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44
스스슷.
백자안의 두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각 방위를 밟아갔다.
연무장 정 중앙에 위치한 그의 신형이 동심원 모양으로 움직이며 먼지가 일었다.
먼지구름 속에서 그의 신형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마치 공간 속에 숨었다가 불쑥 다른 곳에 나타나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무명보(無名步)는 팔괘의 원리를 극대화한 것으로 극성에 다다르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석 달 만에 겨우 일성에 달했구나.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다.’
백자안이 팔대무공 상 보법인 무명보를 펼치며 미소를 지었다.
팔대무공 중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무명보법을 일성까지 연마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무명보법은 적의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상대의 무공이 자신보다 강할 때 매우 효과적이었다.
물론 그 반대로 공격을 가할 때도 위력적이었다.
쉽게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공격력이 배가 되는 것이다.
마치 무수한 화살이 날아올 때 그 화살들을 모조리 피하면서 파고들어 가 공격을 가하는 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무명보법은 방어와 공격에 있어 근본적인 선점 효과를 보장해주는 무공이었다.
스스슷.
한 번 더 빠르게 보법을 연마한 백자안이 신형을 멈췄다.
연무장으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백소영이었다.
백의 무복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무척 들뜬 표정이었다.
“오라버니. 어서 가. 입관식 날인데 오라버니가 내 체면 세워줘야지.”
“하하하. 알겠다. 내 뒤를 이어 영웅무관 관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백소영과 함께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백소영이 장원 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맹주님께서 이렇게 넓은 장원을 상으로 주실지 정말 몰랐어. 전각만 열 채야. 연무장도 엄청 넓고, 지하에 대피 공간까지 있으니 말 다 했지. 비상시에 우리 풍운장원(風雲莊園)을 무림맹 거점으로 삼으시려는 것일까?”
“원래 무림맹 소유였으니 비상시가 되면 당연히 장소를 제공해줘야겠지.”
“어찌 됐든 우리 집이잖아. 풍운장원이란 이름도 우리가 지은 것이고 말이야.”
“그렇지. 어서 빨리 아버지, 어머니 두 분과 룡이가 와야 할 텐데······ 후임 촌장께 인수인계하는데 석 달이나 걸리다니. 그래도 열흘 전 출발을 하셨다고 하니까 이르면 내일 정도면 장원에 오실 것이다.”
“무관 입학식에 원래 부모님 모시고 가야 하는데 아쉽기는 해. 하지만 오라버니가 대신 가니까 괜찮아.”
“하하하. 내가 뭐 그리 유명인사라고.”
“무슨 소리냐? 오라버니가 장원 밖으로 일절 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데? 입학 수속 때문에 무관에 갈 때마다 오라버니 근황을 묻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다고. 특히 여자 관원들이 엄청나게 관심을 가지더라. 화산옥녀와는 어떻게 되었느냐. 백리 소저와 단목 소저와 혼담이 있던데 그게 정말이냐. 질문은 많았지만 대부분 무림삼미와 오라버니 관계를 묻더군.”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지?”
“오라버니는 지난 석 달간 장원 안에서 무공만 연마했다고. 무림삼미와도 일절 만나지 않았다고 하니까 다들 좋아하더라고. 호호. 한데 오늘 가서 정말 사범 자리 알아볼 생각이야?”
“그래. 맹에서도 쫓겨났는데 아직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면 좀 그렇지 않겠느냐?”
“잘 생각했어. 나도 열심히 할 생각이야. 오라버니가 틈틈이 지도해준다고 했으니까 마음이 든든해.”
“그래. 육합 계열 무공이라고 우습게보지 말고 기초를 튼튼히 해둬라. 그러면 나중에 내가 상승무공을 가르쳐 줄 테니까. 나 또한 영웅무관에서 육합계열 무공을 배웠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될 것이야.”
“알았어.”
“그래, 어서 가자. 시간이 다 되어 가네.”
* * *
영웅무관은 낙양 십대무관 중 한 곳으로 많은 관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개가 넘는 낙양 무관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인가.
지속적인 확충 공사로 인해 현재 낙양무관의 규모는 웬만한 중소문파와 비슷할 정도였다.
전각만 삼십 개가 넘었다. 크고 작은 연무장도 백여 개였다.
기숙사 수용 인원도 많은 편이었다.
기숙사를 이용하는 관원들은 천하 각지에서 낙양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성내에 집이 있는 관원들은 아침 일찍 무관에 와서 무공을 연마한 후 저녁에 돌아가는 하루 일정을 소화했다.
기숙관원과 비기숙관원은 각기 장단점이 있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돈이 부족한 관원들은 당연히 기숙관원을 선호했다.
영웅무관 내 기숙사로 유명한 영웅기숙사(英雄寄宿舍)의 기숙사비가 무관 주변 객잔의 방값보다 절반 이상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숙사 수용 인원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었다. 반년마다 무관 성적을 참고해 기숙관원들의 입각, 퇴각이 있는 이유였다.
백소영의 경우 입학 전 사전 검사에서 최하점을 받아 아예 처음부터 기숙사 사용이 불허되었다.
백소영 역시 가족들과 함께 풍운장원에서 지내는 것을 원했기에 불만은 없었다.
오늘은 반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 무관 입관식이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영웅무관 대연무장에 모인 삼백여 명의 신입 관원들이 부동자세를 취했다.
백소영 역시 그 가운데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백자안은 그녀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관람석에 앉아 있었다.
관람석에는 천여 명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신입 관원들의 가족과 친지였다.
한편 백자안은 백소영의 바람과 달리 전혀 다른 얼굴로 역용한 상태였다.
본 얼굴을 드러낼 경우 모든 사람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주인공은 신입 관원들인데, 내가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여자 같으면 면사를 썼겠지만, 그것도 안 돼 아예 역용한 것이었다.
‘입관식이 끝나고 관장님을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구나. 원래 계획보다는 많이 늦어졌지만, 사범 자리를 하나 내줄 수 있는지 여쭤봐야겠다.’
사실 백자안이 지난 석 달간 풍운장원에서 두문불출 무공 연마에 열중한 것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견제 때문이었다.
물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무사 전부가 그를 경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맹의 지휘부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사실 아직도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무관 사범이 되는 것도 그들이 방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직접적인 방해를 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압력을 무관 관장들에게 가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사범 되는 일 역시 수월치 않을 것이었다.
‘영웅무관에서 거절하면 굳이 다른 곳에 갈 필요 없이 차라리 내가 하나 차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군. 다행히 상금으로 받은 돈이 남아 있으니, 그 돈으로 작은 무관 하나를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받은 상금은 모두 은자 천오백 냥이었다.
백소영이 모두 갖고 있긴 하지만, 당장 그 돈을 모두 사용할 것은 아니라서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했다.
물론 낙양 집값이 워낙 비싸 돈이 모자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모자란 돈은 장원을 담보로 해 구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영웅무관 관장 위지경덕(尉遲敬德)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칠십인 그는 젊은 사람 못지않게 체구가 건장했다.
“관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최근 백자안이 영웅무관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의 인기 또한 덩달아 높아졌다.
신입 관원 신청 숫자도 늘어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받지는 않았다.
설사 무공을 몰라도 기본 자질만큼은 철저히 살피는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백소영 역시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뽑힌 경우였다.
그 선발 인원 역시 반년에 삼백 명씩, 그러니까 일 년에 육백 명씩 뽑던 관례를 계속 유지했다.
물론 백자안 때문에 무관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특별 입관 절차를 마련한다는 소문이 있긴 했다.
그 증거로 무관 주변 부지를 최근 또 사들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기존 영웅기숙사가 모두 차서 새 기숙사를 짓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전과 다름이 없으시구나.’
백자안이 감회어린 눈빛으로 위지경덕을 바라봤다.
그가 처음 영웅무관에 들어왔을 때도 위지경덕이 관장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위지경덕의 무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최소 절정고수란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사문은 특이하게도 중원이 아닌 동방 무림의 한 문파였다.
동방은 백의를 즐겨 입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그곳의 무림 역시 번창하고 있었다.
참고로 중원 무림맹을 중원무맹(中原武盟이)라고도 부르는 것처럼 동방 무림맹을 동방무맹(東邦武盟)이라 불렀다.
한편 위지경덕 뒤에는 삼십여 명에 달하는 사범들이 있었다.
이들 사범들이야말로 영웅무관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신입 관원들을 바라봤다.
앞으로 최소 일 년 최대 이십 년을 가르쳐야 할 제자들이었다.
참고로 영웅무관에서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은 이십 년이었다.
단상 위에 오른 위지경덕이 말했다.
“우리 영웅무관에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부디 끝없는 노력으로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짝짝짝.
박수가 다시 쏟아졌다.
이후 위지경덕의 본격적인 인사말이 시작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말이 길어졌지만, 대부분 무관 생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하지만 반 시진이나 계속되자 신입관원들도 지쳐갔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지루한 훈시는 여전하시구나. 지금 다시 들어보니 정말 필요한 말씀뿐인데, 나 역시 처음에는 졸음을 참기 어려웠지.’
얼마 후 기나긴 훈시가 끝나고, 사범들 소개가 있었다.
영웅무관의 사범 수는 유동적이었으나, 대개 서른 명 안팎이었다.
백자안이 대충 보니 대부분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소개를 맡은 영웅무관 총집사 영웅객(英雄客)이 말했다.
“사범들은 이분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두 달 전 공고한 대로 내일부터 새로운 사범을 뽑기 위한 대회가 열리게 됩니다. 모두 세 분의 사범을 뽑게 되며 누구든 응시할 수 있습니다. 소문을 많이 내주십시오.”
영웅객의 말에 백자안이 깜짝 놀랐다.
‘사범을 선발하는 시험이 있었구나. 이전에는 모두 소개로 뽑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 사범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던 것 같군. 으음, 그렇다면······.’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자신이 사범 자리를 부탁하면 위지경덕이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컸다.
그는 동방 문파 출신이라 이전부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지휘부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런 성향 때문에 백자안도 이곳 영웅무관에서 십년 간이나 무공을 연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백자안을 공개적으로 영입하게 되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가능성도 컸다.
‘차라리 나 역시 내일 사범 공개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낫겠구나. 공개 시험에 합격해서 사범이 되면 관장님도 압박을 훨씬 덜 받게 될 것이다.’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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