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적들이 후퇴한다!”
“뿌리를 뽑아라!”
성벽 밖에서 분노한 표정으로 전황을 지켜보던 로저 비프로스의 표정에 미소가 떠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르르르르릉.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토모도의 성벽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5서클 마법사인 로저 비프로스는 그 광경의 저변에 강력한 마나의 힘이 들어가 있음을 대번에 눈치챘다.
물론 알아챈 순간에는 이미 늦은 후였고.
“저, 저게 무슨…….”
로저 비프로스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너지는 성벽 위에서 자신의 군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20m도 안 되는 높이의 성벽이 무너진다고 한들, 기사들이야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성벽 위에 올라선, 그리고 열심히 올라가는 중이던 일반 병사들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었다.
“이 쥐새끼들이 감히!”
이빨이 다 뽑혔다고 생각한 쥐새끼들이 극독을 품고 있었다.
“남은 놈들을 모조리 박살 낸다! 내가 직접 나서겠다!”
여유가 사라진 로저 비프로스의 외침과 함께, 비프로스 최후의 강자가 성안으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콜록. 서, 성공했군요. 주군.”
“시끄럽고, 빨리 뛰어! 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로건은 빅토르의 목덜미를 잡아끌며 눈앞에 보이는 성으로 내달렸다.
최후의 한 방이 완벽하게 먹혔는지, 자욱하게 솟아오른 흙먼지를 뒤집어쓴 망연한 표정의 적 기사들은 뒤를 쫓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보는 로건의 표정은 그들보다 더 굳어 있었다.
골렘 마탑을 동원하여 성벽을 무너트린 것은 그야말로 같이 죽자는 마지막 한 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최후의 수일 뿐이었다.
그나마도 적의 주전력인 기사단에게는 별반 피해를 주지 못할 한 수.
일이 이렇게까지 몰렸다는 것은 결국 맥라인의 끝을 의미했다.
회귀한 후 수년간 노력해 그려 왔던 미래가 물거품처럼 스러진 것이다.
그렇기에 로건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좀 더 안정적으로 성장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무리수를 둔 걸까?’
이미 고민을 끝내고 결정까지 해 놓고도 다시 후회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작정하고 벌인 일의 결과가 이렇게 처참한 실패로 나아가고 있으니, 후회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전군 정렬하라!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생을 이어 나가게 된 자들의 본능적인 기쁨만이 한동안 토모도 성을 가득 채웠다.
다행히 짙은 분노가 느껴지는 로저 비프로스의 음성이 자책하던 로건의 정신을 일깨웠다.
‘끝까지…… 끝까지 싸워 본다.’
정녕 이것이 끝이라면 적어도 눈앞의 적에게 최대한 타격이라도 입히겠다.
극한에 몰린 로건의 정신이 턱없이 부족한 전력으로 20년이 넘게 제국에 저항했던 레지스탕스의 구호를 떠올렸다.
– 내 목숨을 줄 테니 네 팔이라도 내놔.
제국군의 치를 떨게 했던 그란디아 해방 전선의 독기, 아니 광기 충만한 구호.
압도적인 열세,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독기만 가득한 영혼들이 토해 내었던 농담.
그리고 그 농담이 정식 구호가 되기까지.
용병 출신의 늙은 독립군, 로건 맥라인은 그 모든 과정을 함께했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에 다시 그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로건은 최후까지 발악하겠다 각오하며 약속한 장소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초췌한 얼굴의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가신들을 마주한 순간 그 독기가 조금 흐려질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무모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내성 앞에 모인,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가문의 병력.
배수의 진을 친 어두운 표정의 가신들 앞에서 로건은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한 것 아니더냐.”
“예. 하지만 지금…….”
“그럼 되었다.”
“……예?”
“최선을 다했으면 미안할 필요 없다. 네가 아니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 네 덕분에 선조의 원수를 향해 칼이라도 뽑아 보았으니, 부끄럽게 죽지는 않겠구나.”
질타를 각오했는데 생각 외의 대답이 돌아오자 가슴이 턱 막혀 왔다.
“맞아요. 형님 잘못이 아닙니다!”
“……로니?”
“형님이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저희가 버티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약해서 그런 겁니다! 며칠만 더 버텼어도…….”
언뜻 보이는 팔다리의 검상만 해도 대여섯 군데가 넘는 동생이 주먹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 격렬한 분노가 적어도 자신을 향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로건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거기다.
“공자님 덕에 큰 꿈을 꾸었습니다. 시골의 침상에서 늙어 죽는 것보다야 전장에서 맞는 최후가 낫지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헤인켈의 한마디에 그 옆의 기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런…….”
당황스럽고 먹먹한 마음에 로건은 사람들을 한 명씩 찬찬히 둘러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모두의 감정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특히나 창백한 안색의 빅토르도, 눈에 띄게 불안한 표정의 에일렌도.
모두 이런 곳에서 죽기에는 아까운 인재들이건만, 자신의 과한 욕심이 그들은 망친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나 로니안 같은 가족들의 뜻이, 헤인켈처럼 충직한 기사단장의 말이 이들 전부의 마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많은 시선 중에는 분명히 원망 어린 눈빛들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마도 그러한 마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원망을 다 받아 줄 시간이 없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끝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최선을 다해.’
살 수도 있는 남은 모두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는 미친 각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건은 그 외의 선택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끝장을 보겠습니다. 아니, 비프로스를 이겨 보이겠습니다. 모두 마지막까지 힘을 빌려주십시오.”
“예!”
로건의 눈에 어린 광기는 분위기를 타고 남은 맥라인 군에게로 옮겨붙었다.
적어도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완전히 가라앉은 흙먼지 너머로 비프로스의 병력이 다가왔다.
“길을 열어라.”
저벅. 저벅.
양 진영을 합쳐서 여전히 수천이 넘는 수.
하지만 갈라진 비프로스의 진영 사이로 걸어 나오는 한 사람의 발소리는 모든 이의 귀에 똑똑히 울렸다.
진영의 앞으로 나온 로저 비프로스는 어찌 보면 담담한 표정으로, 어찌 보면 들끓는 분노를 참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 어이가 없어. 이게…….”
로저 비프로스는 200여 명의 기사와 ‘고작’ 2천여 명의 병사가 남은 자신의 진영을 훑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뒤쪽에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치를 보는 맥스 페레타의 병력을 빼더라도 맥라인보다 여전히 두 배는 많은 병력이었지만, 이것은 실로 믿기지 않는 손해였다.
대륙의 전사(戰史)를 되새겨 볼 필요도 없이, 그의 사견으로는 두 배 이상의 병력으로 치러진 전쟁에서 아군의 삼 할을 잃었다면 설사 승리했다 해도 그 장수는 등신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그에 비추어 말하자면 지금 자신이 등신 중에서도 상등신이 된 꼴이라, 로저 비프로스는 이 아찔한 분노를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아직도 짐작이 안 가. 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인 이유가 도대체 뭐지? 단체로 자살하고 싶어서 환장하기라도 했나?”
하지만 로저 비프로스의 물음에 대한 답은 전혀 엉뚱한 소리였다.
“전군 전투 준비!”
“예!”
차착.
대열을 갖춰 가는 맥라인 군의 피로하고 지친 얼굴에 들어찬 광기를 읽은 로저 비프로스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새끼들. 죄다 돌았구나. 원대로 해 주마. 모두 죽여!”
그 한마디에 잠시 멈추었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죽여!”
“뒈져라!”
챙! 챙!
콰아아앙!
플란츠와 패드릭이 각자의 포스블레이드를 뿜어내며 다시 맞붙고, 로건은 남아 있는 적의 상급기사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필사의 각오를 한 맥라인 진영이었지만,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는 악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방어를 포기하면서까지 결사 항전의 기세로 한 명이라도 더 베어 넘기던 맥라인의 기사들은 수적 열세에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안 돼!’
진형의 일각이 무너지는 것을 본 로건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가뜩이나 부족한 전력을 끌어모아 세워 놓은 진형 일부가 무너지게 되면 결국 패배가 가속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맥라인의 끝을 의미했다.
로건이 최후의 발악을 결심하며 굳은 결심을 하는 그때.
위이이이이이이이잉!
성안 깊은 곳에서부터 사방을 울리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며 첨탑 위로 붉은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장에 있던 몇 사람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죽여! 빨리! 맥라인 부자부터 노려라!”
차가운 표정으로 적의 최후를 지켜보려던 로저 비프로스가 아티팩트를 꺼내 들고는 마나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만 더 버텨라!”
로건의 외침과 함께 저 멀리 비프로스 진영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붉은 빛줄기 또한 비프로스 본성 쪽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전장의 광기 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이들도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성안에서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큰 수정구를 통째로 든 클레이튼이 뛰어나왔다.
“로건 님!!”
환희에 찬 표정으로 달려오는 클레이튼의 모습.
성벽을 무너트린 대가로 마나가 바닥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클레이튼의 발걸음은 그 누구보다 빨라 보였다.
그리고 수정구 너머에서는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근엄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고한다. 국왕 폐하께서 서거(逝去)하셨다. 왕국의 귀족은 모든 일에 우선하여 국장에 참여하라!]“죽여! 저 붉은 머리 잡것들을 처단하라!”
노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로저 비프로스가 소리쳤다.
다급한 외침이었지만, 그 목소리를 뒤덮는 커다란 외침이 바로 뒤를 이었다.
“딜런 국방대신님, 토모도 성입니다. 상대편에서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클레이튼의 수정구가 그가 쥐어짠 마나에 반응하여 이쪽의 상황을 왕실의 관리에게 전달했다.
그것이 유효했는지 일대다 통신을 하고 있어야 할 왕실 관리, 국방대신 딜런 루하트의 시선이 수정구를 통해 보이는 전장으로 옮겨졌다.
[그 깃발은…… 비프로스?]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로저 비프로스 백작?]‘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로저 비프로스는 속으로 한탄을 거듭했다.
하필 이 타이밍에 왕이 서거하다니.
평생 본 적도 없고, 머리로만 알고 있던 비상 신호가 지금 이 자리에서 터지다니.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지만,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었다.
[백작, 뭐 하는 거지? 반역을 저지를 셈인가?]질끈 입술을 깨문 비프로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뿐, 무턱대고 일을 저지를 만큼 그는 멍청하지 않았다.
‘……왕의 후계가 정해지지 않았다. 1왕자 파벌에 빌미를 줄 수는 없다.’
더 이상 이 전쟁이 문제가 아니었다.
로저 비프로스는 일그러진 얼굴로 괴성을 질렀다.
“빌어먹을!!”
[백작! 지금…….]“비프로스 군은 공격을 멈춰라! 비프로스는 왕실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통신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외친 명령.
표정과 말이 전혀 맞지 않았지만, 딜런 루하트는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지.]그는 변경백의 권한을 지닌 고위 귀족이 한낱 문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기꺼운 듯했다.
그런 대신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너…… 맥라인의 쥐새끼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두고 보자.”
일그러진 표정의 로저 비프로스는 답을 듣지도 않고 돌아섰다.
이 당황스럽고도 급격한 상황 전개에 멍해져 있던 양 진영은 어리둥절한 채 통신구만 바라보고 있었고.
비프로스 군은 황망한 얼굴로 곧 자신들의 주군을 뒤따랐다.
그리고 한참 뒤.
로저 비프로스와 그 군대가 무너진 성벽 너머로 완전히 사라진 후.
그때까지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던 맥라인 병사들이 하나둘 넋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 살았다!”
“살아남았다!”
“우리가 살았어!”
“젠장! 진짜 뒈지는 줄 알았는데…….”
“으아아아아악! 살았어! 살았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자.
살아남은 기쁨과 안도감에 통곡하는 이.
서로를 얼싸안고 방방 뛰는 자들.
온갖 인간 군상들이 저마다 감정의 바닥을 드러내며 괴성을 질러 댔다.
그리고 그 가장 끝에서.
“으하하하하하하하!”
발작하듯 웃어 대던 로건이 거의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승리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이게 과연 승리한 것인지, 패배하다 만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