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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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처럼 애국심이 뛰어난 사람은 처음 봅니다.
로건이 독립군 활동을 위해 세계를 떠돌아다닐 때 동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가 한 대답은 똑같았다.
– 애국심은 개뿔…….
당황하는 이들에게 그가 해 준 말도 하나뿐이었다.
– 그냥 복수일 뿐이다.
그 말에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그것이 나라를 잃은 것에 대한 복수. 즉, 또 다른 의미의 애국심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자랑스레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철없는 시절 지은 죄로 인해 가문에서 추방당한 패륜아.
그는 험한 세상에서 10년을 넘게 구른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반성과 후회는 늦어도 너무 늦은 뒤였다.
용서를 빌러 찾아가는 길 끝에서 불타오르는 가문을 마주했던 그때,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했다.
가족들의 복수.
그리고…….
용서를 빌 기회마저 앗아간 복수를.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잊었다.
그저.
– 한 놈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하루하루.
과거를 후회하며.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생을 이어 나갈 뿐.
사는 것 자체가 고행뿐인 삶.
그런 버거운 삶에 드디어 끝이 다가왔다 느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1화긴 꿈을 꾸었다.
행복했던 어린 날의 추억.
질투에 휩싸여 패악을 저지르던 못난 시절.
쫓겨나 떠돌던 때에 비로소 깨달은 후회.
가문을 멸망케 한 전쟁과 그것을 지켜보며 느끼던 절망.
그리고 속죄와 복수를 위해 노력했던 수십 년의 시간.
그리고 마지막 최후까지.
그 모든 인생의 순간 마음에 드는 것은 그나마 마지막 죽음뿐이었다.
엿 같은 놈들 중 가장 엿 같았던 놈에게 빅엿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다만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미련 하나만은 죽어서도 떨칠 수가 없었다.
– 용서를 빌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보잘것없는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재앙은 그렇다 치더라도, 스스로 지은 죄는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바랐다.
이제 죽었으니 저승에서나마 가족들을 만나기를.
가족들이 알아볼 수 있게, 그때 그 시절의 모습으로 만나 용서를 빌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순간.
찌잉.
“윽!”
강렬한 두통에 절로 외마디 신음이 흘러나왔다.
신음성을 내뱉는 순간,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다.
고통? 신음?
‘내가 살아 있다고?’
눈이 절로 부릅떠지고,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욱씬.
“으윽!”
다시금 원인 모를 통증에 머리를 움켜쥐는데.
“공자님?!”
“대공자님이 깨어나셨다!”
“윗분들께 알려!”
부산스러운 소리에 그제야 주위로 눈을 돌려 보니,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문 모를 상황에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그때.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익숙한 얼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장난기 어린 얼굴의 갈색 머리 청년.
머리와 같은 색인 그의 눈동자를 보며 로건은 멍하니 되물었다.
“……릭?”
“예? 예, 공자님. 저 릭입니다. 몸은 어떠세요? 어? 공자님 눈이……? 이, 이거 보이세요?”
수다스럽게 떠드는 귀에 익은 목소리.
이미 30여 년 전에 죽었던 자신의 전담 시종 릭이 눈앞에서 그를 근심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 당시 그대로의 얼굴로.
“어떻게……?”
“아이고, 공자님! 의사 불러와! 괜찮으실 거라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멍한 얼굴로 릭을 보고 있자니 주변이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이게 대체…….’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로건의 눈에 그리웠던 풍경이 들어왔다.
“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연무장과 저택.
멀리 보이는 낡은 성벽과 얼핏 보이는 기사들.
그 모든 것들 곳곳에는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불꽃.
맥라인 가문의 상징이었다.
변방의 소국 그란디아 왕국의 한미한 귀족일 뿐이지만, 그에게는 한없이 자랑스러웠던 가문.
한없이 그리워했던 광경이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꿈인가……?’
주변의 소음에도 정신이 들지 않아 창밖 풍경 곳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이내 릭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공자님? 공자님 이거 보이시죠?! 아이고. 우리 공자님이! 어서 의사 불러오라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전담 시종이었던 릭은 그가 조금만 움직여도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이, 일단 의사가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했으니 무리하지 마시고…….”
하녀들 역시 릭의 호들갑을 거들었다.
좀처럼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광경에 혼란스러워하던 때였다.
끼이익.
회복실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혀, 형님. 괜찮으신가요?”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목소리에, 로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살짝 열린 방문.
아직은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듯 통통한 볼살이 남아 있는 소년이 조심스레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소년의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는 로건과 똑 닮아 있었다.
“……로니안?”
목검을 잡은 지 고작 3년 만에 10년 동안 기사 수련을 받은 19살의 그를 때려눕힌,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진 동생.
한때는 한없이 저주하고 부러워했던.
그리고 말년에 그 최후를 듣고서는 한없이 미안해하고, 그리워했던 동생이었다.
‘이게…….’
찌잉!
“윽!”
“공자님!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 공자님. 돌아가세요.”
또다시 찾아온 급작스러운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자 릭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당황한 표정으로 로니안을 급하게 내보내면서도 연신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로건은 데자뷔를 느꼈다.
그의 머리를 둘둘 감은 붕대와 통증.
그리고 로니안의 저 앳된 얼굴.
익숙한 기시감이 결국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게 정말 현실이라면 지금은.
‘최초로 공식 대련을 했던 그때…….’
기사들과 가신들의 놀람 속에서 3년간 쌓여 온 자괴감과 열등감이 최고조로 솟아올랐던 날.
그는 병실까지 찾아온 동생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 꺼져! 서자 새끼 주제에 어디서 감히……!
그것은 3년 내내 이어진 구박과 폭언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동안 온갖 구박에도 자신을 따르던 동생이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게 만든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의 그는 죽기 직전까지 이 순간을 후회했다.
그래서 더 헷갈렸다.
‘또 꿈인가. 아니, 죽어도 꿈을 꾸나? 게다가 이 통증은…….’
“끄응…….”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꿈이라도, 아니 꿈이라면 더욱.’
수십 년간 바라왔던 대로.
부질없을지도 모르지만 양심의 가책이라도 덜고 싶었다.
“괜찮다. 로니, 들어와.”
“공자님?”
“됐어. 이리 와라, 로니안 맥라인.”
그 말에 소년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형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바람처럼 로건에게 달려온 로니안이 그의 침대 앞에 서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또래보다 작은 키.
순진해 보이는 얼굴과 그보다 더 착한 성격.
대련 중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임에도 정말 미안해하는 녀석.
이런 녀석을 원망하고 부러워하던 과거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괜찮아. 형 괜찮다. 그렇게 계속 사과하지 않아도 돼.”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손길에 당황하는 녀석의 표정,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너무나 실감 났다.
그래서 더, 전생에 하지 못한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넌 잘못한 게 없어. 전혀.”
“하, 하지만…….”
“오히려 내가…….”
가능하면 계속 웃으며 얘기하고 싶었는데.
이날 이후의 기억을 떠올리자 그럴 수가 없었다.
완전히 망가져 점점 더 심한 패악질을 부리던 자신이 동생에게 한 짓들이 떠올랐다.
후계자 지위 박탈, 무기한 근신에 처했다가 결국 가문에서 쫓겨나게 된 ‘그날’의 사건까지.
이어지는 기억은 온통 후회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내가 미…… 내가…… 크흠.”
“……형님?”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목이 멜 정도로 먹먹한 마음에 자연히 이어진 과거, 아니 미래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녀석이, 그렇게 죽었다.’
동생은 제국 전쟁 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문을 이끌고, 왕국의 명령에 따라 언제나 최전선에서 싸웠다.
그 때문에 가뜩이나 쇠락했던 가문의 힘은 끝없이 줄어들었다.
왕실은 녀석이 이끄는 가문의 전력이 제국군을 막는 틈을 타 타국으로 망명했다.
결국, 녀석은 제국에 사로잡혀 고문을 당하다 공개적으로 처형되었다.
철저히 이용만 당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이다.
그래선 안 된다.
절대.
울컥한 마음에 동생을 끌어안은 손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미안하다, 로니. 형이 너무 미안했어.”
전생에 미처 하지 못한 속죄의 말.
가슴속의 통한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혀, 형님? 왜 눈물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나오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덩치 큰 청년은 끝없이 울고.
오히려 덩달아 훌쩍이던 꼬마가 자신보다 훨씬 큰 형의 등을 작은 손으로 토닥였다.
그렇게 짧고도 긴 시간이 흘러갔다.
– 형님, 또 찾아올게요.
웃으며 돌아간 로니안.
지켜보던 모든 이가 놀라던 그 광경을 뒤로 한 채, 그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내가 정말 과거로 돌아온 것이라면.
모든 것을 바꿔놓을 텐데.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떴을 때.
로건은 여전히 자신이 과거에 살아 있음을 알고는 소리 없이 환호했다.
* * * 창문 너머 비추는 따스한 햇살.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상쾌한 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로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10년의 용병 생활과 20년의 독립군 활동으로 얻은 수많은 흉터는 흔적도 없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시큰거리던 무릎도 멀쩡하기만 했다.
“……정말 꿈이 아니야.”
수십 년의 기억.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까지.
– 성물은 어디에 있느냐?!
– 감히 제국의 보물을!
– 같이 죽자!
꽈아아아아앙!
부르르르.
온몸이 산산조각나던 고통까지도 생생히 기억나건만.
자신은 지금 분명히. 살아 있었다.
부르르.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전신을 스쳐 가는 전율에 팔다리가 떨려 왔다.
그토록 돌이키고 싶었던 과거.
그 모든 것을 바꿀 기회가 왔다.
물론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과 공간의 영역은 신학에서조차 이제는 세상에 관여치 않는다는 창조신의 영역이라 여기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최소 그냥 미친놈 취급. 최악의 경우에는 신성모독으로 교단에 잡혀가겠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거참…….”
짐작이 가는 것은 고작 하나.
‘그 폭발. 생각보다 너무 강력하긴 했어. 하지만…….’
폭사했다고 과거로 돌아온다는 게 말이나 되나.
전쟁터에서 그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이만 수백은 보았다.
설마 그런 이들이 죄다 과거로 돌아갔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끄으응.’
머리를 붙잡고 한참을 고민해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접어 두자.”
일부러 소리 내어 말하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버렸다.
충분히 고민했는데도 답이 없다면, 더는 그 문제에 관해서 깊게 생각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가시밭길을 구르며 얻은 삶의 지혜 중 하나였다.
답도 나오지 않을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할 때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끼이익.
“음?”
“힉! 고, 공자님!”
그 순간,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하녀의 눈이 그와 마주쳤다.
동시에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 버린 하녀가 이내 몸을 덜덜 떨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 공자님. 용서해 주세요.”
“음? 왜 그러지?”
하녀의 반응이 너무 이상해서 되물었을 뿐인데 하녀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더 조심하겠습니다!”
아니, 뭘?
대체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선뜻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사이 후다닥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릭이 뛰어 들어왔다.
“아이고. 우리 메리가 공자님 잠을 깨웠군요. 제가 주의를 시킨다는 게 깜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하녀의 앞을 가로막고 뒤로 손짓하는 릭의 모습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 내가 내 방에서 소리 내지 말라고 했지! 하녀들까지 나를 무시해?! 이것들을 그냥!
와장창!
– 꺄악!
– 공자님! 제발!
“윽.”
욱신거리는 두통과 함께 환상처럼 떠오르는 장면들.
자신이 저지른 큰 죄에 묻혀 잊고 있었던 작은 패악질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두근.
두통이 가슴속으로 옮겨진 느낌.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아.”
“자자, 우리 공자님. 저 아이는 제가 따로 주의를 시키겠습니다. 흥분하시지 마시고…….”
“아니, 그게 아니라. 메리……라고 했지?”
“아, 거 참. 이것아, 와서 빨리 사과드려!”
멋대로 폭주하는 릭을 보자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그만!”
“아니, 공자님. 제가 알아서…….”
“그만하라고. 저 하녀는 잘못한 것 없으니까!”
“예. 그러니까 제가, 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됐어. 릭, 종이와 펜을 가져와. 종이는 가능한 한 많이.”
“……예?”
“못 들었어?”
“아, 아니요. 종이와 펜으로 메리한테 무슨 짓을 하시려고…….”
“……안 해! 쟤는 그냥 보내고! 그냥 가져오라고!”
이제는 얼굴이 뜨겁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