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이건 연사 석궁과는 또 다릅니다. 그 구조가 간단하여 언제고 알려질 무기와 제작법이 없으면 흉내도 못 내는 무기, 어느 쪽이 더 중요한 지는 두 분 다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로건은 리베라티오의 개발에 관한 건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길 원했다.
그리고 그에 클레이튼과 하마르도 호응했다.
“제작법의 전체를 알고 있는 것은 저와 하마르 공뿐입니다. 참여한 제자들이나 드워프들은 각기 맡은 세부 사항만을 알 뿐이지요.”
“재료 배합 비율과 마나 조율 방법을 모르는 한, 설령 누가 본다 해도 흉내는 못 낼 거요, 주인.”
“좋습니다. 계속 이대로 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법.
로건은 두 사람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꺼내 들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지원금을 30% 늘려 드리겠습니다. 하. 지. 만! 만약, 제자분들에게라도 제작법이 노출되면 그 즉시 지원금을 아예 지급 중단하겠습니다.”
클레이튼에게는 돈으로.
“수고했어. 계약 기한을 3년 차감해 줄게. 하지만 다른 드워프들이나 장인들이 제작법을 알게 될 경우, 기한 끝날 때까지 쉬는 날은 없다.”
하마르에게는 자유로.
각자가 가장 원하는 것을 주고, 또 그것으로 제한을 걸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페널티보다는 보상에 더 집중했다.
“물론입니다, 로건 님.”
“당연히! 맹세코 비밀을 지키겠다, 주인!”
두 사람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로건의 손을 굳게 잡았고.
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보상으로 돌아왔다.
* * *
“……연사 석궁의 개량품?”
“그렇다, 주인.”
“그런 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쉬운 게 아니라니까! 대량 생산은 무리고 효용도 떨어지지만, 지휘관 전용으로 소량 생산은 괜찮을 것 같다는 게 나와 그 마법사 양반의 의견이오.”
“……일단 한번 보지.”
그렇게 찾아간 마탑.
로건의 손에 들린 것은 기존의 연사 석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시위와 화살촉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연사 석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탄창이 분리되지 않고 석궁과 일체화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나 공명 때문에 도저히 분리형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만 된다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대량 생산을 노려 볼 만했을 텐데…….”
“탄창이 이렇다는 건 설마 이게 소모품이라는 겁니까, 클레이튼 님?”
“예. 유감스럽지만 한 번에 두 발씩 총 다섯 번, 열 발의 화살을 다 쏘아 내면 바로 파기할 수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제작 단가는요?”
“그게…… 3천 골드가 조금 넘습니다.”
“하나당?”
“……예.”
로건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리베라티오 같은 경우엔 훨씬 싼, 거의 1/40의 가격으로 2서클 전투 스크롤에 버금가는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것에 그 효용성이 있었다.
그런데 일회성 소모품의 가격이 3천 골드가 넘어간다면 과연 그만한 효용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냥 2서클 스크롤보다 50%는 더 비싼데, 일체형에 틈도 없는 걸 보아하니 두 분이 합심해서 만들어야 하는 것 같고…….”
“맞습니다. 단가의 문제를 떠나 저와 하마르 공이 함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영지 최고의 마법사와 장인의 시간을 동시에 잡아먹는다라……. 단가도, 효율성에도 큰 문제가 있다는 건데 어째 자신 있다는 표정이시군요.”
“일단 한번 써 보시죠.”
단점만 늘어놓았으면서도 클레이튼의 험상궂은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마르 역시 피식 웃고 있는 게, 절로 기대감이 들었다.
그리고.
꽈과과과광!
연사 석궁-아티팩트 버전은 그 기대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목표 지점에 적중한 쿼렐은 곧바로 폭음과 함께 충격파와 화염을 터트리며 반경 5m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동시에 쏘아진 두 발의 화살이 연속해서 일으킨 폭발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듯, 더욱 강렬해 보이는 불꽃과 소음은 덤이었다.
화살 한 발 한 발에 리베라티오의 파괴력을 그대로 담은 것이 무려 열 발.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웠는데, 그 사거리가 무려…….
“두 배 이상? 거의 500m에서 600m까지 힘을 잃지 않는 것 같은데……?”
놀란 눈의 로건을 보며 클레이튼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예. 마나 공명을 시위에도 적용했더니 사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적어도 수뇌부나 수위기사들, 혹은 병사들 총지휘관용 소모품으로 소수만 제작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만드세요! 이거면 완전히……!”
“하지만 하나 만드는 데 저와 하마르 공이 하루를 꼬박 집중해야 합니다.”
“……아.”
안타까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1년 365일 작업해도 365개.
그것도 소모품이었으니, 돈이야 얼마가 들건 일단 작업 시간 면에서 문제가 컸다.
하마르와 클레이튼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이 물건만이 아니었으니까.
“……두 달 안에 최대한 되는 대로만 생산해 주세요. 딱 지휘관들에게만 비상용으로 지급하면 되겠군요.”
일반 병사가 써도 평기사 정도는 확실하게 때려잡을 수 있는 물건.
비록 소수라도 비장의 카드로는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요?”
“그때쯤 쓸 일이 생길 겁니다.”
로건의 살벌한 미소에 클레이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봄이 다가오고 날이 점점 뜨거워질 무렵.
토모도와 실반 사이, 구 맥라인 평야에 건설을 시작했던 두 번째 타운이 입주민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맥라인 타운을 만들었을 당시와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잘살고 있었는데 굳이 왜…….”
“그러게. 난 누가 뭐래도 마을을 지킬 거구만.”
타운의 이주는 명령이 아닌 권유.
때문에 비프로스 치세에서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온 비프로스의 영지민들은 대다수가 그 마을에 남았다.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은 이들에게는 지나친 모험이었다.
새집을 제공해 준다는 말도, 기존 땅의 경작권을 보장한다는 말도 이들을 흔들 수는 없었다.
실반의 영지민들 또한 소토 실반의 죽음 이후 훨씬 나아진 세율과 식량 배급 정책 등으로 인해 터전을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농사짓기도 힘들었던 과거의 맥라인 영지와는 달리, 세금만 과중하지 않다면 그 땅에서 적당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흉년이 든다면 타운이건 마을이건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테고.
실반과 비프로스가 맥라인 아래로 합쳐지며 사라진 영지의 경계선, 비옥한 땅들에 대한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 들을 뿐이었다.
결국 기존의 주민 중 새로운 타운으로의 이주에 응한 것은 극소수로, 새롭게 독립하여 가정을 만든 청년들 정도뿐이었다.
다만 그를 대신하듯, 내전 이후 맥라인에 흘러들어 온 중소 영지의 유민들이 신 맥라인 타운의 빈자리를 그나마 채워 들어가고 있었다.
“공짜로 집을 준다고?!”
“경작지도……?!”
“이게 대체 무슨 행운이래. 신이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유민들은 아직은 이름도 모르는 이 땅의 지배자를 칭송하며 하나둘 타운에 정착했고, 로건은 그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뭘 그리 안도하십니까? 어차피 채워질 거라고 말씀하신 건 공자님이셨는데.”
드웨인의 말에 로건은 피식 웃었다.
“실반과 토모도 사이에 건설된 타운은 일종의 장벽이야.”
“예?”
“맥라인 평야는 북쪽으로는 구릉 산맥이 있고, 동쪽에는 맥라인 성이, 서쪽에는 테스론 성이 들어서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지. 두 성만 잘 막으면 방비에는 어려움이 없어.”
“예? 공자님. 갑자기 그게 무슨…….”
방비. 로건의 불길한 단어 선택에 드웨인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구 맥라인 평야는 비프로스 성과 토모도를 비롯한 세 개의 성과 실반, 페레타 영지에 인접하여 나눠진 땅이야.”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중 북부로 분류되는 비프로스의 성들은 사실상 근거리에 붙어 있어 유사시에 전력 지원이 가능하지. 우리가 고전했던 것처럼. 하지만 남부, 토모도 성에서 실반 성의 사이. 그 사이는 도보로 3일 이상의 거리 차이가 있어. 그 사이로 적이 들이닥쳐서 남부부터 깽판을 치면 방비하는 쪽에서는 굉장히 골치 아파지지.”
“그거야 저희 남쪽을 누가 공격할 때의 얘기…….”
헛웃음을 짓던 드웨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간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지금 누가 저희 영지에 쳐들어올 것을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것도 왕국 내에서?”
“그래. 그래서 굳이 실반과 토모도 사이에 타운을 지은 것이기도 해. 양측으로 성까지 하루 미만의 거리. 훌륭한 장벽이 되겠지. 평야를 지킬 수 있는 방패가 될 거야.”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신 맥라인 타운 주민들한테는 자경단 훈련을 필수로 시켜. 집과 땅을 줬으니 반발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치안도 확실히 잡을 겸.”
이렇게까지 지시하니 드웨인도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었다.
“예. 하긴 하겠는데…… 이게 대체…….”
드웨인은 로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왜 우리가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하시는 거지? 우린 중립인데? 설마…….’
로건은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드웨인의 불길한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현실로 이루어졌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꽂히는 한여름이 시작될 즈음.
로건은 가신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선언을 내뱉었다.
“내전에 참가해야겠습니다.”
정례 회의 기간, 여러 가지 의제로 시끄럽던 대전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요즘 귀가 안 좋은지 이상한 소리가 들려.”
“대공자께서 지금 뭐라고……?”
“내전이라고 하신 것 같은데…….”
서로의 눈치를 보던 가신들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할 때.
속삭이는 가신들의 목소리를 뚫고 큰 목소리 하나가 터져 나왔다.
“설마 했는데 지, 진짜요?! 대체 왜요?!”
가장 높은 지위의 덩치 큰 털보 행정관의 비명과 함께, 대전은 한순간에 소란이 일어나며 시끄러워졌다.
“……예?!”
“우리 지금 잘살고 있는데 왜요?!”
“대공자님! 대체 뭐 땜에……?!”
“조용! 조용!”
쾅! 쾅!
“모두 조용히 하고 대공자의 말을 들어 보거라!”
미리 이야기를 끝내 둔 아버지 역시 표정이 굳어 있긴 했지만, 약속대로 엄중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로건이 한 발 앞으로 나와 다시 한번 단호하게 주장했다.
“우리도 내전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 영지 지금 잘되고 있지 않습니까? 타운도, 사업도……?”
“이대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번영이 약속되는데…….”
웅성웅성.
로건은 소란스레 떠드는 가신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대로 이 땅만 지키고자 한다면.’
하지만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내전이 점차 격화되는 요즘, 난민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중앙의 양 파벌 정예들이 몸을 사리는 과정에서 갈려 나간 중소 귀족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이후 창궐한 강도 떼와 민중 반란을 중앙에서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
어찌 중앙만 그럴까. 지금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시대의 귀족들 대다수는 타 영지의 상황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면 말이다.
더구나 내전이 끝난 후에 어찌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는 지금은 더더욱 ‘밖’의 상황에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차마 로건에게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의견을 눈빛으로 쏟아 내는 가신들.
그 앞에서 로건은 차분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내전을 최대한 이른 시간 내에 끝내고 이 사태를 종식시키는 것만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한 가장 올바른 길이 될 것입니다.”
뭐래?
대공자 갑자기 왜 저래?
가신들 사이에서 눈빛 대화가 치열하게 오가는데.
주변을 둘러본 로건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라고 거창한 이유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로건을 바라보는데.
“이대로 중립을 유지한다면, 어느 쪽이 승리하건 우리 맥라인은 망합니다.”
로건이 던진 폭탄선언에 다시금 대전이 소란스러워졌다.
“그게 무슨……?”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가셨다.”
“우린 1왕자파와는 척 안 졌잖아.”
“가뜩이나 그쪽이 이기고 있는데.”
“조용!”
쾅. 쾅.
패드릭이 다시 한번 장내를 진정시키고 물었다.
“로건, 이유는?”
전쟁이 끝난다면 공신들에게는 보상이 필요하다.
그들이 2왕자파 귀족들이 가진 것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다.
적대 세력을 찢어 먹고 난 다음에는 중립을 지켰던 이들을 뜯어먹기 시작할 거다.
실제로 전생에 1왕자 로히터와 후안 더글라스가 벌였던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구체적인 이유를 가져다 댈 필요도 없었다.
‘더 납득하기 쉬운 게 있으니까.’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 말하지만, 막상 인간이 의사 결정을 할 때 합리적인 논리만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인간의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대다수가 감정적인 요인.
하고 싶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감정과 욕망이 인간을 움직이고, 그것을 ‘합리’로 포장할 뿐이다.
그러니 가장 완벽한 설득은 결국 감정을 움직이는 것.
“1왕자파에는 카이로스와 울브스가 있습니다. 그것도 1왕자파의 가장 큰 자금원이 되는 두 가문이죠. 이대로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이 과연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둘까요?”
실제로 그들에게 감정이 있는 것은 맥라인 측.
카이로스나 울브스가 맥라인을 어찌 생각할지는 그들에게 물어봐야 정답이 나올 것이다.
그야말로 빈약한 논리와 근거.
하지만 로건의 그 한마디로 가신들의 표정은 확 바뀌었다.
“그럼…….”
“아예 지금이라도 1왕자파 편을 들어서…….”
“후환을 예방하자는 것인가. 과연…….”
대전의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던 그때.
“우리는 2왕자 파벌에 참여할 것입니다.”
로건이 다시 한번 대전을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