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쩌어억.
몸이 반으로 갈라져 내장을 다 토해 내는 시체를 보는 것은 정상적인 감성으로는 즐거운 일일 수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이 한 짓이라면.
하지만 로건은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연히 그것은 그가 괴상한 취향의 살인광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와아아아!”
꾸우욱.
절로 힘이 들어가는 손. 신경의 말단까지 전해지는 짜릿한 전율.
전생에는 꿈도 못 꾸었던 경지를 이루었다.
초인을 사람 이상의 존재로 본다고 치면, 사람으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이룬 것이다.
“해냈다!”
생명의 위기를 넘긴 기쁨과 나라는 존재 자체가 더 상위의 존재가 된 듯한, 격이 상승하는 희열이 겹쳐진 절대적인 기쁨.
그것이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로건을 환호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롯이 그 기쁨을 만끽할 수만은 없었다.
– 아악!
그쳐 가는 듯싶더니 또다시 들려오는 비명.
로건은 안색을 굳히며 바람처럼 관저의 안을 향해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로건의 자부심은 그에 마땅한 결과를 가져왔다.
관저에 들어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대부분 검은 복면을 한 시체였고, 맥라인 병사나 기사로 보이는 이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로건이 발견하고 돌진하는 와중에 병사들의 쿼렐에 꿰뚫려 사망하기도 했다.
그 광경이 로건을 안도하게 해 주었다.
“피해 상황은?”
“아직은 확인된 바가…….”
– 콰아아앙!
로건과 각을 잡고 대답하던 기사의 시선이 동시에 북쪽을 향했다.
“아버지!”
“영주님!”
그 순간, 로건이 먼저 바람처럼 북쪽으로 내달렸다.
채채채챙!
쾅! 콰앙!
뻐어억.
전속력으로 달려간 북쪽 별채.
영주 부부의 전용으로 만들어진 공간 한쪽에서는 일방적인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는 붉은빛 포스블레이드의 모습은 비슷했다.
하지만 하나는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내고만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그를 농락하듯 공격하며 틈틈이 그 뒤로 검을 찔러 넣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버티고 선 자, 패드릭 맥라인의 부상은 계속해서 쌓여만 가고 있었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 것인지 아니면 벌써 내상을 입은 것인지 입가에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상황은 점점 불리해져 갔다.
“여보! 나, 난 괜찮으니까! 그냥 싸워요!”
악을 쓰듯 소리를 지르는 메리안 카이로스.
싸움을 볼 실력도 능력도 없지만, 자신의 앞을 막아선 남편에게 계속 부상이 생기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판단할 머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아내의 외침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패드릭은 연신 상처를 입으면서도 문 앞을 막아선 채 비키지 않고 있었다.
‘미련한 짓을.’
그 광경을 보며 로건은 이를 꽉 악물었다.
결국 자기 목을 조르게 되는 자충수, 답답하게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지극히 아버지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행히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미는 저 판은 자신이 엎을 수 있었다.
로건은 빛살처럼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순식간에 침입자의 등 뒤를 점했다.
그러고는 약점을 잡고 늘어지며 신나게 칼질을 즐기고 있는 이에게 즐거운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미안하다, 친구!”
푸우욱!
“컥?!”
“자세한 대화는 조금 있다가 하자고.”
초면에 등에 칼을 꽂은 친구가 피 묻은 얼굴로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지금까지 파악된 적은 모두 열셋. 공자께서 잡으신 한 놈을 제외하고 남김없이 사살되었습니다. 관저에서 죽은 이는 모두 포스유저 중급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피해는?”
“저희 피해는 병사 다섯 사망에 열둘 부상. 그리고 영주님이 중상을 입으신 것이 전부입니다.”
“……확실해?”
예상보다 훨씬 적은 피해에 혹시나 해서 무리한 방어 체계를 주문했던 당사자가 오히려 놀랐다.
안타까운 사망자도 나오고 아버지도 중상을 입었지만, 침입자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적은 피해였다.
그런 로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기사가 부언했다.
“진짜입니다.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이놈들 저희를 기습하러 오면서 저희에 대한 조사를 전혀 안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연사 석궁에 대해서도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요르단 발터마임 쪽에서 보낸 것이 아닌가?
로저 비프로스와 조금만 대화를 해 봤다면 이놈들이 그런 얼치기 짓을 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용의자가 한 명 뿐이었기에 굳건했던 심증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로저 비프로스가 말을 안 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요르단 공작이 말을 안 했을 수도 있지.’
로건은 칼침으로 인연을 튼 친구와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디 출신이지?”
“…….”
“발터마임 공작가?”
“…….”
“이름은?”
“…….”
“남자는 맞지?”
10여 분이 넘도록 일방적인 대화만이 계속되었다.
쇠사슬에 묶인 친구는 너무 과묵했다.
‘아무 말이라도 떠들기 시작하는 게 시작인데.’
욕을 하든, 거짓말을 하든.
포로가 말을 시작해야 거기서 무언가 엮어 볼 여지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랬기에 로건이 전생에 본 고문의 대가들은 대부분 서로 아는 이야기로부터 말문을 트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자는 아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역시 초면부터 칼침을 놓고, 도망을 못 치게 팔다리의 인대를 다 끊어 놓은 것 때문일까.
‘좀 심한 짓이긴 하지.’
이글거리는 눈빛에만 분노가 가득할 뿐, 입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로건이 고문에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 영지 출신의 맥라인에 고문 전문가가 있을 리도 없었고.
“최상급의 경지까지 수련해 놓고 고작 암살자로 죽으면 억울하지 않나? 기사 출신 같은데.”
“…….”
그 후에도 몇 가지 말을 물어봤지만, 처음과 똑같은 표정은 눈곱만큼도 변함이 없었다.
“흠, 그래. 네 뜻은 잘 알겠어. 존중하지.”
스르릉.
“만나서 반가웠다.”
“공자님!”
기껏 뇌옥까지 와서 혼자 떠들기만 하다 일어서더니 바로 칼을 꺼내 들었다.
간수가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로건도, 죄수도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다만.
“……요르단 발터마임이 부하는 잘 뒀군.”
로건이 뱉어 낸 마지막 말 한마디에 죄수의 입꼬리가 미미하게나마 올라갔다.
“맞네. 발터마임 공작가.”
미미하게 올라갔던 죄수의 입꼬리가 굳어지는 순간.
촤아악!
푸슈슈.
털썩.
피 보라와 함께 놈의 목이 그대로 뇌옥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고, 공자님.”
“맥라인의 영주를 상해 입힌 죄, 사형. 아, 말하고 죽일 걸 그랬나? 씁.”
다음 날.
평화롭던 맥라인 타운은 간밤의 습격 사건으로 시끌시끌했다.
다만.
“들었어?”
“들었지. 근데 누가 습격한 거래?”
“나야 모르지.”
공격자에 대한 맥라인 가문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고, 그저 그 과정에서 희생된 병사들에 대한 추도의 뜻과 그 가족에 대한 보상금만이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로건은 측근들을 불러 모았다.
“영주이신 아버지가 중상을 입고 병상에 누우셨다. 그런데 습격자들의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고, 최상급 포스유저였던 놈들도 얼굴이 알려진 놈이 없어.”
로건의 말에 모인 이들의 안색이 모두 어두워졌다.
“그래서 더 심증은 확실해. 어제의 습격을 사주한 자는 요르단 발터마임 공작이다. 나랑 생각이 다른 사람 있나?”
드웨인, 헤인켈, 필립, 클레이튼.
모두가 로건의 시선을 피해 천장이나 바닥을 바라보았다.
로건의 말대로 너무나도 확실한 심증이었지만, 모두가 약속한 듯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런 모두의 심정이 같았던 듯,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수심만 어려 있었다.
“흠. 그럼 모두 내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안 됩니다! 공자님!”
“공작가는 절대 무리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2왕자파 전체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 전에 저 자본금 빵빵하게 제국 원행 좀…… 어…… 농담, 농담이죠. 아하하, 하…….”
마지막에 필립이 주위의 눈총을 받고 찌그러지긴 했지만, 모두의 뜻이 같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로건은 피식 웃었다.
“왜 내가 공작가에 싸움을 걸 거로 생각해?”
“그거야…….”
“뭐…….”
몰라서 묻냐는 눈빛이 가득 되돌아왔다.
엄밀히 말해 도발을 한 것 자체가 로건이 먼저 아닌가.
다행히 로건은 모두가 안도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인간이라고. 지금 요르단 발터마임을 공격하면 우리는 다 죽겠지. 내가 공작이라도 우리부터 족칠 테니까. 후안 더글라스만 땡잡을 거고.”
후우우우.
모두가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니, 근데. 경고 좀 어겼다고 암살자 떼거리를 보내는 게 인간이야? 어떻게 되먹은 새끼가 자기 말 한 번 무시했다고 사람을 다 죽이려고 해? 미친 새끼 아냐, 그거! 일상생활이 가능해? 사람이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그 뒤로 10여 분이 넘게 거침없는 욕설이 이어졌다.
모인 이들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창백해질 때.
“하. 지. 만!”
쾅!
“우린 참아야지. 왜?!”
“…….”
“힘이 없으니까! 먼저 뺨따귀를 맞았는데! 같이 때리면 나만 죽으니까! 억울해도 참아야지! 왜?!”
쾅!
“힘. 이. 없으니까.”
“…….”
“참 꼴사납지 않아? 지금 나만 억울해? 응?”
저벅저벅.
신경질적인 걸음 소리가 침묵 속에서 귓가를 자극했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숨 막히는 정적 끝에, 로건이 불쑥 물었다.
“헤인켈 단장. 기사들 훈련 상태는?”
“……만전입니다.”
“새로 등용한 기사들은 믿을 만해?”
“믿건 안 믿건,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따를 수 있게 굴려 놨습니다.”
“좋아, 드웨인.”
“예?!”
화들짝 놀란 행정관이 애처로운 눈길로 로건을 바라보자.
“재정 상태, 식량 상태 괜찮아? 제2타운에 상당량이 투입됐을 텐데?”
“……다소 빠듯하지만 수확기까지는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타운 공사가 끝나면 자금의 여유도 좀 생길 것 같구요.”
“좋아.”
“클레이튼 님. ‘그거’ 개발은요?”
“몇 달…… 아니, 한두 달 내로 시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개발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절로 상기되는 분위기. 무언가 해내고 말겠다는 무형의 사기가 끓어오르는 순간 로건과 눈이 마주친 필립이 힘차게 일어났다.
“앉아. 왜 일어나?”
“……예.”
“크크크.”
분위기를 풀어 주는 웃음이 좌중에 번지자, 로건이 필립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양 파벌에 식량 판매 업무, 잘했다. 언제나 성과급은 넉넉하게 챙겨 줄 테니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말해 다오. 그리고 이 난리가 정리되는 대로…… 알지?”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도 여러분 덕에 희망이 있다.”
신경질적인 표정이 미소로 바뀌고.
“내가, 아니 우리가 언젠가는 이 수모를 제대로 갚아 줄 힘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웃음기 어린 얼굴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그리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
“다들 조금만 더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면 맥라인의 모든 영광은 그대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날 이후, 맥라인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 * * 두두두두두.
“더 빨리! 좀 더!”
히이이잉!
“낙마한 애 빨리 사제한테 데리고 가! 그리고 다음!”
병사들의 훈련은 조금 더 과격해졌고.
“포스유저는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한계라고 생각할 때 한 걸음 더 내딛어라. 그리고 그것을 습관화해라.”
헤인켈은 죽기 딱 좋은 요구를 하며 미친 듯이 기사단을 굴렸으며.
“여, 영주님이 죽을 뻔했다고?”
“전쟁이 날 거라는데?!”
“미친! 우리 영지만큼 살기 좋은 데가 어디 있다고!”
“우리가 영지를 지켜야 해!”
자경단에 지원하는 영지의 남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이 더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