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하악. 하악.
“이, 미친, 짓에, 익숙해지는, 후욱, 내가 슬프다.”
“내가 할 말, 대신, 고맙……, 후욱.”
타운의 기사단 연무장에 도착하자마자 늘어지는 이들.
푸르륵 거리며 일어서는 말들을 대기하던 시종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끌고 나갈 때까지, 기사들 대부분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중 몇 명은 그 상황에서도 억지로 일어서 천천히 몸을 풀고 있었고, 한 녀석은 다시 목검까지 찾고 있었다.
“저, 저 독한 것들.”
“독한 거냐, 미친 거지. 저러다 몸 상한다고.”
“아직 한계가 아닌 거겠지, 쟤들은.”
“어후, 괴물들.”
평기사의 최소 나이는 서른을 넘어가는 것이 보통.
이것은 맥라인 기사단뿐만 아니라 기사 대부분이 각성하는 시기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아직 10대에 불과한 세 명이 유독 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함께 겪은 대다수의 맥라인 기사들은 그 세 명을 미래의 에이스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처음 보는 다른 이들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어린 애들 아닙니까? 다 자란 것 같지도 않은데.”
“천재들인가?”
“심지어 한 명은 여자…… 와, 미인이다.”
마지막에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뱉은 딜런이 눈총을 받고 찌그러지긴 했지만, 셋 모두 이때까지의 감상은 동일했다.
‘신기하다.’
로니안, 빅토르, 에일렌. 훈련도 가장 앞장서서 받았고, 상태도 가장 괜찮아 보였지만.
그들의 어린 외모가, 성별이 편견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헤인켈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테스트는 간단하다. 기사 중 하나를 골라 실력을 증명하면 된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다. 실력만 증명되면 합격이다. 뭐, 우리 기사 중에는 저 셋이 가장 뛰어나긴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즉시, 셋의 시선은 몸을 풀고 있는 ‘어린 기사’ 삼인방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저 나이에.’
더구나 보기만 해도 질리는 훈련이 끝난 직후다.
‘분명히 지쳤을 터다.’
그들이 살면서 쌓아 온 상식과 외모가 만들어 낸 편견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가린 결과.
세 사람은 동시에 그 3인방을 선택했고, 헤인켈은 예상했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대련이다. 지명 상대는 로니안, 빅토르, 에일렌. 셋이다.”
또냐.
헤인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로니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최근에 부쩍 늘어난 신입 기사들.
그리고 단장의 악취미적인 테스트로 이뤄지는 훈련 이후의 대련.
짜기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헤인켈이 권유라도 하는 것인지 그중 대다수는 빅토르나 에일렌을 택했고…….
그 나머지는 자신을 택했다.
항상.
‘나야 맥라인 집안이라는 걸 알아서 덜 하는 거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일차로 지명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솔직히 조금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만만히 보인다는 뜻이니까.
‘조금씩 크고는 있지만…….’
아직은 2m에 가까운 아버지는커녕, 180cm 즈음인 형에게도 못 미쳤다.
키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아니, 아니지. 그냥 내가 만만해 보인 거야. 아직 내가 약한 거지.”
투지를 북돋기 위한 중얼거림에,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기사들이 흠칫했다.
“우, 우린 아닙니다!”
“작은 공자님. 우린 절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재 맥라인 기사단 내 대련 기피 순위 1순위는 ‘회색 악마’ 빅토르도 아니고, ‘광전사’ 에일렌도 아닌, 얼핏 보면 순해 보이는 이 이공자.
“약해 보이면 형님한테 짐이 된다…….”
“나왔다.”
“저 말. 아으…….”
“어흐흐. 소름 끼쳐.”
‘우리 형’ 로니안이었다.
작은 공자가 저 말을 할 때마다 누군가가 실려 나가서 상당 기간 돌아오지 못했다.
그 때문에 생긴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별명.
로니안이 기사들의 질린 표정을 뒤로하고, 처음 보는 얼굴들을 향해 걸어갔다.
“유감은 없지만, 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됐고. 와.”
까닥.
무표정한 얼굴의 로니안이 목검을 까닥이자, 딜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영지의 작은 공자라길래 지친 몸을 고려해 적당히 상대해 주고 점수를 따려 했는데.
이렇게까지 개무시를 하면 얘기가 달라졌다.
‘나도 자존심은 있다고.’
입술을 질끈 깨문 딜런이 목검을 움켜쥐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가르쳐 주지, 귀족 도련님.’
그리고 기합도 없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옛 동료들에게 쾌검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든 그의 특기, 번개 걸음.
그는 이 특기를 살린 기습으로 중급기사를 쓰러트린 적도 있었다.
하물며 이런 지친 상태의 애송이라면…….
빠아아악!
예상하던 대로 강렬한 타격음이 그를 미소 짓게 했다.
그런데.
움찔.
‘왜 내가 아프…….’
애써 웃어 보려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후에야 강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목검이 상대의 머리를 후려치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 후였다.
‘아, 안돼. 조금만 더…….’
털썩.
“작은 공자. 어떻습니까?”
“발재간은 좋더군.”
“흠.”
그 말에 헤인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쓰레기야.’, ‘버려.’ 등등의 대답보다는 훨씬 좋은 답이었다.
‘이 녀석은 합격.’
누가 봐도 훨씬 고수인 자신이 평가하는 것보다, 이렇게 동료에 가까운 이(?)가 해 준 평가가 널브러진 상태로 지켜보던 기사들에게는 더 가슴에 와닿을 것이다.
그리고 그편이 새로 들어온 기사들이 기존의 기사들과 어울리는 데에도 더 도움이 될 테고.
그렇기에 최근 이 대련을 고집한 것이기도 했다.
“다음!”
동료의 허무한 패배에 표정이 확 굳어진 테난과 제이콥을 보며 헤인켈이 손짓했다.
지금쯤이면 은근한 권유와 분위기에 휩쓸려 한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을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테난은 빅토르와의 일 합 만에 검을 놓치며 바닥에 나뒹굴었고.
제이콥은 에일렌을 보며 실실 웃다가 수십 대나 얻어맞고 온몸이 흐물흐물해져서 실려 나갔다.
‘이놈은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으니 불합격.’
오늘도 맥라인의 젊은 피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기사단의 수도 늘었다.
‘맥라인은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공자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지금.
이 모든 변화를 일궈 낸 주인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오랜 부재에 걱정이 좀 되기도 했고.
하지만 다행히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당사자는 이미 타운 내에 들어와 있었다.
* * *
“아무 일 없었다고?”
“그게 놀랄 일입니까?”
“아니, 조용한 게 이상해서.”
“마치 뭔 일 생기길 바라신 것 같네요?”
“아니. 그냥 여태 조용한 게 이상해서. 안 생겼으면 좋지, 뭐.”
“예? 지금 뭐라고.”
“됐다고. 볼일 봐!”
“공자님?! 공자…….”
쾅.
극성스러운 릭을 떨쳐 내고, 로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슬슬 반응이 올 때가 지난 것 같은데.’
터질 일이 터지지 않고 있으니 찜찜할 뿐.
사실 별일이 없는 게 좋았다.
로건은 자신이 과한 걱정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몸을 대충 씻고는 다시 방을 나섰다.
돌아온 김에 일단 쉬려고 했지만, 쉬고 싶어도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바로 다시 움직이고 만 것이다.
로건은 열흘 내내 함께한 커다란 보따리 가방을 가볍게 집어 들고 타운의 중앙, 마탑을 향해 걸었다.
우르르.
“이게 다 뭡니까?”
“아, 어떤 마법사 연구실에 있던 연구 자료와 책들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해서 가져와 봤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표정은 스스로가 더 관심이 많다는 티가 팍팍 났다.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 드리면 되는 겁니까?”
“음. 뭐, 가능성 있는 자료면 직접 연구하셔도 됩니다. 좋은 성과만 낸다면 얼마든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마탑의 기밀 자료 같은 건 아니구요?”
“절대! 아닙니다. 저한테 시비 걸다가 죽은 마법사의 것입니다.”
물론 내가 먼저 찾아가긴 했지만.
로건은 속마음을 숨긴 채 씨익 웃었고, 사람 죽이고 물건을 털어 왔다는 얘기를 하며 웃는 고용주를 본 클레이튼도 허탈하게 웃었다.
“예. 뭐, 그럼 문제는 없겠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맡겨 두십시오.”
클레이튼이 웃으며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변함이 없었다.
흘깃 고개를 돌려 보자,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고용주가 보였다.
“……안 가십니까? 혹시 다른 볼일이라도?”
“아…… 혹시 바로 알 수는 없나요? 그 자료?”
그 태평한 어조를 듣는 순간, 클레이튼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지금은 공자님이 시. 키. 신. 그 폭탄 개발에 정신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것도 같이 연구하면 훨씬 늦어질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빌어먹을 폭탄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꼬인 어조로 튀어나왔다.
이렇게 말하면 자연히 물러날 줄 알았는데.
대답이 예상과 달랐다.
“음. 그래도 됩니다. 일단, 이 연구 일지 중에 쓸만한 게 있는지 먼저 알아봐 주세요.”
그 말에 클레이튼은 확신이 들었다.
‘이걸 가지러 사라졌던 거구나.’
아무래도 누가 시비를 걸어서 죽이고 털어 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듯했다.
‘하긴 뭐, 시비 건다고 다 죽이면 미친놈이지.’
고용주가 살벌한 농담을 즐긴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며 클레이튼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빠르게 이 연구 자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로건은 돌아섰고, 클레이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료를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불과 3일 뒤.
“대박! 대박입니다! 로건 님!”
흥분한 클레이튼이 먼저 로건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입니까?”
“가져오신 자료! 마법계에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클레이튼의 외침에 로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다만 클레이튼의 표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예? 문제요?”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니 솔직히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로건 님.”
극도로 긴장한 표정에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말씀하시죠.”
“정말 이거 다른 마탑에서 가져오신 게 아닙니까?”
난 또 뭐라고.
허탈해진 로건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 대. 아닙니다.”
“허어…….”
그렇게 확답을 했음에도 클레이튼의 표정이 변하지 않자, 로건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실 이게 내용도 내용이지만, 절대 혼자서 실험할 만한 규모가 아닙니다. 아무리 천재라도 혼자서는 한계가 있는데…… 하…….”
“무슨 내용인데 그러시는 겁니까? 절대 다른 마탑 게 아니라는 것에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로건이 그렇게 단언했음에도 클레이튼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아주 조심스러운 어조로 다시 말을 꺼냈다.
“일반 금속에 마력을 영구히 부여하는 방법입니다. 아직 허점은 많지만, 기본 틀은 잡혀 있습니다. 이게 완성만 된다면…….”
‘됐다!’
학살의 마도사가 만들어 낸 이론이 고스란히 손에 들어왔다.
거기다.
“또한, 완전하지 않은 이 이론만으로도 공자께서 말씀하신 폭탄을 만드는 데 상당한 진척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긴장한 클레이튼의 눈빛을 보며, 로건은 소리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