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92)
회귀자 사용설명서 92화
우린 영원히 함께예요(6)
“반응이 어때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방법도 틀렸나…. 몸에는 이상이 없으신 것 맞죠?”
“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습니다. 사실 이전에 임상실험으로 썼던 데이터들도 신체에는 이상이 없었으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실험은 또 언제 하셨데….”
선희영을 이쪽으로 꾀어오기 위해 인부들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다.
그때 당시에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너무나도 제한 조건이 많아 연구를 중단했던 종류의 실험이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마치 모든 게 준비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상황처럼 느껴질 정도, 데이터를 머릿속에 가지고 다녔던 것이 유효했던 것이다.
“농도를 조금 진하게 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너무 많이 투입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이후에 마법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면 딱 적절한 양이 있을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신체에 영향이 올 수도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아니, 어디까지나 저주에 저항한다는 목적으로 사용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저주의 효과를 뛰어넘을 만한….”
“이독제독인가요?”
“비슷한 효과로 접근하는 방향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시 빙 돌아가게 생겼네요.”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거의 대부분 준비가 됐다고 보긴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네.”
“공식을 다시 짜야 되잖아요. 오늘도 힘들겠네요.”
확실히 계속해서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뜬구름을 잡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 불과 하루 전이다.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진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와 그녀가 생각보다 잘 맞았던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애초에 이전에 새로운 직업을 얻기 전부터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황정연과 나는 서로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였다.
물론 그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 성격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일의 능률에 대한 이야기.
암산이나 계산은 내가 어려워한다면 어려워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야다.
그런 분야에서 황정연은 거의 스페셜 리스트나 다름없다.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것은 당연지사.
아마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부족한 그녀에게도 내가 많이 도움이 됐으리라.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닌 십이 된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나저나 하얀 씨는 괜찮아요? 많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래도 저녁에 가끔씩 얼굴을 비춰주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딱 이 정도 거리감이 좋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른 이상행동을 보이지는 않고 있으니까요.”
“네. 기영 씨가 말한 대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어째서 그렇게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는지 알겠네요. 요즘 이쪽을 심하게 노려보는 것 같아서 오금이 다 저린다니까요.”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던 대로….”
“알아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거…. 남자도 한 번 못 사귀어본 처녀가 어째서 갑자기 캣파이트의 주인공이 돼서 원망을 받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손도 한 번 안 잡아봤는데 불륜녀로 낙인찍힌 기분이에요. 억울해 죽겠다니까. 물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느껴보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큼….”
“왜 하필 그 포지션이 불륜녀냐고요. 심지어 덕구 씨도 조금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번 일만 끝나면 정말로 두 세배로 돌려받을 거예요.”
“네. 이번 일이 끝나면 전력으로 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잊지 말아요.”
그녀의 말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정하얀의 불안 증세는 조금 더 심해졌다.
내가 갑작스레 2번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자세한 원인이 황정연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데 있다는 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리라.
정하얀이 보내고 있는 것은 질투였다.
안 그래도 정신이 마모된 상황에서 나와 떨어져 있는 상황을 생기자 저주의 침식이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뭐가 저주의 침식이고 뭐가 정하얀의 생각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머릿속으로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하얀의 계획이 먼저 완성되느냐, 아니면 나와 황정연이 하고 있는 연구가 먼저 성과를 내느냐의 싸움이었다.
온전히 연구에 집중 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성과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정하얀의 몇 가닥 남지 않은 멘탈을 잡아주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만큼 하루에 얼마는 그녀에게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정제와 함께 물약의 일부를 먹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마저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정하얀의 정신에 결정타를 날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약하게나마 흔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우면 상황이 좋지 않아질 수도 있으니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새로운 연구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정하얀뿐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원정대의 목적이 탐사가 아닌 구조인 만큼 여러 가지 상황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물론 던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겠다는 나와 황정연은 소규모 탐사에서 대부분 열외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하면서 실험을 해야 한다는 건 커다란 단점으로 다가왔다.
2번대의 파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황정연이 거의 모든 수색에 열외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구조대는 무척이나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아직 몬스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김현성을 필두로 작은 성과나 힌트를 발견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리라.
연구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공략의 진척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원정대가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모든 게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만도 아니었다.
정하얀 이외에도 저주에 침식되고 있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고 간혹 혼잣말을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김현성으로 인해 저주의 침식이 최대한 늦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이 던전에 머물렀던 부작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조금 심각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다름 아닌 이상희였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이 던전에 먼저 들어온 파티원들의 모습이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뻔할 뻔자. 그만큼 그녀는 급해졌고 초조해했다.
‘아직도 생존자는커녕 힌트도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모두들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앞전에 파티원들은 대부분이 죽었을 거라는 것을.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원정대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의 정신을 좀 먹은 저주는 점점 이쪽을 파고들고 있었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네요. 아쉬워요, 기영 씨.”
“그래도 전혀 효과가 없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목소리는 계속 들려오기는 하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은 사라졌으니까요.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성과라고 부를 수 있기야 하겠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상용화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게요. 그보다 하얀 씨한테 이쪽 좀 노려보지 말라고 부탁 좀 해 주시겠어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겪어보니까 좋지만은 않네요…. 역시 드라마는 현실과는 달라요.”
“…….”
“한 발자국 멀어져서 떨어져서 구경하는 게 가장 재미있는 법이라니까요.”
“그런데 정연 씨는 좀 괜찮으신 겁니까?”
“아… 사실 정신적으로 힘들기는 해요. 그렇지만 뭔가에 빠져서 연구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기분은 한결 났네요. 요즘에는 환각도 보이는데 기영 씨는 안 그러세요?”
“보이기는 합니다만… 심각할 정도는 아닙니다.”
“정말로 효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요. 다들 힘들어 하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구조대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언데드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생존자들 역시 보이지 않았다.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지만 마치 똑같은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
김현성을 별로 초조해하지 않았지만 이상희는 눈에 띄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이상희 님 세이프티 존입니다.”
“오, 오늘은 묵고 가지 않고 지나치도록 하겠습니다.”
“네?”
“벌,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겨우 몇 분차이로 생존자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다음 포인트에서 쉬도록 하겠습니다.”
‘또 저러네.’
“그렇지만 벌써 2번째….”
“다음 방에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래요. 분명히 있을… 겁니다.”
“마스터도 조금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괜찮습니다. 다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생존자를 발견하고 나면… 네. 생존자가 발견된다면….”
생존자 따위는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솔직히 대부분이 죽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가 린델에 들어오기 전부터 파란의 파티가 이곳에서 버텼을 거라고 생각해 보면 언데드들에게 죽든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든 서로 죽고 죽이든 간에 일이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졌으리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조금 더 빨리….”
“아….”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 당연히 알 수 있다.
환각과 환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원정대의 리더.
짜증이 섞인 표정과 불만이 가득한 몇몇의 길드원.
자기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하고 있는 인원.
박덕구가 그나마 묵묵히 버텨주고 있는 것은 용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 선희영조차 지금은 지쳐 있다는 표정이었다.
터지기 직전에 놓여 있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이 상태에서 몇 개월을 보내라고?’
불가능한 일이다.
파티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모든 상황이 사실 정하얀에게는 최고의 상황일터, 만약 그녀가 정말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시킨다고 한다면 지금이 적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모, 모두들 조금만 힘내주세요.”
“그렇지만 이제 한계….”
“안에서 길드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후위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상희 님.”
“…….”
“이상희 님.”
뭔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였다.
-저주가….
‘제길.’
모두가 동시에 허공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처음에 들려왔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박혜영이나 정진호의 목소리가 아니다.
‘2차?’
안 그래도 정신의 마모가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두 번째를 맞으면 구조가 아니라 이쪽의 생존 역시 불투명해진다.
몇몇은 괜찮을 지도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대부분이 정신을 잃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성 방어 마법을 외워주세요.”
“그렇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최대한 대응합니다. 마법사들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주문을….”
마법사와 사제들이 신성력과 마력을 일으켰지만 이건 마법으로 막아낼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다.
입술을 꽉 깨물었을 때 나도 모르게 정하얀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이쪽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모습이 보인 것은 당연지사.
말을 해오고 있지는 않지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보니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랑.해.요?’
눈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곧바로 황정연의 이름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개…씨…. 정연 씨, 바로 주문 외워요!”
정말로 할 생각이다.
어쩌면 조금 이르다고 할 수도 있는 타이밍, 아무리 이런 상황이 왔다고는 한들 움직이는 게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다.
‘황정연 때문인가?’
아마 확실하리라.
“네? 네? 그렇지만 방어 주문을….”
“빨리!”
“알, 알겠어요! 정, 정말로 괜찮은 거 맞아요? 이거 아직….”
“빨리 외워요!”
“내용도?!”
“그냥 빨리 외워!”
순식간에 소란스러워 지는 장내에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가장 앞에 있는 전위들이 벌써부터 저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준비해 두고 있던 물약을 순식간에 입 안으로 털어낸 이후에 곧바로 정하얀 쪽으로 달리기 시작.
“역시! 오빠도 똑같은 마음이었어!”
환한 표정으로 나를 반기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곧바로 입을 맞추며 안에 있는 것을 밀어 넣었다.
“사랑읍!”
‘제기랄.’
그 와중에도 마력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모양, 꽉 잡은 손으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의 유동이 느껴졌다.
무슨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방어 마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황정연이 정하얀보다 더 마법을 빨리 완성하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던 그때.
정하얀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지기 시작했다.
‘걸렸나?’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저주의 영향으로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에 정하얀이 저주에 걸린 것이 아니라 황정연의 마법에 걸린 것이라면 틀림없이 보고 있을 것이다.
‘미친 마법사와 저주받은 신단.’
본인이 원했던 결말을 말이다.
“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허공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고 있는 모습에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이 내가 준비한 시나리오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