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62
콰르르릉.
천마광장을 비롯한 천마동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매화곡으로 다시 나온 삼만 군웅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늦었다면 모두 압사되어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천마바미류에서 해방되어 이렇게 탈출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백자안 덕분이었다.
귀면탈 소녀가 떠난 후 백자안은 서둘러 천마광장으로 돌아와 특수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수증기는 이내 광장에 가득 찼다. 군웅들은 곧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동굴 붕괴가 시작되자, 귀면탈 소녀가 들어오고 나갔던 통로를 통해 급히 탈출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김지혜는 물론이고 만박서생, 매화검선, 장대선생 등 주요 고수들 모두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수색 초반에 삼백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긴 했었지만, 삼만 군웅들이 모두 목숨을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백자안은 김지혜와 함께 서 있었다.
그는 군웅들 모두에게 천마마비류를 해소해준 후 그 사실을 숨겼다.
그 역시 똑같이 당했다가 해소가 된 것처럼 행동해 군웅들과 함께 천마동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물론 최대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탈출하기 위해 귀면탈 소녀가 빠져나간 새 비밀통로를 그가 제일 먼저 지목하긴 했다.
정신이 없던 군웅들은 그의 인도대로 따라왔다. 한번 사람들이 몰리자 모두 그쪽으로 따라 나가 목숨을 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바란 것은 지존검이었다. 그 때문에 천마동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총군사께서는 아시겠습니까?”
매화검선이 허탈해했다.
만박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가 중독되어 마비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 마비가 어느 순간 풀렸고, 마침 동굴이 붕괴하기 직전이었지요.”
“그 마비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글쎄요. 지금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 정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저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낮은지라······.”
“뭘 말씀하려는 겁니까?”
“천마마비류입니다.”
“천마마비류라면 천마가 사용하던 독이 아닙니까?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인데······.”
“제가 분명 봤습니다. 지하 광장에 떠 있던 붉은 기류를 말입니다. 그것을 마신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고 말았지요. 마치 망부석처럼 말입니다.”
“아, 저도 기억납니다. 마치 안개처럼 붉은 기운이 가득했었지요. 아, 그게 천마마비류였다니······ 한데 나중에 우리가 깨어났을 때 본 그 삼백여 구의 시체는 어느 문파 소속이었을까요?”
“저는 혈교 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비되어 있는 동안 큰 싸움이 벌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그럼 혈교 놈들이 다른 세력에 의해 당했단 말씀입니까?”
“일단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시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하기야 동굴이 무너지기 직전이라 그럴 여유도 없었지요. 하지만 총군사님 말씀대로 그 기류가 천마마비류였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군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매화검선이 안색을 굳혔다.
장대선생은 여전히 아쉬운 표정이었다.
“동굴이 완전히 무너졌으니 저 안에 지존검이 있는지 없는지는 영원히 모르게 되었군요. 하지만 총군사 말씀을 들어보니 어쩌면 저곳에 천마의 유물이 있다는 천마석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화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혈교 놈들의 짓이라면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하고 그 틈을 노려 화산파를 차지하려 할 수도 있으니까요. 동굴 안 시체가 혈교 놈들이라 해도 삼백여 구밖에 안 되었으니, 본진 무사들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박서생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특히 매화검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화산파가 먼저 가겠습니다.”
매화검선이 화산파 무사들과 함께 서둘러 자파 총단으로 떠났다.
나머지 군웅들 역시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천마마비류 해독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자안 역시 김지혜와 담소를 나누며 화산파로 돌아갔다.
동굴 안에서의 그의 활약을 기억하고 있던 지휘부 고수들이 도중에 그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했다.
특히 그에게 친근감을 보인 사람은 바로 만박서생이었다.
“이번에 무정 사범의 활약이 대단했소. 물론 큰 피해를 보았으나 덕분에 최악은 면한 것 같소. 혹시 마지막에 우리를 구해준 것도 사범의 공이 아니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또한 겨우 살아났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화산파로 돌아가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듯하오. 그런 후 다시 한번 화산 일대를 수색해 혈교 놈들이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 않겠소? 무정 사범의 생각은 어떠하오?”
“제 생각에 이번 사건은 혈교 놈들의 음모가 분명합니다. 놈들이 어떤 경로로 동굴 안에 살인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군웅들을 유인한 것이지요. 거기에 우리 모두 당했으나 천우신조로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동굴 안에 천마석실이 있었을 것 같소?”
“네. 저 역시 아까 그 붉은 기류가 천마마비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천마석실 안에 있던 것은 누군가 가져갔지 않겠습니까?”
“누가 말이오? 설마 혈교 놈들이?”
“혈교 쪽은 아닐 겁니다. 원래 주인이 찾아갔겠지요. 혈교 놈들은 기관만 이용했던 것이고.”
“으음, 원래 주인이라면 마교 쪽이란 말이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나중에 지하 광장에서 발견했던 시체들도 마교 쪽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네. 혈교 놈들이 우리를 유인해 죽이려다가 오히려 마교에게 당한 것이지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참고만 하십시오.”
“으음, 일리가 있구려. 하지만 마교가 우리를 구해주지는 않았을 것 같소. 시체들이 혈교놈들이 맞는다면 우리를 구해준 세력은 다른 곳일 것이오. 그 문제는 나중에 의논합시다. 낙양으로 돌아가게 되면 내 한번 영웅무관을 방문하겠소. 물론 그 전에 무정 사범의 명성은 매우 높아져 있을 것이오. 특히 살인 기관과 독지네 떼를 제거할 때 보여준 무공은 실로 가공했소. 그 정도 무공이라면 가히 무림십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것이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오? 김 사범.”
만박서생의 물음에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이번에 제가 확실히 깨달은 것은 지난번 사범 모집 대회에서 제가 일등을 한 것이 그야말로 어부지리였다는 것이에요. 여기 계신 무정 사범님께서 그때 실력을 일부러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몰랐었지요.”
“과찬입니다. 저 또한 이번에 죽다 살아난 격이라······.”
* * *
늦은 밤.
화산파 총단 악미미의 처소.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침상에 누워있었다.
백자안의 도움으로 맥은 다시 뛰고 있지만, 의식이 없어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던 생사신의가 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그녀의 규방으로 들어왔다.
밖에 호위무사 네 명이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데 들어온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그랬다.
바로 옥비녀를 그녀의 머리에 다시 꽂아주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군웅들과 함께 화산파로 돌아온 백자안은 혈교의 공격이 없음을 확인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늦은 밤이 되자 악미미의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백자안이 혹시 몰라 음파를 차단해둔 후 옥비녀를 꺼내 악미미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지켜봤다.
다른 사람이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 계속 변화를 살필 생각이었다.
기본적으로 옥비녀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어디까지나 그녀는 자신의 정혼녀가 아닌가.
후일을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목숨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별다른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약속이란 것이 옥비녀가 아니었단 말인가.’
백자안이 실망했다.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 반응이 없었다.
그때였다.
미약하지만 악미미가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
“악 소저. 정신이 드시오?”
백자안이 기뻐하며 순간적으로 자신의 역용을 풀었다.
옥비녀를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은 그와 악미미 두 사람이 한 것이었다.
무정 사범이란 사람이 옥비녀를 가져다준 것으로 하면 의심을 살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악미미의 몸 상태 변화를 봐야 하기에 몸을 숨길 수도 없어, 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
악미미가 눈을 뜨고 탄성을 터뜨렸다.
백자안의 얼굴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꽂혀 있는 옥비녀를 만졌다.
옥비녀를 통해 전해진 옥녀진기가 혈옥수의 혈옥진기를 몰아내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녀가 혈옥수에 당했을 때 부족했던 옥녀진기는 매우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옥녀진기가 모자라 죽음의 문턱에서 서성거렸어야 했다.
그래서 스스로 귀식대법을 펼치기 직전 옥비녀를 떠올렸고 약속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당시 백자안의 이름을 말하지 못한 것은 워낙 다급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에게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백 공자. 와주셨군요.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악미미가 몸을 일으켜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일까.
이전에 보였던 냉랭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괜찮습니까?”
“네. 덕분에 살았어요. 며칠 더 요양하면 오히려 이전보다 공력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악미미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독 기운과 싸우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악미미의 경우 자신과는 달랐다. 하지만 위기 속에서 한 단계 더 높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행입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었습니다.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너무 교만했지요.”
악미미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하하하. 무슨 말씀입니까? 저번 재판 때 도움을 주신 것도 그렇고, 늦게나마 감사를 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무안하게. 그나저나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요?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은데······.”
“저도 들은 게 대부분이지만 제법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백자안이 천천히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설명해주었다.
악미미가 매우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백 공자는 언제 오신 거예요?”
“저는 뒤늦게 알고 오늘 화산에 도착했습니다. 악 소저가 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옥비녀를 바로 떠올렸지요.”
“그럼 귀면탈 소녀를 만난 건가요?”
“그렇습니다. 자세한 것은 지금 밝히기 힘든 사정이 있습니다.”
“네. 그렇다면 묻지 않을게요.”
악미미가 말을 한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백자안이 말했다.
“악 소저.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비밀에 부쳐주십시오. 다른 중대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몇 달 후 풍운장원에 오십시오.”
“알겠어요. 어차피 몸이 회복 되는 대로 총단으로 복귀해야 하니까. 안녕히 가세요.”
“네. 그럼.”
백자안이 미소를 지은 후 은잠술을 펼쳐 사라졌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생사신의가 들어왔다.
염려가 되어 한 번 더 살펴보려고 온 것이었다.
한데 악미미가 깨어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악 소저!”
생사신의가 매우 놀라며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악미미를 진맥하며 몸을 살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어찌 이런 일이······ 완쾌가 된 것 같소. 허허허.”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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