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결국 열리네.”
“이게 얼마 만이지?”
“결론이 날까?”
와글와글.
그랑 내성의 궁궐 중 하나가 통째로 사용되는 회의장.
그란디아 왕국의 역사와 함께하는 귀족들의 토론장이 유난히 많은 인파로 붐볐다.
최근 2~3백 년간은 백작급 이상의 대귀족만 참석이 가능했던 그랑 노블레스가 예기치 못한 국장을 맞이하면서 모든 귀족에게 그 문을 연 것이다.
모든 귀족이 모인 만큼 인원도 무척이나 많아 단순한 입장과 자리 배정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결국 공식 개최 시간에서 두 시간이나 더 지난 뒤에야 의장이 의사봉을 들었다.
땅. 땅. 땅!
“그랑 노블레스가 곧 시작되겠습니다. 귀족 여러분은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을 중심으로 콜로세움의 관객석처럼 부채꼴 형태로 좌석이 배치된 회의실.
의사봉을 두드리는 재상의 바로 정면에 앉은 닮은 꼴의 두 남자를 기준으로 귀족 대부분이 좌우로 나뉘어 앉아 있었다.
대놓고 싸우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고 있음에도 살벌한 분위기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불행히도 선왕 사무엘 폰 그란디아 1세께서는 후계를 정하지 못하고 서거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이 나라의 미래가 될 후계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재상, 플루토 레바인의 선언을 시작으로 회의장은 대도시의 시장보다도 더 시끄러워졌다.
“당연히 로히터 전하가…….”
“당연히 로메인 전하 아니겠소!”
“무슨 소리!”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가며 단숨에 난장판이 된 회의장.
아버지 패드릭 맥라인과 소수의 중립 귀족들이 어두운 눈빛으로 그런 파벌 귀족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로건 역시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 채 귀족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얘기로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개판이군. 변수는 없을 것 같은데…….’
회의장에 모인 귀족들도 대략은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 회의는 절대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전생에는 이 회의의 3일 차에 난투극이 벌어졌었다.
1왕자파에 속하는 하일 테라트 자작이 요르단 발터마임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그로 인해 시작된 중소 귀족들의 난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초인들까지 직접 충돌하게 만든 것이 내전의 시발점이었다.
일명 ‘나라를 말아먹은 손가락 사건’이라 불리게 되는 사건.
그 주동자인 하일 테라트는 후일 그란디아의 유민들에게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지만.
‘이 분위기라면, 누가 해도 했겠어.’
설령 난투 없이 회의가 진행된다고 해도, 누가 후계로 정해지건 다른 쪽이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지금의 분위기만 봐도 내전의 발발은 확정적이라 봐야 했다.
‘굳이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단순한 난투극에서 발발된 내전은 서로의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난 한두 달 후에나 첫 전투가 벌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별다른 변수 없이 그 기억대로 흘러간다면.
‘비프로스가 그 내전을 준비하는 기간에 우리를 박살 낼 수도 있어.’
좀 더 급박하게,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내전이 벌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로건의 시선이 회의장의 앞쪽에서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두 명의 왕자를 넘어, 단상에서 막 발언을 시작한 귀족을 향했다.
‘래리 클레트 백작…….’
“장자 우선의 원칙이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구질구질하게 고루한 관습을 들먹입니까? 더구나 몇 달 차이도 나지 않는다면 결국 능력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제국과의 교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 영명한 로메인 전하께서 왕이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옳소!”
“우우우우!”
발언 하나, 하나에 극명하게 갈리는 반응들.
안색이 바뀔 법도 하건만 래리 클레트는 웃으며 자신의 파벌인 2왕자 쪽만 바라보았다.
그 자신은 재무대신에서 낙마한 서기관 나부랭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4대가 연속으로 왕국 9대 주무처의 대신을 역임해 온 명문가.
여전히 수도 귀족들에게는 방귀깨나 뀔 수 있는 가문이었다.
더구나 2왕자가 왕이 된다면, 4대가 아닌 5대 연속으로 대신이 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저 능력 없고 운만 좋은 팔룬 데이비스 놈을 대신해서 말이야.’
그는 2왕자 로메인 폰 그란디아를 위해 열렬한 지지를 표했다.
2왕자파의 환호는 더욱 커졌고 1왕자파의 야유는 더욱 심해졌지만, 그는 오직 2왕자만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로건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해 놓고 나중에 1왕자파로 전향한다는 말이지. 더구나 제국에 점령되었을 때까지도 자리를 유지하고.’
저 듣기만 좋은 헛소리에 무슨 힘이 있는지 로건은 도통 체감이 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내전과 제국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질긴 명줄로 저 말도 안 되는 아부의 힘을 증명했다.
전생에서의 그란디아 해방 전선 척살 대상 9순위. 코드명 ‘기생충.’
‘이번 생에서는 조금 빨리 만나자고, 벌레 양반.’
전생에 그의 질긴 명줄을 끊어 낸 이가 바로 로건이었다.
* * * 첫날의 회의는 양 파벌이 서로 목소리만 높이다가 파했다.
중립을 표방하는 재상 플루토는 정도 이상으로 목소리가 높아지자 폐회를 선언했고, 자연히 회의는 하루 뒤로 연기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로건은 회의장에 막 들어서던 래리 클레트와 ‘우연히’ 어깨가 부딪쳤다.
“윽!”
콰당.
“아, 이런.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지금 뭐 하는 거야?! 앞 똑바로 못 봐!”
“실례했습니다.”
로건은 넘어진 래리를 정중하게 일으키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 과정에서 로건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래리의 어깨에 당사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상처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 시작된 회의, 또다시 평행선을 달리는 공방과 함께 의미 없는 대여섯 시간이 흘러갔다.
“로메인 전하께서는 국정의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시며 성과를 보여 왔습니다. 마땅히…….”
어제와 마찬가지로 열렬히 2왕자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던 레리 클레트.
그러던 어느 순간.
“마땅히…… 그…… 으, 피? 이게 갑자기…… 으윽!”
우당탕!
갑자기 흘러내린 코피를 훔치던 그가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뒤로 쓰러져 단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백작?!”
“클레트 백작!”
“이게 무슨?! 사제를 불러!”
회의장이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로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의장 뒤편에서 그 소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효과 제대로군…….’
레테의 풀.
탈모 치료제로 유명한 이 귀한 약초를 포스를 주입해 3일 동안 말려서 농축시키면 약성이 수백 배는 강해진다.
그 약성이 너무 강해진 탓에 포스나 마나가 한 줌도 없는 평범한 자가 사용하면 뇌혈관을 터트리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정도로.
하지만 그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이 시점으로부터 15년이 흐른 뒤였다.
그것도 제국의 고위 관리를 암살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수없이 찾아보던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기사나 마법사에게는 먹히지 않는 독인 데다가 단가도 너무 비싸기에 정작 써먹을 일은 많이 없었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잘 가시오, 기생충 백작.’
로건은 전생과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한 이를 보며 조용히 가식적인 애도를 표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뇌 손상이 심각합니다. 무슨 독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다급하게 불려 온 사제의 그 한마디는 소란스러워진 회의장에 폭풍을 몰고 왔다.
“로히터! 감히 내 수하를 독살해?!”
2왕자 로메인 폰 그란디아가 소리 높여 자신의 형제를 성토했다.
그 폭언을 들은 1왕자 로히터 폰 그란디아가 붉어진 얼굴로 마주 소리를 질렀다.
“너야말로! 그따위 자작극에 누가 속을 줄 아느냐?! 저런 간신배 하나 죽여서 무슨 득을 보겠다고!”
“뭐라? 간신배?!”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에 흥분하는 것은 왕자들만이 아니었다.
파벌의 귀족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왕자의 뒤편에서 저마다 흉흉한 살기를 내뿜었고, 그것은 이내 물리적인 충돌로까지 번졌다.
콰아앙!
“아주 오늘 끝장을 보자, 록시나!”
“바라던 바다, 클로이!”
비프로스와 맥라인보다 더한, 왕국의 유명한 원수지간으로 알려진 북부의 라이벌 가문이 먼저 부딪치고.
그 해묵은 원한이 만들어 낸 물리적 충돌의 여파는 이내 가까이 있던 모든 이들이 포스와 마나를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 귀족의 삼 분의 일에 달하는 문관 귀족은 몰라도, 영지 귀족이나 무가, 혹은 마법사 가문으로 분류되는 귀족들의 대다수가 포스유저이거나 마법사인 상황.
회의장이 단숨에 흉흉한 기세에 뒤덮이고 거센 충돌이 일어나려던 찰나.
“모두 그만!!”
쩌렁쩌렁하게 회의장을 울리는 목소리가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왕자님도 잠시 진정하십시오. 이 상황은 제대로 조사를 끝난 후에 공정하게 인과를 밝혀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이 아닙니다.”
검공, 펠릭스 에스페란자가 격해진 장내의 분위기에 시기적절하게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두 왕자의 의견이 엇갈리며 또다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뚜렷한데 무슨 공정한 인과를 밝힌단 말이오, 공작!”
“명분이 없으니 쓸모없는 수족 하나 쳐 내서 자작극이나 벌이고. 공작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오!”
“웃기는 소리! 비열한 암수를 써 놓고 뭐? 자작극?!”
“찔리는 것이 있으니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백금발에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두 미청년의 서로 닮은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뭐라? 하! 조사? 좋아, 좋지! 그렇게 하지 뭐. 그런데 만약 이것이 네놈의 짓이라 밝혀지면, 왕위는 내 것이다.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조사에도 또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보군. 유치한 도발 따위…….”
“흥! 비열한 수를 써 놓고 이제 와 발뺌하는 것이냐?”
대화가 이어질수록 언성이 높아지기만 할 뿐, 전혀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는 모양새였기에.
“두 분 왕자님. 진정하시고 제 말을…….”
중재에 나섰던 검공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때, 회색 머리 거한과 푸른 머리의 마도사가 왕자들의 뒤에서 동시에 한 발을 내디뎠다.
우우우웅.
파지지지직.
왕국에 단 셋뿐인 공작들이 대치하며 만들어 낸 기세의 충돌.
왕자들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사방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드드드드.
“나서지 마시지요, 검공.”
“아무리 그대라도 우리 둘은 어려울 것이오.”
“……지금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인식하고는 있느냐?”
두 왕자의 뒤에 선 공작들의 말에, 검공이 차갑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물었다.
“이 무의미한 회의 따위는 어차피 의미가 없다는 거, 그대도 아실 텐데요?”
“차라리 이렇게 결론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소이다.”
“허어, 이 미친놈들이…….”
어쩌면 이미 정해진 수순, 적당한 명분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들은 결국 검공이 어떻게든 막고자 했던 최악의 결과로 치닫고 있었다.
“왕궁 내에서 더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소이다, 검공.”
“우리도 수도를 전쟁터로 삼을 생각은 없소이다. 그러니 자중해 주시지요, 펠릭스 에스페란자 공작.”
왕국 무력 서열 2, 3위를 다투는 초인들, 그들이 연합하여 압박해 오자 검공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느낀 2왕자가 1왕자를 손가락질하며 분노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너는 이제부터 내 형제가 아니다, 로히터. 누가 진짜 왕위에 어울리는지 힘으로 증명해 주마!”
“나야말로!”
끝끝내 두 파벌의 대립이 노골적인 전쟁 선언으로 이어졌다.
검공이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바라볼 때.
두 공작은 서로를 노려보며 동시에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그것을 기점으로 왕자들 역시 돌아서 회의장을 나섰고, 지켜보던 귀족들 역시 두 갈래로 갈라져서 바로 그 뒤를 따랐다.
서쪽과 동쪽.
공교롭게도 파벌의 분포와 비슷하게 서로 정반대 방향의 출구로 나서는 이들.
그 뒷모습을 보며 암울한 표정을 짓는 이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스승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정하시지요.”
로건의 위로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일을 크게 만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벌어질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수십 년 전부터 쌓여 온 두 공작의 욕심은 스승 혼자서 막아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선왕 폐하께 면목이…….”
검공은 허탈한 표정으로 하늘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에서 이틀에 걸쳐 진행된 회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패드릭이 묘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