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ve Reversal RAW novel - Chapter 91
무명객이 십만 동방무맹 무사들을 이끌고 중원 낙양에 도착한 것은 두 달 후였다.
중원무맹주 단목군은 지휘부 고수 삼백여 명과 함께 낙양성 밖까지 나와 마중을 했다.
“하하하. 신임 동방무맹주께서 이렇게 직접 대군을 이끌고 우리 중원무맹을 돕기 위해 오시다니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삼혈맹과의 전투에서 연이은 패배로 인해 초췌했던 그의 표정이 오랜만에 밝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의 극에 올랐다는 동방무맹주 무명객이 직접 십만 무사를 이끌고 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방무맹은 대인자문과 전면전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어 지원 병력을 보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지원 요청을 계속하면서도 내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데 이렇게 무명객이 직접 왔으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었다.
“동방과 중원 무림은 예로부터 교류가 많고 상호 안전에 이바지해왔으니 이렇게 오는 것이 당연하지요.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무명객이 담담히 말했다.
중원무맹까지 오는 동안 동방비고에서 암기했던 모든 무공을 자기 것으로 만든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우려와 달리 대인자문의 동방무림 공격이 아직 없었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풍류도인이 말한 대로 대인자문 무사들로 추정되는 세력의 움직임이 중원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그 점은 이번 지원출정의 타당성을 더욱더 높이고 있었다.
“어서 총단으로 가시지요. 전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함께 계획을 세웠으면 합니다.”
“네.”
무명객이 대답과 함께 단목군을 따라갔다.
그의 뒤에는 김지혜와 부채도사, 백록공자 세 사람이 따르고 있었다.
무명객은 애초 계획대로 이들 세 명을 제외한 동방무맹의 지휘부 고수 대부분을 동방에 남겨두었다. 언제든 대인자문의 침공에 대비하게 한 것이었다.
이곳 낙양까지 오면서 직접 본 전황은 중원무맹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명객은 일단 단목군과 협의한 후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그러한 전쟁터를 피해 이곳 낙양까지 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대인자문 놈들부터 맡아야겠지. 그것이 중원무림을 돕는 길이면서 곧 우리 동방무림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무명객이 눈을 빛내며 따라갔다.
* * *
중원무맹 대청.
동방무맹 십만 무사를 대연무장에 막사를 설치해 머물게 한 무명객과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는 정식으로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과 통성명을 했다.
대청에 모인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은 모두 삼백여 명.
천하 각지에 많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아직 이 많은 고수가 있는 것은 바로 총단 방어 때문이었다.
그만큼 중원무맹 총단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컸다.
총단이 무너지면 무림맹이 무너지는 것이기에, 그것은 종국적인 패전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최근에는 병력을 총단에 모이게 하고 있었다.
병력을 총단에 집결한 후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겠다는 것이 중원무맹 총군사 만박서생의 마지막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작전이 너무 과했기 때문일까.
천하 각지 수백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혈맹과의 전투에서 패배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패배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모든 병력이 총단으로 복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점점 낙양성은 포위망에 갇혀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고 있었다.
“거참,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해신방과의 해남도 전투가 끝났을 때였습니다. 왜구 놈들을 소탕하고 사기가 올라가 있을 때 삼혈맹 놈들이 일제히 발호했지요.”
만박서생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명객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그 전말을 보고받긴 했으나 정확한 내용을 듣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아시겠지만 삼혈맹은 마교와 혈교, 그리고 사사천교 이 세 세력이 힘을 합친 동맹세력입니다. 하지만 동맹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 연대가 깊지는 않아, 통합 지휘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기 독립적으로 움직이되 서로 협력하는 그런 연합세력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힘이 너무 가공합니다. 한 개 세력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벅찬 상황이지요. 그 때문에 지금 천하 무림의 절반 정도가 놈들에게 넘어간 상태입니다. 전통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큰 타격을 받아 지금은 각자 본산을 지키는 데도 역부족이지요.”
“놈들의 주력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듣기로 이곳 낙양성을 공략하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고 하던데······.”
무명객의 물음에 만박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놈들은 주력을 이곳 낙양으로 빠르게 보내고 있습니다. 방향으로 보면 서쪽에서 마교가, 북쪽에서 혈교가, 남쪽에서 사사천교가 주위 문파들을 멸문시키며 밀려오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추세라면 한 달 후면 이곳 낙양 역시 완전히 포위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우리 동방무맹 말고 다른 지원 병력은 없습니까?”
“네. 남해무림연합 무사들이 일전의 보답으로 사사천교를 피해 사천 쪽으로 우회를 해서라도 지원무사들을 보내려 했으나, 최근 해남도 인근에 대인자문 놈들이 나타나 역시 근거지 방어를 위해 발이 묶여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 대인자문 놈들이 이곳 중원에 왔군요. 놈들의 동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무명객이 관심을 보였다.
“네. 처음에는 해신방 잔당으로 생각했습니다. 한데 그 무공이 예사롭지 않아 조사 결과 왜국 본토에서 온 대인자문 정예 무사들로 파악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남방 무림 세력의 지원을 받아 삼혈맹과 대적하려던 우리 계획이 모두 틀어졌지요. 그러던 차에 귀 동방무맹의 지원 무사들이 도착한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으음, 대인자문이 삼혈맹과 동맹을 맺은 것이 확실하군요. 그 이면에는 그들을 연결해준 제삼의 세력이 있을 겁니다. 혹시 그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아직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삼혈맹의 배후에 중원삼성이란 세 명의 신비인이 존재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어쩌면 대인자문 역시 그들 중원삼성의 권유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중원삼성이라······.”
무명객이 안색을 굳혔다.
삼혈맹과 대인자문의 배후에 그들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 능력 또한 대단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내 뜻과 달리 고전할 가능성이 크겠구나. 하나하나가 막강한 세력을 네 곳이나 연결해 조종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무명객이 고개를 돌려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들 중에 혹시 자신과 무공 수준이 비슷한 고수가 있는가 해서였다.
물론 중원무맹의 맹주인 단목군의 무공 수위가 뛰어나긴 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으로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혹시 숨은 고수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일전에 언급이 되었던 단목수련의 얼굴도 다시 볼 수 있었다.
참고로 악미미는 지금 화산파에 가 있었고, 백리설아 역시 전쟁물자 조달을 총지휘하기 위해 낙양을 떠나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백자안의 여동생 백소영 역시 최근 영웅무관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어 오늘 회의에 참석은 하지 못했다.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을 일별한 무명객은 내심 실망을 금치 못했다.
‘뛰어난 고수들이 많긴 하나 무형검에 근접해 혼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고수는 거의 없구나. 아무래도 모든 전선을 단일화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무명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김지혜가 말했다.
“이번에 동방무맹 총순찰이 된 김지혜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립니다. 한데 무적세가를 비롯해 정의련의 움직임은 어떠한가요? 듣기로 최근 중립을 표방하고 움직임이 없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그렇소이다. 김 소저. 정보에 의하면 정의련 역시 중원삼성의 제의를 받고 고민 중이라고 전해지오. 해남도 전투에서는 협력했었는데, 이번에는 일단 중립을 표방하고 삼혈맹과 싸움을 피하고 있어 우리 쪽 타격이 매우 큽니다.”
만박서생이 안색을 굳혔다.
무명객이 물었다.
“그 제의란 게 뭔지 압니까?”
“그것은 확실히 모릅니다. 다만 소문에 의하면 중원삼성의 무공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일단 우리 중원무맹의 제거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그들의 제의를 받지 못한 곳은 완전한 제거의 대상인 셈이지요.”
“그런 면에서는 우리 동방무맹도 마찬가지군요.”
무명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복잡한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매우 간단했다.
중원무맹과 동방무맹의 완전한 제거가 적들의 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마교와 혈교, 사사천교, 대인자문 네 세력의 공통 목표이기도 했다.
중원삼성은 공통 목표를 제시했고, 그 와중에 절대적인 힘을 보여줘 각 세력의 연합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문제는 중원삼성 그자들의 진정한 의도이다. 그들 역시 어떤 세력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면 나 역시 역부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늘 밖의 하늘, 산 넘어 산이라 했던가.
무명객은 겹겹이 가린 암중 장막을 느끼고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목전에 닥친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차분하게 풀어가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어떤 경우에도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진정한 실력이다. 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명객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의 기억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그였지만 마음을 비우자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 동방무맹 무사들이 도와줄 일이 무엇인지 먼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총단 방어 병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동방무맹 무사 십만을 당분간 이곳 총단 방어 병력으로 사용하게 해주십시오. 아, 물론 지휘권을 넘겨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 내 늦어도 석 달 안에 천하 각지에 흩어진 병력을 이곳 낙양에 모아 놈들과 최후결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그 계획에 동참해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제 뜻과도 일치하는군요.”
무명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군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놈들이 우리 의도대로 따라줄지 모르겠습니다. 상황변화에 따라서 특수 지역에 맹주님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그 점도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중원무맹이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동방무림이 될 테니 적극 협력을 해야지요.”
“네. 그럼 쉬도록 하십시오. 내일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총단 안에 별채를 따로 마련해두었으니 그곳에 머무르시면 될 겁니다. 수련아. 내가 직접 동방무맹주님을 안내해드리도록 해라.”
“네.”
단목수련이 고개를 숙인 후 무명객과 김지혜, 부채도사, 백록공자 네 사람을 안내했다.
“저를 따라오세요.”
“네.”
무명객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갔다.
단목수련이 무명객 일행의 안내를 맡게 된 것은 바로 김지혜가 먼저 손을 쓴 덕분이었다. 무명객이 단목수련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대연무장으로 가서 무사들과 함께 있도록 하게. 유사시 무사들을 지휘할 고수가 필요하니까 수고 좀 하게.”
“알겠습니다.”
“네.”
부채도사와 백록공자가 대답 후 다른 중원무맹 무사의 안내를 받아 대연무장으로 향했다.
대연무장에 있는 동방무맹 십만 무사의 지휘를 맡게 된 그들은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각각 좌호법과 우호법 직책을 맡게 된 그들이 이렇게 대군을 직접 지휘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이는 이곳 중원무맹으로 오면서 어느 정도 무명객과 협의가 이뤄진 결과였다.
여러 가지 정황상 무명객은 무사들의 지휘는 의제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직접 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등 개별 활동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김지혜는 예외였다.
그녀는 무명객을 근접 거리에서 보필하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단목 소저라고 하셨소?”
무명객의 물음에 단목수련이 미소를 지었다.
별채까지 가려면 아직 일각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가는 도중 무명객이 말을 건네 오자, 단목수련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상황에서 동방무맹의 힘은 중원무맹의 전략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였다.
여기에 정의련의 힘까지 모을 수 있다면 마지막 반전을 이룰 수도 있는 것이다.
“네. 말씀하세요. 무명객님이 동방무맹의 신임 맹주님이 되셨다는 소식은 저도 들었어요. 어떤 일이든 힘껏 처리해드릴 테니 말씀만 하세요.”
“하하하. 다른 게 아니오. 영웅무관의 무정공자에 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러하오.”
“무정 사범님 말씀인가요?”
“그렇소. 그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소. 특히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상황을 알고 싶소. 이유는 묻지 마시고.”
“네.”
단목수련이 의아해하며 그날 상황을 설명해줬다.
삼만 부녀자들을 데리고 복주까지 온 과정과 당시 급박했던 일 등을 상세히 설명하자, 무명객이 주의 깊게 들었다.
그 이야기는 별채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무명객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점점 살아났다.
단목수련이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그는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무정공자였다. 무정공자 이전에 다른 신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직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정공자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는 것 같구나. 얼굴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직 이 사실을 밝힐 때는 아닌 것 같군. 내일 영웅무관에 들러보면 좀 더 나의 신세내력을 알 수 있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