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예상대로 페레타 가문이 봉신가가 되기를 청해 왔습니다.”
“퍼시발이나 루프만까지 건드리기는 무리겠지?”
“……일단 우리 영지 바깥이기도 하고, 그놈들은 이미 주 전력이 모두 2왕자 파벌에 속해 있습니다. 내전이 시작되자마자 일찌감치 파병한 상태입니다. 건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래.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이미 한 번 이빨을 드러낸 페레타를 단순히 세금만 받고 받아들여 줄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말려 죽여서 전력 자체를 통째로 흡수해 버린다.’
로건은 앞날을 상상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미 넘치도록 충분한 성과입니다. 선대의 영주님들도 기뻐하실 겁니다.”
“모르지. 아직 모자란다면서 더 하라고 응원 중이실지도.”
“…….”
패드릭의 썰렁한 농담에 일순간 공기가 싸해지긴 했지만, 영주의 집무실은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긴 했지만, 아직은 미래의 일일 뿐.
즉각적인 위협은 전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이젠…….
“미뤄 뒀던 파티를 해야 할 시간이군.”
로건의 말에 모두가 웃었다.
전쟁이 끝났다.
내전이 벌어지며 나라 전체가 뒤숭숭한 지금,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공공연한 비밀로 알음알음 퍼져 나간 소문이었다.
맥라인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소문을 증명하듯, 로건은 기사와 병사들에게 금전을 크게 베풀고 참전한 병사들을 위한 연회까지 열어 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었다.
최근의 승전으로 사기는 치솟은 상태였지만, 사실 병력의 상태 자체는 그리 좋지가 않았다.
비프로스 성을 점령할 때는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그 전 토모도 성을 점령하는 과정에선 희생이 너무 컸다.
숫자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확연했다.
기사 152명 중 54명 사망. 98명 생존.
석궁기마병 1,000명 중 289명 사망. 711명 생존.
보병 1,532명 중 655명 사망. 877명 생존.
더구나 이전까지 맥라인이 병력을 확충할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식, 사로잡은 기사의 전향은 불가능했다.
토모도 성에서 극소수의 항복한 기사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원 주군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이상 전향을 해 봤자 배신자로 낙인찍힐 뿐이었다.
물론 그 전에 2왕자파를 달래는 의미로 로저 비프로스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그랬기에 더욱 지금의 승리를 치하하며 사기를 최대한 올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로건은 병사들을 위한 연회 외에도 주 전력인 기사들을 위한 파티를 따로 준비했다.
그것도 엄청난 선물이 준비된 파티를.
“헤인켈 경. 앞으로 나오시오.”
“충!”
“기사단을 이끌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을 치하하기 위해 100만 골드의 포상금과 같은 금액 상당의 토지를 하사한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과거에 비하면 비할 수 없이 엄청난 금액의 포상금도 모자라 토지까지.
부유한 백작령을 점령하며 얻은 이득을 부하들과 그야말로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었다.
‘아티팩트 창고가 멀쩡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십여 개의 아티팩트는 비프로스군이 가지고 사라졌는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로건은 웃음을 띠며 연신 박수를 보냈다.
“공자님이 여기 창고를 깡그리 털었대.”
“그럼 우리도?”
“에이, 그래도 단장급이랑은 다르지.”
기사들은 그리 말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를 놓지 않았고.
그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충족되었다.
헤인켈이 받은 것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모든 기사가 최소 10만 골드 이상의 포상금을 받은 것이다.
모든 기사가 기뻐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포상을 기뻐한 것은 에일렌이었다.
“그리 좋습니까? 플로이드 가문이 그리 돈이 없진 않을 텐데요?”
“내가 처음으로 번 돈이라고요! 그것도 이런 큰 금액이라니…….”
“아…….”
“이 나라에서 여자가 이런 돈을 벌 기회는 없어요. 이것만 해도 내 꿈이 조금은 이뤄진 것 같다구요.”
눈물까지 글썽이는 에일렌의 모습에 로건은 그저 말없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포상 잔치에서 가장 큰 포상을 받은 이는 기사들이 아니었다.
“토모도 수성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골렘 마탑에는 현 맥라인 타운 내의 골렘 마탑 부지를 영원히 마탑에게 양도하고 세금을 부과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포상으로 1,000만 골드의 상금을 내리겠소이다.”
패드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클레이튼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골렘 마탑의 제자들은 맥라인을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왜 멋대로 제자들의 뼈까지 갈아 넣냐는 대제자 그릭의 농담도 허허 웃어넘길 정도로 클레이튼은 감격했다.
연 천만 골드의 지원금과 동일한 액수의 포상.
언제나 돈에 쪼들리며 제자들을 노가다 판으로 돌리던 못난 마탑 장로는 이제 없었다.
‘어엿한 마탑의 주인으로 넘치는 대가를 받으며 노동을 제공하는 떳떳한 일꾼…… 아, 아니지. 마법사가 된 거야.’
뭔가 마음이 찜찜했지만, 아무튼 클레이튼의 기분은 최고였고.
“그리고 희생된 모든 병력의 가족들에게, 살아남은 이들의 두 배에 달하는 보상을 약속한다.”
영주, 패드릭의 마지막 선언이 주변의 분위기 역시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그날의 파티는 밤새도록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술 한 잔을 들이킬 때마다 로건과 맥라인 가문을 칭송했다.
“맥라인 만세!”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영원히 타오를 불꽃에 충성을!”
맥라인 병력의 사기는 그 순간 더 오를 수 없는 곳까지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로건은.
‘남의 물건으로 생색내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구나.’
탈탈 털린 비프로스의 재물 창고 앞에서 이 자리에 없는 그 원주인을 위해 잔을 들었다.
* * *
그 화기애애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로건은 다시 한번 병사 모집을 명령했다.
비프로스의 다섯 성. 그리고 테스론, 실반, 맥라인 성과 맥라인 타운까지.
현재 맥라인 영지 전역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모집이었다.
“일단 2천……이요?”
“그럼 추후에 더 뽑으시겠다는 말…… 허허.”
“아홉 개 성에서 각각 200명이 넘는데. 허어.”
“재정이 훅훅 나갈 것 같은데…….”
“자자, 뭘 그리 넋을 놓고 있어. 공자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야! 이제 행정관도 보충됐잖아!”
행정관들의 불만 어린 어조는 드웨인의 호통 한 번에 사그라들었다.
다행히 실반이나 테스론과는 다르게 비프로스의 행정관들은 민생을 착복한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비프로스나 토모도, 그리고 맥라인 가문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맥라인 성과 타운을 제외한 다른 성으로 보낼 수 있어 늘어난 성에 비해 행정 인력이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드웨인에게 일임하였으니, 피정복지의 행정관들 입장에서는 다시금 밥줄과 직장을 지정해 주는 드웨인의 말이 절대적인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래도 이건 기준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드웨인 님.”
“맞습니다! 촉감 테스트라니요? 이게 병사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더구나 방식도 해괴한데……. 이게 거참…….”
정상적인 생각을 지닌 자라면 당연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하라면 하지 뭔 말이 많아! 우리 공자님은 신이 내린 분이야! 일단 해! 그러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사이비 교주 같은 광기 어린 눈의 재정관리관은 대공자의 명에 한해선 반론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압도적인 추진력을 가진 공고가 이제는 맥라인의 영지가 된 9개 성에 일제히 들러붙었다.
하지만 반응은 로건의 예상과는 달리 예전처럼 그리 뜨겁지는 않았다.
* * *
“병사면 위험하지 않을까? 왕국이 시끄럽던데. 여기저기서 전쟁이…….”
“맞아. 나라가 온통 어수선한데…….”
“그래도 우리 영주님 군대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군대가 군대지 뭐가 달라! 괜히 내 새끼를 귀족들 싸움에 휩쓸려서 죽게 만들 순 없어.”
왕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란이 온갖 흉흉한 소문이 되어 퍼지고 있는 시기.
15살 이상의 남자는 다 지원할 수 있도록 이전보다 나이 제한을 낮췄음에도 지원자 수가 예상을 훨씬 밑돌았다.
우습게도 로건이 그동안 가장 정성을 쏟았던 맥라인 타운에서의 지원자가 그중에서도 제일 바닥이었다.
테스트를 통해 걸러 내기도 힘들 만큼 정원만 간신히 채운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황당한 배경이 있었다.
“내가 분노할까 봐 영지민들끼리 의논해서 강제 차출했다? 인원을 맞추려고?”
“……전부는 아닙니다만 일부는 그런 것 같습니다.”
“하…… 이건 뭐…….”
로건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병사로서 착실히 훈련을 받다 보면 희박한 확률이나마 신분 상승의 기회가 있었다.
그 가능성에 거는 기대가 당장의 안전에 대한 욕망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비록 그 근본이 개인적인 분노에 있었다고는 하나, 목숨을 걸고 생명 그 이상의 가치를 위해 노력했던 전생의 독립군이 평범한 영지민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애초에 비교적 과하지 않은 세금 속에 평안히 운영되고 있던 비프로스 영지 소속의 다섯 성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다만 우습게도 실반 성에서만 정원의 다섯 배 이상의 인원이 몰렸다.
폭정 아래 신음하다 맥라인 산하에 들어와 안정을 맛본 지 얼마 안 된 성의 영지민들만이 안전보다 도전을 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애초 의도했던 2천 명을 넘어 3천 명에 가까운 후보자가 테스트를 받게 되었지만, 그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로건이 새로이 고안한 병사 적합 테스트는 단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지원자를 중심으로 사방에 나무토막을 매달아 두고 시험관이 무작위로 나무토막을 대상자에게 날려 보내는 것.
대상자는 천으로 눈을 가린 채 가만히 서서 타이밍에 맞춰서 회피만 하면 되었다.
미약한 바람을 느끼는 촉각을 넘어 육감을 테스트하는 시험.
설령 부딪친다 해도 큰 충격이 없는 나무토막이긴 했지만, 대상자 중 일부는 아예 피할 생각도 없이 나무토막으로 얻어맞았다.
“피해 볼 생각도 없는 거냐? 너, 응시는 왜 한 거야?!”
시험관으로서도 분통이 터질 노릇.
하지만 두 번째 시험 결과는 더했다.
살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중급기사들이 직접 시험관으로 나서 목검을 휘두르고.
눈앞에서 멈춰진 목검 중, 보다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을 맞추면 되는 시험.
생존 본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지만 이 역시 불성실한 응시자가 많았다.
물론 무섭기야 하겠지만, 아예 눈을 감고 보지도 않으려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결과, 맥라인 전 영지에서 10일에 걸쳐 시행된 병사 선발 시험은 예상 기준치보다 훨씬 못 미치는 1천여 명을 뽑는 데 그쳤다.
로건이 정한 통과 기준에 조금 미달한 이들까지 모두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을 낮췄는데도 천 명? 겨우 그게 다야?”
“지금 그 이상한 시험 통과자 수가 중요한 것이…….”
“…….”
“흠. 흠. 죄송합니다. 아, 아무튼 비프로스 영지와 맥라인 타운 출신의 응시자 중 반수 이상이 아예 의지가 없어 보였다는 보고입니다.”
“하…….”
이 문제는 보기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 시험은 단순히 당장 눈앞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병사를 뽑는 것이 아니다.
크게 본다면 미래의 기사들, 제국의 침략을 막아 낼 기둥이 될 후보를 뽑는 시험.
그런데 이렇게 협조가 되지 않아서야.
‘곤란한데…… 뒤로 미룰까?’
지금은 대충 병사를 뽑아 즉시 전력으로 쓰고, 이 나라의 혼란을 빠르게 잠재운 다음에 나라 전체에 새로운 기준을 전파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 뜻대로 풀린다 해도 그것이 1년 이 될지, 2년이 될지는 확실치 않았다.
제국 전쟁까지 앞으로 길어야 7년 몇 개월.
그중 1, 2년의 세월은 수천의 기사가 생기냐 안 생기냐의 차이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다고 강제로 뽑아서 훈련을 시킨다 한들, 그런 놈들이 기사 훈련을 견딜 리 없었다.
좀처럼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딜레마였다.
그런데 그때.
“무슨 고민을 그리하십니까? 간단한 방법이 있잖습니까.”
“뭐?”
드웨인이 피식 웃으며 방법을 제시했다.
“돈을 뿌리십시오. 병사 테스트를 기준점 이상으로 통과하는 이에게는 천 골드. 아들이 있는 집안이라면 벌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천 골드. 일반 영지민들에게는 생활 자체가 달라질 돈이긴 했다.
“아…….”
“설령 말씀하신 2천 명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2백만 골드면 될 일입니다. 지금 저희 영지로선 푼돈이지요.”
2백만 골드가 푼돈이라니,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재무행정관 드웨인이 내면의 흥에 맞추어 탭댄스를 추고 있을 때.
“그게 되겠어?”
“예? 무슨 말씀입니까?”
“위험해서 응시 안 한다는 영지민들이 돈 좀 준다고 움직이겠냐고.”
“허허.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아니. 그래도 그건…….”
“신(臣) 드웨인. 충심으로 다시 간언드립니다. 확실히 새겨 두십시오.”
“뭘…….”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그 돈이 부족해서일 뿐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진리! 어느 경전보다 확실한 진리요!”
“…….”
그 영문 모를 패기에 눌려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로건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았다.
불과 일주일 뒤.
기준을 통과한 훈련병 2천 명이 ‘추가’로 생겼다는 보고를 듣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