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249
다음 날 아침.
천계벌에 두 진영 병력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간밤에 마침내 마계연합군이 폐쇄진법의 마지막 관문을 돌파했기 때문이었다.
양 진영 간의 거리는 불과 백여 장.
천계 측 이백만 무사들과 마계연합군 오백만 병력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직 어느 쪽도 공격 개시 명령이 하달되지 않은 상황.
다들 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오랜만이오. 천제.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구려.”
특수 수레 의자에 앉은 마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표정은 유람이라도 나온 듯 매우 좋아 보였다.
반면 천제는 여전히 창백했다.
참고로 천제 옆에는 어제 있었던 작전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있었다.
지휘부 고수들 뒤에는 천계와 지존맹, 황군, 마교, 동방, 은자림 무사 이백만이 질서 있게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천계연합군이라는 이름 앞에 뭉쳐있었다. 그 총지휘자는 백자안의 양신 즉 지존맹주였다.
“왜 말이 없는 것이오? 천제. 그대가 비록 공력을 잃었다고 하나 마지막 잠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렇지 않소?”
“그렇다고 할 수 있소. 역시 마제답구려. 나는 최소한 그대와 동귀어진할 능력은 있소.”
천제가 말하며 어깨를 폈다.
그러자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기세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와아아!
천계연합군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비록 천제가 오늘 결전에 직접 참여하긴 했으나, 그가 마제에게 패해 공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 전투에서 상징적인 역할만 해줄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최후의 한 수가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사실 지존맹주 한 사람에게만 기대를 걸기에는 상황이 너무 좋지 못했다.
지존맹주 역시 부담을 느끼고 있은 것인지 기뻐했다.
“역시 천제님이시군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잠력을 모두 사용하면 불사의 능력 또한 사라지고 말 겁니다. 마제 저놈은 제게 맡기십시오.”
“백자안 네놈이 주둥이만 살았구나. 그때 네가 확실히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무튼 네놈 역시 더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마제가 지존맹주를 노려봤다.
‘흥미롭군. 그래, 가장 좋은 것은 지존맹주와 마제가 먼저 생사결을 겨루는 것이겠지.’
천제 옆에 태자 자격으로 서 있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아직 지성자가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그에 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천계 내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고, 무림에서 지원 온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백자안은 아까부터 마제 주위를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바로 마제의 십대호법을 보기 위해서였다.
돌강시 출신인 그들은 바로 백자안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한데 예상과 달리 그들 중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백자안의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다.
지존맹주가 소리쳤다.
“마제! 나와 단둘이 대결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냐?”
“백자안 네놈이 총지휘를 맡고 있다고 했느냐?”
“그렇다. 굳이 전면전을 벌일 필요 없이 너와 나 단 두 사람의 대결로 승부를 결정짓도록 하자.”
“하하하! 미친놈! 네놈 정도를 상대할 수 있는 고수는 수두룩하다. 총군사! 고수 몇 명을 보내 맛 좀 보여주시오.”
“네. 마제님. 안 그래도 지휘부 고수들 끼리 먼저 대결을 벌이기로 합의가 된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소? 천선생?”
마선생의 말에 천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누가 먼저 나오겠소?”
“후후후! 괴수왕들이 먼저 붙고 싶다고 하오.”
마선생이 옆으로 눈짓하자, 괴수 열 마리가 앞으로 나왔다.
바로 십대괴수였다.
각각 십만 마리 정도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는 그들은 왕이라는 칭호에서 알 수 있듯이 절대고수들이었다.
“후후후! 네놈들은 우리만으로도 쓸어버릴 수 있다. 누가 먼저 나오겠느냐?”
괴수왕의 대표로 괴수대왕(怪獸大王)이라 불리는 십만랑의 말이었다.
그의 뒤에 아홉 마리의 괴수왕이 있긴 했으나, 일단 천계 측에서 한 명이 나와도 좋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였다.
“누가 십만랑 저놈을 죽여주겠소?”
천선생이 소리쳤다.
첫 싸움이라 그 승패가 사기에 미칠 영향은 지대했다.
하지만 정작 십만랑을 상대할 사람을 찾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계 무사들은 한번 마계와 싸워 대패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최후의 전투라고 불릴 정도로 큰 싸움이었지만 일방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은연중 사전 기세가 위축된 느낌이 컸다.
다들 주저할 때 한 사람이 나섰다.
바로 은둔반선들의 대표인 무법반선이었다.
“십만랑 저놈은 우리 신선계의 골칫거리이니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무법반선이 앞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둔반선 아홉 명이 따라 나와 괴수왕들과의 균형을 이뤘다.
처음에는 일대일 대결이지만 상황에 따라 십 대 십의 단체전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컸다.
“후후후! 누군지 했더니 자칭 십대은둔반선들이군. 잘됐다. 이 기회에 모두 죽여주지. 일단 무법반선 네놈부터 나와 겨뤄보자.”
십만랑이 앞으로 더 나왔다.
늑대의 얼굴을 한 그는 생각보다 덩치가 작았다.
무법반선이 담담한 미소와 함께 십만랑과의 거리를 십여 장으로 줄였다.
“한 번의 대결로 승부를 보도록 하자.”
십만랑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괴수대왕이라는 칭호와 달리 너무나 평범한 장력이었다.
하지만 상대인 무법반선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해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그의 장력 또한 지극히 평범해 보였지만, 천계연합군 측 무사들의 기대감은 매우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지존맹주를 제외하고 천계 태상장로 만수자와 함께 가장 무공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고 말았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무법반선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머리가 완전히 터져버린 그는 당연하게도 즉사하고 말았다.
대기하고 있던 괴수왕들이 일제히 장력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홉 명으로 줄어든 십대은둔반선이 일제히 반격에 나섰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놀랍게도 은둔반선 대표 아홉 명 모두가 머리가 터져 즉사하고 만 것이었다.
와아아!
마계 연합군 무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직 절반에 해당하는 오백만 병력을 숨겨 놓고 있는 그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후후후! 우리를 괴수라고 얕잡아본 대가다. 물론 이전 같으면 우리 역시 양패구상을 면치 못했을 것이나, 며칠 전 마제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주효했다. 이전보다 백 배 이상 강해진 우리의 힘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
십만랑이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다소 과장이 담긴 것으로 느껴졌지만 그의 말에 천계연합군 무사들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특히 순식간에 지휘부 반선들을 잃은 십만 은둔반선들의 사기가 매우 내려갔다.
“누가 또 나서겠느냐?”
마선생이 득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천계연합군 측 지휘부 고수들을 먼저 몰살시켜 전체 무사들의 투항을 받으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내가 나서겠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나온 사람은 바로 만수자였다.
역시 처음부터 천계의 실질적인 최고고수가 나온 것이었다.
그가 나서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천계 장로 아홉 명이 따라 나왔다.
이전 전투에서 전사자가 많아 그들 중 절반 정도는 새롭게 임명되었으나, 그래도 천계를 대표하는 십대장로였다.
천계연합군의 사기가 급격히 흔들리자, 예상보다 일찍 출전한 셈이었다.
하기야 불패마왕과 백두노인 등 무림에서 온 지휘부 고수들은 기가 죽어 나설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만수자 등 십대장로들의 상대는 괴수왕들이 아니었다.
요괴들의 대표인 십대요괴가 나선 것이었다.
십대요괴의 총지휘자라 할 수 있는 신선요괴(神仙妖怪)가 깔깔 웃었다.
“호호호! 네놈들은 우리가 상대해주마. 대결방식은 조금 전과 같다.”
쏴아아.
신선요괴가 말을 마치자마자 일장을 날렸다.
동시에 나머지 십대요괴 역시 일장을 날렸는데, 이점은 십대괴수와 다른 점이었다.
“갈!”
노성과 함께 만수자를 비롯한 천계 십대장로가 역시 일장을 날렸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드러난 결과 역시 매우 충격적이었다.
어이없게도 만수자를 비롯한 십대장로들이 모두 머리가 터져 즉사한 것이었다.
십대요괴 역시 십대괴수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무공을 보여주자, 천계연합군 무사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천제와 지존맹주가 있었다.
특히 지존맹주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높아졌다.
그것은 절대고수들 간의 싸움에서는 그 숫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문대로 지존맹주 역시 천제처럼 지성자에 근접했다면 혼자서 마계연합군 전체를 제거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분을 참지 못하고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불패마왕이었다.
요양 중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는 그였다.
물론 처음에는 그 역시 기가 조금 눌려 있었다.
하지만 서로 눈치를 보고 나서려 하지 않자 직접 나온 것이었다.
“나는 불패마왕이라고 한다. 누가 나와 대적하겠느냐?”
불패마왕이 앞으로 나오자, 자연스럽게 그의 딸 임요요가 뒤따라 나왔다.
뒤따라 나온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앞선 대결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여덟 명의 고수가 잇따라 나왔다.
그들은 바로 생사신의, 동정어옹, 백두노인, 한강어옹, 절대황녀, 청룡선생, 방일화, 백소영이었다.
은둔반선과 천계 고수들에 이어 무림고수들의 대표들이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대표들의 수장이 바로 지존맹주가 아니라 불패마왕이라는 점이었다.
천선생이 급히 말했다.
“지존맹주께서 나서주시겠습니까?”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는 마제를 상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분들이 희생될까 그게 걱정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분들은 최근 무공이 급상승해 제가 참여하지 않아도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하지만······.”
천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마계 쪽에서 어떤 자들이 나올지 모르지만, 십중팔구 불패마왕을 비롯한 무림 대표고수들이 전멸을 당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무림인들은 무림인들이 상대해야지. 십대호법은 모습을 드러내라.”
마제의 목소리와 함께 열 명의 돌강시가 은잠술을 깨고 나타났다.
한데 그들은 바로 그 명단이 알려졌던 이전의 무림고수들이 아닌가.
악미미, 단목수련, 백리설아,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만박서생, 풍류도인, 무명노승, 태극검선 이렇게 열 명이 실제 확인되었다.
그나마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얼굴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얼굴 역시 돌로 변한 데다가 그 특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얼굴이 이전처럼 돌아와 있었다.
다만 돌강시 특유의 금강불괴 특성을 이어가기 위해서인지 얼굴 표면에 붉은색 보호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아! 저들은?”
“총군사님!”
“부맹주님!”
천계 쪽 특히 무림 출신 무사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미 돌강시들은 이지를 상실한 일반 강시와 다를 바 없었다.
“클클클!”
괴이한 음성을 내며 무명노승이 맨 앞에 섰다. 나머지 호법들이 그 뒤를 따랐다.
불패마왕 등 십 인의 무림고수가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돌강시 호법들의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
“빌어먹을! 할 수 없다!”
불패마왕 등 십 인의 고수가 일제히 장력으로 응수했다.
단순히 장풍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절기가 녹아들어 있었다.
다만 다들 경지에 올라 겉으로는 단순한 경력으로 보일 뿐이었다.
백자안은 자신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끼리 생사결이 벌어지려 하자 매우 당황했다.
사실 그 역시 마제와 지존맹주의 움직임을 기다려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저하다가 이미 많은 희생이 난 지금 더는 방관할 수 없었다.
백자안이 나서려는 그 순간.
지존맹주가 소리쳤다.
“그만하시오!”
순간, 양측에서 날린 장세가 갑자기 사라졌다.
지존맹주와 마제가 동시에 무형지기를 뿜어내 격돌을 막은 것이었다.
“백자안!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그렇소. 나는 마제 귀하와 일대일 대결을 벌여 이번 싸움을 결판내고 싶소. 귀하는 그럴만한 용기가 있소?”
“후후후! 이번에는 제법 정중하군. 물론이다. 하지만 잠력을 폭발시켜 나와 동귀어진을 하려는 천제가 수긍하겠느냐?”
“이러면 믿겠소?”
지존맹주가 지풍을 날려 천제의 혈도를 찍었다.
마지막 잠력을 모으고 있던 천제가 그대로 쓰러졌다.
“무슨 짓인가요?”
“무슨 짓입니까?”
천상선녀와 천선생이 항의했으나, 그들 두 사람 역시 지존맹주의 지풍에 마혈이 찍히고 말았다.
‘지존지로군. 내 무공을 나보다 더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다.’
백자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단 불필요한 희생을 일시 막은 것은 고무적이었으나, 뜻밖의 일이 생기고 있었다.
특히 태자 신분인 그가 가만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놈이 본색을 드러낼 것 같구나. 마제를 이기는 것이 어려울 듯하니까 총지휘자 신분을 이용해 무사들을 팔아먹으려 하는 것인가? 조금만 더 두고 보자.’
백자안이 자제할 때.
마제와 지존맹주의 싸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기선제압을 위한 무형지기 간의 대결.
그 대결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존맹주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졌소. 총지휘자 자격으로 천계연합군 무사 전체를 항복시키겠소. 부디 선처를 바라는 바이오.”
“하하하! 네놈이 대세를 아는구나. 좋다. 진짜 항복하는지 보겠다.”
“걱정하지 마시오. 투항을 거부하는 자는 대의멸친의 심정으로 내가 직접 처단할 것이오. 대신 본인의 무림왕 지위를 계속 인정해주길 바라오.”
“알겠다. 약속하마. 하지만 일단 천제를 살려둘 수는 없으니, 그를 죽이면 너에게 무림을 맡기겠다.”
“알겠소. 천제의 불사 능력은 거의 고갈되었으니, 내가 직접 처리해주겠소.”
지존맹주가 쓰러져 있는 천제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지존맹주를 막아섰다.
“멈추시오. 더는 두고만 볼 수 없구려.”
담담한 목소리의 주인공.
바로 백자안이었다.
천계벌 전체가 폭발적인 긴장감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