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199
이틀 후 정심봉.
둥둥둥!
“지금부터 선마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짝짝짝.
일만여 정심회 반선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저께 정심대회보다 박수 소리가 훨씬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선마대회에는 단상 위에 백마회 소속 마신들이 모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황금빛 가면을 쓴 천마신을 위시하여 백여 명의 마신들이 질서 있게 앉아 있었다.
겉으로 본 그들의 모습은 의외로 매우 평범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이었다.
오히려 도력이 드러나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들은 정심회 반선들이었다.
하지만 백마회 마신들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불과 백여 명밖에 되지 않음에도 그 백배가 되는 정심회 반선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마치 내부가 텅텅 비어 있어 어떤 압력도 그대로 통과해버린다고나 할까.
정심회 지휘부 반선들이 대부분 긴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백자안은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데 지난번과 달리 옆에 와룡반선이 없었다.
백자안 역시 아침에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가볍게 놀랐지만 그렇다고 찾지는 않았다.
미리 대회장에 와 있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신입반선들이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저께 공식적으로 정심반선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맞선 이후로 백자안을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백자안이 와룡반선을 찾는 것을 일단 중단하고 단상에 앉아 있는 천마신을 쳐다봤다.
황금 가면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백자안이 찾고 있는 것은 바로 지존검과 천마검이었다.
하지만 천마신의 몸에 병장기는 전혀 없었다.
‘나처럼 보이지 않게 몸속에 숨겨둔 것인가.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지만, 그 무공 수준이 나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저 상태에서 봉인까지 모두 풀리면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그 역시 무공 경지가 매우 높아 싸우기도 전에 승패를 대강은 알 수 있었다.
한데 천마신의 경우 처음부터 자신이 상대가 안 된다는 점을 느낀 것이다.
반면 다른 마신들의 경우는 달랐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고수였지만 일대일로 붙었을 때 열세라고 느껴지는 마신은 없었다.
문제는 백자안 자신과 비등한 실력을 지닌 마신들이 절반 이상으로 감지되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들이 두세 명씩 합공을 가한다면 자신이 패배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음반선님의 말씀대로 지존검의 각성부터 이뤄야 하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천마검은 나중에 찾더라도 지존검의 행방부터 알아내야 한다. 결국 서약봉까지 따라가야 한단 말인가. 그곳에서 서약의 돌을 파괴하려면 어차피 지존검을 꺼내야 할 테니까.’
백자안이 심호흡을 했다.
일단 적들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기야 지금 그의 적은 마신들만이 아니었다.
일만여 명에 달하는 정심회 반선들이 있었다.
사실 그들 역시 하나같이 상승고수였다.
백자안의 무공이 최근 연이어 급상승해서 그렇지 이전에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상대하기가 벅찼었다.
백자안은 내친김에 정심회 반선들의 무공 수위도 가늠해봤다.
‘정심회주의 무공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정도다. 그가 완성했다는 신공이 변수가 되겠지만 천마신처럼 아예 패배가 확실한 상대는 아니다. 다른 반선들은 최소한 십여 명이 합공을 가해도 내가 승산이 높다. 하지만 그 이상이 합공을 가해온다면 내가 패배할 것 같구나. 문제는 정심회 반선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저들은 은둔반선들을 소환해 상대하게 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백자안이 차분하게 계획을 세웠다.
자신이 상대할 적은 정심회주와 마신들 정도로 일단 분류해두었다.
정심회주를 제외한 정심회 반선들은 지존검 각성 후 소환될 은둔반선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서약봉으로 갈 때까지는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겠구나.’
백자안이 기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단상 위를 쳐다봤다.
마침 사회를 맡은 정심총관이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선마대회는 우리 신선계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날에 제가 사회를 맡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우리 정심회와 동맹을 체결한 백마회 분들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 백마회 마신들의 경우 어젯밤 도착했기 때문에 이미 정심회주 등 정심회 지휘부 고수들과는 인사를 나눈 상태였다.
하지만 일반 정심회 반선들의 경우 마신들을 처음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마신들의 거처는 신선계 안에서도 찾기 힘든 심처였다.
마신들이 봉인될 때 그 주위 역시 진법과 결계 등이 있어 마치 뇌옥처럼 출입이 폐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봉인은 풀렸고 그 모든 제한이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
다만 특수 봉인을 당했던 천마신만이 아직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혹자는 그렇다면 천마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마신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천마신의 특수한 위치였다.
그는 마신들의 기와 연동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혼자서 다른 마신들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죽게 되면 다른 마신들도 모두 죽게 되는 단점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마신의 봉인을 하루빨리 완벽히 해제해야 하는 이유였다.
다른 마신들이 아무리 무림을 장악하고 활발하게 움직여도 천마신이 목숨을 잃는다면 그야말로 허사이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심회의 경우는 그 반대라는 점이었다.
대왕정심단을 복용한 정심반선이 죽게 되면 숙주가 소멸하는 셈이라 다른 정심회 반선들의 중독 역시 해소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정심회 반선 중에도 적지 않은 이탈자가 나오리라는 것이 백자안의 생각이었다.
반선 중에는 와룡반선처럼 정심반선에 대한 충성심이 약하고 정심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에 따르는 사람도 많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하나하나 차분하게 풀어나가면 된다.’
백자안이 다시 마음을 다스릴 때.
백마회 마신들에 대한 소개가 끝났다.
천마신을 비롯한 백여 명의 마신들.
백대마신이라 해서 꼭 백 명의 마신은 아니었다. 백 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
백자안은 그들 중에 자신의 얼굴로 역용해 무림을 다스리고 있다는 반야마신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 점은 내심 아쉬운 부분이었다.
서약봉에서 지존검과 천마검을 회수하는 과정에 부득이 싸움을 벌여야 할 가능성이 큰 상황. 그때 반야마신도 한꺼번에 제거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본격적인 대회에 앞서 이번 대회를 방해하고 대세를 거스르려는 세력을 소탕했음을 알립니다. 어젯밤 그동안의 정보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은둔회 반역도들을 대거 색출해 제거했습니다. 놈들의 수급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심총관이 눈짓하자 경계반선 백여 명이 일제히 상자 하나씩을 가져왔다.
나무 상자였다.
백여 개의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같은 수의 수급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헉!”
차분하던 반선들이 다급성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동료 정심회 반선들이었던 것이다.
놀란 것은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여 개의 상자에 담긴 수급 중 하나가 와룡반선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나 때문에 죽었구나.’
백자안이 탄식했다.
그가 보기에 와룡반선은 은둔회에서 파견한 간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저께 자신과 관련해 소극적인 대답을 했고 그 때문에 지휘부의 미움을 산 게 분명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죽임을 당한 반선들은 그동안 지휘부에 불만을 토로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컸다.
‘최소한 절반 이상은 은둔회 간자라는 명목하에 숙청을 당한 것 같구나.’
백자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후 상자들이 모두 치워지자, 정심총관이 말했다.
“하하하!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대회를 진행하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 정심회와 백마회의 총회주를 뽑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날이니 다들 함성을 질러주셔도 좋겠습니다.”
함성을 지르지 않는 것은 신선계 대회의 관례였으나, 파격적으로 예외를 인정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숙청된 백여 명의 수급 때문에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올리려는 의도로 보였다.
그 의도는 적중했다.
그동안 소리를 못 질러 갑갑했는지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짝짝짝.
단상에 앉아 있던 마신들도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천마신과 겨루게 될 정심반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신공을 펼치기 전에는 내가 천마신보다 약하게 보이겠지만, 일단 대결이 벌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신선경이 무기로 변하면 어떤 위력을 보이는지 다들 알게 될 것이다.’
반면 천마신은 가면 때문인지 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백자안은 천마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그의 불완전 봉인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천마신 저자의 얼굴이 드러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벌써 어떻게 지존검과 천마검을 회수할지 걱정이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임기응변의 도가 있었다.
사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서 미리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때가 많았다.
백자안은 그저 최선을 다하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정심총관의 말이 들렸다.
“정심회주 정심반선님과 백마회주 천마신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두 분 대결의 승자가 총회주가 되어 우리 모두를 다스리게 될 겁니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반선들과 마신들의 내공이 강해서인지 정심봉 전체가 떠나갈 듯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이들 둘이 붙는 것은 나로서는 싫지 않은 일이다.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강자는 천마신이지만 불완전 봉인이라는 약점이 있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정심반선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지만 신공이 잠재된 듯하니 그 위력이 드러나면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군.’
백자안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천마신과 정심반선이 비무대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두 사람 모두 별다른 경공을 펼치지도 않았다.
“천마신 귀하와 겨루게 되어 영광이오.”
정심반선의 말에 천마신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가면을 쓴 것도 모자라 말도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정심반선이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지금 이곳이 어디인가.
정심회의 본거지였다.
아무리 마신들의 무공이 강해도 자신의 본거지에서 무시를 당한 느낌이었다.
‘천마신 이자의 자만심이 극에 달했구나. 나를 이겨 총회주가 된 후 서약봉으로 우리 정심회 반선들을 데려가 호법으로 삼으려는 것 같은데, 총회주가 될 사람은 바로 나다.’
정심반선이 두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천마신 역시 두 손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병장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기세 싸움은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