 펼쳐 구름을 타고 중간지대 외곽 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끝을 볼 생각이었다.
그 이면에는 무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지난 반년간 천서 덕분에 기존 무공이 두 배 이상 강해진 것이다.
물론 천서의 이해도는 아직 일성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반년 동안 두 배 이상의 무공 상승을 가져온 것은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휘휘휙.
백자안을 태운 구름이 빠르게 북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름을 타고 무려 석 달을 날아갔을 때.
마침내 중간지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끝이라 해서 벽으로 막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금빛 막이 있어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백자안은 이를 무시하고 그 막을 통과해보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용암처럼 그 열기가 대단했다.
막의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더는 모험할 수 없었다.
다만 금빛 막은 계속 팽창하고 있어 중간지대의 총면적은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으음, 안 되겠구나. 하지만 이대로 망부봉으로 돌아가면 다시 석 달이 걸릴 터. 그렇게 되면 내가 중간지대로 들어온 지 일 년이 된다. 그동안 무림과 신선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내가 없더라도 무림에 어떤 희망이 생겨나야 할 텐데······.’
백자안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의 무공 수준은 지난 석 달 간 다시 상승을 가져왔다.
구름을 타고 이곳까지 오면서 무공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천서에 수록된 구중천심공(九重天心功)이 마침내 일성에 도달했다. 아홉 단계로 이루어진 심공의 첫 번째 단계이긴 하나, 역시 천계의 심법이라 할 정도로 대단하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백여 장 앞에 작은 봉우리 하나가 보였다.
금빛 막 때문에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무공으로 답답함을 풀려는 것이었다.
쏴아아.
백자안이 우수를 내밀자 부드러운 바람이 장심에서 나와 봉우리를 강타했다.
콰콰쾅.
봉우리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며 사라졌다.
비록 작은 봉우리라고 하지만 야산 정도의 크기였다.
일장으로 박살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게 사실인 것이다.
‘구중천심공 덕분에 지존장법을 대성했구나. 장법 외에 다른 팔대무공 역시 대성을 이루었다. 이게 다 구중천심공 덕분이다. 기존의 무명심법보다 훨씬 성취 속도가 빠르다. 적어도 수십 배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정말 내가 천족의 후예인 것 같구나. 지성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팔대무공을 대성하는 데 성공하다니······.’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구중천심공을 비롯한 천서의 무공을 제외하고 기존의 모든 무공을 대성했다.
물론 무형검의 최고봉이라는 지성에 도달한 것은 아니나 지난 아홉 달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이었다.
‘이 정도면 일대일로 겨뤘을 때 웬만한 반선과 마신들은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놈들의 합공은 부담스럽고, 특히 천마신과 싸워 이긴다는 보장은 없을 듯하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중천심공을 대성해야 모든 무공이 완성될 것 같았다.
물론 그와 같은 경우에도 지성에 도달해 지성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지성은 깨달음의 문제였기에 무공을 대성했다고 도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성자가 되면 모든 무공을 대성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따라서 똑같이 무공을 대성해도 지성자와 그 외의 자가 펼치는 무공은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참고로 지성자의 무공은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다고 전해졌다.
이는 적들이 아무리 많은 수로 합공을 가해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차원이 다른 무공을 구사하기 때문이었다. 지성자의 무공은 그야말로 진정한 무신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만부봉으로 돌아갈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미 아홉 달이나 지났다. 몇 달 정도 중간지대에 더 머무른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망부봉에 초가가 있는 것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터. 중간지대에서 나가기 위해서라도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 다만 돌아가면서 무공 연마는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
백자안이 망부봉 쪽으로 출발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양피지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무자천서를 불태운 후 얻었던 두 장의 양피지였다.
그 중 한 장은 천서가 수록된 것으로, 백자안이 지금 연마하고 있는 구중천심공이 그 대표적인 무공이었다.
다른 한 장은 뒷짐을 지고 있는 한 사내의 그림으로, 천서 해독이 어려울 때마다 그 그림을 보고 백자안은 감정이입을 했었다.
이후 천서 해독은 거의 마무리 된 상태였다.
마지막 한 구절만 남았는데, 아직 그 의미는 모르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양피지 두 장 모두 꿈틀거리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린 것이다.
백자안이 급히 양피지를 꺼냈다.
양피지 두 장은 금빛으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중간지대 끝에 있는 이곳 금빛 막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혹시 아직 해독하지 못한 이 문구가 중간지대에서 빠져가는 열쇠가 아닐까.’
백자안이 양피지들을 활짝 폈다.
이후 금빛 막 쪽으로 좀 더 이동했다.
열기가 느껴져 조금 힘들었지만 백자안은 멈추지 않았다.
예감이지만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금빛 막까지 양피지를 댔다.
조금만 더 가면 그의 몸뚱이가 녹아내릴 것 같았기 때문에, 양피지부터 가까이 댄 것이었다.
그때였다.
화르르! 소리와 함께 양피지 한 장에 불이 붙었다.
불이 붙은 것은 바로 천서였다.
백자안이 깜짝 놀라며 양피지를 뒤로 빼려 했다.
그 순간, 천서 마지막 구절이 적힌 부분이 해독되기 시작했다.
양피지는 이제 활활 타며 재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백자안은 마지막 구절에만 집중했다.
다른 부분은 이미 해독과 암기가 끝난 상태라 천서가 사라져도 큰 문제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구절이었다.
백자안이 마침내 해독된 글자를 읽었다.
“아! 또 이런 제한에 걸렸구나. 무저곡에 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백자안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구중천심공 역시 단계가 높아질수록 연마가 어려웠다.
구중천심공은 모두 아홉 개 층으로 이루어졌다. 구중이란 말은 이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구중천심공을 대성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십 년은 걸릴 것이다. 이곳에서는 풀뿌리 하나만 먹어도 한 달 이상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어서 식량 걱정은 없지만, 문제는 무림의 상황이다. 일 년도 아니고 십년이라니······.’
백자안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천서 외의 다른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다면 구중천심공을 대성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몰랐다.
무명심법과 마찬가지로 구중천심공 역시 일정 경지에 도달해야 진정한 위력이 발휘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에게는 팔대무공이 있었다.
무명심법 또한 비록 지성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 팔대무공처럼 외형상 대성을 한 상태였다.
따라서 무형검 중에서도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한 셈이었다.
하지만 구중천심공은 무명심법보다 한 단계 높은 심법이었다.
참고로 천서의 실전무공은 구중천심공이 삼층에 이르러야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천계의 무공답게 산을 쪼개고 바다를 가를 정도였다.
‘무공 경지가 높을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십 년 이상을 다시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신비의 회오리바람 같은데, 구중천심공을 대성하지 않더라도 소환할 방법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래도 이곳을 나가 무림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다.’
백자안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망부봉으로 날아갔다.
휙휙휙.
운운술을 펼쳐 구름 위에서 허공을 날아가는 백자안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곳 중간지대에서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 같았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았다.
첫째 이곳 중간지대에서는 몸이 늙지 않았다.
천족의 후예에게 최적화된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먹는 것 역시 풀 한 포기로 한 달을 사는 것이 가능했다.
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기적으로 내리는 비를 식수로 먹는 것으로 충분했다.
‘어떻게 보면 내게 정말 효율적인 수련 장소인데, 밖으로 나갈 기약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구나.’
백자안이 구름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중천심공 연마에 들어갔다.
잡념을 없애는 데는 심법 연마가 최고였다.
‘모든 것은 필요가 있으므로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무리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위해서라면 잠시 무림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한데 아까 천서에 적혀있기를 천족의 후예가 아닌 자가 이곳에 들어오면 모두 돌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망부곡에 있던 석상들이 바로 그들이 아닐까. 어쩌면 내 가족들 역시 그 속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마음의 평정이 조금 흔들렸으나, 그나마 희망이 깃든 초조함이었다.
‘지성자가 되면 돌들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했지. 결국, 지성에 도달해야 모든 것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성의 경지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