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이게 이렇게 되나.”
“카이에게 훈련을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로건 용병대 출신 교관들도 각 성에 나눠 보내 훈련을 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설마 충격을 받으셨습니까.”
“아, 아니. 잘된 거지. 한 수 배웠네, 드웨인. 하하.”
어이없는 결과 보고가 만든 깨달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인간의 욕망은 때론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로건은 새삼스레 느끼게 된 진리 하나를 가슴속에 또렷이 새겼다.
* * * 새로 뽑힌 병사들의 훈련은 카이를 위시한 용병대 출신 교관들에게 완전히 맡겼다.
이미 노하우가 쌓일 대로 쌓인 그들이었지만, 단숨에 두 배로 증가한 훈련병을 감당하기는 버거웠다.
하지만 그들의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홉 개의 성, 모든 마을에서 자경단을 조직한다. 지원자들은 소정의 보수를 받게 될 것이며, 저녁 시간에 숙련된 교관들에게 석궁 훈련을 주력으로 기초적인 군사 훈련만 받게 될 것이다.]“공자님! 대체 병사를 몇이나 만드시려고요!”
“일단 1만 명이 목표야.”
카이는 순간적으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1만이요?”
“응.”
“병사들 제외하고, 자경단만 1만?”
“그렇다니까.”
“왜요?!”
어디서 많이 듣던 되물음이었다.
“……자네도 드웨인 닮아 가나? 왜긴 왜야. 필요하니까지.”
“저희는 이제 전쟁 안 한다면서요?!”
“어……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전쟁이다.
이 인간, 또 전쟁을 할 생각이야.
“1만의 석궁병. 예, 좋습니다. 그런데 당장 그 석궁도 모자라고요, 지속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탄창은 얼마가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 물량 다 생각하고 하시는 겁니까?”
“신기하네.”
“예?”
“진짜 드웨인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둘이 형제인가?”
“…….”
카이는 로건의 실없는 소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아. 흠흠, 농담이야. 그건 걱정 마.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응. 선임 병사들을 조교로 붙여 줄게. 원하는 만큼 말해.”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아니라 우리가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 그때 그들이 우리의 구명줄이 될 수도 있는 거야.”
“대체 무슨 상황까지 상상하고 계신 겁니까…….”
카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지만, 로건은 웃지 않았다.
아직은 내전의 초기.
카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전이 3년이나 이어질지도, 3년간 이어진 내전이 최후에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예병만으로 치러지던 전쟁이 결국 재산을 몽땅 끌어다가 고용한 용병들의 전쟁으로 번지고, 재산까지 몽땅 끌어 쓴 다음에는 영지민들에게 창칼을 들려 돌진시키게 만드는 총력전까지 간다는 것을.
그 처절한 모습은 그야말로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로건은 그때를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그 지옥이 재림한다 해도.
‘1만의 석궁병은 우리 영지에서만 나올 거야.’
아무리 연사 석궁의 설계도가 풀린다 해도, 다른 지배자들은 그것을 일반 영지민들에게 풀 리가 없다.
로건은 그것만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사정이 급하다 해도…….’
다른 영주들은 일반인이 기사를 죽일 수도 있는 무기를 일반 영지민이 들고 다니게 만들지 않는다고.
‘왕국은 신분제가 확고한 사회, 그 근간을 뒤엎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터무니없는, 이기적인 착각.
영지민을 잘 살게 해 주면, 석궁이 아니라 더한 것을 들고 다녀도 반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근본적인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지.’
그 생각의 틈을 파고들어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못 할 대군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로건이 염두에 두고 있는 내전을 뒤엎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첫 번째 조치는 이미 취해 놓고 있었다.
* * * 드드드드.
“여, 여긴가.”
“징글징글하게 많네, 인간 놈들.”
“쉿. 입조심해. 여기 주인이 어떤 놈일 줄 알고.”
“헹, 알게 뭔가. 죽으면 죽었지…… 어? 설마 자네, 명색이 드워프가 최소한의 자존심도 버리고 인간한테 굽신거리겠다는 거야?”
“에이, 설마. 그러느니 차라리 죽지.”
“자네 지금 한 손 없다고 자존심도 없어진 거야? 설마?”
쾅!
“거기 난쟁이들 조용히 안 해!”
철창 안에서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드워프들이 철창을 두들기는 손길 한 번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읽은 타메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자신은 비록 왼손에 멀쩡한 손 대신 쇠갈고리를 달고 있었지만, 저들은 마음이 정상이 아니었다.
‘존댓말만 안 한다고 자존심을 지키는 거냐, 이것들아. 그래 봤자 처지만 더 비참해진다는 걸 왜 몰라.’
자신도 이 손을 잃기 전까지는 저렇게나마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한 손을 잃고, 그 때문에 대장장이 솜씨마저도 떨어진 뒤에야 그는 그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다.
그랬기에 대장일도 제대로 못 하는 드워프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고.
하지만 그 쇠갈고리 손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왜. 왜 내 조상은 대이주 때 떠나지 않고 남았을까…….’
남은 후손들의 처지를 예상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을까.
자신의 존재 의의에 대한 회의감과 종족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
자성의 끝은 언제나 이런 답이 없는 답답한 상상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냥…… 죽을까?’
언제나 실행 못 할 생각으로 끝이 나곤 했다.
그렇게 타메르가 또다시 절망을 되새김질하고 있을 때.
그들을 수송하던 수레가 멈추었다.
히이이이잉!
“워, 워. 여기다.”
“오. 잘 오셨소. 여기 잔금이오.”
“하나, 둘, 셋……. 맞소이다. 좋은 거래 감사드리오.”
“아니, 우리가 감사드려야지. 여보게, 하마르 님께 알려! 말씀하신 동족들 왔다고!”
얌전히 듣고 있던 타메르의 귀가 쫑긋했다.
‘하마르…… 님?’
지금 분명 ‘님’이라고 했다.
자신들을 사기 위한 거금을 거래한 남자가, 드워프 이름 같은 호칭 뒤에 존칭을 붙였다.
좀처럼 들어 보지 못한 일에 호기심이 생기는데.
수레의 철창에서 꺼내져 주섬주섬 줄을 서는 다른 드워프들의 눈빛 역시도 호기심에 빛나고 있었다.
“이봐, 인간. 지금 하마르 님이라고 했나?”
“오, 드워프. 하마르 님을 아는 건가?”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분이 드워프?”
“그렇지. 우리 영지 최고의 장인이시지.”
그 말에 끌려온 드워프 열 명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드워프가 인간 영지 최고의 장인이라고?’
‘억지로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억지로 일을 해도 그 솜씨가 엄청나던가…….’
그들이 온갖 상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대단하신 분이지. 그분이 만들어 낸 것들이 영지를 바꾸고 있으니까. 그래서 당신들한테도 다들 기대가 커.”
자신들을 안내하는 털복숭이 인간의 말이 그들을 더욱 들뜨게 했다.
‘설마, 드워프가 대우받는 인간 영지라니.’
‘이곳이라면 우리도…….’
‘대단한 드워프가 있나 보군.’
물건을 찍어 내는 기계가 아닌, 장인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천국.
드워프들의 머릿속에 저마다 비슷한 희망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억양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오오……. 드디어 왔군, 내 동족들.”
타메르를 비롯한 드워프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드워프 나이로도 중년이 넘었을 것이 확실한, 중후한 인상의 드워프가 투박한 작업복을 걸치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무와 쇠를 깎고 다듬기 위한 각종 도구를 지니고 다니기 좋도록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린, 극히 효율적인 작업복.
그리고 그 작업복의 주인이 가진 형형한 눈빛은 결코 노예로 잡혀서 억지로 일하는 드워프 같지가 않았다.
‘정말 우리도…….’
그 모습을 보며 드워프들이 눈을 빛낼 때.
“잘 왔다, 노예들아.”
……응?
“순순히 시키는 대로만 하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히죽 웃는 동족의 눈빛에 왜인지 가슴이 서늘해졌다.
* * * 맥라인 타운에 있는 하마르의 공방이 며칠 만에 수 배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인간 장인 다섯 명과 그 도제들.
그리고 새로이 맥라인에 도착한 드워프 열 명이 공방에 합류하며 순식간에 삼십에 가까운 인구가 같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다행히 이미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타운 외곽에 만든 공방이었기에 그 크기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 20년만 최선을 다해 일해 준다면, 자유를 주겠다.
하마르에게 처음 했던 제안을 그대로 다른 드워프들에게도 해 주었으니, 새로 온 이들의 사기 또한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드워프들이 하마르의 공방에 들어와서 처음 듣게 된 말은 그들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이제부터 너희는 장인이 아니다. 라인이다.”
라인?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단어에 드워프들이 모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하마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사람당 하나의 부품을 배정해 줄 테니, 딱 정해진 부품을 만드는 작업만 한다. 나는 이걸 분업이라고 부른다.”
“그게 무슨…….”
“작업 효율은 증명되었으니, 반론은 받지 않는다.”
여유분까지 2만 개에 가까운 연사 석궁과 거기에 쓸 탄창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만들어 내야 한다.
하마르의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주어진 기간은 고작 석 달. 만약 달성하지 못하면…….’
부르르.
– 성공하면 장기 휴가. 실패하면…… 알아서 상상해 봐.
악마처럼 웃는 주인의 얼굴을 생각하면 조금의 여유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본 동족들은 그의 말을 쉬이 따라 주지 않았다.
“동일한 부품만 만들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꼭 우리가 할 필요가 있소?”
“장인의 자존심이 있지. 아무리 당신이 대가급 장인이라고 해도 그런 말을 따를 수는 없소이다!”
“허…….”
하마르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못 하시겠다?”
“못 합니다! 차라리 우리가 하나하나 완제품을 생산하는 게 낫지, 고작 부품이라니…….”
“옳소!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오.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
“우리가 하루에 만들어야 하는 연사 석궁만 200개에, 탄창은 그 세 배다. 보조 작업은 인간 장인들과 도제들이 다 맡는다고 해도, 혼자서 석궁 20개에 탄창 60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루에? 나도 못 하는데?”
살짝 광기까지 느껴지는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려던 드워프들이 그의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장인의 자존심? 뭐, 정 그리 자신이 있다면 기회를 주지. 대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각오해야 할 거야.”
자존심을 자극하는 하마르의 말에 못 하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는 드워프들이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저는 하마르 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음?”
모두의 시선이 한 손을 번쩍 치켜든 드워프에게 향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왼손에 손 대신 달린 쇠갈고리를 보며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르 역시 마찬가지였다.
“테마르라고 했지. 그래, 그 손으로는 힘들…….”
“분업이라는 방식이 일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오?”
“한 사람이 하나의 일만 계속한다면 당연히 품질도 올라갈 테고, 속도도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어렵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장인이 아니라 라인하겠습니다.”
테마르가 자신의 장애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을 칭찬하자, 하마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다른 드워프들은 하나둘 테마르를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드워프가 아부나 하고.’
‘저놈은 우리 동족도 아니다.’
‘손을 잃은 게 아니라 자존심을 잃었어. 쯧쯧.’
대부분의 뇌리에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테마르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 분업의 효율을 인지하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제대로 완제품을 만들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그 효율성을 알게 될 기회를 주십시오.”
“음?”
모든 드워프들이 다시 테마르를 주목했다.
“다른 이들도 기존의 작업 방식과의 차이점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라면 더욱 생산적으로 작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자존심을 세우려 뻗대는 것이 아니라 이것도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는 과정이다?”
“예.”
하마르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테마르를 바라보았다.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상하군. 좋아. 일단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감사합니다.”
“작업 과정을 익히는 데 3일. 자체적으로 제작을 해 보는 데 4일을 주겠다. 그 후에도 혼자 작업을 하겠다고 말하는 자는 앞서 내가 말한 기준을 반드시 지켜야 할 거야.”
“혹시나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번에도 질문을 꺼낸 것은 테마르였다.
아마도 차마 묻지 못하는 다른 이들을 대신해 질문하는 것일 터였다.
하마르는 드워프답지 않게 배려심과 싹싹함이 돋보이는 테마르를 마음속에 점찍어 두었다.
“……하루 할당량을 채울 때까진 밥이건 잠이건 없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면 ‘반품’되겠지.”
반품.
그 비인간적인 단어 선택에 드워프들이 일제히 침을 삼켰다.
그리고 고마운 눈길로 테마르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새로 온 드워프들의 구심점이 된 테마르.
하마르 역시 생각지 못한 인재의 발견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작업 설명 이후 따로 그를 찾아온 테마르의 청은 그 흐뭇함을 산산이 깨트렸다.
“하마르 님. 보시다시피 제 손이 이래서 직접 라인 작업을 하기보다는 감독관 정도의 역할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마르는 실망감을 삼키며 칼같이 답했다.
“절. 대. 안 돼.”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한순간에 싸늘해지는 하마르의 표정에 테마르가 황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감독관은 내 역할이야. 어딜 넘봐.”
“…….”
이 새끼…….
‘뺀질이구나.’
두 드워프의 뇌리에 동시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