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83)
회귀자 사용설명서 1783화
중원무림빙의(188)
“시바…… 시…… 시바! 시바!!! 이 정신 나간 새끼들아!!! 시바!!!”
“…….”
“이 미친 정신 나간 새끼들! 이 개새끼들!!!”
“뭐야! 넌 갑자기 왜! 왜 또 지랄이야!?”
“지금 왜 지랄이라는 소리가 나와?! 여기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왜 그걸 우리한테…… 아니, 왜 나한테! 지랄이냐고!?”
사실 나도 내가 왜 소리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누구를 탓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으니 일단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시바. 시바.’
최대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계속해서 되새기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차라리 그냥 죽는 거였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의 하위 개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단순한 죽음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간헐적으로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모용화연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개체들을 꼭꼭 씹어 먹거나 우물우물 넘기고 있었고, 심지어는 무슨 머리통을 쪽쪽 빨아 먹기도 하고 있었다. 그냥 모용화연이 영체들을 흡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하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무력하고도 또 무력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곳에서 놈들에게 소리치는 것밖에는 없다.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확신하게 될 정도였다.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떠오른 생각은, 역시나 가장 최근에 들었던 말 이었다. 뜬금없게도, 아니, 확실하게도 어떤 개체의 말이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다. 모용화연이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이곳에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발언이었다.
“너희들은…… 너희들은 잘못됐어. 시발…… 시발…….”
“…….”
“…….”
“사마영 너 혹시 아까 전에 들었던 말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 웃기지도 않는 말? 우리가…… 모용화연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그거? 그 터무니없는 말이…….”
“왜. 시바 그 터무니없는 말이 정답이 아니라는 보장 있어?! 너희들이 일을 개 같이 처리했기 때문에 모용화연이 그냥 이곳을 밀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보장이 있냐고!!!”
“그러면? 그럼 네 말이 맞다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는데?!”
“지랄! 누가 봐도 너희들이 잘못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우리는 최선의 판단을 내렸을 뿐이야.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의 목표는, 모용화연이 원하는 건 꼬물이를 대륙으로 데리고 가는 거야! 우리는 그걸 위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사회를 구성했을 뿐이야!”
“진짜로 그걸 위해서였다고?! 티켓 때문에 억지로 반동분자들을 잡아 쳐 죽인 게 아니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모르는 척하지 마!! 시바!”
“…….”
“애초에 모용화연이 자기의식 속으로 데려갈 수 있는 개체가 한정되어 있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그 티켓이 탐이 나서 시바 무지성으로 반동분자로 몰아넣고 죽인 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 모르는 개체들도 있을 테니 전부 다 싸잡아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애초에 잘못됐어. 이 도원향은 분명히 처음 모용화연이 구성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모용화연이 원한 도원향은 분명히 이런 게 아니었을 거야.”
“아니!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그, 그래…… 이건 심판이 아니야. 오히려 옳은 방향이라고. 어쩌면…… 평범하게 모용화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일지도 몰라. 봐…… 복숭아가 된 개체들은 모용화연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 거잖아. 저, 저렇게 모용화연이 직접 우리들을 받아들여 주시고 계시잖아…… 그, 그러니까! 우리는 잘못된 게 아니야! 이건…….”
물론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지만……
“정말로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시바 뭐 하고 있는 거야? 당장 뛰어들지 않고…….”
이 많은 개체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녀석의 말이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끝장날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당연히 나 역시 같은 공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건…….”
“무엇 하고 있냐고! 시발! 빨리 가서 위대하신 모용화연 님과 하나가 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너희들은 선을 넘은 거야. 모용화연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로 결정한 거야. 어쩌면 28회 차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내가 짧게 중얼거린 말에 공포에 질린 눈으로 이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개체 하나가 답을 해왔다.
“지랄하지 마. 사마영. 그걸 왜 네가 판단하는 거야?! 중요 개체쯤 되니까. 네가 뭐 되는 줄 아나 본데…… 네가 조금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우리들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
“…….”
“아니면, 너도 결국 반동분자들처럼 되고 싶다 이거야? 그간 여기 있는 동안 생각이 달라졌나?”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어차피 시바 이대로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전부 다 뒈지는 건 똑같은데. 지금 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그런 협박이 통할 것 같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
“…….”
“…….”
“모용진천이…… 꼬물이가 파피야스라는 건 다들 알아?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어? 이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
“나는 있잖아. 시바 이게 왜 여기에서 불문율 같은 취급을 받는지 이해가 안 가.”
“…….”
“이미 한참 전부터 도원향에서 다루었어야 할 주제야. 여기에 처음 온 개체들이 가장 먼저 다루었어야 할 주제였다고.”
“그건…….”
“상관없다느니,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이건 엄연한 사실이야. 파피야스가 우리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이게 정사일 가능성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사가 될 가능성은 엄연히 존재해. 우리는 이미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를 겪었고 육망성을 겪었어. 그곳에서 배운 걸 잊지 마.”
“…….”
“결과가 먼저가 될 수도 있는 거야. 뭐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
“우리 꼬물이가 가지고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뭐? 꼬물이가 가지고 있는 광음(光陰)의 자안? 빛과 그림자가 시간을 뜻하는 말이라서? 그거에 관련된 이능들을 가지고 있어서? 확대해석이야. 애초에 파피야스와의 끈을 이어준 건 벨리알이야! 거짓과 선동의 군주는…….”
“파피야스와 벨리알의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파피야스가 자신의 서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희생과 부활을 이용했을 거라는 게 정말로 터무니없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벨리알은 뭘 얻을 수 있었다는 건데? 네 말은…….”
“희생과 부활과 거짓과 선동은 이미 운명공동체야. 벨리알이 아니라 우리가 뭘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봐야지. 정말로. 정말로 우리 대륙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을까? 너희 정말 내가 맞기는 해? 그냥 부정하고 싶어서 반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너희들 입으로 말해봐. 우리가 뭘 얻을 수 있는지. 너무 간단한 거 아니야?”
“…….”
“…….”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마 같은 것들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 대륙은…….
파피야스의 어머니가 희생과 부활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그저 그런 하위 신 이기영이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존재해 왔던 12차원을 주무르는 파피야스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상위 신으로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준비 작업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니, 확실히 상위 신이 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심지어 베니고어까지 이 짓에 일정 부분 지분이 있는 것이 떠오른다.
물론 그녀에게 악의는 없을 것이다. 벨리알이 계산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베니고어는 분명 본능적으로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나도.’
“…….”
‘진군사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일을 진행시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이전에, 차원에 생긴 균열을 계기로 거대한 급류에 휩쓸리다 보니 여기까지 당도했을 수도 있다. 이전에는 알타누스의 의지에 떠밀린 것처럼…… 지금은 다른 누군가의 의지에 떠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그 의지가 파피야스의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아니면 시스템의 의지 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모두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놈들부터, 이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놈들까지 모두가 작금의 상황에 대해서 저마다의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
“그래서, 사마영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도대체 뭔데? 우리가 잘 못 했다는 건가? 꼬물이가 파피야스라는 걸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게 그리 큰 잘못이야?”
“…….”
“우리가 뒤통수를 맞았으니…… 놈들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는 소리야?”
“…….”
“꼬물이가 파피야스니까…… 꼬물이를 버리겠다는 거야?”
“…….”
“꼬물이를…… 여기에 혼자…… 남겨 두겠다는 소리야? 그래야 우리 대륙에 혼란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
“네 말은 일리가 있지만 사마영. 우리는 아니…… 최소한 나는…… 티켓이 없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
“모용화연이라는 단일 개체로서가 아니라 하위 개체로서의 꼬물이를 향한 내 기억과 경험이 사라지는 걸 무서워하는 거지. 저기 남편 타령만 하는 놈은 나가 뒈지라고 그래. 쟤는 그냥 특이 케이스니까. 나는 그냥 그 죽음에서 아무도 남길 수 없는 게 싫은 거야. 너 같이 생각이 많은 개체들 때문에, 뭐가 합리적이고, 뭐가 덜 합리적이지 따지는 개체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걸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게 무서운 거라고.”
“…….”
“넌 도대체 뭔데? 내가 아는 사마영이 맞아? 다른 누구도 아니고, 네가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어?”
“…….”
“다시 한번 질문 할게.”
“…….”
“그래서.”
“…….”
“정말로 우리 꼬물이를 저버릴 생각이야?”
“…….”
“…….”
당연히 저버릴 생각이 없다. 아직도 나는 모용진천이 우리 대륙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물론 지금까지 얻은 정보는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정황상.
파피야스를 이곳에 남기는 것은 어쩌면…… 어쩌면…… 옳은 방향일 것이다. 12차원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도, 우리 대륙을, 나를 위해서도, 내 사람들을 위해서도, 현성이를 위해서도…….
하지만…….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해.”
“…….”
“타협의 여지는 없어.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건…… 회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거야.”
“…….”
가장 최근에 들어온 개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놈의 목소리가 똑똑히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너희가 아니라…… 우리가…….”
“…….”
“아니, 모용화연이 선택하게 될 거야.”
“…….”
“결정은 모용화연이 내릴 거야.”
녀석이 웃음을 지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모용화연이 팔을 뻗어 우리들을 안아왔다.
도원향 전체가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