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88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영웅대회 본선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둘째 날은 예고한 대로 최종 4인이 시합을 펼쳐 그 중 최종 1인이 새 맹주로 선출되는 날이었다.
수십만 군웅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무엇보다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은 오늘 최종 승자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두 무제 외의 고수가 맹주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준결승에 오른 평범서생과 무명객 두 사람의 무공이 범상치 않았다.
정확하게 추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많은 억측과 소문을 자아내기 마련이었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4인의 고수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신선 같은 풍모의 백의무제, 그리고 무표정의 흑의무제, 여전히 평범한 기도의 평범서생, 무명객 이렇게 네 명이었다.
총군사 풍류도인이 말했다.
“영웅 여러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새 맹주님을 선출하게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공식적으로 맹주 자리는 공석입니다. 그 증거로 맹주 신물인 동방고(東邦鼓)를 백의무제님께서 내놓으셨습니다.”
풍류도인이 단상 위에 놓인 작은 북 하나를 가리켰다.
와아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아 군웅들이 함성과 함께 탄성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방고는 동방무맹의 초대맹주가 남긴 법보로 외부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동방무맹의 맹주 지위를 증명하는 신물임을 모르는 사람 역시 없었다.
참고로 동방고는 적의 침입을 미리 간파해 알려준다는 전설을 지닌 것이었다. 그 외 여러 가지 신비한 효력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오늘 새 맹주가 되실 분이 저 동방고의 주인이 되실 겁니다. 물론 백의무제께서 다시 쟁취하실 수도 있겠지요.”
와아아.
군웅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대부분 백의무제를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의무제는 정사무림의 단합을 위해 자신의 맹주 자리를 선뜻 내놓은 사람이었다.
말은 쉽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바람에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이는 흑도 무림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현재 흑의무제를 따르고 있긴 했으나, 백의무제에게는 흑의무제에게는 없는 덕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 백의무제가 다시 맹주가 되면 그를 진심으로 따르리라 결심한 사람도 많았다.
흑의무제 역시 자신이 패하더라도 정사단합으로 대인자문을 격파해야 한다고 최종적인 자기 뜻을 밝힌 바 있었다.
“그럼 먼저 대진표를 밝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시합은 평범서생과 백의무제 두 분의 대결입니다. 두 분은 비무대 위로 오르십시오.”
함성과 함께 평범서생과 백의무제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무명객은 흑의무제와 함께 대기석으로 갔다.
두 사람은 서로 보지도 않았다.
아니 흑의무제가 처음부터 무명객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백의무제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백의무제는 필생의 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결해본 적이 없었다.
‘반드시 내가 맹주가 된다.’
흑의무제가 용광로처럼 혈광을 뿜어냈다.
무명객은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흑의무제가 자신의 존재를 너무 무시해 자존심이 약간 상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십 년간 동방무림의 일인자 자리를 다투던 사람이니, 나 같은 무명소졸은 눈에 차지 않겠지. 하지만 백골객 같은 고수를 이긴 나인데, 조금 그렇군.’
무명객이 입맛을 다셨지만, 그렇다고 별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백의무제의 승리가 필요했다.
백의무제가 승리한다면 자신 역시 흑의무제와의 대결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백의무제에게 져주거나 기권을 할 생각이었기에 힘을 아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무명객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백의무제와 평범서생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시작하십시오!”
와아아.
함성 속에 두 사람이 대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선뜻 선공을 가하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백의무제는 적수공권으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평범서생은 검을 뽑아 비스듬히 들고 있었다.
물론 백의무제의 허리에 검이 달려 있어 언제든 뽑을 수 있었다.
‘역시 정체가 모호하군. 우려대로 내가 질 수도 있겠다.’
백의무제가 안색을 굳혔다.
상대의 무공 수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길한 징조였다.
체질적인 특성이 아니라면 무공 수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더 약하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지금 최상이었다.
나이가 많아 은퇴를 거론하고는 있지만, 최근 신공을 완성해 개인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그 사실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평범서생과 근접 거리에서 기세 대결을 벌여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평범서생이 말했다.
“검을 뽑으시오. 일검으로 승부를 봅시다.”
“좋소.”
백의무제가 검을 뽑았다.
그의 애검인 백의검(白衣劍)이었다.
백의무제의 독문검법인 백의검법(白衣劍法)이 최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보검이기도 했다.
슈우욱.
평범서생의 검이 천천히 다가왔다.
백의무제 역시 백의검으로 검초를 뿌렸다.
바로 백의검법의 최후 절초였다.
무변천변(無變千變)이라는 초식으로, 최근 완성한 신공이기도 했다.
다만 그가 흑의무제와의 승부에 앞서 이 절초를 선보인 것은 혹시나 해서였다.
평범서생이 본 실력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 과감하게 최후의 절초를 펼친 것이었다.
평범서생의 검에서 붉은 검광이 우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백의무제의 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까앙.
두 자루 검이 부딪히며 쇳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두 사람은 검을 서로 대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두 자루 검은 마치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땀을 흘리는 것이 곧바로 내공 대결에 들어간 것 같았다.
“아!”
“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내공 대결이 벌어지게 되면 패배한 쪽이 사망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특히 패배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평범서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
백의무제가 그를 꺾고 다시 맹주가 되면 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두 사람을 떼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만한 고수도 없지만, 무엇보다 일단 승부를 가려야 했다.
무명객이 안색을 굳혔다.
미세하지만 백의무제가 밀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평범서생 저자의 검에 기이한 기운이 담겨 있다. 그 때문에 백의무제님의 기혈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 두면 패배는 물론이고 사망할 확률이 높다.’
무명객이 안타까워할 때.
“끙!” 소리와 함께 백의무제가 피를 토하며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풍류도인이 급히 부축했으나, 이미 백의무제의 무공이 폐쇄된 이후였다.
사실 사망했을 것인데 마지막에 잠력을 일으켜 심맥을 보호해 목숨만은 보호한 것이었다.
“아!”
“어찌 저럴 수가!”
군운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결과에 승복해야 했다.
“평범서생 승리!”
와아아.
새로운 고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소리인가.
군웅들이 의외로 큰 함성을 질러주었다.
이는 새로운 강자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정신을 잃은 백의무제가 자신의 방으로 실려 간 후.
드디어 무명객과 흑의무제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무명객으로서는 흑의무제를 이긴 후 평범서생과 겨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었다.
‘평범서생이 내공 대결을 벌일 때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 역시 심상치가 않았다. 일단 흑의무제 이자부터 이겨야겠구나.’
무명객이 지존검을 뽑았다.
곧바로 지존검법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흑의무제는 대도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자신의 독문도법인 흑의도법(黑衣刀法)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역시 조금 전 대결의 결과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백의무제가 패배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자신 역시 무명객에게 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명객이라고 했나? 시작하지.”
“그럽시다.”
무명객이 담담히 말했다.
가까이서 본 흑의무제는 생각보다 살기가 매우 강했다.
혈광 역시 짙어져 있었다.
“후후후! 지금이라도 기권을 해라. 그러면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흑의도법은 피를 봐야만 멈추는 도법이다.”
흑의무제가 담담히 서 있는 무명객을 향해 말했다.
시작하자고 말했지만 무명객이 그대로 서 있자, 기권을 권유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명객에게는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 틈을 찾기 위해 일부러 다시 말을 건넨 것이었다.
“그대는 이미 졌소.”
무명객이 담담히 말했다.
“무슨 헛소리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흑의무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 같아서는 일도에 무명객의 몸뚱이를 양단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분명 무명객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는 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오. 최선을 다했다면.”
무명객이 지존검을 뻗어 지존검법을 펼쳤다.
바로 지존천하였다.
“미친놈! 허황된 말로 내 기혈을 흔들려 하다니!”
흑의무제가 자신의 애도인 흑의도(黑衣刀)를 휘둘렀다.
아무렇지 않게 휘두른 것으로 보였지만, 그 역시 백의무제와 마찬가지로 최후 절초를 펼친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지존검이 그의 어깨를 찔렀다.
마치 환상과도 같이 지존검이 공간을 접고 다가온 것이었다.
흑의무제는 이를 알면서도 피할 수 없었다.
“으윽!”
흑의무제가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비무대 끝까지 몰린 그가 두 눈에서 혈광을 뿜어냈다.
순간 혈광이 수백 배 짙어지며 혈기류가 마치 지풍처럼 무명객을 향해 쏟아져 갔다.
그것은 뜻밖의 공격이었다.
무명객이 지존검으로 원호를 그려 혈기류를 막아냈다.
동시에 좌수로 지존장을 펼쳤다.
파파팍.
혈기류가 소멸하였다.
동시에 지존장풍에 맞은 흑의무제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으윽!”
피를 한 사발 정도 토한 그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수하들이 급히 달려왔으나 이미 무공이 폐쇄된 후였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의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백의무제가 탈락한 지금 백도 무림인들의 희망이 무명객에게 쏠린 것이었다.
하지만 흑도 무림인들의 함성 또한 못지않았다.
전통에 의해 흑도 수장이라 할 수 있든 대종사 자리는 힘이 우선이었다.
누구든 대종사를 이기면 그가 바로 대종사가 되는 것이다.
무명객은 포권으로 답례한 후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대기석에는 이미 결승에 올라온 평범서생이 앉아 있었다.
무명객이 그를 보며 눈을 빛냈다.
‘가까이서 보니 역시 기이한 사기가 느껴지는구나. 이런 기운은 김 소저에게 들은 대인자문 고수들의 특징과 비슷한 것 같다. 설마 이자가 대인자문 고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