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로건이 내전으로 망한 가문들에서 인재들만 빼돌리려 한 것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공개 모집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마을과 상인들을 통해 맥라인이 유민들을 우대한다는 소문을 알게 모르게 계속 퍼트리고 있었다.
그러자 내전 발생 후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는 슬슬 유민, 아니 전쟁 난민이 하나둘 맥라인 영지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차 가속도를 붙여 가고 있었다.
결국, 맥라인 타운의 주민 수용 한계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올 것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제2의 타운 계획을 생각보다 빨리 실행해야 할 듯싶습니다.”
드웨인이 심각한 얼굴로 보고했다.
“제2의 타운이라. 그럼 역시 토모도와 실반 사이에?”
“예. 비프로스 평야, 즉 구 맥라인 평야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을 한데 모으고 유민까지 들이면 좀 더 효율적인 생산 관리가 가능할 겁니다. 맥라인 타운이 이미 증명했듯이요.”
“지금 병력이 늘어나고 자재 소모하는 속도가 빨라서 자금 부담이 좀 있지 않겠나?”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러니 더욱 농사 시작 전에 타운을 만들어서 올해 소출 예상치를 높여야죠.”
“예산은 확실히 되겠어?”
“한동안 허리를 졸라매야 할 겁니다. 그러니 공자님, 그간에는 제발…….”
“아. 알았어. 시행해.”
그렇게 시작된 제2의 맥라인 타운 건설.
하지만 그 건설 계획은 계획 단계에서부터 애로 사항이 꽃피었다.
“돈이 부족할 수 있다고?”
“전쟁 때문에 목재 소비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트리탄 영지에서 가져오는 것은 이제 어림도 없고, 제국에서 가져오거나 남부 산맥의 목재를 끌어다 써야 하는데 후자는 아무래도 후유증이 크겠죠.”
로건은 입 안에 쓴맛이 도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목재 소비의 큰 축인 병력 증원을 직접 지시한 당사자가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석궁 생산을 중지할 수도 없으니.
“……제국에서 수입해야겠군. 벌목도 좀 하고. 그럼 얼마가 더 들까?”
“당장은 괜찮습니다. 다만 타운 건설이 끝나고 나서 올해 소출이 나올 때까지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병력 문제도 있다 보니 금광의 자금으로도 간당간당할 듯싶습니다.”
둘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듣고 있던 필립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돈이 왜 부족합니까? 영지에 팔 것이 차고도 넘치는데?”
“팔 것?”
“뭘?”
“식량이요.”
태연스러운 필립의 대답에 두 사람의 표정이 극명하게 바뀌었다.
“식량을 왜 팔아?! 시국이 시국인데! 비상시를 대비해야지.”
드웨인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소리쳤지만, 로건은 눈빛을 빛냈다.
“호오? 식량을? 우리가 그만큼이나 여유가 있던가?”
“예. 전쟁을 대비해서 초과 생산된 식량을 팔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쟁은 쉽게 끝났고, 내전이 시작되며 식량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었죠. 절반만 팔아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공자님이 생각하신 목장 건설도 훨씬 빨라질 거구요.”
목장 건설.
장기적으로 수천의 석궁기마병을 양산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기마병을 운용하기 위한 전마들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결국 병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그 관리뿐만 아니라 말의 자체 생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생산된 식량을 더 아껴 두기도 했었는데…….
“목장에 소비 예정이었던 식량을 팔아서 오히려 목장을 일찍 만들자 이거네.”
“예. 아무리 생각해도 식량 가격이 지금보다 비쌀 때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남는 식량 팔기에는 적기죠.”
아니, 2년 뒤쯤이 더 비쌀 거야.
하지만…….
“괜찮은 생각이군.”
“공자님!”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고, 공자님. 그러다 혹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저희 식량은…….”
“그 식량 더 생산하자고 지금 좀 푸는 것뿐이야. 투자라고 생각해, 투자.”
“그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어. 그럴 리 없어.”
“공자님!”
드웨인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지만 로건은 확신이 있었다.
전쟁은 이성이 만들어 낸 광기의 결과.
하나 때론 그 광기가 이성을 잡아먹기도 한다.
피해가 커지는 순간 전쟁이 격화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순리.
지금처럼 깔짝깔짝 간만 보는 전쟁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내전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치열해지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 상황이 온다면.
‘아무도 가만히 있는 이까지 신경 쓰진 못해. 서로만 죽자고 노리겠지.’
로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남는 식량의 절반을 각 파벌에 판매한다. 그 건은 필립이 맡아. 최대한 이익을 짜내도록 해. 그 돈으로 목재 구입도 좀 담당해 주고.”
“예, 공자님.”
“드웨인은 두 번째 타운 건설 준비 좀 진행해 줘.”
“……예.”
울상이 된 드웨인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처럼 누군가에게는 답답한 전개일 뿐이겠지만, 이 순간에도 맥라인은 확실히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건이 그런 확신 속에 웃음 짓고 있을 때.
그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의뢰를 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녹스의 보고서 하나가 그의 앞으로 도착했다.
로건 맥라인 님께. 재작년 의뢰하셨던 인물 찾기 의뢰 중 그에 합당한 자 하나의 소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법사 체른 크로우. 현 제국 동부, 그란디아 왕국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영지 루스펠에서 소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의뢰하신 생김새와 대략 일치하며, 추정 경지까지 일치합니다. 말씀하신 크라우네라는 이름은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제국 전쟁 당시 활약했던 무소속 초인에 대한 추적 의뢰의 결과였다.
“학살의 마도사, 크라우네. 하…… 이 시점에 하필…… 다른 놈도 아니고.”
그것이 로건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전생에서의 제국 전쟁 당시.
제국 측 용병으로 활동했던 한 마도사가 있었다.
온몸을 스스로 개발한 아티팩트로 휘어 감고 마법사답지 않게 최전선의 전장에서 활약하며 왕국 병력을 학살했던 마도사.
악마의 검(The Evil Sword) 반조니와 함께 최악의 악명을 떨쳤던 초인이었지만, 그 평가나 대우는 전혀 달랐다.
반조니가 벌인 짓거리들 때문에 그와 용병 계약은 해도 제국 소속임은 인정하지 않았던 제국 황실은, 반대로 크라우네에게는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다.
하지만 학살의 마도사는 그 구애를 계속 거절하며 단순한 용병으로 활동하였다.
물론 그 전쟁 용병으로 활동하며 놈이 죽인 그란디아의 병력 수만 해도 엄청나지만, 그놈이 더욱 중요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 하급 아티팩트의 대량 보급을 성공시킨 개발자이자 제국 10대 상인 중 한 사람.
용병으로 직접 참여한 것도 황실의 강요를 못 이겨서일 것이라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 10년 후만 되어도 무력과 금력 양 측면에서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최강자였다.
그리고 그가 제국 기사들에게 보급한 하급 아티팩트로 인해 그란디아의 멸망이 반 배는 빨라졌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정론이었다.
그러니.
‘최선은 놈의 포섭. 아니면 죽이기라도 해야 한다.’
로건의 눈빛이 자연스레 살기를 띄었다.
놈이 만든 아티팩트에 희생된 그란디아 왕국군을 생각지 않더라도, 후세에 그가 소속되었던 독립군이 본 피해만도 어마어마했다.
감정적으로는 얼굴을 보는 순간 죽이고 싶은 인간이었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포섭을 해야 해.’
학살의 마도사는 그런 인재였다.
그러니 안 찾아갈 수가 없었다.
설령 녹스의 보고가 거짓이라도 확인은 해야 했다.
그를 알아볼 사람 역시 그 자신뿐이니, 누구에게 대신 맡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로건은 가신들 앞에서 잠시간의 제국행을 통보했다.
당연히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 시국에 어딜 가겠다고?”
“국경 바깥에 살짝이요.”
“그러니까 제국으로 가겠다고?”
“제국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국경 바깥에 다른 영지에 잠깐 들려오겠다는 겁니다.”
“그게 제국이잖아?!”
“뭐, 굳이 국적을 따지면 제국이긴 한데. 우리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아요.”
“그러니까 왜?!”
아버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로건도 어느 정도는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의뢰를 해 놓은 게 있습니다. 반드시 찾아야 할 물건의 소재지를 알았는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그 물건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건?”
“예.”
사람이라고 했다가 죽이고 오게 된다면 할 말이 없으니 사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직 추측이긴 하지만 실제로 챙겨 올 물건도 있었다.
‘학살의 마도사라면 지금쯤에도 아티팩트 몇 개는 만들어 놓았을 거야. 어쩌면 상상 이상일 수도.’
그러니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물건을…….”
“아티팩트입니다.”
“허…….”
패드릭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당최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몇 번이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는데, 또 그게 대부분 성공했다.
그 근거를 알 수 없기에 불안하긴 하지만.
“위험한 일이냐?”
“제가 위험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내전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상시 주시해 주십시오. 아직은 천천히 확전될 기미만 보이지만, 우리가 비프로스와 요르단 공작에게 저질러 놓은 것이 있으니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병력의 훈련은 이제 시작이고, 우리는 기존의 병력도 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네가 저지른…… 아니, 우리 맞지. 후우. 그래, 지금 네가 말한 위험을 다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야겠다는 말이지?”
“예!”
패드릭은 묵묵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닮은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근거는 모르더라도, 황당한 짓을 하더라도, 아들의 목적은 언제나 가문을 위한 결과로 이어졌다.
한 번 더 믿어 본다고 한들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 좋다. 다녀오거라. 다만 변장은 확실히 하거라. 우리 집안은 특징이 너무 뚜렷해서 금방 소문이 퍼져 나갈 테니.”
“물론입니다.”
다소 불안한 구석은 있었지만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로건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무실을 돌아 나왔다.
* * *
“무사히 돌아오시길.”
“감사합니다, 병사님들.”
언제나 그래 왔듯, 국경의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은 적당량의 돈을 받고 행상을 통과시켰다.
맨몸에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대박을 노리는 불나방들.
저들 중 대다수가 제국 대도시의 근처도 가 보지 못하고 객사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탈법 따위는 용돈 벌이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그것은 채 수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제국 초소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쪽은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이 병사 중 한 사람은 아예 변경에서 활동하는 강도단과 연줄이 있었으니까.
그 병사에게는 저 행낭에 있는 물건 가치에 따라 소정의 금액이 보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지, 상인 양반. 어딜 혼자 돌아다녀.’
제국 병사 라르고는 좀 전에 자신에게 골드 하나를 쥐여 준 붉은 머리 ‘푸른’ 눈의 상인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제국…….”
국경 초소를 통과하고 나서도 한참을 더 걷자 푸른 들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건은 마법 때문인지 뻑뻑한 눈을 문질렀다.
멀리 풍경을 보고 있자니 괜한 기시감이 들었다.
보부상을 흉내 낸 복장. 눈동자 색만 바꾼 변장.
전생에 수도 없이 했던 짓인지라 자연스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뚜렷한 신체적 특징을 가졌기에 오히려 그중 한 가지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달라 보이는 인상.
그것은 변장에 있어서 굉장한 강점이기도 했기에 동지들 사이에서도 그가 가장 많이 이 길을 오갔었다.
멀리 보이는 관도를 따라 서쪽으로 쭉 가면 도보로 3일 거리에 있는 제국 동부의 대도시 루스펠하임으로 이어진다.
제국 침략의 교두보이자 보급 창고가 되었던 도시, 독립군 당시 가장 많이 오가던 애증의 도시…… 아니, 증오의 도시다.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불태워 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지금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었다.
‘더 남쪽. 국경 가까이로…….’
후일 초인이 되는 학살의 마도사가 왜 그런 변경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설마 지금도 초인은 아니겠지.’
초인이 자기 자신의 경지를 숨기고 변경의 영지에 처박혀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후일 크라우네가 벌인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의 공명심은 남보다 크면 컸지 절대 작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조용한 곳에서 연구하며 경지를 높이고 있는 거라면 말이 되지.’
그렇다면 아마도 5서클, 아니 놈의 특성으로 보자면 5클래스의 마법사.
포스유저로 따지면 최상급과 동급으로 놓는 경지일 터였다.
하지만 클래스 마법사는 서클 마법사보다 마법 발동도 느리니 충분히 죽일 수 있…….
짝!
“씁. 왜 자꾸 그런 생각이냐. 가능하면 포섭부터 해야지. 전생의 원한은 접어 둔다.”
로건은 스스로 뺨을 치면서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묵묵히 길을 걸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 해가 질 무렵.
로건은 숲길 한가운데서 별이 뜨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관도를 벗어나 걷는 숲길.
어느샌가 끊긴 인적 없는 숲속에서 방향을 잃은 것 같았으니까.
‘꼼짝없이 별자리나 보고 밤새 걸어야겠군. 쯧.’
그렇게 한탄하며 자리를 펴고 기다리는데.
잠시 후.
“서! 거기 서! 붉은 머리!”
“저 새끼 저거 루스펠하임 간다는 놈이 왜 옆으로 새.”
“수상한 새끼네. 이거 우리가 나라를 위해 좋은 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옳지, 딱 서. 걸음은 또 겁나게 빨라요. 머리는 핏덩이 같은 새끼가. 딱 머리 색만큼 피 흘리게 해 줄게. 아 씨바, 힘들어.”
제법 쓸 만한 가죽 갑옷에 철제 무기를 든 험악한 인상의 덩어리들 열댓 명이 순식간에 그의 주변을 에워쌌고.
로건은 웃었다.
길잡이가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