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맥라인 타운에 드워프들이 입주한 이후.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하루에 수백 개씩의 석궁이 생산되었다.
그리하여 로건이 주장한 자경단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훈련하는 거 보면 우리도 전쟁에 동원되는 거 아냐?”
“에이, 뭔 소리야. 우리 영지는 중립이라잖아, 중립! 중립 뜻 몰라?”
“그래도 영 불안해서 그러지.”
“자경단이라잖아.”
“뭔 상관이야. 중요한 건 활쏘기 훈련만 해도 돈을 준다는 거지.”
“하긴, 어차피 겨울엔 할 일도 없는데 잘됐지. 뭐.”
웅성웅성.
모여든 사내들이 칼바람을 피해 군데군데 뭉쳐 수다를 떨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기사 한 명과 병사 다섯 명이 수레 하나를 끌고 나타났다.
“탄리 마을 남자들 맞나?”
“맞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겠다.”
피부를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씨.
기사 역시 긴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는 듯 곧바로 수레에서 석궁을 꺼내 들었다.
“이게 우리 맥라인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연사 석궁이다. 탄리 마을에 배정된 훈련용 석궁은 모두 다섯 개. 오늘부터 이것으로 훈련을 실시하겠다.”
훈련을 위해 모인 사내들 모두 연사 석궁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맥라인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병사들의 석궁이 크게 일조했다는 것은 이미 영지 사람들에게는 알음알음 퍼진 이야기.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의 눈동자들이 일시에 석궁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여간해선 고장 나는 일이 없겠지만, 고장이 난다 해도 바로 대체품이 제공되니 굳이 조심해서 쓸 필요는 없다. 물건의 안위보다는 철저한 훈련이 먼저라는 위의 지시다. 그러니 충실히 훈련을 따르도록. 알겠나?”
“예!”
남자들 대부분은 별다른 생각 없이 크게 대답했지만.
어떤 한 사람은 ‘고장이 나면 바로 대체품이 제공된다’라는 말에 유난히 눈을 빛냈다.
* * *
“자경단 훈련과 병사 훈련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보고입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테스론 성 주변 탄리 마을에 훈련용으로 보급된 석궁을 고장이 났다고 신고한 뒤 빼돌려 판매하려던 자들이 발각되었습니다.”
“……연사 석궁을? 얼마에?”
“예? 지금 가격이 문제입니까?”
드웨인의 반응에 로건이 피식 웃었다.
“왜? 비싸면 우리도 팔아 볼까 하고……. 농담이야, 농담! 씁!”
“……세 번째 추가 공급에 의심을 품은 기사가 판매하려던 자와 사려던 자까지 모두 잡아 왔습니다. 어찌 처리할까요?”
“사형.”
“예?”
“다시는 비슷한 짓을 하는 놈이 나오지 않도록 확실하게 처리해.”
“아무리 그래도 예전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석궁은 이미 내전 중인 파벌에도 퍼져 있습니다. 머지않아 전쟁터에도 등장할 텐데…….”
“이번 기회에 본보기를 보여 줘야 해. 석궁 하나가 문제가 아니야. 가문의 무기를 외부로 빼돌리려고 했던 행동 자체가 문제인 거지.”
“…….”
로건의 단호하고 엄격한 말에 드웨인이 입을 다물었다.
“드웨인. 우리는 곧 또 새로운 무기의 개발에 착수할 거야. 이건 석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고, 절대 유출되어선 안 돼. 그것을 위한 경고성 처벌이라고 생각하면 돼.”
“새로운…… 무기요?”
“그래, 새로운 무기. 연사 석궁은 생각보다 구조가 간단해. 여태까지 다른 데서 나오지 않은 게 기적이지. 언젠가는 모두 흉내를 낸다.”
특히 제국은 이미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야지.”
제국도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 무기를.
드웨인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무엇보다 눈앞의 대공자는 이미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번 해냈다.
그러니 또 한 번 해낸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로건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은 드웨인의 상상을 자극했고.
이내 그는 새로운 무기의 형태까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건은 그때 이후로 다시는 그 새로운 무기에 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책임자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 영지의 기밀을 외부에 빼돌리려 한 죄. 탄리 마을의 피더슨을 극형에 처한다.
단순히 물자를 하나 빼돌리려던 이의 사형 소식에 영지 전체가 한동안 떠들썩해졌다.
영지를 부흥시킨 대공자가 처음으로 보인 과격한 대처.
일부에서는 3년간 무려 네 번의 전투를 벌이며 영지를 확장한 대공자의 과격한 성정이 드디어 드러난 것이라며 조심스레 수군거렸지만.
가장 최근의 정복지인 비프로스의 영역에서 생긴 소문은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금세 일축되었다.
침탈당한 분노보다는 맥라인이 통치하며 낮아진 세율과, 중립 선언으로 내전의 소란을 피해 간 것에 안도하는 주민들이 더 많았던 까닭이었다.
덕분에 로건이 의도했던, 영지의 비밀 유출은 곧 사형이라는 인식이 영지민들의 기저에 생각보다 더 자연스럽게 깔리기 시작했다.
– 지금 같은 시기에, 우리 영지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 어딨어?
내전에 관한 온갖 괴소문이 슬슬 퍼지기 시작한 시기.
외부의 위협이 서로 다른 소속으로 평생을 살아왔던 영지민들을 알게 모르게 하나로 묶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공자는 타운의 한가운데 위치한 골렘 마탑에서 ‘전쟁을 위한’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아니야. 그런 느낌이 아니었단 말이지. 일정 정도 이상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진동이 오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꽝! 이게 어려워?!”
개 어려워. 미친놈아.
하마르는 입에서 곧바로 튀어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삼켰다.
대체 또 어디서 이상한 상상을 한 건지, 말도 안 되는 무기를 개발하라고 닦달을 하는 주인.
다행이라면 지금은 혼자 독박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그런 2서클 마법 이상의 효과를 보이면서도, 원가는 1서클 스크롤의 십 분의 일만 들어가야 한다는 겁니까? 그게 대체 무슨…….”
클레이튼도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얼추 들어가는 재료까지 다 말해 줬잖습니까. 그래도 힘든가요?”
“그게 100% 확실한 것도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거기다 화합물은 배합 비율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을 띠기도 합니다. 마법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아도요.”
클레이튼은 로건의 자존심을 생각해 차마 이걸 굳이 설명해야 하냐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억지에 가까운 주장은 좀처럼 후퇴가 없었다.
“내가 써 봤습니다. 분명히 가능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 나 이말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아.
“어디서요? 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그런 물건이 나왔으면 저희 마법사들이 먼저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래. 당연하지.
그런데 나 다음 대답 안 들어도 알 것 같아.
하마르의 불안한 예감이 한층 강해지는데.
“확실합니다. 내가 봤어요. 무조건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예감 그대로의 대답이 로건의 입에서 뱉어졌다.
“하…… 진짜…….”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발을 강요받은 한 마법사와 한 드워프는 동시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경험자와 개발자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 주는 대화는 그 후 수일이 지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러니까, 손아귀에 압력을 주는 것만으로 색깔이 붉게 변하고. 그 뒤 5초 정도 후에 폭발한다는 거죠?”
“예. 마법적인 조치는 있었던 것 같지만, 겉면에서 충격량을 감지하는 정도의 아주 제한적인 조치였을 겁니다. 마나의 반발이 딱 그 정도 느낌이었으니까요.”
“…….”
“왜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분명히 써 보신 것 같기는 한데 말입니다. 거참…….”
써 봤지. 전생에.
로건은 또다시 떠오르는 옛 기억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클레이튼과 하마르를 동원해 만들려고 하는 무기는 리베라티오(liberatio).
고대어로 해방이라는 뜻을 가진 폭탄으로, 제국 전쟁 10년 뒤 그란디아 해방 전선의 무기로 등장해 제국에 엄청난 골칫거리를 안겨 주었던 폭발 무기였다.
‘조국은 해방 못 시키고 제국 놈들 영혼만 해방시켰지만.’
전생에서 증명된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다만 문제라면…….
‘재료 구입 임무도 해 봤고 완성품도 많이 사용해 봤지만, 만든 사람이 누군지와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몰라.’
그란디아 해방 전선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던 리베라티오의 제작자.
유감스럽게도 로건은 그 극소수에 속하지 못했었다.
혹시나 해서 현 검공의 부관, 전생의 해방 전선 사령관인 루이스 하이온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 신기한 물건을 만들 줄 아는 주변 사람이요? 마법사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전 친분 있는 마법사가 없습니다만.
헛수고였다.
하지만 쉽사리 포기할 수는 없었다.
리베라티오의 제작 단가는 추정 50골드.
일회성 소모품으로서는 엄청난 고가였지만, 그 효과를 생각하면 극도로 저렴한 무기였다.
전생의 루이스 하이온이 ‘나라가 멀쩡할 때 이 폭탄을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면…….’이라고 수도 없이 한탄했던 물건이니까.
이제 맥라인에 그 정도 투자를 할 돈은 충분했다.
‘재료와 특징은 알고 있어. 그 정도면 가능할 거야.’
로건이라고 바보는 아니었다.
요리도 레시피에 따라 맛이 전혀 달라지는데, 이런 위험한 무기의 원재료를 안다고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또한 믿고 있는 것도 있었다.
‘리베라티오의 기원은 분명히 고대 드워프들의 무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고.’
로건의 눈이 하마르를 스치고 옆으로 옮겨 갔다.
‘누군지는 확실히 몰라도, 제작자가 분명 대지의 마법사라는 것 정도는 알지.’
그리고 그가 아는 대지의 마법사 중 가장 유능한 이가 바로 눈앞의 클레이튼이었다.
이 둘의 조합이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히 해낼 것이라 믿었다.
‘안 된다면 더 오랫동안 영지의 힘을 길러야겠지만.’
로건은 분명 가능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로건은 전생에 자신이 폭탄을 사용할 때의 감각과 그 변화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또렷이.
‘아니지. 마지막에 그리 죽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나?’
로건은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개발에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 그 감각을 최대한 고스란히 클레이튼과 하마르에게 전달했다.
이제는 믿고 기다려야 할 때였다.
* * * 로건이 그렇게 영지의 저력을 기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동서의 내전은 점차 심화되고 있었다.
북부에서 중부로 이어지며 확대되던 전선은 이내 남부로도 번져 각지에서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나 중부에 모인 양 파벌의 최정예 세력들은 국왕 직할령인 하룬 성을 사이에 두고 접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건곤일척의, 모든 것을 건 대회전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치열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양 파벌의 세력이 정말 기묘할 정도로 비등했던 것이다.
공멸을 바라지 않는 양측의 수뇌부는 치열하게 서로의 틈을 노리며 짧은 국지전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대영지를 가진 귀족들이 아닌, 그에 속한 중소 귀족이나 소규모 영지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시점이었기에 로건이 지금 하려는 일이 더욱 의미가 있었다.
“주인 잃은 인재들이 길거리로 나앉고 있거든.”
“그래서 그 치들을 영입이라도 하시게요?”
“오? 어찌 알았어.”
“공자님 곁에 있다 보면 그거야 뻔하죠. 근데 인재가 있다고 해도 이쪽으로 오겠습니까? 원래 속한 파벌의 다른 귀족들한테 가겠지요.”
기특하다는 듯한 로건의 물음에 릭이 살짝 우쭐하며 답했지만,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원한이 남은 사람들이나 가겠지.”
“예?”
“소속 가문에 그다지 미련이 없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런 인물들이라면 조건이 더 좋은 쪽으로 오겠지.”
“그리고 비프로스까지 먹은 우리 가문은 이제 왕국 최고의 부호 중 하나죠. 전쟁도 당장은 안 하고 있고. 일단 조건은 확실히 좋겠네요.”
릭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로건이 빤히 녀석을 바라보았다.
“……왜요?”
“아니. 신기해서 말이다.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다니.”
“흠흠. 언젠가 영주님을 보좌하는 총관이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더구나 무려 아홉 개 성을 거느린 대 가문의 총관이 될 건데.”
히죽 웃는 릭을 보며 로건은 속으로 혀를 찼다.
‘꿈도 가상하다.’
물론 대공자의 전담 시종인 릭은 아마도 그가 영주가 된다면 자연스레 총관이 될 것이다.
맥라인에서 총관이라는 자리는 각 성의 하인 하녀들을 통합 관리하는 총괄 집사 정도의 자리일 뿐이었지만, 영지가 커진 만큼 많은 사람을 다루려면 최소한의 소양은 필요했다.
물론 릭이 그런 소양이 있을 리 없으니, 다른 사람을 붙여서 가르쳐야 했다.
자연스레 현 총관인 벡터가 요즘 릭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녀석아. 내가 영주가 될 생각이 없거든.’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니 후계자 자리와 영주 대행은 받아들였지만, 로건의 시선은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망가진 가문을 홀로 일으켜 세우고 끝까지 가문과 나라를 지키려다 결국 끌려간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자리가 아니야. 로니안의 것이지.’
여전히 로건은 맥라인 가문의 가주가 된다는 것 자체가 동생의 자리를 뺏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 맥라인이라는 가문에 ‘안주’할 생각도 없었다.
‘맥라인을 돕고, 세우고, 크게 만들고. 그것을 발판으로 나는…….’
아직은 누구에게도 소리 내 말 할 수 없는 일.
로건은 언젠가부터 생긴 마음속 욕망을 조용히 억누르고는 릭을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