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콰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벽이 터져 나가며 서재가 뒤집혔다.
그리고 방 안 가득 솟구친 먼지 사이로 붉은 머리의 남자가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검에 체른 크로우, 아니 크라우네 란필드의 앞을 가로막았던 쇠뭉치 하나가 그대로 갈라졌다.
쩌어어억!
우우웅.
콰아아앙!
처음보다 훨씬 약해진 빛줄기를 받아 낸 로건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지만, 충격은 그뿐.
로건이 몇 미터의 공간을 단축하여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크라우네의 손짓과 함께 붉은빛 화염이 그의 전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뒈져라!”
하지만 다섯 겹의 불꽃의 파도들은 적에게서 터져 나온 여덟 겹의 황금빛 파도에 그대로 집어 삼켜졌다.
콰콰콰콰콰!
“커헉!”
남은 두 개의 오브마저 박살 난 크라우네가 황금빛 파도에 강타당해 벽을 뚫고 나가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으로 붉은 머리 청년이 푸른 눈을 빛내며 다가갔다.
“뭐가 그리 찔리는 게 많아서 이런 반응일까, 크라우네 씨? 응?”
실제로 학살의 마도사 크라우네의 과거는 불명확했다.
마법을 어디서 배웠는지, 초인이 되기 전까지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게 알려지지 않았다.
제국 전쟁 직전에 어디선가 나타나 입지전적인 성공을 이뤄 낸 초인.
그리고 편집증적인 가학성과 오만한 태도로 수많은 적을 만들어 낸 인성 고약한 인간.
알려진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어, 어떻게 알았지? 모든 흔적을 지웠는데?!”
어딘가의 도망자 같은 모양새.
주저앉은 채 엉덩이 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는 마법사는 미래의 초인 같지 않게 초라한 몰골이었다.
“내가 어디서 온 것 같아?”
로건이 그를 살짝 떠보는데.
“웃기지 마라! 그건 내 거야!”
번쩍.
콰아앙!
고함과 함께 주저앉은 놈의 품 안에서 푸른 빛이 튀어나왔다.
너무 근거리에서 터진 공격.
무의식중에 검을 들어 올려 막아 내긴 했지만, 일순간 균형을 잃었다.
그리고 그 틈에 후다닥 일어선 크라우네가 터진 벽면을 뚫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흡!
‘내가 쓸데없는 호기심을…….’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놈의 과거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왕 틀어진 사이라면 미래의 잠재적인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 했는데.
로건은 호기심 때문에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놈이 뚫고 들어간 벽면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자 나타난 음침한 석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여기가 마법사 실험실이구나 싶은 느낌을 주는 너른 공간 앞에서, 로건은 이상한 빛을 내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크라우네를 발견했다.
“죽어라!”
목소리와 함께 살짝 떠 오른 크라우네의 몸에서 차가운 냉기의 폭풍이 쏟아지고, 샛노란 벼락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클래스 마법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빠른 마법의 연계.
하지만.
“흥!”
로건의 눈이 빛나는 순간.
그 마법들은 공간을 장악하는 기묘한 기세를 가진 검압에 방향이 흐트러졌고.
그 틈을 가로지르는 황금빛 빛줄기 하나가 크라우네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박살 내며 그 손을 꿰뚫었다.
“아악! 이놈이……!”
우우웅.
비명과 함께 검은 로브가 기이한 서기를 뿜어내며 거대한 힘을 발산했지만.
“느려!”
크라우네를 중심으로 연구실 전체를 비스듬히 갈라 버린 거대한 황금빛 검 아래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미…….”
쩌어어억.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마지막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마법사는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몸뚱이가 갈라지며 내장을 쏟아냈다.
“후우우…….”
그리고 로건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이 흐르며 흘러나온 한숨과 함께.
그그그그그.
연구실을 감싼 천장이 갈라지며, 건물 일부가 주인을 두 쪽 낸 검격의 흔적을 따라 흘러내렸다.
우르르르릉.
엄청난 소음과 함께 무너진 건물의 일부.
갑작스레 집 밖에서 쏟아진 햇살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로건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크라우네의 연구실.’
후일 아티팩트 마스터라 불릴 마도사의 실험실.
언뜻 훑어보기엔 기대했던 것만큼 많은 아티팩트는 없었다.
하물며 놈이 직접 착용했던 아티팩트들도 조금 전 직접 박살을 내 버린 터.
남은 것이라고는 연구실 구석에 따로 보관되어 있던 세 개의 아티팩트들뿐이었다.
그나마도 다급한 순간까지 놈이 쓰지 않았으니 큰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게 더 중요하지.’
로건의 시선은 연구실 구석에 있는 책장과 책상, 종이들로 향했다.
전생의 학살의 마도사가 하급 아티팩트의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이유.
그것은 아티팩트 제작에 필요한, 극도로 희귀한 미스릴 이상의 귀금속들 대신 일반 금속에 영구히 마력을 담는 방법을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지금 시점에서 고작 6, 7년 뒤에 벌어질 일.
어쩌면 이 자리에 그 방법을 연구 중이었던 자료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완성본은 아니더라도.’
그래서 로건은 차분히 연구실 안을 살펴보았다.
펼쳐져 있는 책자부터 크라우네가 무언가 끄적인 종이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는데.
“역시…… 모르겠군.”
전생에 나름 고대어에 능통했었다고는 하나, 마법에는 문외한.
책자도, 적어 놓은 내용도 몇몇 단어만 알아볼 수 있을 뿐, 짐작도 되지 않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때, 그다지 원치 않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저, 저기다!”
“마법사의 집이다!”
“박살이 났어!”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병사들에게 연락해!”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는 소리.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서재에 놓아둔 보따리 가방을 들었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연구실 내에 존재하는 모든 책자와 종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날아가기 쉬운 종이들부터 차곡차곡 쌓아 깔고, 책장의 책은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것부터 챙겼다.
다행히 사람 덩치만 한 보따리 가방은 그 모든 것을 챙기고도 남은 아티팩트까지 넣을 정도로 넉넉했다.
그렇게 연구실에 있는 모든 것을 챙긴 로건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멀쩡한 집 안 구석구석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혹시나 비밀 통로나 연구실이라도 없는지.
최대한 감각을 동원해 침대 아래에 숨겨진 마법 서적 두 권까지 챙긴 후에야 외부에서 외쳐 대는 소리가 들렸다.
– 마법사님! 계십니까?!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가방을 메고 정문으로 나섰다.
저벅. 저벅.
“여. 수고 많으십니다.”
“누구…… 십니까?”
가슴팍에 종 문양을 새긴 갑옷을 입은, 병사들을 통솔하는 듯한 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로건을 보며 물었다.
괴팍한 마법사의 집이라 박살이 난 것을 보면서도 진입을 못 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 처음 보는 인간이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아. 체른 님께 물건을 팔러 온 상인입니다. 오늘 성에 들어왔는데…….”
“아, 그 상인.”
기사의 뒤쪽에서 누군가 로건을 아는 척했다.
얼핏 고개를 돌리니 성문에서 보았던 병사가 보였다.
“진. 아는 자인가?”
“오늘 성에 들어온 상인입니다. 강도를 당했다면서…….”
“강도? 강도를 당한 상인이 뭘 팔 게 있다고 여길 와?”
안타깝게도 기사는 바보가 아니었다.
본인에게 안타깝게도 말이다.
뻐어어억.
“컥!”
로건의 주먹이 기사의 갑옷을 우그러트리며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감각에 읽히는 경지로는 잘해야 숙련된 평기사 정도.
로건의 주먹에 맞는 순간, 기사는 왼쪽 갈비뼈가 통째로 부러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격한 통증과 함께 숨이 턱 하니 막히는 기분.
그 상황에서도 기사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
“저, 적이…….”
빠아악!
털썩.
“거참 피곤하게 사네.”
뒤통수를 내리쳐 기사를 기절시킨 로건이 태연히 웃자,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이 놀라 황급히 창을 들었다.
“저, 적이다!”
“잡아!”
하지만 기사의 충실한 사명감을 병사들은 본받지 못했다.
그러나 기사를 단 두 방에 기절시킨 적을 병사 열댓 명이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들이 용기가 없다고 탓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마음 같아선 소규모 영지 정도는 싹 쓸어 버리고 가고 싶지만.’
벌써 제국을 자극하는 짓은 사양이라.
로건은 쓰러져 꿈틀거리는 기사를 흘깃거리면서도 더 손을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럼 수고들 하라고.”
당당히 병사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해 주고는 바람처럼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귀신 그림자와 풍신의 부츠의 조합이 만들어 낸 움직임을 병사들이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날, 제국 동남부 구석에 있는 루스펠이라는 작은 영지에서 ‘3서클’ 마법사가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주변 영지에 퍼졌다.
하지만 루스펠 영주와 모종의 거래 관계에 있던 마법사라는 것 말고는 그 희생자의 정체조차 아는 사람이 없었고,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마법사 체른 크로우가 사라진 것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그의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고.
그렇기에 오직 마법사를 죽이고 기사를 기절시킨, 강도질을 한 자의 무력만이 특이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다만 체른 크로우의 집을 몇 번 방문하여 몇 개의 아티팩트들을 봐 둔 적이 있는 영주만이 도둑맞은 물건들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붉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사나운 인상의 청년에 대한 수배령이 루스펠 영지에서부터 주변 영지로 퍼지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 수배령은 얼마 안 가 흐지부지 사라질 뿐이었다.
* * * 루스펠에서 도보로 3일 거리.
반나절을 쉬지 않고 질주하여 충분히 거리를 확보한 로건은 석양이 저물어 오는 하늘을 보며 숲의 공터에 모닥불을 피웠다.
화르륵.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아니, 최선이지. 그놈은 아무리 봐도 뒤가 구리고 인성에 문제가 있었어.’
설령 자신이 챙긴 물건 중에 목표로 한 연구 자료가 없다 한들,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럼에도 약간은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지라, 로건은 당장은 알아보지 못할 책이나 연구 자료 대신 챙겨 온 아티팩트들을 꺼내 보았다.
“기대는 안 되지만…….”
로건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혼잣말과는 반대되는 눈빛으로 꺼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반지와 목걸이, 그리고 하나의 건틀릿.
작은 반지를 손에 들고 포스를 주입하자.
우웅.
가벼운 진동과 함께 미약한 마나가 퍼지며 그 전방으로 빛을 쏟아냈다.
전방에 비친 빛은 허공에 똬리를 튼 검은 뱀의 형상을 만들었지만.
“……끝?”
허무하게도 그 외에 어떤 효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목걸이는 좀 나았다.
목에 걸고 포스를 주입하는 순간 청량한 느낌과 함께 온몸에 힘이 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아쉽다면 그 증폭량이 1할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상급기사, 그중에서도 특출난 신체 능력을 지닌 로건의 힘을 1할이나 증폭시킨다는 것은 적어도 3클래스급 아티팩트라는 것이었지만, 이미 풍신의 부츠라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로건으로서는 아쉽게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뭐, 배부른 소리지.”
마나는 엄밀히 말해 포스와 전혀 다른 이능.
두 종류 이상의 마나를 몸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포스유저에게는 독이 되었다.
그렇기에 포스유저 상급의 경지로도 신체 능력 증폭 아티팩트를 과부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 정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아직 로건은 하나의 증폭 아티팩트를 더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풍신의 부츠가 있어도 이 목걸이는 사용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아버지에게 댄 핑계 가치는 할 것 같았다.
자신의 힘의 1할이라면 로니안이나 빅토르, 에일렌 등의 유망주에게 줄 경우엔 그보다 몇 배의 효과는 보일 테니까.
그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건틀릿을 들었다.
그런데.
“어?”
처음에는 그렇게 큰 힘이 느껴지지 않았던 물건.
하지만 직접 손에 들자 느낌이 또 달랐다.
무언가 겉으로 느껴지는 미약한 마나 저편에 훨씬 커다란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느낌.
그 비슷한 느낌을 로건은 예전에 한 번 받은 바 있었다.
“설마…….”
그의 시선이 이제는 거의 한 몸처럼 느껴지는 부츠를 일견한 뒤, 그때처럼 건틀릿을 향해 포스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이내 그때와 비슷하게 미친 듯이 포스가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흡!”
한 번의 경험이 있는 덕분일까.
점점 창백해지는 안색에도 로건의 얼굴에는 위기감보다는 기대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쩌정!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꽉 막힌 무언가가 뚫리는 듯한 느낌.
그 느낌과 더불어 다시 몸으로 밀려 들어온 포스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티팩트의 효능을 알려 줬다.
양손에 차는 순간, 역시나 정확하게 그의 손 크기에 맞춰서 줄어드는 건틀릿.
착용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편안함까지 풍신의 부츠와 비슷했다.
“근력, 내구력 30% 상승. 포스 증폭. 크기 조절 가능. 자가 복원……. 허, 이런 게 또?”
풍신의 부츠에 못지않은 능력과, 똑같이 느껴지는 봉인과도 비슷한 감각.
아무래도 같은 사람, 혹은 집단이 만들어 낸 물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아무렴 어때. 내가 잘 쓸 수 있으면 그만이지.”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은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는 법.
미래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를 처리했다는 기쁨과, 쓸 만한 아티팩트를 얻었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성과만으로도 아주 행복한 귀환 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