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
11화필립의 빚을 갚고, 그가 남은 짐을 정리하는 데는 고작 하루가 걸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자산인 그의 저택에서 로건은 앞으로 필립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내가 너를 데리고 가더라도 당장 가문에 정식으로 임용되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굳이 널 고용한 자신의 평판이 나빠서라는 좋지 않은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일단 여기에서 내가 시키는 일부터 해 줬으면 해.”
“예. 알겠습니다, 로건 님.”
의문점이 있을 텐데도 필립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따르기로 계약까지 한 이상 굳이 따질 필요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그저 의욕이 없는 것뿐일까.
현재의 필립이 가진 가능성에 대해 확신이 없는 로건으로서는 그를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을 시켜 보면 알겠지.’
일단은 돈을 버는 일보다는 상인의 특성을 살려 물건을 구매하는 일부터 시켜 볼 생각이었다.
교역 도시 카일에 온 두 번째 목적, 당장의 영지전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이 그 구매 대상이었다.
“내가 너에게 시킬 첫 번째 일은 제국 남부산 철목으로 만든 카트리지와 태엽, 아교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거야.”
“예?”
어리둥절한 필립에게 로건은 이유 대신, 필요한 물건들의 규격을 설명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볼 수 있게 샘플로 100여 개 정도는 미리 받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장난감이라도 만들어 파시려고 하는 겁니까?”
삐딱한 태도와 비웃는 어조는 둘째 치고, 그를 고용한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라 했으니 필립의 생각이 저리 흘러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음, 뭐 비슷해.”
그러나 굳이 전쟁을 위한 무기를 만들 생각이라는 말을 지금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그가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샘플이라도 제작하는 것이 먼저니까.
그런데,
“제국 남부산 철목은 튼튼하기 때문일 테고, 태엽은 규격만 맞추면 되겠지요? 제작용이라면 아교는 접착력이 높을수록 좋구요.”
“그래.”
“그럼 굳이 여기나 제국에서 사실 필요는 없습니다.”
필립의 대답은 무척이나 빨랐고 또 의외였다.
“뭐?”
“제국 남부 철목보다 왕국 북부의 철목이 더 튼튼합니다. 주로 북부 트리탄 영지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철목을 이용해 물건을 만드는 장인도 많고 당연히 아교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국산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상인들을 거치는 것보다 직접 사면 가격도 쌉니다.”
“호오?”
왕국이 망한 다음에나 그것들을 이용한 무기를 써 봤던 용병 로건은 몰랐던 사실.
“그곳에 아직 선대의 인맥이 남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말씀하신 샘플 100개 정도는 신용만으로 맥라인 영지에 보내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락해 놓을까요?”
“……그래.”
쉴 새 없이 쏟아진 필립의 말에 로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생각보다 유능하다.’
그래도 아직 필립에 대한 평가는 조금 박했다.
그랬기에 염두에 두었던 가장 큰 건을 연달아 꺼냈다.
이것은 아직은 부족한 그의 상재로도 충분히 돈을 벌 만한 아이템이었다.
미래의 정보를 이용한 것이니까.
‘아마 식겁을 하겠지만.’
까다롭게 구는 친구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아이의 심정으로, 로건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폭탄을 던졌다.
“그리고 몬스터 고기를 구매할 생각이야.”
“아, 그렇습…… 예?!”
필립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몬스터는 자연적인 생태계에서 나온 생명체가 아닌, 자연을 파괴하고 다른 생물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괴물이었다.
고대의 마왕이나 악마가 남긴 잔재라고 하기도 했고, 기록되지 않은 고대 문명이 남긴 폐해라는 말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그저 흑마법사들 때문에 탄생한 괴물들이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이렇듯 학자들의 의견 자체는 분분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있었다.
– 몬스터는 다른 생명체에게 적대적이고, 그 피와 살에는 독기가 어려 있어 죽어서도 생물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한다.
그렇기에 보통 몬스터를 퇴치하게 되면 그 뼈와 가죽을 제외한 나머지는 불태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법의 재료나 특별한 목적으로 쓰이는 특이한 몬스터들의 특수 부위만 따로 채취하는 정도였다.
“제가 요새 좀 귀가 안 좋은가 고기라고 들리네요. 하하, 몬스터 부산물을 사시겠다는 말이죠?”
“아니, 고기 맞아.”
“……진심이십니까?”
말은 정중하게 했지만, 필립의 표정은 딱 미친놈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자 로건은 피식 웃으며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하급 몬스터 카록의 고기를 사서 모을 생각이야.”
“……카록 말씀이십니까?”
하급 몬스터 카록은 멧돼지와 닮은 외견에 이마에 뿔이 달린 몬스터였다.
아무리 모습이 일반 가축과 비슷하다고는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인지라 그 피에 독성이 있었다.
돼지와 닮았다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응. 그 카록의 고기.”
“자꾸 고기라고 강조하시는 건……? 설마 그걸 먹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냥 그 고기를 사서 모아 줬으면 해.”
로건이 필립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무작정 요구 사항만을 말하자, 필립이 썩은 음식을 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 진짜 미쳤냐?’는 눈빛이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겠는지 필립은 애써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몬스터 고기는 그냥 태워 버리는 게 답입니다. 얼마를 주고 사건 간에 무조건 그만큼 손해라는 겁니다.”
“이건 아닐 거야.”
“그게 무슨 헛소…….”
욕설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킨 필립이 로건을 바라보았지만, 로건은 그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이 오히려 눈을 빛내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 뭐, 까라면 까야죠. 그래, 얼마나 쓰실 생각이십니까?”
결국 필립은 포기의 뜻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어진 답변은 그를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어오르게 했다.
“백만.”
“백만?! 정말 미치셨습니까!”
거의 경악에 가까운 필립의 외침엔 미처 걸러지지 못한 본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로건은 그저 웃으며 확언했다.
“그 이상을 써도 돈이 된다. 확실히.”
“도대체 무슨 소문을 들으셨는지 몰라도 소문은 이만한 돈을 투자할 이유가 못 됩니다! 소문이 사실이 되려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구요!”
얼굴까지 시뻘게진 필립의 목소리가 끝없이 올라갔다.
저택 밖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제법 돌아볼 정도였지만, 로건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근거라면 생길 거야. 확정적으로.”
“도대체 무슨…….”
지금의 상식으로는 필립의 반응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상황은 확 바뀌게 된다.
내년 여름, 제국의 한 마탑에서 몬스터의 피 중화제가 판매되기 시작한다.
희귀한 약재나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 흔한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중화제였다.
비록 하급 마수의 피만 중화가 가능한 한계가 있지만 그 가성비만큼은 탁월했다.
심지어 재료만 알면 아무나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용병이나 사냥꾼들이 하는 몬스터 사냥은 대부분 하급 몬스터가 대상이었기에, 그 중화제는 순식간에 대륙 전체로 퍼진다.
그리고 곧 식량이 부족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카록을 위시한 가축과 닮은 몬스터들의 식용이 이루어진다.
그런 충격적인 문화가 퍼진 그해 겨울, 카록의 고기를 먹고 ‘불능’을 치료했다는 사례가 속속들이 나타난다.
심지어 고간을 다쳐 물리적으로 고자가 되었던 사람까지 효능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란디아 왕실 마탑에서 그것을 공증하는 순간.
왕국의 수도 그랑을 시작으로 카록의 고기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다.
그리고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아 본래에도 희귀종 몬스터였던 카록은 대륙에서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 후, 카록의 고기는 같은 무게의 금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육포로 말린 조각까지도 말이다.
수천 년 동안 몬스터와 싸워 온 인간들이지만 단 한 종의 몬스터도 전멸시킨 역사가 없었다.
그런데 정력에 좋다는 연구 결과 하나만으로 하급이지만 몬스터 한 종이 사라진 것이다.
‘웃기는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필립에게 자신이 미래에서 보고 왔다는 걸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는 분명히 반대입니다만…… 로건 님은 확신하신다는 거죠?”
“그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필립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럼 카록의 고기를 매입하는 단가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카록의 고기는 현시점에서는 가치가 없어. 사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전부 태우고 있을 테지.”
도대체 그걸 알면서 왜 산다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필립은 더 이상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 사체를 가져다주기만 해도 돈을 준다고 하면, 왕국 운반비 기준으로 200골드면 충분하겠지. 그것도 마리당이니 만약 카록이 많이 잡혀서 한꺼번에 운송한다면 훨씬 싸지겠지. 모아서 같이 운송하거나.”
“호오. 쓸데없이 운송 단가까지 생각하셨군요.”
칭찬인 듯 은근히 비꼬는 필립의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내 계산이 틀렸어?”
“아뇨.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게 단가를 잡고 예산이 백만이라……. 혹시 용병 길드에 왕국급 사냥 의뢰를 한 뒤, 저한테 그걸 구매하라고 하실 생각이었습니까?”
“……그런데. 뭐 잘못됐어?”
“아뇨. 계산은 정확한데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으셨습니다.”
“음?”
“뭘 그리 용병들 인건비까지 다 주면서 비싸게 삽니까. 호구 새…… 아, 갑자기 몸이 찌뿌둥하네.”
“너 지금 뭐라고…….”
한심하다는 표정도 모자라 어영부영 뒷말을 바꾸는 모습에 로건은 하루 전 사기꾼 취급을 받을 때의 원한까지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필립은 금세 표정을 고치고 말을 이었다.
“사체가 아니라 고기가 필요하신 것 아닙니까? 그놈 고기는 지금 죄다 버려지는 중이라고 했고.”
“그렇지……?”
“그럼 상인 길드에 가서 소고기값 정도에만 의뢰해도 모든 게 해결됩니다.”
“뭐?”
“돈만 된다면 뭐든 구해다 팔 상인들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것이 심지어 버려지는 쓰레기라면 원가도 거의 안 들 테니 서로 가지고 오려 하겠죠.”
“허어…….”
“그렇게만 의뢰해도 아마 왕국 전역의 카록 고기는 다 갖다 줄걸요? 정육까지 잘 끝내서 말이죠.”
그 말에 로건이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이 새끼, 벌써 돈값을 하다니.’
전생의 제국 10대 상인은 생각보다 더 유능한 수준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유능했다.
“앞으로 로건 님은 돈 관련한 건은 깊이 생각하지 말고 저한테 다 맡겨 주십시오. 이젠 로건 님의 미래에 제 운명도 달려 있으니까요.”
단지, 든든하지만 찜찜한 한마디가 로건의 가슴을 조금 아프게 만들 뿐이었다.
* * *
“얼마요?”
“보증금 5만 골드입니다. 카록의 고기를 훈연하여 밀봉한 고기나 건조한 육포, kg당 1골드로 사겠습니다. 상인 길드의 보증은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보증금이 떨어진다면 추가로 10만 골드를 더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허…….”
상단들이 헛걸음하는 경우가 없도록, 의뢰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이 상인 길드의 보증금이었다.
그 보증금을 내놓고 계약서까지 쓰는데도 상인 길드 사람들의 모든 시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필립에게 꽂혀 있었다.
“미친…….”
“몬스터 고기를?”
“클로드 상단이 망했다더니, 상단주가 미쳐서 그런 거였나?”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는 여럿이었지만, 호의적인 내용은 없었다.
게다가 그 정신 나간 의뢰자의 정체가 알음알음 퍼져 나가며 안 좋은 소문이 더해졌다.
“로건 맥라인…… 들어본 적 있는데?”
“나도. 아! 그 파혼!”
“아, 그 돈 뜯어냈다는?!”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 의뢰를 맡겠다는 상인들은 넘쳐났다.
“혹시 다른 몬스터 고기는 필요없으신가요?”
“저희가 마수 부산물 전문 상단인데 원하신다면…….”
오히려 세상 모든 몬스터 고기를 팔아넘겨 보겠다는 듯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보는 맹수의 눈빛으로 달려드는 이들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았다.
상인 길드에 의뢰를 맡기고 공탁금을 건 뒤 불과 이틀이 지났을 무렵.
파혼당한 맥라인 남작가의 대공자가 미쳐서 몬스터 고기를 사 모은다.
로건에 관한 소문이 카일 영지 상단을 중심으로 쫙 퍼져 나갔다.
“……죄송합니다. 그런 사연이 있으실 줄은.”
필립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트리고 여러 상단에 알린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상인 길드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카록 고기 의뢰를 더욱 빠르게 퍼트리기 위한 일종의 공작이었다.
다만 그 부작용을 예상을 못 했을 뿐이었다.
“푸하하하! 뭐,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의뢰가 더 퍼져 나가면 됐지. 좋아, 아주 좋아. 잘했어!”
더욱 예상외인 건 등까지 두드려 주며 웃는 당사자의 반응이었다.
“가, 감사합……. 하하.”
분명 자기 욕을 먹였는데 칭찬을 들었다.
필립은 이 새끼가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 * * 트리탄 영지의 철목 수입과 카록의 고기를 모아서 맥라인 영지로 보내는 일을 하기 위해 필립은 카일에 남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위해 로건은 무려 50만이라는 거금을 건넸다.
– 내가 시킨 일만 제대로 수행하면 그 돈으로 다른 사업을 해도 좋아. 성공할 자신만 있다면 후보고도 괜찮아. 성과급은 두둑이 챙겨 주지.
카록의 고기에 관한 일로 필립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버린 로건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필립이 오히려 자신의 뭘 믿고 돈을 맡기냐고 놀랐을 정도.
‘어차피 이 녀석 때문에 아낀 돈이니까.’
카일 영지에서 쓸 돈으로 150만 골드를 예상했는데 45만 골드밖에 쓰지 않았다.
철목의 예상 구매 비용인 15만 골드를 감안해도 90만 골드 이상을 아낀 것이다.
그러니 돈을 맡기는데, 아니 투자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로건은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었다.
‘필립 클로드. 자금줄 미션 완벽하게 클리어.’
50만 골드라는 금액엔 미래를 대비한 인재 포섭 그 첫 단계가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었다.
물론 필립을 포섭한 건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함이라기보다 그 후를 내다본 대비였다.
그러니 이제는 첫 번째 위기인 영지전을 이겨내기 위한 인재를 찾아야 했다.
‘기술자가 필요하다.’
오랜 사용 경험자의 말만 듣고도 그것을 현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자.
‘기왕이면 그것으로 용병대를 훈련시킬 수 있는 교관도.’
드웨인에게 부탁해 놓은 용병대를 훈련시키고 통제할 능력이 있는 용병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로건의 두 계획 모두 특별한 인재들이 필요한 일이었고, 다행히 그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곳 역시 카일에서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