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
12화
“확인 끝났습니다. 하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카일에서 말을 달려 이틀 만에 도착한 중부의 영지 하룬.
이곳은 외성에도 두꺼운 성문이 몇십 미터 거리를 두고 두 겹으로 세워져 있었다.
때문에 로건은 카일에 들어섰을 때와는 달리 신분패를 보였음에도 이중의 검사를 거쳐야 했다.
이렇듯 하룬이 엄중한 경계를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와글와글.
안쪽 성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파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인파의 모습은 카일과는 또 다른 의미로 복잡하고 특이했다.
움직이는 인파의 상당수가 팔다리에 족쇄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움직여 이것들아!”
“꾸물거리지 마!”
철썩!
곳곳에 보이는 노예들과 채찍을 휘두르는 감독관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듬직한 덩치와 험악한 인상에 흉기를 든 이들이 지나다녔다.
일반적인 영지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일 뿐이었다.
“역시…….”
현생에서는 첫 방문이었지만 로건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다.
하룬은 중부 최대의 곡창지대인 그란디아 평야의 농업을 관리하는 왕실 직할 도시다.
본래는 그저 농업 도시로 만들어진 영지지만, 너른 평야에서 일할 노예들과 그들을 감독하기 위한 용병들이 계속해서 몰려들면서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별명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노예와 용병의 도시, 혹은 ‘인간 시장’이었다.
‘전생에 용병 일을 이곳에서 처음 시작했었지.’
로건으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하룬의 풍경이지만 카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생을 추억하며 감상에 잠기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최우선 목표는 전생에서 사용했던 그 무기를 만들 기술자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교관부터 구해야지. 아니, 지금은 호위구나.’
로건이 찾는 기술자가 있을 노예 시장은 도시 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위험한 곳이었다.
아무리 로건이 무력에 자신이 있다고 해도 갑자기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그런 것을 일일이 신경 쓰는 것도 노동이니, 그 번거로움을 덜어 줄 호위가 필요했다.
‘교관 겸 호위. 딱 적당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있으려나…….’
전생의 기억을 되새기는 로건의 발걸음이 그가 수도 없이 걸었던 익숙한 거리를 향했다.
턱.
“거, 조심 좀 합시다.”
“뭐 임마?”
칼이나 흉기를 패용한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훨씬 많은 거리.
지나가던 두 거한이 어깨를 부딪치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눈깔 조심해라.”
“너야말로 뒤통수 조심해라.”
하지만 이내 공갈 섞인 험악한 말만 남겨 둔 채 주변의 번뜩이는 눈길들을 피해 돌아섰다.
하룬의 ‘두 번째 명물 거리’인 용병 거리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먼저 무기를 드는 이에게 린치.
단순하지만 확실한 이 규칙이 이 살벌한 거리의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험악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로건은 거리 한편에 칼과 방패가 그려진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란디아 왕국에서 가장 큰 용병 길드, 테이난의 하룬 지부.
얼핏 봐도 얼추 100평은 넘을 듯한 넓은 1층은, 문에 달아 놓은 방울 소리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오늘도 시끌벅적했다.
세 군데로 나눠진 용병 길드의 건물 중 고작 하나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기 남부 지방으로 가는 의뢰가…….”
“제국 방향 호위 의뢰 B급 다섯 선착순~!”
“동부로 가는 의뢰 없어?”
온갖 의뢰가 적힌 게시판과 그 옆에서 육성으로 떠드는 급한 의뢰자들, 그리고 그 앞에 모여든 수십의 용병들.
그들 속에서 로건은 다행히도 자신의 목표를 찾아냈다.
‘빙고.’
다행히 일이 잘 풀리려는지 세 번째 길드 건물에 목표가 있었다.
어디 멀리 의뢰를 나가기라도 했다면 다른 용병을 알아보려 했는데 다행히 최우선 영입 대상을 찾아낸 것이다.
‘카이…….’
카운터에서 용병 길드의 직원으로 보이는 이와 잡담을 나누고 있는 회색 머리 용병.
로건이 알던 얼굴보다 젊어 보였지만, 강직해 보이는 사각의 얼굴과 당당한 체격.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볼에 난 흉터는 로건이 전생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여전…… 아니, 이때가 전성기였지, 참.’
단순히 포스를 각성하지 못했기에 A급 용병이지, 그 무기술과 전투력은 기사조차 방심하면 당할 수 있는 무술의 달인이었다.
활과 창을 비롯해 못 다루는 무기가 없는 그의 무기술은 그를 최강의 A급 용병이라 불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덧붙여 탁월한 기마 실력까지 겸비한 아직 사십 대 중반인 카이솔론은 노련함과 실력을 두루 갖춘 용병이었다.
‘하지만 용병인 지금보다 교관이 되었을 때 그의 가치가 훨씬 크지.’
지금으로부터 고작 1년쯤 뒤, 그가 중한 상처를 입고 일선을 은퇴한 뒤 만든 용병대.
그곳에서 그가 키워 낸 용병들은 동급의 어떤 용병들보다 우수한 실력을 자랑하며 ‘카이솔론 용병대’라는 이름을 용병계 전체에 각인시킨다.
전생의 로건도 그들과 여러 번 같이 일해 보며 그 실력을 체감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실력의 이유로 용병대를 가르친 대장이자 교관, 카이솔론의 교습 능력을 최고로 뽑았다.
다만 부상으로 은퇴하기 전의 그는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직접 싸우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고 들었다.
‘돈을 좀 더 써야겠지.’
어쨌거나 그는 지금 로건이 그리는 용병대의 모습에 더없이 딱 들어맞는 조각이었다.
“카이솔론?”
카이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넨 희멀건 도련님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옷의 문장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당신을 장기로 고용하고 싶다.”
웬 애송이 귀족 도련님인가 싶었지만, 적어도 상식이 있다면 용병 길드 안에서 계약으로 사기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카이의 눈빛이 호의 어린 눈으로 바뀌며 로건을 바라보았다.
“오호? 장기 계약? 좋습니다. 그래,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최소 1년.”
“오, 좋군요.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은?”
“따로 고용할 C급 용병들의 교육과 훈련을 맡아 주었으면 해.”
“교육과 훈련? 어, 저한테 말입니까?”
카이는 당황스러웠다. 기껏 몸값 비싼 A급 용병인 자신을 찾아와서는 교관을 해 달라니?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의뢰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저에 대해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남을 훈련 시켜 본 적이 없습니다만?”
“필요하면 종종 동료들을 잘 가르친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그런 말을…… 끄응. 그냥 임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어린놈들을 몇 수 지도해 준 적은 있었습니다만, 그게 전부인데…….”
“그래서 거절하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차라리 전투 용병이라면 이해하겠는데 교관은 해 본 적이 없어서…….”
완곡한 거절의 표시.
하지만 답은 그의 기대와 달랐다.
“한 달에 4천 골드를 주지.”
그 말에 카이솔론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A급 용병의 최대 몸값은 보통 한 달 기준으로 2천 골드.
느닷없이 찾아온 저 귀족 도련님은 단번에 그 두 배를 부른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교관을 해 본 적이…….”
“6천 골드. 한 달에.”
“죄송한데, 저는 싸우는 임무가 더 좋습니다. 아무리 돈으로 귀신도 부릴 수 있다지만…….”
“8천 골드. 이게 최대야. 더는 안 돼.”
단숨에 네 배가 뛴 몸값에 잠시간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던 카이솔론은 이내 호방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하하, 귀신보단 전사가 낫지요. 저는 카이솔론. 카이라고 부르시오, 고용주. 그런데 뭐 하시는 분입니까?”
애송이 도련님. 아니, 재신(財神)이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 * * 로건이 어딘가의 전쟁을 준비하는 변경백의 자제도 아니고 맥라인 남작가의 대공자라는 사실을 들은 카이는 잠시 놀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계약에 지장을 주진 못했다.
“안 궁금한가? 구석진 시골 영지 맥라인에서 내가 왜 용병들을 고용하려 하는지?”
“돈만 확실히 주면 그걸 궁금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용주.”
“마인드는 확실하군.”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호기롭게 대답한 카이였지만, 로건의 다음 목적지를 듣는 순간 표정이 묘해졌다.
“노예 시장이요?”
용병과 노예. 맥라인 영지에서 하룬까지 온 목적은 확실히 느껴졌지만, 귀족 가문의 자제가 홀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를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 신념대로 이유를 묻지 않았고, 로건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주변 경계는 확실히 해.”
“그거야 문제없습니다. 이곳에서 저를 몰라볼 사람이 있을 리 없죠.”
카이의 호언장담에 로건이 새삼스레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80cm 정도 되는, 용병치고는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군살 하나 없는 체형과 얼굴의 흉터, 전신에 장비한 다양한 무기는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에 대해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피해 가고 싶어지는 모습이었다.
사람을 거래하는 시장, 그렇기에 언제나 사람이 문제인 곳. 노예 시장의 호위로 쓰기에는 더없이 적당한 인상이었다.
“어서 오십쇼~! 어떤 노예를 구하십니까? 조건을 말씀해 주시면…….”
“거기 공자님! 이리 한번 와 보시죠! 어디보다 싸게 노예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룬의 중앙 거리.
대로의 양옆으로 늘어선 거대하고 넓은 천막들은 하나같이 입구가 크게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때 묻고 헐벗은 몰골의 노예들이 용병들의 감시하에 줄지어 서 있었다.
하룬의 첫 번째 명물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예 시장.
정식 허가를 받고 생긴 것은 아니나, 어느 순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천막들은 영지의 묵인하에 하나둘씩 수를 늘려 갔다.
그러다 결국 그란디아 왕국에서 가장 거대한 인간 시장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왕국 내에서 노예를 사려면 하룬의 노예 시장으로 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질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그만큼 문제도 매일 일어나고.’
전쟁에 패배한 적국의 후손이나 중범죄자들의 후손, 세금이나 노역을 피해 도망치다 잡힌 유민들 혹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이들.
저마다 수많은 사연이 있을 다양한 이들의 어두운 시선을 받아 가며, 로건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해지지 않는군.’
전생에서 왕국이 망하고 노예로 전락한 유민들을 많이 봤기 때문일까.
로건의 눈에는 관리하는 이들이나 노예들이나 다 비슷한 신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과는 상관없이,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복잡한 인파는 거짓말처럼 반으로 확 갈라졌다.
그의 바로 뒤를 따르는 카이 덕분이었다.
로건을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로 생각했는지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접근하던 양아치 무리도 그의 뒤를 확인하는 순간 멀찌감치 피해 돌아갔다.
덕분에 귀찮은 일을 덜어 낸 로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목적했던 곳에 별다른 마찰 없이 도착했다.
입구가 닫혀 있는 작고 붉은 천막.
노예 시장의 구석에서는 그런 조그마한 천막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다른 큰 천막보다 더 많은 호위나 용병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런 천막의 앞에서 용병의 호위를 받는 중늙은이가 느긋하게 말을 건넸다.
“젊은 공자님.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오셨는지…….”
“드워프를 사러 왔다. 열어라.”
“오, 제대로 알고 오셨군요. 이종족 노예는 귀해서 특별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여기로 들어오시죠.”
로건의 말에 노예상의 태도가 바뀌며 붉은 천막이 열렸다.
그러자 굳건해 보이는 철창 안에 갇힌, 조금은 다른 모습의 노예들이 로건의 눈에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허름한 옷에도 빛이 나는 듯한 미모가 가려지지 않은 귀가 뾰족한 미녀 둘이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죽어 있는 눈빛으로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지만, 그 모습까지 아름다워 보이는 이들.
“어렵게 구한 엘프들입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엘프 보신 적 있습니까? 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바로 수백 년간 젊음을 유지하고 대부분의 개체가 인간의 미남, 미녀의 기준을 월등히 초월하기에 언제나 노예로서 인기 1순위인 엘프였다.
“허…….”
전생의 로건조차 몇 번 보지 못한 아름다운 이종족의 모습에, 이곳을 근거지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카이도 엘프는 자주 보지 못했는지 눈을 떼지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늙은이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지만 정작 물주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됐고. 저기 저 노예나 꺼내 와.”
오히려 그가 원하는 것은 그 옆에 있는 작고 땅딸막한 노예였다.
“아…… 예, 예. 참, 드워프를 찾는다고 하셨죠? 물론입죠. 꺼내 드려!”
젊은 남자가 엘프 미녀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늙은이가 떨떠름한 안색으로 용병들에게 지시했다.
그런 그를 보며 로건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충동 구매는 사절이야, 늙은이. 그것도 한낱 장식품을…….’
엘프가 선호도가 가장 높은 노예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외모 때문이었다.
당장 전쟁에만 관심 있는 로건이 눈길을 줄 이유가 없었다.
로건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옆에 있기에 유난히 더 못생겨 보이는 난쟁이 노예가 훨씬 가치가 있었다.
“끄응. 젠장.”
일반적인 인간 장정의 허리 정도나 올 법한 키에 옆으로 떡 벌어진 어깨, 배꼽까지 내려오는 길고 흰 수염의 난쟁이가 그를 일으키려는 용병들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꺼운 그의 손발만큼이나 묵직해 보이는 족쇄에 묶여 있으면서도 기가 죽지 않은 듯했다.
“보시다시피 겉보기에도 딱 드워프 아닙니까. 데려가시면 쓸 곳이 많으실 겁니다. 장인의 종족 드워프 중에서도 몇 없는 대가급 장인이라는데, 힘도 좋고 체력도…….”
“대가급!?”
로건의 눈이 절로 커졌다.
늙은이의 말대로 드워프 종족은 저 두꺼운 손가락에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손재주를 타고난 이들이다.
유소년기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만들고 다듬으며 그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종족.
‘거기다 그중에서도 대가급이라니.’
지금 로건이 딱 필요로 하는, 아니 기대를 뛰어넘는 ‘기술자’였다.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알겠고, 얼마요?”
설명을 끊어 버리는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늙은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두 개 들었다.
“하하, 대가급이니 적어도 20만은 주셔야…….”
“쯧. 내가 호구로 보이나?”
그 말에 로건이 주저 없이 바로 뒤로 돌아섰다.
아무리 이종족 노예의 가치가 크다 한들, 건장한 노예의 몇백 배의 가격은 그를 여간 우습게 보지 않는 이상 나오기 어려운 액수였다.
더구나 드워프 노예는 그 장인 종족으로서 유명세와는 달리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까.
“붉은 천막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자, 잠깐만요, 공자님!”
노예상은 다급히 로건을 불러 세우고 흥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거래는 드워프의 가격이 5만 골드까지 내려간 뒤에나 간신히 체결되었다.
“인간. 지독하더군.”
등 뒤에서 소금을 뿌리는 노예상의 모습을 보며 드워프가 툭 말을 던졌다.
노예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지만, 로건은 그 말에도 불쾌한 반응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흠, 뭘. 기본이지.”
드워프 노예에게 존댓말을 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쉽다.
억압할수록 반발하는 종족. 그렇기에 노예로 다루기도 쉽지 않은 종족이었다.
육체는 구속될지언정 말이라도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잊혀 가는 종족의 오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대륙의 상식이었다.
“이제 난 어디로 가나?”
“서남부의 맥라인 영지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부탁한 물건들을 만들게 되겠지.”
“역시 그런가…….”
대답하는 드워프의 눈동자에 암울한 빛이 스쳤다.
사실 장인의 종족인 드워프를 사들이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같았다.
하지만 억지로 노예가 된 드워프가 만든 작품에 완전히 만족하는 주인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장인의 종족이라 한들, 열의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물건이 진짜 작품이 될 수는 없었으니까.
다만 그것을 감안해도 인간의 대장장이보다는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기에 비싸게 팔리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로건에게 팔려 온 드워프 하마르는 그 의욕의 유무에서 오는 성과의 차이가 보통의 동족보다 심했다.
심지어 드워프 상급 장인인 그가 어떨 때는 인간의 대장장이보다 못할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화가 난 전 주인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되팔린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나라고 죽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의욕이란 것이 스스로 조절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주인이 그 사실을 아는 것인지 그의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꺼내 들었다.
“20년. 네가 앞으로 20년 동안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물건을 만들어 준다면, 나는 너를 산으로 돌려보낼 의향도 있다.”
그 말에 하마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