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콰아아앙!
고요한 달밤을 깨우는 폭음.
주르륵 밀려난 복면인의 눈동자가 커지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그의 코앞으로 들이닥친 로건.
“짜릿하지?”
미소 짓는 얼굴의 황금빛 검이 세상을 두 쪽 낼 듯한 기세로 복면인에게 휘둘러졌다.
꽝!!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는 복면인.
“이, 이럴……?!”
아마도 포스블레이드까지 썼음에도 검력에서 밀린 것에 놀란 것이리라.
‘기습한 놈이 방심을 했다라.’
이 웃기는 아이러니에 로건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검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가 방심했다면 그걸 확실히 이용해 주는 것이 도리.
로건의 검 끝에서 뭉쳐진 황금빛이 그대로 쏘아지려는 순간.
뒤쪽에서 서늘한 살기를 느낀 로건이 단금참을 포기하고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파아아앙!
곧바로 그가 있던 자리를 양단하고 지나간 또 다른 포스블레이드.
‘둘이라고?!’
심지어 한 놈의 기척은 공격 직전까지 느끼지도 못했다.
로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최상급기사가 복면까지 뒤집어쓰고 하나를 협공한다고? 자존심도 없나?”
혹시나 하고 한번 긁어 보지만.
스각.
쩌어억.
대답 없이 앞뒤로 칼이 날아올 뿐이었다.
게다가.
– 으아악!
관저 안에서 들리기 시작한 비명까지.
굳어지는 로건의 표정을 보고서야 복면인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분을 거스른 대가다.”
“얌전히 죽어라.”
그 말을 들은 로건은 오히려 슬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 * *
“아이씨. 나 3일 연속 야간인데, 좀 융통성 있게…… 아! 아야! 알았다고요. 가요, 가!”
괜히 꾀를 부리려다 한 대 맞은 맥라인의 병사 잰슨은 관저의 복도를 걸어가며 투덜거렸다.
“그거야 네가 비번 때 레오랑 바꿨으니까 그렇지. 다 네가 자초한 거다. 입 다물고 순찰이나 똑바로 해.”
뒤를 따라오는 고참 병사 핸슨이 투덜거리는 잰슨의 입을 다물게 했다.
연신 뒤를 흘끔대는 모습이 그들의 뒤에서 얌전히 따라오는 기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분명했다.
하필 오늘 그들과 함께 야간 순찰을 맡은 기사는 디그롬.
원리 원칙을 반드시 지키는 꼰대로 악명이 높은 기사였다.
‘엊그제 수위기사 달았으면 기분 좋게 한 번은 농땡이도 치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거참, 대공자는 왜 갑자기 이런 일을 시켜서는.’
잰슨은 자신도 참여했던 싱거운 전쟁, 비프로스 점령전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이 과한 경비가 조금 불만이었다.
밤에는 영주의 가족들과 시종들만 있는 관저에 기사 3개 조(18명)에 병사를 100명이나 매일 투입하는 게 말이나 되느냔 말이다.
‘힘도 겁나 세신 양반들인데. 내가 보호받아야 정상 아니겠냐고. 쳇.’
물론 이런 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깊은 한숨과 함께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휙.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본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잰슨은 훈련받은 대로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주먹을 쥐었다.
– 정지. 이상 사태.
라는 뜻이었다.
졸린 눈을 하고 있던 병사들도 퍼뜩 정신을 차리며 황급히 석궁을 꺼내 들었다.
끼리릭.
크랙이 돌아가며 맥라인 일반 병사들에게는 창보다 익숙해진 무기가 일제히 장전되었다.
동시에.
“위!”
기사 디그롬이 짤막한 외침과 함께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그제야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검은 복면인의 모습이 병사들의 눈에도 온전히 드러났다.
“쏴!”
핸슨의 구령과 동시에 잰슨은 놈을 정확하게 겨누고 석궁을 쐈다.
한번 방아쇠를 누르는 것만으로 두 발의 쿼렐이 거의 동시에 쏘아졌다.
파바바박.
익숙한 파공음.
잰슨의 시력으로 그 움직임을 온전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료들의 것까지 모두 열 발의 쿼렐일 것이다.
그런데 충돌 이후 살짝 비틀거리던 복면인이 번개같이 검을 휘둘러 코앞으로 다가온 짧은 화살을 연달아 쳐 냈다.
채채채챙!
‘저게 사람이야?’
전쟁터에서 가끔 봐 온 광경이긴 하지만, 정말 포스유저라는 인종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익숙한 광경에, 순간적으로 비틀림이 생겼다.
“윽!”
두 발의 쿼렐이 놈의 왼팔과 오른쪽 허벅지를 관통하는 것이 보인 것이다.
‘어?’
잰슨이 제 눈으로 보고도 얼떨떨해하는데.
“다시 쏴!”
무심결에 들린 디그롬의 말에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몇 초 사이 저절로 장전된 연사 석궁이 다시 두 발의 쿼렐을 토해 냈다.
하지만 쏘는 즉시 잰슨은 이 공격이 실패할 것을 예감했다.
이번에 석궁을 쏜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던 것이다.
‘고작’ 두 발.
잰슨의 머릿속에 저 괴물이 화살을 쳐 내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챙!
푸우욱.
극도로 긴장한 덕분일까, 이번에는 놈의 움직임이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놈은 잰슨의 예상대로 검을 휘둘러 두 발의 쿼렐을 동시에 쳐 냈지만, 그중 한 발이 튕겨 나가면서 다시 놈의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사 디그롬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콰아앙!
괴물과 괴물의 격돌.
하지만 그것은 금세 상처 입은 괴물의 패배로 이어졌다.
“잘했다.”
적을 처리한 디그롬이 돌아와 피가 튄 바이저를 들어 올리며 잰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저, 저야 그냥 쏘라고 하셔서 쏜 거 밖에…….”
“그게 잘한 거야. 쏘기만 하면 돼.”
“예?”
“복도. 이 짧은 거리에서는 포스유저도 다 못 막아. 갑옷도 안 입었으니 상급이라도 죽을걸?”
그 냉소적인 대답이 나오는 순간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 으아악!
모두가 화들짝 놀라는데.
“서두를 필요 없다. 한 놈씩 움직이는 걸 보면 적은 소수야. 모두 천천히 전진! 검은 것이 보이는 즉시 쏴 버려! 뒤는 내가 맡는다.”
디그롬이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리더.
원리 원칙을 고수하는 꼰대 디그롬이 병사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 * * 최상급 포스유저를 암살자로, 그것도 둘씩이나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자신이나 가문에 원한을 가질 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요르단 발터마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강수를 뒀다.
몇이나 더 침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둘만 해도 이전의 맥라인이라면 속절없이 당했을 전력이니까.
만약 다른 놈 중에 이런 놈들이 더 있다면…….
‘아냐. 그럴 리 없어. 설령 그렇다 해도 준비는 충분하다.’
로건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바로 앞의 적들에게 집중했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머리 위를 가르고 지나가는 포스블레이드.
정면에 있는 놈의 검술은 굉장히 정석적이고 기본에 충실했다.
더구나 포스블레이드의 가변성을 적절히 활용한 리치 변화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현란하게 바뀌며 로건의 원근감을 현혹시켰다.
그에 반해 나머지 한 사람은 전혀 달랐다.
스각!
섬뜩한 느낌에 바로 옆으로 구르자 귀신같이 나타나 허공을 가르는 포스블레이드가 나타났다.
공격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바로 사라지는 신형.
어둠 속에 스며들 듯 사라지는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말로만 들었던 암살자 출신의 최상급 포스유저.
저런 모습을 보니, 전생에 말로만 전해 들었던 제국의 ‘귀신’들에 대한 소문도 마냥 거짓은 아닐 것 같았다.
스각.
“윽!”
잠시 딴생각을 한 대가일까.
허벅지를 스친 적의 검에 정신을 번쩍 들었다.
위기.
그러나 왜인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지는 여전히 상급이었지만, 자신의 전투력은 아슬란을 패퇴시켰을 때와는 또 달랐다.
그것이 비록 아티팩트 덕분이라도 고무적일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 경지의 두 명에게 협공을 당하면서도 이길 가능성을 떠올린다는 것.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까.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온다.’
로건은 오로지 그 생각만을 떠올리면서 신중히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쾅!
쏟아지는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받아 내고, 물 흐르듯 흘려보냈다.
물론 완전히 다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는 자상에, 어느 순간부터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얼굴 역시 창백하게 질렸을 것이다.
하지만 로건은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복면인들의 복면 속 표정이 더욱 안 좋을 것이라 확신했다.
‘마음이 급할 거다.’
직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비명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았다.
몇 놈이 왔는지는 몰라도 거의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두고 떠날 수도 없었다.
몰리고는 있지만, 빈틈이 보이는 순간 물어뜯을 만한 이빨이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몇 차례나 보여 줬으니까.
그 이빨에 허벅지를 크게 물어뜯긴 정면의 복면인에게서 이내 허점이 드러났다.
“죽어!”
개폼을 잡으면서 그분 운운할 때의 분위기는 더는 없었다.
전신에 붉게 이글거리는 포스와 순간적으로 훨씬 빠르고 강해진 공격들.
‘오버히트.’
뒤를 생각하지 않고 한계 이상의 포스를 쥐어짠 최상급의 공격이 로건은 오히려 반가웠다.
잠시만 버티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채채챙챙!
최대한 힘을 흘리며 방어에 전념하는데.
“흐으압!”
폭발하듯 전면 전체를 휘감는 참격은 요령으로 흘려보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콰아아앙!
거의 10여 미터를 정신없이 밀려나는 순간 등줄기를 파고드는 싸늘한 감각에 억지로나마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결국 시리고 시린, 하지만 화끈한 공격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윽!”
동시에 아찔한 통증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끝이다.”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틀어진 칼날이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순간, 로건은 무의식적으로 검이 아닌 ‘몸’으로, 그것도 뒤쪽으로 황금빛 파도를 쏟아냈다.
콰콰콰콰쾅!
“커흑!”
로건을 죽기 직전까지 밀어붙였던 적이 황금빛 파도에 휩쓸려 튕겨 나갔다.
신검 비전 1식, 파도 가르기가 정석적인 포스 운용도 없이, 그저 의지만으로 몸으로 뿜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쿨럭.
“흐흐.”
피를 토해 낸 로건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약하지만 뚜렷한 형태를 지닌 황금빛 검이 룩스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직전까지 불꽃처럼 이글거리던 포스가 완전히 정련되어 검의 모양을 만들어 낸 느낌.
“포스블레이드…….”
“말도 안 돼!”
로건의 좋지 못한 상태를 말해 주듯 검 끝으로 30cm밖에 솟아오르지 못한 포스 블레이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를 상대하던 적들을 경악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싸우면서 경지가 상승한다는, 영웅소설에나 나오는 거짓말 같은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 것이었으니까.
“죽여! 놈은 중상이야!”
튕겨 나간 암살자가 버럭 소리를 질러 대며 돌진했다.
하지만 그 역시 무심결에 파랑참에 얻어맞은 충격이 컸는지, 이전처럼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는 못했다.
“뒈져라!”
그 고함에 자극받은 전면의 복면인 역시 악을 쓰며 다시 달려들었지만.
“입 털 시간에 공격을 했어야지, 머저리들아.”
오른손의 팔찌에서 뿜어져 나온 흰 빛이 어느새 로건의 전신에 난 상처를 대부분 아물게 만들고 있었다.
이내 그의 검 끝에서 솟구친 1m가 넘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어두운 밤하늘을 유려하게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