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출진하라!”
쿠쿠쿵.
성문이 내려가 해자에 걸쳐지고, 그 위를 2천에 가까운 군대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기사 98명, 석궁기마병 730명, 보병 922명.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임이 확실했지만, 불과 두 달 전 토모도 성을 공격할 때보다는 확실히 적은 병력이었다.
이 병력으로 비프로스 본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이전 같았으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 이전 같았으면.’
대체적으로 긴장한 수뇌부들의 가운데서 로건은 홀로 웃고 있었다.
“걱정이 전혀 안 되느냐? 정말?”
“비프로스 본성에 남아 있는 병력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요르단 공작이 총동원령을 내렸으니 그 휘하라면 무서워서라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서운 자의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지.”
패드릭이 딱딱한 얼굴로 말했지만, 로건은 여전히 확신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에이, 우리야 상황이 다르지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도 동의하셨으면서.”
“…….”
“아버지. 긍정적으로 봐 주십시오. 이백 년 만에 선조의 땅을 되찾을 기회입니다. 그리고 라이벌과 대권을 다투는 대전을 앞둔 초인은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적어도 이 변방의 땅따먹기 정도로는요. 그리고 만약 움직인다면…….”
“그때는 발터마임이 망한 뒤일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 그렇죠.”
패드릭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도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만약 내전에서 2왕자파가 승리한다면?”
“그 전에 저희가 1왕자 편을 들어야지요.”
“반대일 경우는 오히려 그쪽에서 손을 내밀 테고?”
“그렇죠. 어느 쪽이건 내전은 결론이 날 테고, 어떤 경우건 요르단 공작은 경고를 이행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비프로스 성을 먹고 양 파벌의 키 카드가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다 이해하고 동의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로건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패드릭은 어느 때보다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네 이야기에 큰 결점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 거겠지?”
“……예?”
“우리가 비프로스 성을 먹고 성장하는 동안 내전이 끝나지 않는다는 가정. 너는 이 내전이 엄청나게 오래 갈 것이라 확신하고 있더구나. 그렇지 않느냐?”
그 말에 로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역사를 뒤져 보아도,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진 내전이 연 단위를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무려 3년을 지속한 그란디아 내전이 무척이나 특이한 경우였다.
아버지의 의문은 당연했지만, 로건은 무심결에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 그거야…… 이미 벌어진 전황만 보아도 쉽게 끝날 분위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전황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다.”
“아직은 감입니다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운명을 걸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단순한 감뿐이더냐?”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아니다. 하…… 이미 결정했으니 하는 데까지 해 보자꾸나.”
패드릭은 눈을 들어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스며들며 점점 깊어지는 겨울을 체감하게 해 주었다.
눈을 감으니 그 날카로운 서늘함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느껴지며 얼마 전 왕궁에서 보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래리 클레트의 죽음을 보며 차갑게 미소를 짓던 모습이.
‘설마…… 아니겠지.’
아니, 사실 맞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들이 내전을 촉진시켰건, 아니건 상관없다.
어찌 되었건 녀석은 가문을 위한 일을 했을 것이다.
비단 이번 일뿐만이 아니라 그간 아들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느낀 적은 종종 있었지만, 그것만은 믿고 있었다.
그러니 응원을 해 줄망정, 괜히 분란의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한 가지만 생각할 때였다.
선조의 땅.
잃어버린 영화.
그 모든 것을 찾을 기회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하아……. 그래. 내가 미친 건지, 네가 미친 건지. 아니면 세상이 미친 건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해 보자꾸나.”
아버지가 심중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자신을 바라보던 눈에서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로건은 기꺼운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예!”
* * *
– 얌전히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보존시켜 주겠다.
“빌어먹을. 저 미친놈들이 대체 뭘 믿고?!”
현 비프로스의 수비대장, 상급기사 렌토르가 성벽 너머에 다가온 적군을 보며 거친 욕설을 토해 냈다.
현재 비프로스에 남아 있는 병력은 22명의 기사와 500여 명의 병사뿐.
2천에 가까운 적의 군대를 막아 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적이 선전포고라도 했다면 다른 성에 파견된 최소한의 병력이라도 다 끌어모았을 것이다.
아니, 징집이라도 해서 화살받이라도 시켰겠지만.
‘그게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렇다고 후퇴를 할 수도 없었다.
[페레타의 군대가 합류할 것이다. 최대한 버티며 지켜 내라! 반드시!]사실 주군의 통신에서 본대가 돌아온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지키란다.
정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이 버려진 것인지.
이제는 그 진의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다만.
“버티면 된다! 곧 원군이 온다! 어떻게든 지켜 내라!”
병사들에게 내뱉는 말 만큼은 희망적이어야 했다.
모든 정예가 중앙 전선으로 간 지금 남아 있는 유일한 상급기사인 자신이야말로 지금 비프로스군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역시나 곱게 항복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길게 끌 필요 없지. 바로 함락시킨다.”
“예!”
패드릭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맥라인의 군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20여 미터나 되는 높다란 성벽은 그만큼 크고 넓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웅장한 크기의 성벽은 이번만큼은 완전히 약점으로 작용했다.
압도적인 열세의 병력으로 그 넓은 성벽을 모두 지켜 내야 했으니까.
맥라인의 기사들은 진격해 온 남문 방향에서 동서의 성벽을 따라 좌우의 병력이 갈라지며 세 무리로 흩어졌지만, 그중 한 무리만 해도 비프로스에 주둔 중인 기사의 총합을 넘었다.
비프로스 성에 고대의 마법이라도 숨겨져 있지 않은 한, 이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맥라인 기사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성을 함락하라!”
영주의 고함이 떨어지기 무섭게 3면에서 동시에 기사들이 돌진했다.
한쪽에서만 30여 명의 기사가 산개하며 성벽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막아야 할 비프로스의 기사들은 오직 성의 정면, 남문에만 모여 있었다.
동쪽과 서쪽 성문에는 병사들만을 배치한 채.
“진형을 형성하고 버텨라!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온다!”
렌토르는 다른 방향에서 침입해 오는 적들을 막는 대신, 남문의 성벽 위에 기사 전력을 집중해 최대한 시간을 끌며 막아 내기로 했다.
‘기사들이 흩어져 봤자 각개격파만 될 뿐이야. 여기서 버틴다!’
동서의 성벽에 있는 병사들을 다 처리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사 전력만 온전히 보존한다면 원군이 도착했을 때 반격을 노릴 수 있다.
실로 치졸한 전략, 아니 전략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없는 배임 행위였다.
거기다.
히이이잉.
그나마 적이 오지 않은 북쪽 성문이 열리며 화려한 사두마차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 와중에도 여섯 명의 기사가 그 마차를 호위하며 달리는 모습이 병사들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모두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며 렌토르는 오히려 고함을 질렀다.
“봐라! 가모님들과 어린 공자님들은 무사히 빠져나가셨다! 이제 걱정거리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적을 맞이하여 최후까지 항전한다!”
대체 넌 뭘 걱정하고 있던 거냐? 우리 목숨은?
황당한 주변의 눈초리를 느끼지도 못하는지, 렌토르는 병력의 사기가 떨어지는 말만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하!”
단 두 번의 도약만으로 로건은 성벽 위에 올라섰다.
그가 택한 길은 기사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동쪽 성문.
촤아아악!
“으아아악!”
성벽 위로 올라서자마자 휘두른 검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칼에 베여 죽은 병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지만, 곁에 있던 병사들이 기겁하여 비명을 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비명은 로건의 뒤를 따라 성벽에 올라선 기사들의 공격과 함께 성벽 전체로 퍼져 나갔다.
패닉에 빠진 병사들을 독려하고 항전하게 만들어야 할 비프로스의 기사들은 그곳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너무도 당연하게.
“모두 꿇어라! 항복하는 자는 살려 준다!”
일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초인인 기사들의 일방적인 살육 중에 터져 나온 고함에 병사들 대다수가 그대로 무기를 버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허망하게 항복하는 병사들.
그들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사실상 그것만으로 동쪽 성문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예상대로 손쉽게 진행되어 얼떨떨할 정도였다.
하지만 로건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1조 내려가서 성문을 열어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 남쪽의 기사들을 친다!”
반대편을 바라보니 아버지 역시 이미 서쪽 성벽을 비슷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전력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면 어떤 전략도 필요가 없겠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걸?’
뭐, 적이 멍청할수록 아군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여기서 끝장을 내 주마!”
로건은 고함을 지르며 바람처럼 남쪽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토모도 성보다는 훨씬 넓은 비프로스였지만, 그랬기에 상대방의 적은 병력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기가 막힌 소리가 들려왔다.
“나 비프로스의 상급기사 렌토르. 그대에게 기사 대전을 청한다! 그대도 기사라면 부끄럼 없이 응하라!”
아니, 너무 부끄러운데.
왜 적이 지껄인 말에 내 얼굴이 화끈거릴까.
로건은 실소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
이런 멍청이를 굳이 손수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열린 동문과 서문으로 아군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을 본 로건의 칼이 어처구니없는 얼간이를 가리켰다.
“쏴!”
성벽의 안쪽으로는 엄폐물도 없어 훤히 뚫린 널찍한 성벽 위.
그곳에 모인 22명의 적 기사들을 향해 쿼렐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타다다당.
“비, 비겁한.”
“어. 넌 멍청하고.”
촤아악!
주변의 기사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진 뒤, 렌토르는 로건의 일검에 목숨을 잃었다.
로건은 쓰러진 적의 머리를 베어 높이 들고 소리쳤다.
“우리가 승리했다!”
이백 년 전 쫓겨나며 빼앗겼던 조상의 땅.
맥라인은 너무도 쉽게 그 땅을 되찾았다.
* * *
“모두 수고가 많았다.”
담담하게 울려 퍼지는 패드릭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격정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대전의 상석, 영주의 자리에서 의자의 손잡이를 쓰다듬는 떨리는 손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신들 역시 그런 주군의 심정을 아는지라, 부드러운 침묵의 시간이 잠시간 대전을 감싸 안았다.
그 침묵 속에서 패드릭의 시선이 불꽃에서 피어난 장미의 문양이 아닌, 완연한 불꽃의 문양으로 다시 도배된 대전의 정경을 하나하나 훑었다.
정상적인 승리가 아니라 해도, 적의 본대가 아직 외부에 남아 있다 해도, 어쨌건 당장은 이겼다.
잃어버렸던 조상의 땅을 되찾았다.
애써 울컥한 감정을 다스린 패드릭의 시선이 다시 장내에 도열한 기사들을 향했다.
그리고.
“우리 맥라인은 마침내 옛 조상의 땅을 수복했다. 이 모두가 여기 있는 여러분의 공이고, 그런 여러분을 가신으로 둔 내 복이다.”
떨리는 음성이 조용히 사방을 울렸다.
“이 자리는 이 영광된 순간을 만들어 낸 그대들의 공을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그 과정에서 쓰러져 간 아군을 추모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잊지 않겠다. 이 자리를 만들어 준 기사…….”
패드릭의 입에서 전사한 기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려졌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불릴 때마다 도열한 기사들의 고개가 천천히 숙어졌다.
그중에는 오래전부터 맥라인 기사단이었던 이도 있었고, 테스론이나 실반에서 전향한 이들도 있었지만.
여러 번의 전투를 통해 다져진 전우애는 출신을 따지지 않고 기사들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그대들의 이름을 내 가슴에 새기고 영원히 기억하겠다. 그대들의 충성과 헌신을 기억하며 남은 유족들에게 영광된 미래로 보상하겠노라.”
마침내 전사한 기사들의 이름이 모두 호명되었을 때.
“충!”
쿵.
“맥라인에 영광을!”
쿵.
“꺼지지 않은 불꽃의 검이 되어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쿵.
대전을 울리는 발 구름이 만들어 낸 진동은 이내 이곳에 자리한 모든 사람의 가슴에 강한 울림이 되어 퍼져 나갔다.
그 진득한 울림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이 영광을 이뤄 낸 희생자들을 보듬고 추억하는 것은 내가 하겠다. 그러니 앞으로의 벌어질 미래의 일은 맥라인의 미래와 상의하는 것이 좋겠지.”
패드릭의 시선이 자신의 바로 아래 서 있는 큰아들에게 옮겨 갔다.
“아버지. 그냥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좋은 날, 아버지가 모든 기쁨을 온전히 즐기길 바랐던 로건이 손사래를 쳤지만.
“테스론을 몰아냈을 땐 그저 대견하다 여겼다. 맥라인 타운을 만들어 냈을 때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여겼다. 이미 네가 내 손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지. 즐거운 오산이었어.”
“아버지…….”
“그리고 실반을 몰아내고 마침내 비프로스까지 점령한 지금까지, 가문을 이끌어 온 것은 내가 아닌 너다. 무엇보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다. 가문의 구심점인 네가 기사들을 격려해 주거라.”
여기서 더 거절하는 것도 우스웠다.
길게 한숨을 내쉰 로건이 부복하고 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제 난세가 찾아올 것이다. 맥라인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을 것이다. 난세의 바람을 타고 더욱 크게 날아오를 가문에 그대들이 날개가 되어 주길 바란다!”
“충!!”
“지금의 이 일시적인 승리가 확고한 승리로 확정될 때까지 모든 포상은 미룬다. 아직은 모두 긴장을 놓지 말도록!”
“예! 알겠습니다!”
“우리는 승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영광을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다!”
로건의 희망을 담은 포부가 대전을 가득 울리고.
“맥라인에 영광을!!”
그 울림은 더 큰 열기가 되어 대전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