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내전이 막 시작되었을 때, 1, 2왕자 파벌이 서로 파악한 전력은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슷했다.
그것은 내전이 시작되었을 때 드러난 두 진영의 최강 전력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한 번에 동원된 적이 없어 그간 소문만 무성했던 일천에 이르는 발터마임 기사단.
그리고 이백여 명에 이르는 빙하의 마탑 마법사들과 더글라스 기사단의 조합은 그야말로 팽팽했다.
게다가 왕국 팔방의 변방을 지키는 변경백들도 사이좋게 반반씩 각 파벌을 지지하고 있었으니.
양군의 최정예는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간을 볼 뿐이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외부의 전선에서나 큰 의미 없는 전투가 반복되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다시금 그 봄이 무르익어갈 때 즈음해서는 중앙 전선에서도 조금씩 한 세력이 우세를 보였다.
아직은 전장에 참여한 병사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지 못했지만, 각 세력의 수뇌부들은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전쟁의 원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더욱 뚜렷이 보였다.
‘균형이 조금씩 기울고 있어. 생각보다 좀 빠른데.’
로건은 10만 골드짜리 녹스의 전쟁 보고서를 내려놓고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국력의 낭비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내전을 원래보다 빨리 끝내려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그의 예측보다 조금 더 빨랐다.
‘아직 준비가 안 끝났는데…….’
외부에서 받아들인 기사들로 인해 기사수는 다시 150이 넘었고, 새로 뽑은 병사들의 기본 훈련도 끝났기에 정규병사의 수만 3,500이 넘었다.
석궁기마대 1천 기도 완전히 복원했으니 비록 1만 자경단 훈련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규 병력만 해도 맥라인의 군사력은 이미 토모도 공략 이전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변경백의 군사력 이상의 힘이 있었으니, 만약 내전에 끼어든다면 변수 역할 정도는 톡톡히 할 것이다.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변수.
하지만 달리 말하면.
‘딱 그 정도일 뿐이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전생에서 왕국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라 불리게 한 내전의 민낯까진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의 정예 병력과 용병들만이 죽어 가고 있을 뿐.
서로 징집병, 즉 일반 영지민들을 전쟁에 동원하지는 않고 있었다.
아직은 양 세력의 수뇌부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을 시기.
그러니 당분간은 기다릴 수 있었다.
“빨리 완성이 되면 좋겠는데.”
“예?”
“으압! 뭐, 뭐야? 너 언제부터 들어와 있었어?”
갑자기 튀어나온 목소리에 기겁했지만, 다행히 익숙한 얼굴, 릭이었다.
“무슨 소리예요! 아까부터 있었는…… 어? 설마? 지금 제 얘기 하나도 안 듣고 계셨죠?!”
“아…… 하하.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말이다. 무슨 말이었지?”
“……에휴. 네, 종놈이 무슨 휴가입니까. 그냥 일해야죠. 편지 심부름 갔다 오면 쉬게 해 주신다더니, 모른 척을 이렇게 하시나.”
“무슨 소리야. 괜찮아, 쉬어. 약속은 지켜야지. 그럼.”
“진짜요?!”
로건의 한마디에 죽상이 되었던 릭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그렇게 피곤했냐?”
“헤헤. 최근에 맥라인 타운에 시장이 생겼잖습니까. 신기한 물건도 좀 들어오고, 구경거리도 꽤 많거든요.”
“넌 피곤하면 그냥 잘 줄 알았다만?”
“저야 자고 싶어도~ 아무래도 여. 자. 친. 구가 서운해하니까 휴가 때는 좀 놀아야죠.”
“응, 그래. 잘 놀다 와.”
“……안 궁금하세요?”
“뭘?”
“제가 방금 여. 자. 친구라고 말씀드렸는데…… 아니, 애인이라고 말씀드려야 아실라나?”
“어. 안 궁금해.”
“…….”
“왜?”
“아……. 뭐, 그럴……수 있죠…….”
한껏 콧대를 세우던 녀석이 왜인지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로건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묵직한 돈주머니 하나를 릭의 손에 들려 주었다.
“좋은 비단으로 라일라 옷 한 벌 해 주고, 맛있는 것도 사 먹어. 충분할 거야.”
“고, 공자님……!”
“왜? 받기 싫어?”
“사랑합니다!”
“징그러, 인마! 떨어져!”
“이참에 공자님도 좀 쉬세요. 에일렌 님이랑…….”
“요놈, 그 입 다물라.”
“왜요! 아무리 기사라지만 명색이 약혼녀인데…….”
“요즘 같은 시기에 무슨 데이트…….”
“우린 어차피 전쟁에 참여도 안 하는데요!”
“그럼 나 데이트하게 그 돈 도로…….”
“잘 다녀오겠습니다!”
우당탕탕!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은 로건은 다시금 서류 가득한 책상 앞에 앉았다.
업무를 다 끝내고 수련도 해야 하니, 오늘도 따로 쉴 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려다가도 문득 릭이 남긴 말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휴가. 데이트.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듯한 그 단어들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졌다.
‘시장 구경이라…….’
로건은 무심결에 에일렌과 시장을 걷는 자신을 떠올리며 웃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그런 평화로운 일상에서나 가능한 것에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니었다.
에일렌은 전쟁 이후 무언가 느낀 점이 있는지 훈련에만 매진하고 있었으니, 자신도 그저 시장이 생길 정도로 발전한 타운에 모습에 만족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시장이라……. 그럼 외지인도 꽤 늘어났을 테니 치안에 더 신경 써야겠군. 특히나 시장이나 관저 쪽에.’
애써 그리 생각하며 스스로의 관심을 돌렸다.
* * *
“비단! 제국산 삼베! 옷감으로 죽입니다!”
“비프로스 성에서 유행하는 꼬치구이 맛보고 가세요!”
“장인이 만든 철제 그릇! 튼튼합니다!”
맥라인 타운의 중심.
전사한 기사들의 추모비가 있는 십자 대로의 중심은 수많은 인파로 시끌시끌했다.
왕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내전이 이곳만 비켜 간 듯한 모양새였다.
맥라인 가문의 영역이 비프로스까지 넓어지자, 물건을 팔기 위한 이들이 맥라인 타운에 줄지어 찾아든 탓에 시장이 형성되고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추위를 피할 집과 식량 문제가 해결된 지 고작 1년.
맥라인 타운의 영지민들은 필요한 생필품들이 많았으니까.
“우리 영지야 더 번창하지 않겠소. 우리 대공자님이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데.”
“그럼. 요즘처럼 살맛 날 때가 없어.”
“암, 그렇고말고. 하하. 아무튼 우리 맥라인 영지는 이제 날아오를 일만 남았으니, 당신도 물건 생기는 대로 다시 찾아오라고. 내 다 팔아 줄 테니!”
중년 중개상의 말에 듣고 있던 사내, 라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렇게까지 번화한 곳일 줄 모르고 물건을 너무 조금 가져왔군요. 하아…….”
한 짐 가득 쌓인 천막의 옷감들을 보며 라프가 한숨을 쉬었다.
“음? 비프로스 성에서도 이미 소문났을 텐데?”
“아. 제가 외지에 나가 있던 참이라 소문에 좀 늦었습니다.”
“아…… 클클. 젊은 사람이 부지런한 모양이야. 역시 젊은 게 좋아.”
소문도 듣지 않았는데 여긴 왜 왔냐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중개상은 이 품질 좋은 옷감을 가져온 청년 보부상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라프 역시 웃음으로 그 너스레를 받았다.
“힘들어 죽겠습니다. 요새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래서 며칠은 쉬어 가려구요. 여기 여관 괜찮은 곳이 있나요?”
“아, 그렇다면 내가 소개해 주지. 깔끔하고 음식 괜찮은 집이 있어.”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라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시끌벅적했던 낮의 맥라인 타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밤이 내려앉은 거리는 한산했다.
수많은 사람과 그에 따른 수요 덕분에 시장도 생기고 여관 같은 서비스 업종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는 맥라인 타운이었지만, 밤을 즐기기 위한 유흥가가 자리 잡기에는 아직 그 역사가 짧은 탓이었다.
그래서 펍의 형식을 갖춘 몇 되지 않은 여관의 1층은 더욱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 여기도 이제 몇 년 있으면 대도시만 해지겠어.”
“그러게. 성도 아니고 일반 마을도 아니고 타운이라니, 누군지 참 발상이 좋아.”
“여기 대공자 아이디어라잖아.”
“이 사람아. 그걸 다 믿어?”
와글와글.
“저기…… 손님?”
소란스러운 와중, 라프는 자신을 부르는 여급의 목소리를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합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시다시피 자리가…….”
“오, 이게 누구야! 랄프 아냐!”
“어? 아시는 분이세요?”
“그럼 그럼.”
자신을 보며 웃는 동료의 얼굴을 보며 라프는 쓴웃음을 지었고, 여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멀어졌다.
“지금은 라프라니까, 썩을 놈아.”
“랄프가 더 입에 붙어. 그냥 랄프로 해.”
항상 이런 식이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사건건 신경에 거슬리는 놈.
“그래서 확인은 됐고?”
“어. 병사야 몇이든 의미 없고, 기사는 서른.”
“기사 서른에 병사 150명이다.”
“맞네. 교차 검증 끝.”
역시나 정보 조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런 놈이 최고의 암살자라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암살자로서 특출난 무력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동료로 삼고 싶지 않은 놈이었다.
“실행은?”
“오늘 밤.”
동료는 시끄러운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안 그래도 작았던 목소리를 더욱 낮춰서 대답했다.
물론 그들은 독순술로 입 모양을 읽기에 목소리의 크기는 상관없었지만, 내용이 문제였다.
“바로?”
“망설일 필요 있나. 우릴 막을 사람은 그 영주 하나뿐인데.”
“그래도 좀 더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 대공자라는 놈한테 비프로스의 쌍검이 한 번씩 낭패를 당했다던데.”
동료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걸 믿어? 고작 스물한 살짜리가? 와, 그 녀석 나중에 전설 속 오러마스터라도 될 만한 인재인가 봐?”
동료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역력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누가 기사 출신 아니랄까 봐. 쯧. 겁먹었으면 나 혼자 하고.”
“하…….”
라프의 얼굴이 이 촌구석의 맛없는 맥주를 처음 먹었을 때처럼 구겨졌다.
녀석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에 새삼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지금 중앙 전선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 녀석과 자신,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제프까지 이런 변방 시골구석에서 며칠이고 죽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말이 아예 틀린 것도 아니었다.
‘조심할 것은 영주와 마법사 하나 정도. 마법사는 굳이 건드릴 필요 없으니 제쳐 둔다.’
라프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 영주는 제프와 부하들에게 맡기고, 대공자 놈은 우리 둘이 함께한다. 각하의 뜻을 제대로 보여 줘야 하는 놈이 그놈이니까.”
“쯧. 겁쟁이 녀석.”
동료는 혀를 찼지만, 그 제안까지 거부하지는 않았다.
* * * 달빛이 흐릿한 밤.
맥라인 타운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북부 관저.
그 근처의 골목에 검은 야행복을 챙겨 입은 복면인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은밀한 움직임. 열셋이라는 적지 않은 수에도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모두 목표는 확인했겠지?”
간신히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한 작은 목소리에 일행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타격을 남기고 바로 빠진다.”
복면인들의 눈빛에 살기가 타오를 때.
“각하의 뜻을 거역한 놈이 어찌 되는지 세상이 다 알 수 있도록.”
마지막 말, 나지막한 목소리가 골목에 퍼지자마자, 그들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유난히 조용한 달밤.
명상에 잠긴 채 자신의 내부로 침잠했던 로건의 눈이 별안간 살짝 떠졌다.
포스유저 상급의 극에 이른 뒤 더 변화가 없던 터라 최근 조급증이 생기기는 했지만, 도중에 명상이 깨질 정도로 미숙하지는 않았다.
눈이 떠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살기……?’
아주 미미하게 공기를 타고 흐르는 불쾌한 느낌.
명상 중에 증폭된 감각이 이 불쾌한 느낌을 읽고 몰입에서 깨어나게 만든 것이다.
‘침입자다!’
로건은 판단이 서자마자 검을 들고, 풍신의 부츠와 괴력의 건틀릿을 착용했다.
우웅.
순식간에 증폭된 신체 능력이 자신감을 북돋웠지만, 갑옷까지 모두 챙겨 입을 시간은 없었다.
그때 이미 창문 아래에서 ‘불쾌한’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슥.
소리도 전조도 없이 귀신처럼 창가로 다가간 로건이 조용히 검을 휘둘렀다.
쩌어억!
황금빛 포스가 이글거리는 검이 그대로 벽면을 갈랐다.
“큽!”
동시에 벽 너머에서 나직한 신음이 들려왔다.
와장창!
로건은 그대로 창문을 뚫고 뛰어내렸다.
분명 손맛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얕아.’
도망치기 전에 끝장을 내야 했다.
우르르릉.
뒤쪽에서 벽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때는 아니었다.
뛰어내린 그가 바닥에 닿기 직전, 그의 눈앞으로 2m가 넘는 새빨간 붉은색 검이 들이닥치고 있었으니까.
‘포스블레이드!’
한밤중의 불청객은 생각보다 까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