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음, 맞네. 저기 써 있다, 루스펠 성. 수고했어.”
“예, 예. 감사합니다. 나리.”
“그만 가 봐.”
“예! 감사합…….”
스각.
“끄륵.”
“저승으로.”
가볍게 스쳐 지나간 검이 목 울대를 스치고 피 분수를 뽑아냈다.
로건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부릅뜬 눈을 감기고, 그대로 털보의 시체를 숲 안으로 집어 던졌다.
적어도 먼저 죽은 동료들보다 사흘은 더 살려 뒀으니 충분히 자비를 베풀었다.
“쓰레기 인생, 숲에 거름이나 되라.”
물론 그 전에 동물들한테 뜯어 먹히겠지만.
로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 * *
“그란디아의 상인? 상인이 여기까지는 웬일로?”
“하하. 그게, 길을 잘못 들었지 뭡니까. 루스펠하임으로 가려다가…….”
“으어. 루스펠로 가려다가 이리로 왔으면 당신 완전 방향치인데? 정말 상인 맞아?”
“사실 길잡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는 바람에 그만…….”
내가 다 죽여 버렸지.
치명적인 진실을 꿀꺽 삼키고 말끝을 흐렸지만, 실제로 내용물이 없는 텅텅 빈 보따리 가방을 보여 주자 병사는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저런. 쯧쯧. 뭐, 별것 없는 동네지만 쉬다 가쇼. 물가는 싸니까 쌈짓돈이라도 있다면 며칠 묵어 갈 수는 있을 거요.”
착한 친구였다.
‘착한 제국 놈은 죽은 제국 놈뿐이지만.’
녀석에게는 운 좋게도 지금은 전쟁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로건은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는 병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성에 들어섰다.
전생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시골 성임에도 예전의 맥라인보다 몇 배는 넓은 성.
단순히 전략적 목적으로 세워진 성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지어진 생활 중시형 성이었다.
변방의 성 하나에서도 왕국과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아 벌써 입맛이 썼다.
로건은 두리번거리다 대로변에 있는 여관을 찾아 들어섰다.
끼이익.
“어서 옵셔!”
“주인장, 맥주 하나와 방 하나. 한동안 묵고 갈 거요.”
팅, 하고 10골드짜리 금화를 튕기자 여관 주인이 반색하며 받아들였다.
조금 전, 텅 빈 가방을 보았던 병사라면 인상을 찌푸릴 광경.
하지만 다행히 여관의 주인장은 그 병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억양이 아닌데? 어디 출신인데 여기까지 왔소?”
“그란디아 출신이오. 상인인데 길을 잘못 들어서.”
“쯧쯧. 뭐, 여기도 있을 건 다 있으니 사고 싶은 게 있는지나 천천히 알아보쇼. 보아하니 팔 만한 물건은 별로 없는 것 같고.”
“고맙소이다, 주인장. 그럼 그런 김에 여기 사정 좀 알려 주실 수 있겠소?”
또다시 날아가는 금화를 단숨에 잡아챈 주인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마법사? 여기에 마법사가 있단 말이오?”
“그렇다니까, 이 친구야.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영주님이 무척이나 극진하게 대접을 하더라니까. 보기 드문 마법사라던데?”
어느새인가 말을 놓아 버린 주인장이 편안하게 목표에 대해 늘어놓았다.
정보 좀 듣고자 했더니, 자기도 맥주를 들고 본격적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진 붙임성 좋은 주인장.
덕분에 영지 내 사람들 이름 수십 명을 단숨에 외워 버리고 말았다.
목표가 그중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긴 했지만.
“크흠. 마법사가 있다면 내 물건도 사 줄지 모르겠구려. 체른 ‘크라우네’? 그자…… 아, 아니지. 그분 어디 계시오?”
“크로우라니까. 이 친구 젊은데 기억력이 그래서 상인 하겠어? 끌끌. 잘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으라고.”
녹스가 가져온 정보와 교차 체크 끝.
체른 크로우 위치 확보.
‘크라우네라는 이름은 안 쓰고 있는 거 같고.’
로건은 여관 주인이 잡아 준 방을 확인도 하지 않고 보따리 채 집어 들고 여관을 나섰다.
아마도 그가 이 여관에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계십니까?”
탕탕!
“계세요?!”
탕탕!
– 대체 어떤 놈이야!
벌컥!
“내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여기 영주한테도 말해 놨……. 뭐야. 처음 보는 놈인데?”
성안 외곽 한구석에 홀로 떨어진 낡은 저택.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갈색 곱슬머리에 구레나룻까지 무성해 본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털북숭이의 남자였다.
유일하게 마법사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낡디 낡은 로브뿐.
전생에서의 그 최고급 아티팩트를 주렁주렁 매달고 깔끔한 올백 머리에 수염은 한 가닥도 없던 그 크라우네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체른…… 크로우 씨?”
“그런데? 넌 뭐냐?”
다행히 싹수없는 성격은 일치했다.
그리고 그 싹수없는 새끼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마나로 이루어진 다섯 개 층의 원형 탑(Class)까지.
‘이놈이 맞다.’
당장 등 뒤에 숨겨 둔 룩스로 목을 쳐 버리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아. 하하. 마법사님을 만나기 위해 먼 곳에서 온 로이안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로건은 억지로 참고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리고.
“하, 별 잡놈이. 꺼져!”
쾅!
문전박대를 당했다.
“하…… 나 이거…….”
로건은 하늘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내심을 한껏 발휘하고 있었는데 자꾸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죽일까.’
애써 참아 온 전생의 분노에 현생의 짜증이 더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 포섭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아군이 없다. 참자. 참아 보자.’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며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탕! 탕! 탕!
“마법사님! 멀리 왕국에서 왔습니다. 시간 좀 내주실 수 없을까요?”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조금 들어간 탓에 두드리는 손길은 좀 더 강해졌지만, 말투만큼은 정중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인내심은 보답받지 못했다.
아니 보답은커녕…….
빠지지지직!
– 꺼져, 이 잡상인 새끼야!
위협적인 마법이 문고리에서 터져 나왔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짜릿짜릿하게 느껴지는 충격.
로건의 얼굴이 절로 굳었다.
‘이 정도 전격이면 일반인은 죽을 수도 있는데.’
이 개 같은 새끼가…….
전생에 간접적으로 겪고, 들었던 크라우네의 성정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강약약강(强弱弱强).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소인배.
다만 문제라면 제국의 최고위 인사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놈이 강자였다는 것.
그래서 놈과 엮여서 더러운 꼴을 봤다는 일화는 너무 차고 넘쳐서 일일이 언급하는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직접 몸으로 겪으니 굳이 전생의 분노를 끌어올 것도 없이 단전에서부터 울화가 들끓었다.
더구나 로건은 이 상황에서 그냥 돌아설 수도 없었다.
그는 최대한 빨리 이놈과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돌아가야 했으니까.
‘대화할 생각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해야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쾅!
로건의 발이 저택의 문짝을 박살 내며 집 안쪽으로 날려 버렸다.
콰지지직.
집주인의 성격을 보여 주는 듯, 박살 난 문에 남은 마법의 흔적이 로건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기껏해야 2서클 수준, 평기사급에나 충격을 줄 만한 마법이었기에 로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체른 크로우. 우리 대화를 좀 해야겠는데!!”
고함을 내지르자,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털북숭이가 2층에서 구르듯 뛰쳐 내려왔다.
“너, 너 뭐야! 평범한 놈이 아니었구나!”
지이잉.
호들갑스럽게 들어 올린 손 주변으로 웬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쇠공 같은 물체 세 개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로건은 본능적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학살의 오브?!’
마도사 크라우네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하급 아티팩트의 대량생산이었으나, 전투적인 방면에서는 바로 저 둥근 쇳덩어리들이었다.
크라우네의 주변을 상시 보호하며 적을 자동 격퇴하는 공방일체의 아티팩트.
학살의 마도사가 동급의 초인들에 비해 전투력이 낮다고는 하지만, 저 저주받은 물건들 때문에 수준 이하의 양민 학살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화력을 보였다.
로건이 기억하는 한에서는 끝까지 그 누구에게도 팔지 않은 아티팩트이기도 했다.
‘아니, 아니야. 벌써 그런 수준은 아닐 거야.’
로건은 순간적으로 흠칫한 마음을 억지로 다스리며 미소를 보였다.
“멀리서 온 손님한테 대접이 너무 박한 거 아닙니까, 마법사님.”
“손님? 세상에 어느 손님이 문을 박살 내고 들어와?!”
“그거야 집주인이 만나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여기, 문 값은 충분히 배상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철컹.
금화로 가득한 돈주머니를 집어 던지자, 순간 경계의 기색으로 바라보던 마법사가 조심히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수북한 금화를 보더니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흐음. 돈 좀 있나 보네, 손님?”
“충분히.”
“그럼 대화를 좀 해 볼 수 있겠군.”
성깔 더러운 마법사가 자신의 서재로 로건을 안내했다.
쪼르륵.
“자, 자. 손님이 오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차는 내 취향이지만 먹을 만할 거야. 그래, 왜 날 찾아왔지?”
넌 존대라는 걸 모르냐.
대륙 공용어 필수인데.
다시 짜증이 솟구쳤지만, 이 정도는 아까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로건은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빙긋.
“마법사님의 소문을 듣고 영입을 제안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마법사가 멈칫했다.
“소문? 무슨 소문?”
영입 제안이라는 말보다 소문에만 신경 쓰는 모습.
표정까지 굳어지는 꼴이 찔리는 게 많은 듯했다.
‘이 새끼 분명 지은 죄가 많은 거 같은데.’
아니, 아닐 거다.
그냥 전생의 분노로 인한 편견이야.
로건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아티팩트의 달인이시라는 소문을 들었소이다. 대충 그 물건들만 봐도 짐작하겠는데.”
“호오. 어디서 그런 소문을? 내가 꽤 멀리서 왔는데.”
멀리서 도망쳐 왔다는 말 같은데.
로건은 자꾸만 경련이 일 것 같은 입꼬리를 유지하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실력 있는 마법사를 찾고 있던 차에, 정보 길드에서 마법사님을 알려 주더이다. 뭐, 그 길드 이름까지 말할 수는 없고.”
일부의 진실을 말해 주자 놈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정보 길드? 어디?”
살기까지 떠오르는 눈동자.
이래서야 착각이라고 넘어가기 힘들었다.
“흐음. 영입 제안을 하러 왔는데, 지은 죄가 많으신가 봅니다?”
“무슨 헛소리! 내,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는데!”
세상 더럽게 살았다는 말로 들렸다.
“그런데 영입 얘기에는 영 흥미를 보이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어느 길드인지 알면 어쩌시려고요?”
“아. 그게…… 당연히 내 정보를 사고팔았다 하니 신경이 쓰이는 거지.”
“제가 들은 정보는 이곳 루스펠 영지에 아티팩트 잘 만드는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정도입니다만. 흠. 혹시 본명이 아니신가요? 뒤가 구린 사람이면 저도 좀 곤란한데.”
녹스가 알려 준 현 이름은 체른 크로우.
하지만 전생에 알려진 이름은 크라우네 란필드.
어느 쪽이 본명인지, 아니면 둘 다 가명인지 모르겠지만.
“웃기지 마라! 내가 얼마나 떳떳하게 살았는데!”
놈이 발끈할수록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다는 말로 해석되는 건 편견일까.
‘능력이야 어쨌건, 인성이 쓰레기라 언제 뒤통수칠지 모르는 놈이라면 여기서 처리해야 해.’
둥둥 떠 있는 쇳덩어리, 학살의 오브라고 생각했던 저것들도 자세히 힘을 파악하니 잘해야 3클래스급. 초인이 아닌, 5클래스 마법사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아티팩트에 불과했다.
처리하고자 하면 어려울 건 없었다.
견적이 선 로건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확인해 봐야겠다.
“그럼 혹시, 크라우네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그 순간, 공중에 떠 있던 쇳덩어리들에서 예고도 없이 붉은 빛줄기가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