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534)
회귀자 사용설명서 534화
히든 피스(1)
사건의 시작은 몇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거울 호수에 도착한 직후에는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의 단체 휴가에 길드원들의 텐션이 평소보다 더 올라갔고, 당연히 분위기 역시 조금 더 떠들썩해졌다.
도시로 도착한 이후에는 곧바로 짐을 푼 이후 마차 여행으로 지친 심신을 풀기 위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특산물인 거울 연어를 먹으며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평소에 입이 짧았던 나 역시 두 접시를 해치웠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박덕구와 안기모는 아예 접시를 쌓아두고 식사를 했고, 엘레나 역시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뭐, 그만큼 맛있기는 했으니까.’
딱히 무슨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휴가를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거울 호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정말로 기대되네요. 그, 그렇죠?”
“응, 도시에 도착하면 곧바로 호수가 보일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기대감을 조금 높이려고 일부러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식당을 잡았다는 거 아니요. 아마 만족스러울 거요, 그렇지 않나?”
“정말 마음에 드실 거예요. 부길드마스터. 제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무척 로맨틱하거든요.”
“……?”
“형님은 또 뭘 그렇게 의아하다는 표정하고 있는 거요. 여기 정연 씨랑 한 번 사전 답사하러 왔었다니까. 아무튼, 다 먹었으면 빨리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소. 지금 이 시간대가 가장 예쁠 시간이니까.”
“원래는 따로 출입구가 있기는 한데 덕구 씨가 가지고 온 배가 너무 커서 그쪽 입구로는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아마 마차는 이미 그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걸어가시면 될 거예요. 얼른 일어나요. 길드마스터도 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쭈삣 쭈삣 몸을 일으키는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패키지 여행을 다니는 청년 같은 모습에 괜스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야 뭔가 저 나이 때의 사람이 하는 행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옆에 있는 내 친구 조혜진도 무척 들뜬 것 같았다.
“즐거운가 봅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부길드마스터.”
라고 말하니 툭 하고 목소리를 내뱉는 것은 덤이다.
아무튼, 김현성을 포함한 길드원들은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현재까지는 박덕구 패키지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본래 여행이라는 게 배부르고 나면 모든 게 전부 예뻐 보이는 법 아니겠는가.
대표적인 관광지답게 트래킹 코스를 잘 꾸며놓은 것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지만, 아마 원초적인 만족감은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기를 몇 분째, 두 눈 앞에 들어선 광경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이면 어떡하지’라는 내 생각을 부정하듯 거울 호수는 교국의 대표적 관광지다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호수, 아니, 저건 호수라고 부르기에 미안한 풍경이다.
거울 호수라는 이름처럼 하늘을 비추고 있는 것은 물론, 커다란 빛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지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보석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광경에 너도나도 입을 떡 벌리며 각자의 감상평을 내놓는다.
“예쁘다.”
감정표현이 서툰 김예리.
“정화되는 것 같아요…. 온몸 뼛속 깊은 곳에 있었던 죄와 공포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한소라.
그래, 넌 여기서 힐링 좀 해야지.
“이곳에 떨어진 뒤로 별별 광경을 다 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제가 본 풍경이 가장 판타지스러운 풍경이네요.”
놀라움을 표현하는 유아영.
“어떻게 저렇게 반짝일 수 있는 겁니까?”
뭔가 이상한 쪽으로 질문하는 김창렬까지.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창렬 씨.”
대답한 것은 박덕구의 그녀 황정연이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말 그대로예요. 어째서 저렇게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고 있는 건지, 또 빛무리는 뭔지, 아직도 밝혀진 게 없다고 하네요. 관련 학자들도 계속해서 이유를 찾고는 있지만, 글쎄요. 솔직히 저는 원인 같은 걸 찾는 건 최대한 지양하고 싶어요. 모르고 보는 편이 조금 더 로맨틱하잖아요?”
“근처에는 연어 양식장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호수에 연어가 살 수 있는 지도 궁금합니다.”
“뭐, 그런 걸 따지고 그러나. 거, 내 눈에 보이기에 예쁘기만 하면 된 거지. 그렇지 않소, 누님?”
“아… 네, 네, 정말로 예쁘네요.”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얀을 보니 확실히 얘도 이런 감성을 아직 잃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품에 쏙 안겨오는 모습은 가관. 엘레나는 괜스레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본다.
뭔가 로맨틱한 상황을 기대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모두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액션을 보여주는 건 부담스러웠다.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니까. 안쪽에 들어가서 보면 더욱더 가관이요.”
“장관이겠지.”
“뭐, 그거나 이거나 비슷한 뜻이니까. 형님은 왜 이렇게 분위기 좋은데 초를 치고… 아무튼 빠르게 올라탑시다. 거, 다들 빨리 오쇼. 어차피 앞으로 실컷 볼 테니까. 기왕이면 나이스 보트 위에서 보는 게 훨씬 더 낫지. 형씨도 빨리 올라오쇼.”
“네, 알겠습니다.”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김현성을 필두로 관광버스에 승차하는 관광객의 마음가짐으로 배 위에 올라탄다.
그제야 전체적인 내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 다소 투박했지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겉모습뿐만이 아니다. 안에서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요소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커다란 배가 천천히 호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온 김예리가 소리를 내질렀다. 왠지 모르게 만족스러워하는 안기모의 표정은 덤이다.
확실히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차이가 확연히 다가오는 듯한 느낌. 배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이러할까.
신비감 같은 거로 따지자면 엘프 왕국에 있는 세계수와 맞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실제로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커다란 배가 천천히 움직인 파동으로 물결이 흔들리고 살랑살랑거리는 빛무리와 함께 하늘이 흔들린다.
어디서 본 건 있었는지 정하얀은 가장 앞에 서서 팔을 쫙 펴고 호수를 바라보는 중.
“오, 오빠… 저, 저 좀 뒤에서 잡아주세요.”
‘그런 거 하지 마… 하얀아.’
물론 이런 분위기에서 장단을 맞춰주지 않을 정도로 모질지는 않다.
결국에는 정하얀의 허리를 뒤에서 살짝 잡아주자 앞쪽에서 실실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선희영과 엘레나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김현성까지.
조혜진의 얼굴을 보니 얘도 어지간히 이걸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치 없는 내 님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으니 오늘도 1패를 적립할 것만 같다.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들려오고, 감탄 소리와 함께 이 풍경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박덕구는 더욱더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보내고 있었다.
배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듯 박덕구를 바라보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배가 완전히 물속으로 들어간 이후에 보이는 모습은 또 새롭다.
‘잠수도 할 수 있다더니, 시바….’
길드원들의 반응을 보자면 하급 악마 정도는 이 풍경에 가볍게 정화 당하지 않을까.
솔직히 호수의 안쪽도 이렇게 휘황찬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물의 표면에 빛이 반사되어 거울처럼 비치는 게 아니었던 듯하다.
지구의 상식을 기준으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고 하는 게 맞으리라.
반짝이는 빛이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조혜진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신성력인지 마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소재로 써먹을 수도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건 또 어떻게 만든 거야?”
“거, 마법사들 좀 불렀소. 시험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잘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니까.”
“확실히… 여기서 보는 게 장관이긴 하네.”
“조금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기는 드오?”
‘그 정도는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어둠 같은 게 파바바박 사라지거나 그러지는 않느냔 말이오.”
“고맙다, 덕구야.”
“큼, 그 말을 듣고 싶기는 했는데, 막상 이렇게 들어보니 조금 더 기쁘구만. 저기 연어 떼가 이동하는 것 좀 보쇼.”
“예쁘네.”
“역시나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눈이 보인다니까. 거, 누님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파란색, 하얀색 우주 속에 들어온 것 같아요.”
“표현이 또 크으… 시적이라니까. 거, 연어들이 어딜 그렇게 가는지 한번 쫓아가 봅시다.”
“문제는 없는 거지?”
“문제가 생길 거였으면 진작에 생겼겠지. 뭐가 그렇게 걱정이요. 여기 하얀이 누님도 있는데. 거, 형님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여기서 관광이나 즐기면 되오! 내일도, 내일 모래도 기대해도 된다니까. 가즈아!”
‘이 새끼, 너무 신났는데.’
약간이지만 불안함 마음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박덕구가 이런 포지션을 취할 때는 사고를 쳤던 경우가 많았던 만큼 괜스레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풍경은 그런 사소한 걱정 같은 건 전부 잊게 한다. 오죽했으면 한소라가 눈물을 흘리고 있겠는가.
겨우 자연경관을 본 것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감성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치 구원받은 것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긴, 쟤도 악마 소환하는 데 힘 좀 보탰지.’
정하얀과는 다르게 죄책감의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나 보다.
언제 한번 면죄부라도 사서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린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좋을수록 흥이 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박덕구.
더욱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이스 보트를 모는 모양새에 웃음이 튀어나온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여유를 즐기고 있지만, 아마 현시점에서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김현성이 아닐까.
내가 즐거워하면 할수록 점점 더 표정이 풀어지고 있다.
사실 약 20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는 거기가 거기인 것 같은 풍경에 슬슬 질리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마음고생 했을 김현성을 위해 이런저런 리액션을 선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립 서비스는 확실하게 갈겨줘야지.’
애초 목적이 이기영 멘탈 회복과 즐거움이었던 만큼, 기왕이면 확실하게 목적을 달성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게 좋다는 거다.
거짓 탄성에 마치 자신이 이쪽을 만족시켜 준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 얼마나 좋았냐고, 확실하게 만족한 게 맞냐고 물어올 것만 같다.
“와아!”
‘좋아 죽네, 이 새끼.’
“아앗!”
‘이것도 진짜 피곤한 일이다, 현성아.’
“너무 대단하네.”
‘누가 보면 거울 호수 네가 만든 줄 알겠다, 야.’
“너무 크고 넓어서… 더 좋은 것 같아.”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현성아.’
“자, 그럼 이만하고 올라갈 테니까, 어디 붙잡을 수 있는 곳 있으면 꽉 붙잡으쇼!”
드디어 끝났다. 다시 호수 위에 올라갔을 때의 리액션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싶어 머릿속으로 고민했었지만.
‘뭐야… 이거.’
배가 떠오른 장소는 거울 호수가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장소.
“씨바… 뭐야, 이거.”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파도의 웜홀을 목도한 순간 커다랗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돛 펴! 돛 펴! 돛 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