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대공자가 맥라인 영지에서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는 밖으로 크게 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매일 일선에서 업무 지시를 하고 훈련을 감독하던 대공자가 열흘 가까이 얼굴을 보이지 않자, 슬슬 영지 내부에서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건의 행방을 아는 영주와 그것을 도왔던 마법사 클레이튼이 입을 다문 순간, 영지의 그 누구도 대공자의 행방을 캐물을 수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 상황에서도 망한 가문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맥라인 타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극적으로 기사들을 등용하는 중립 세력의 강자.
더구나 조건도 후했으니, 전쟁으로 속한 곳을 잃은 기사들에게는 제법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맥라인 영지를 찾아온 기사 중에는 이 상황을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 관저에서 다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기사 테난, 딜런, 제이콥이 딱 그런 경우였다.
“여기 대공자라는 사람이 영입한다고 해서 왔는데.”
“당사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내전에서 섬기던 주군을 잃고 떠돌던 차, 맥라인 타운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관계였지만 셋은 참 죽이 잘 맞았다.
임용을 위해 찾아온 이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들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맥라인은 이전에 무언가로 떼돈을 벌었고, 왕국 3대 부호 중 하나인 비프로스의 본성도 점령했다.
즉,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해서 세력을 넓히려 하고 있다.
그러니 명분만 있다면 다소간의 억지를 부려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소문이 두려워서라도 박대는 하지 못할 테니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이들 셋은 정중한 어투이기는 하나 목소리에 힘을 주며 그들을 맞이하는 행정관을 압박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을 응대하는 관리는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대공자님의 의뢰를 받고 온 손님인데.’
대머리 루겔 하이스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웃음을 보였다.
“아하하. 대공자님께선 폐관 수련이 끝나는 대로 나오실 겁니다. 그때까지만 여기서 머물고 계시면…….”
“아니.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오? 그 전에 확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도 한가한 처지가 아닌데.”
한가한 처지잖느냐, 이놈아.
루겔은 이런 양아치 같은 새끼들도 기사라고 맞아들여야 하나 회의감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의 집무실 앞을 지나가던 한 권력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음? 루겔? 손님들인가? 기사 복장인데?”
“아! 헤인켈 님! 마침 잘 와 주셨습니다. 전선에서 오신 기사분들이신데, 대공자님을 만나 뵙고 조건을 조율하고 싶다고……. 아, 기사님들. 저희 맥라인의 기사단장, 헤인켈 님이십니다.”
루겔이 안도하며 상황을 설명하자, 지켜보던 세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타이난 출신의 테난입니다. 고향에서는 강검의 테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게필드 출신의 딜런입니다. 저 역시 고향에서는 쾌검의 딜런이라는 별명으로 동료들이 불러 주었습니다.”
“테헤난 출신의 제이콥입니다. 괴력의…….”
“아. 알겠소이다. 전부 이명도 있으실 정도로 뛰어난 분들이시다? 나도 없는데 부럽구려.”
말이 끊긴 제이콥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말꼬리를 잡지는 않았다.
강대한 영지의 기사단장. 자신들이 이곳에서 임용된다면 자신의 상사가 될 자다.
셋은 동시에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닙니다. 촌구석에서 얻은 별명인데요.”
“저도 동료들이나 인정해 주던 말입니다.”
“저랑 상대했던 적들이야 좀 무서워했습니다만, 여기서야…….”
“뭐, 그거야 시험해 보면 알겠지. 우리 맥라인에서 일하고 싶다고?”
자연스레 말을 놓는 헤인켈의 태도 역시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 그렇습니다!”
“예전부터 맥라인의 위명을 충분히 들어 왔고…….”
“단장님의 명성을 익히…….”
“긴말은 됐고. 내가 한마디만 하지.”
손을 들어 셋의 말을 막은 헤인켈의 시선이 싸늘하게 그들을 훑었다.
“우리 대공자님은 능력이 있다면 그만한 대우를 해 주신다. 더 대우를 받고 싶다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면 그만. 말보다는 실력으로 보여 줬으면 좋겠는데.”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단호한 헤인켈의 말에, 세 사람은 하나같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들어! 쏴!”
파바바박.
구령과 동시에 수백의 병사들이 석궁을 쏘아 댔다.
전면에 자리한 나무들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연이어 쏘아지는 쿼렐의 소나기를 처음 본 셋의 입에서 연신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병사들이 훈련이 정말 잘 되어 있군요.”
“놀랐습니다. 저런 석궁이 있었나요?”
“맥라인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말 위에서 손뼉을 치며 감탄하는 이들.
그런 그들을 보며 루겔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놈들은 기사인가 아첨꾼인가. 나랑 있을 때 이렇게 좀 해 보지.’
그가 속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있을 때, 헤인켈이 담담히 기사 셋의 착각을 바로잡았다.
“병사가 아니다. 자경단이지.”
“자경단……이요?”
“그, 마을 지키는 자경단?”
“정식 병사가 아니라는 겁니까? 저런 무기를 들려 줬는데?”
“그게 또 우리 공자님의 대단한 점이지. 고작 저것만 보고 놀라면 곤란해.”
자신들처럼 상관을 향한 아부라고 생각하고 떨떠름하게 웃는 셋.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서로 마주친 눈빛으로 오간 말은 분명했다.
‘그냥 생색만 내는 거겠지.’
‘성이 열 개나 되는데 고작 이삼백의 자경단이라니. 마을 수만 해도 백 개는 되겠다.’
하지만 기사단 훈련장을 찾아가는 내내 그런 집단을 몇 번이나 연달아 보게 되자, 그들의 생각은 서서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저 집단 하나하나가 다 마을 하나는 아니……겠지요?”
“그럼. 그렇게까지 영지민을 동원하긴 아무리 우리라도 무리지.”
“아, 그렇겠죠. 당연히…….”
“세 마을 단위로 모은 자경단일세.”
“세…… 마을……요?”
“요 며칠간 집단 훈련 기간이라 대부분 근처에 모여 있네. 새로운 타운 건설을 위한 땅 다지기를 겸하는 것이니, 지나가면서 많이 보게 될 거야.”
“…….”
그렇게 점점 줄어들던 셋의 말수는 기사 훈련장에 도착한 순간 아예 사그라들어 없어졌다.
“막아 보시지!”
빠아악!
“목숨은 붙여 줄게!”
뻐어억!
“입 다물어라. 이빨 다 날아간다!”
콰앙!
목검으로 하는 대련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과격한 소음.
기사들이 휘두르는 목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만 들어도 그 안에 실린 검력이 엄청나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런 검을 휘두르는 이들이 기사들 대다수였고, 심지어 기본적인 형태도 비슷했다.
테난, 딜론, 제이콥 역시 기사로서 이미 몇 년은 구른 이들.
그 광경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경지로 보이는 기사들이 명백히 한 수 위의 실력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평기사들 검에 실린 힘도 심상치 않은데? 설마…….”
“……맥라인에 기사들 전용 중급검술이 있는 겁니까?”
“그렇다네.”
“……!!”
“서, 설마 저희도 입단하면 그걸…….”
“물론 가르쳐 주지.”
“입단하겠습니다!”
“아니, 하고 싶습니다!”
“최소한의 조건만 맞춰 주십시오!”
관저에서 보였던 오만한 태도는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헤인켈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거야 자네들 하기에 달린 거고.”
“……예?”
“우리도 찾아오는 기사들을 다 받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테스트를 해 봐야 하지 않겠나?”
– 기사라면 일단 받고 보자.
– 굴리다 보면 사람이 된다.
– 그래도 사람이 안 되면 그때 깨부숴 버린다.
굉장히 단순하고 과격한 사상을 가진 영주의 지시를 헤인켈은 이 순간만큼은 무시했다.
‘분란을 일으키기 전에 기부터 꺾어 놔야지. 딱 봐도 인성이 글러 먹은 놈은 처음부터 거르고.’
그도 관저에서 보인 이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시험해 주십시오!”
“어떤 것부터 할까요?!”
그래서 적극성을 보이는 그들을 지금은 무시했다.
“일단 훈련하는 걸 지켜보게. 그리고 공식 훈련 끝난 뒤에 자네들 감상을 듣고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하지.”
과연 그때도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헤인켈의 서늘한 미소가 바짝 긴장하는 셋의 눈동자를 떨리게 만들었다.
목검 대련으로 여기저기가 깨져 나간 기사들은 어디선가 제공된 포션으로 빠르게 부상을 치유했다.
“포, 포션?”
“훈련 중에 포션을 쓴다고요?”
“저게 진짜?”
“그럼. 진짜지. 희석된 포션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기사단 훈련에 비할 수 없는 사치였다.
다만 희석한 하급 포션으로 할 수 있는 한계는 뚜렷한지라, 뼈가 부러진 중상을 입은 몇몇 기사는 훈련 중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오히려 아쉬워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개런. 다음엔 네 갈비뼈가 부러질 거다!”
“낄낄. 그래, 며칠 뒤에나 보자고.”
며칠 뒤?
셋의 의문스러운 눈빛을 받은 헤인켈이 흔쾌히 답했다.
“비프로스에 있는 신전에서 맥라인 타운이나 이곳 훈련장…… 아, 곧 여기도 두 번째 타운이 될 거야. 아무튼, 이곳에도 치료소를 만들어서 신전의 사제들이 상주하고 있네. 뼈에 금이 간 것 정도야 며칠이면 치료하지. 사제들이 전쟁에는 안 끼어들어도 훈련은 도와주니까.”
그 말에 셋은 또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딱 봐도 위력적인 중급검술을 가르쳐 주는 데다가, 훈련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복지도 완벽했다.
절로 입단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샘솟는데.
“자 마무리 훈련. 승마로 맥라인 타운으로 돌아간다.”
“으아아악!”
헤인켈의 박수 소리와 함께, 대련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던 기사들이 일제히 탄식을 뿜어냈다.
“기사들 열정이 대단하군요.”
“훈련 끝내는 것이 아쉽다는 건가요.”
“허허. 저도 열심히 해야겠는데요.”
셋이 상기된 얼굴로 연신 분위기를 칭찬하기 바빴다.
지친 표정의 기사들이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들고 뛰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아까 승마라고?”
“우리 승마 훈련은 말이 사람을 탄다.”
“…….”
“…….”
“…….”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셋의 표정에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읽은 헤인켈이 피식 웃었다.
“자네들은 지금 우리 기사단이 아니니 안 해도 돼. 루겔, 자네는 천천히 말 타고 오게.”
“예!”
“좋아. 가자!”
히이이잉!
루겔이 대답을 하는 순간, 헤인켈 역시 자신이 타고 온 말을 들어 올린 채 왔던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셋은 그래도 차마 말을 얹고 뛰지는 못하겠는지, 그냥 달리기로 그 뒤를 따랐다.
“여보쇼! 당신들 타고 온 말은……!”
행정관의 말소리는 기사들의 달음박질을 따라잡지 못했다.
“에이씨. 어째 반응이 다들 똑같냐.”
루겔은 투덜거렸지만, 그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최근 맥라인을 찾아온 기사들은 저들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반응만 보아도 영지가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 또렷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들의 선택 역시 결국은 똑같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가문에 대한 자부심으로 어깨가 잔뜩 올라간 루겔이 말 세 마리를 끌고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 * * 솔선수범하여 말을 들고 기사단의 뒤를 쫓던 헤인켈은 얼마 안 가 기사단의 선두까지 앞질렀다.
그럼에도 포스유저 상급의 경지에 오른 그이기에 무리한 훈련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유 있게 기사들의 상태를 살피곤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을 보며 즐겼을(?) 뿐.
그리고 그런 그의 미소는 맨 앞줄에서 달리고 있는 유난히 ‘어린’ 셋의 얼굴을 보며 더욱 짙어졌다.
비프로스 점령전, 아니, 정확히는 토모도 수성전 이후 완연하게 달라진 태도와 실력으로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맥라인의 젊은 피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가주의 아들이고, 다른 한 명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여기사이기도 했다.
‘토모도 성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는 몰라도…….’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결코 나쁠 건 없었다.
이를 악물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헤인켈의 머릿속에 깊이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