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해냈다! 해냈어! 해냈다고!”
여기저기서 고함을 지르는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크게 기뻐하는 것은 단연 로건이었다.
돌아온 삶에서 또다시 두 번째 최후를 생각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니만큼, 로건은 거의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방방 뛰며 소리를 질렀다.
지쳐 쓰러져 그를 쳐다보는 아군들의 눈빛에 어색함이 깃들기 시작할 때까지.
“공자님. 기운이 이렇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냥 싸웠어도 쉽게 이겼겠는데요.”
“아…… 흠흠, 당연하지! 어차피 이길 전쟁이었어!”
그 헛소리에 모두가 피식거리는 것을 보니 정말로 전쟁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공자님. 설마 이 사건을 예상한 겁니까?”
헤인켈의 말에 좌중의 시선이 로건에게 몰렸다.
국왕의 죽음을 예상했다?
굉장히 위험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질문이었고, 따라서 로건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그냥…….”
주변을 훑어보며 티 나게 한숨을 내쉰 로건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 작전은 실패했는데 천운이 도운 거야. 다시 한번 모두에게 사과하지.”
“아…….”
헤인켈의 멍한 표정이 천여 명의 사람들에게 전염되듯 퍼졌다.
* * * 로건의 솔직한(?) 인정은 여러 가지 반향을 만들었다.
– 뭐, 공자님도 사람인데.
– 그럴 수도 있지.
– 어쨌건 승리했잖아.
여전히 긍정적인 충성파가 대부분이었지만.
– 잘됐으니 망정이지…….
– 하마터면 가문 말아먹을 뻔…….
일부나마 로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로건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혹여나 왕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식의 소문이 퍼지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애초에 전생과 똑같은 날에 왕의 죽음이 알려져 무탈하게 성공했다면 준비한 작전을 쓰지 않았다는 말로 끝났겠지만.
일이 며칠이나 틀어졌는데 이 정도 피해, 이 정도 소문으로 마무리된 것만으로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그 변명을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몰랐던 것이냐?”
“예?”
“폐하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이 작전을 짠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최소한의 경계 병력을 남겨 두고, 대다수가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을 때 불쑥 찾아온 아버지가 건넨 말.
이 질문마저 대충 얼버무릴 수는 없었다.
“……맞습니다.”
“설마 이 일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이냐?”
자신의 대답에 아버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그만큼 너무도 무거운 이야기였고, 이런 의심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뿌리를 뽑아야 했다.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스승님을 통해 ‘극비’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고, 그 정보의 활용을 고민한 것뿐입니다.”
“허…… 검공 각하께서 또…….”
아버지가 탄성을 지를 때, 로건은 속으로 다시금 멋대로 이용한 스승님께 사과를 올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번에는 그것만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날짜가 조금이라도 어긋났으면 모든 것이 끝날 뻔했어. 너도 알고 있겠지?”
“……예. 제 잘못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 젊을 때는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지. 이번엔 다행히 잘 끝난다만, 다음번에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하거라. 의논도 좀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부자의 대화는 미소로 끝났지만, 돌아선 로건은 그리 속 시원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버지와 나눈 그 마지막 대화만은 정말 진심이었다.
아무리 좋은 기회였다고는 하나, 전생의 정보 하나만을 믿고 너무 위험한 일을 벌였다.
이미 자신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뀐 현실이거늘,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혹독한 절망감 속에서 깨달았다.
‘이제 미래는 더욱 많이 바뀔 것이다. 앞으로는 전생의 정보는 참고 정도만 하자. 다시는 이런 도박 같은 일을 벌여선 안 돼.’
로건은 그 생각을 다시 한번 단단히 가슴속에 새겼다.
* * * 왕의 서거 소식은 모든 귀족을 수도로 소환하는 강제 명령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맥라인 역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식 작위를 가진 패드릭 만큼은 당장 수도로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성벽이 완전히 무너진 새 점령지를 두고 영주가 바로 떠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변방의 남작 나부랭이. 국장 기간에 조금 늦는다고 꼬투리 잡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파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로건의 말은 다소 아픈 구석이 있었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고.
그와 패드릭은 가신들과 함께 우선 최소한의 전후 수습을 하기로 했다.
서둘러 전사한 병력들의 유해를 수습해서, 부상자와 더불어 타운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식량 수송을 타운에 요청한 뒤, 남은 병력은 다시 토모도 성의 성벽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가깝게 벌어진 전쟁의 공포에 떨며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는 근처 마을 주민들을 당장 동원할 수는 없었으니까.
당연히 그 일에 가장 먼저 동원된 것은 탈진하며 쓰러졌던 골렘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스승님.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창백한 안색의 그릭은 피로를 호소했다.
아무리 마정석을 써서 골렘을 활용한다고 해도 본신의 마나가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3서클 마법사인 그릭의 마나는 이미 밑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하물며 골렘뿐만 아니라 보조 마법까지 한껏 활용하고 있는 지금, 그릭은 정말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지난 며칠은 그의 마법사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시기였다.
전쟁 전 땅굴 작업부터 시작해서, 밤샘 공사로 해자를 파고 수로까지 연결했다.
탈진해서 쓰러진 다음에는 붕괴 스크롤과 연계해 성벽을 붕괴시킬 마법을 쓰기 위해 5일 내내 쥐어짜듯 마법진 작업을 해 왔다.
그리고 겨우 하루 쉬는가 싶었더니, 바로 다시 성벽 건설이라니.
“다시 세우라고 할 거면 대체 왜 무너트리라고 시킨 겁니까!”
마법사인 그릭이 머리에 든 것이 없어서 헛소리를 내뱉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만큼 억울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었다.
“마탑으로 독립하면 편히 수련하게 해 준다더니! 이게 뭡니까! 더 바쁘잖아요!”
애써 제자의 호소를 외면하던 클레이튼도 그 말에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제자를 달래기 위해 뒤를 돌아보는데.
“이럴 시간에 수련하면 내가 경지가 올라도 예전에 올랐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고생…… 어? 어라?”
“허어?”
우웅.
골렘에게 마나를 분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어스 월 마법으로 벽을 올리던 그릭의 심장에서 마나가 요동쳤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우우웅.
드드드드득.
그릭의 심장에 하나의 고리가 더 생겨남과 동시에 그의 골렘이 순간적으로 주변의 흙을 끌어당기며 몸집을 불렸다.
클레이튼이 마나를 분산하여 다루고 있는 5m짜리 골렘들보다 1m는 더 커진 그릭의 골렘.
너무도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당사자조차 어이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자신의 골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클이 올랐네……요. 아, 하하. 이게 무슨?”
마법사답게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고, 끊임없는 중노동에 푸념을 늘어놓다가 서클이 오르다니.
그릭 본인도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본 ‘스승’ 클레이튼의 눈은 묘하게 번뜩였다.
“호오?”
그리고 무언가 느낀 듯, 빠르게 다른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부러움이 뒤섞인 눈으로 사형 그릭을 바라보는 제자들.
그런데 두 번째 제자 에난도, 셋째인 트루스도 하나같이 심장의 서클이 성장할 기미가 보였다.
처음 마나 서클을 형성할 때부터 제자들을 이끌어 온 클레이튼은 본인들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승의 조짐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내가 생각을 잘못한 걸지도…….’
클레이튼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새롭게 정립되는 순간.
“자, 봤지! 마법의 극한 활용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모두 최선을 다해 작업을 도와라! 한계까지 마법을 써!”
어느새 그는 제자들을 향해 호통을 치고 있었다.
토모도 성 성벽 재건 공사.
그것이 골렘 학파가 대놓고 공병(工兵) 학파의 길을 걷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을 아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 * ‘정말 끝났구나.’
에일렌의 멍한 눈은 실시간으로 쭉쭉 올라가고 있는 성벽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은 눈앞의 광경이 아닌, 지난 며칠간의 처절했던 전투였다.
기사로서 참여한 첫 실전, 첫 전쟁이었다.
사람을 죽여 본 것도 처음이요, 자신이 죽을 뻔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중에 더욱 강렬한 경험은 당연히 후자였다.
이 전쟁에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도대체 몇 번이나 느꼈던가.
모든 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고 성장하여 당당히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머릿속에서 꿈꾸던 이상적인 기사의 모습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나간 지 오래였다.
‘내가 정말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거지.’
나는 정말 기사가 되길 바랐던 걸까, 아니면 그저 오기일 뿐이었을까.
스스로는 인생을 건 용기, 신념이라 생각했던 과거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얄팍하게 느껴졌다.
‘계속……할 수 있을까.’
머릿속 전투를 복기하면 할수록 자신감은 줄어들기만 했다.
그때는 이렇게 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다음 때에는 반대로 가야 했는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한심하게.’
그렇게 그녀가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그녀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에일렌 님. 상태는 좀 어떻…….”
“로건 공자!”
“어…… 제가 그리 반갑습니까? 전 욕이나 먹을 줄 알았는데요.”
“예? 무슨? 제가 왜요?”
“무섭지 않았습니까? 첫 실전에서 몇 번이고 죽을 뻔했는데.”
“흐, 흠. 그거야 기사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일인데요, 뭐.”
꿀리기 싫은 마음에 나름 당당히 대답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끝이 떨려 왔다.
‘설마 보진 않았겠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자존심이 사그라들던 자존감을 멱살을 잡고 끌어 올렸다.
떨리는 손을 등 뒤로 돌려 뒷짐을 지고, 턱을 들어 올리며 콧대를 세웠다.
“실전을 무서워하면 기사로서 자격이 없는 거죠.”
나는 에일렌 플로이드, 그란디아 왕국의 역사에 이름을 새길 기사다.
주문을 외듯 다짐을 속으로 되새기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다행히 허세가 제대로 먹혀들어 간 것 같았다.
“과연, 대단하군요. 저는 첫 실전에서 도망치지 않는 게 고작이었는데.”
“예? 무슨 헛소…… 아, 이건 욕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지금 주변 사람들은 모르지만, 제 첫 실전은 그랬습니다. 실제로 저를 죽이려 드는 사람을 처음 봤고, 처음 본 사람을 왜 죽여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얼어붙어 있었죠.”
로건은 전생에 용병으로서 겪었던 첫 번째 실전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사실 공녀를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활약을 해 주더군요. 기사들 사이에서 평가도 좋고.”
“그, 그런가요?”
“예. 기사를 하겠다는 말이 그저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 줬습니다. 아슬란을 잡을 뻔했을 때 저를 보호해 주신 것도 고마웠구요. 늦게나마 그 감사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아, 아니에요. 그거야 공자가 먼저…….”
“공녀, 아니 에일렌 ‘경’.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이 꼭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린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없던 자신감도 생기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에일렌은 자신이 그 보통 사람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이 이 순간만큼은 순수하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이에요!”
활짝 웃는 에일렌의 얼굴에는 좀 전까지 가득하던 암울한 생각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 * * 토모도 성의 성벽 공사는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골렘 마탑의 마법사들은 지켜보는 이들이 놀랄 만큼 엄청난 속도로 성벽을 쌓았고.
타운에서 식량을 비롯한 물자들 역시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프로스가 다시 쳐들어와도 걱정 없도록 확실히 방비해.”
“예!”
자리를 잡아 가는 새 점령지의 모습에 맥라인의 수뇌부는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슴 한편엔 여전히 떨쳐 내지 못한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다.
‘국장이 끝나면 비프로스가 가만히 있을까?’
전투가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이 의문이 하나같이 그들을 괴롭힐 때.
“저도 아버지와 함께 수도로 가겠습니다. 그곳에 방법이 있습니다.”
이제는 사실상 맥라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로건이 그렇게 확언하며 수도행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