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비프로스가 있는 파벌에?”
“받아 주지도 않을 텐데요?!”
“심지어 지금 지고 있는 파벌에 왜?”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봐도 로건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말이었으니까.
“공자님. 왜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그 계획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드웨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문관 가신의 수장으로서 모두의 의문을 대신해 그가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로건의 대답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기고 있는 쪽에 손을 보태 봐야 얼마나 고마워하겠나. 그냥 가문의 파멸이 조금 늦춰지는 꼴이 될 뿐이야. 지고 있는 쪽에 가세하여 전세를 뒤집어야 얻는 게 많겠지.”
로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맥라인에게 나라 전체가 반으로 쪼개져 벌이고 있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가 성립한다면.
“……저는 그저 침몰하는 배에 뒤늦게 올라가는 꼴이 될까 두렵습니다.”
드웨인은 ‘너 지금 제정신이냐’는 말을 빙빙 돌려 말했다.
“침몰하는 배는 아니지. 돛 한두 개 부러지고 밑창 구멍 나기 직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항해를 해 나갈 여력이 있어.”
그나마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알면서 미친 짓을 하려 하니 더 환장한다고 해야 할까.
드웨인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복잡한 마음에 일순간 말을 내뱉지 못했다.
주변을 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가신들 대다수가 자신과 비슷한 표정일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눈앞의 대공자는 가신들이 그러건 말건 자기의 의견을 관철하리라는 것 또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뭐 하자고 해서 잘못된 거 있어? 믿어 봐. 또 해낼 수 있으니까.”
뻔하게 예상되었던, 저 전가의 보도 같은 핑계에 딴죽을 걸 용자는 더 이상 이 가문에 존재하지 않았다.
“끄으응…….”
“혹시 그러다 망하면 어찌 되는 겁니까?”
“헛?!”
머리를 쥐어뜯던 드웨인이 구세주의 음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필립!’
묘한 회색 눈동자가 유독 개성적인 유능한 청년이 뻔뻔하게 얼굴을 들어 올리고 로건에게 물었을 때.
드웨인은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처럼 감동 어린 눈동자로 필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 망해. 자신 있거든.”
“근거를 말씀해 주실 수는 없구요?”
“지금은 곤란해.”
“흠. 또 그러시네……. 뭐 공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실패한 적은 없지요. 근거야 나중에라도 말씀해 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왜 물어봤냐.
그럴 거면 왜 나섰냐고!
드웨인은 너무도 손쉽게 다시 주저앉은 필립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차마 필립의 질문이 혹시나 모를 가신들의 반발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로건과 미리 말을 맞춘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누가 반박을 하라고! 논리적으로 회의를 풀어 가자고! 이게 회의야? 통보지!’
차마 자신도 꺼내지 못한 말을 묻어 버린 가슴이 답답해 앓는 소리를 내던 드웨인이 속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대공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시뻘게진 얼굴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때 그 사건 요르단 짓이라면서요! 근데 왜 2왕자파를……!”
전후 사정만 알면 누구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꺼낼 수 없는 말을 귓속말로나마 빠르게 성토해 보지만.
“걱정하지 마. 그건 그거대로 톡톡히 대가를 받아 낼 테니까.”
역시나 기약 없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 답을 할 때 로건의 입가에 맺힌 싸늘한 미소가 마치 자신을 향한 경고 같아, 드웨인은 힘없이 쭈그러들고 말았다.
“허으…….”
결국.
“가신들은 전쟁을 준비하라! 2왕자 측과 이야기가 되는 즉시 출병하겠다!”
사실상 대부분의 권한을 로건에게 위임해 버린 영주의 선언을 드웨인은 막을 수 없었고.
바로 그날.
맥라인의 통신이 발터마임 공작가를 향했다.
* * * [2왕자파에 합류하겠습니다.]
맥라인의 선언은 통신을 담당하던 관리를 기겁하게 했고, 이내 그 성의 주인을 불러내게 만들었다.
그리고 성의 주인은 그 고마운 말에도 차가운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이제 와 우리에게 합류하겠다? 내가 그 말을 어찌 믿지?”
싸늘한 냉소. 하지만 통신구 속 얄미운 붉은 눈동자는 빙그레 웃음 지을 뿐이었다.
[뭐, 굳이 거부하신다면 1왕자파로 가도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정말 거부하시겠습니까, 각하?]그 말 한마디에 요르단 발터마임이 폭발했다.
와장창!
“감히 네놈이 나를 가지고 놀려고 해?!”
고함만으로 책장과 책상이 엎어지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통신구를 간신히 받아 낸 관리가 질린 기색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렸다.
평상시의 요르단 발터마임이라면 이 정도 말로 이렇게 흥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이어지는 수세 속에서 어렴풋이 다가오는 파멸의 예감이 그의 마음속에서 여유를 조금씩 앗아 가고 있었다.
그가 준비한 밑천을 다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하하. 제가 어찌 각하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얼마 전에 그렇게 무서운 선물을 받았는데.]하지만 상대방의 웃음기 어린 한마디가 정신을 다시 차갑게 가라앉혔다.
랄프와 제프 형제.
자신이 보낸 최상급기사 형제와 거기에 더해진 최상급 암살자까지.
그들이 모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생각대로 그들은 정말 저 건방진 놈의 영지에서 명을 다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을 티 낼 수는 없었다.
“흐. 선물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하여간 뭐든 그 때문에 우리 파벌에 합류하겠다고?”
[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밀리고 있는 쪽에 합류해서 전세를 뒤집는다면, 훗날 얻을 것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밀리고 있는 쪽.
외부에서 보는 시선 역시 그렇다는 것에 요르단의 눈매가 조금 더 일그러졌다.
하지만 답변은 태연했다.
“밀리고 있는 쪽이라면 1왕자파에 합류하겠다는 말이겠군. 그 말을 왜 여기서 하지?”
[흐음. 저와 판단이 조금 다르시군요. 뭐, 각하께서 그렇다면 그러신 거겠죠. 어쨌건 저희의 합류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로건의 말에 요르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암살자를 보낸 자의 밑으로 들어오겠다니.
대놓고 뒤통수를 노리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뭔가.
“조건이라……. 내가 그 조건을 굳이 들을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상대는 태연하게 자신의 할 말만 늘어놓았다.
[어렵지 않은 요구입니다. 승리한 후 저희가 점령한 비프로스의 영지에 대한 인정과, 맥라인과 인접한 칼리아 후작령의 땅 절반을 원합니다. 그리고 후작위는 몰라도 저희 조상께서 잃어버리셨던 백작위 정도는 확답을 받아 놔야겠습니다. 어떠신지요?]로건이 내건 조건은 의심을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과했다.
무시하려던 요르단이 무심코 대꾸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 수하의 땅을 무단으로 점령하고는 그것을 인정해 달라? 거기다 후작의 영지 절반? 하하. 어이가 없군. 지금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가?”
[저희가 짊어져야 할 위험 부담에 비하면 그리 과한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빙긋 웃는 놈의 낯짝을 보니 요르단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 이런 상황만 아니더라도 놈이 이렇게 자신 앞에서 건방을 떨 수는 없을 것이다.
대화를 더 이어 가 봐야 자존심만 상할 노릇이라, 그는 이쯤에서 통신을 끝내려 했다.
“굽히고 들어올 거면 직접 이곳으로 와서 얘기해라. 내 앞에 서서 똑같은 말을 지껄일 수 있다면 인정해 주지.”
절대 응할 리 없으리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통신구 너머의 건방진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렇습니까? 좋습니다.]“뭐? 허…… 오겠다? 허허.”
요르단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조건이 너무 과하지 않느냐. 이미 저들끼리 나눠 먹기로 되어 있는 땅일 텐데.”
“지금 시점에 그런 걸 따지고 있다면 2왕자파는 그냥 망하겠죠. 그리고 조건이 과한 만큼 의심도 없앨 수 있을 거구요.”
“의심? 의심이고 자시고 합류하는 즉시 우리를 화살받이로 쓰려고 할 거다.”
“그거야 감수해야죠.”
“애써 키운 가문의 전력이 애꿎은 데서 박살 날 수 있어.”
“에이, 또 그러신다. 아버지도 리베라티오를 보고 나서 허락하신 거잖습니까.”
다른 이들이 아는 전력과 지금의 맥라인의 실제 전력은 전혀 달랐다.
기본적인 군사력도 차이가 나지만, 거기에 엄청난 신무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비밀을 아는 관계자들은 설사 화살받이가 된다 해도 거꾸로 화살 부대를 잡아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패드릭의 걱정은 또 다른 것이었다.
“바로 그 리베…… 뭐시기 때문이다. 내가 나이를 먹어 소심해진 것인지,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지켜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힘이 증명되고 나면,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함부로 꺼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 불리한 쪽에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그 생각뿐이냐?”
“예?”
“나는 네가 정말 로메인 왕자를 왕으로 만들려 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어서 말이다.”
패드릭은 그랑 노블레스(Grand noblesse)에서 있었던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내전을 촉발시킨 그 사건을 보며 웃고 있던 아들의 모습.
그때 죽은 서기관 래리 클래트는 2왕자파 문관 귀족의 중진이었다.
그로서는 아들이 주장한 이 내전 참여가 그때의 일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짐작이 들었다.
“뭐, 로메인 왕자도 왕이 될 만한 자질이 아니긴 하죠.”
그리고 아들의 미소가 그 불길한 짐작을 표면으로 끌어 올렸다.
“너 설마…….”
“난세입니다, 아버지. 오늘의 적이 내일의 아군이 될 수도,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될 수도 있지요.”
박쥐 짓을 하기에는 두 파벌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간 것 같다만.
“우리는 그 사이에서 최대한 가문의 이득을 챙기면 그만입니다.”
아들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노파심에 나오려던 말을 막았다.
“그래. 그래야겠지.”
사실상 가문의 전권을 넘긴 지도 오래. 이제는 그저 믿고 나아갈 뿐이었다.
패드릭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 큰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말없이 어깨만 두드려 주었다.
왜인지 모르게 차오르는 불길한 예감을 굳이 밖으로 내뱉어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었으니까.
‘내가 늙긴 늙은 모양이야. 근거도 없는 예감은 무슨.’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으로 간절히 염원했다.
이 길의 끝에 부디 영광만이 함께 하기를.
혹여나 그 길에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생긴다면…….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러니 신이시여. 제 아들들의 앞날에는 빛만을 내려 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일평생 찾지 않았던 신까지 찾아 가며, 패드릭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억눌렀다.
* * * 로니안은 최근의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전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외부의 일.
오히려 가문은 고토를 복구하며 이백 년 전의 영광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 내전을 통해 그 이상의 성세를 일구어 낼 것이다.
어쩌면 가문의 전설 속에서만 전해 들었던 그란디아 왕국의 건국 공신이자 가문의 시조인 검성(劍聖) 애덤 맥라인 님이 건재하던 시절처럼 무소불위의 가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형님이 계시니까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자신은 형의 옆에서 그 영광을 개척하는 검이 되어 모든 역사를 이끌고 기록하는 첨병이 될 것이다.
로니안은 그렇게 다짐하며 매일매일 수련에 힘썼다.
다시는 힘이 부족해 ‘형의 계획’을 수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러던 어느 날.
가문이 다시 출병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명령이 떨어졌다.
“……가문을 지키라고요? 제가?”
“두 타운을 포함한 열 개의 성에 기사 여섯 명씩 한 개 조와 병사 백 명씩만을 남겼다. 넓어진 영지에 비하면 너무 적은 수야. 가문의 직계가 남아서 기사들을 지휘하고 자경단 훈련도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형님.”
로니안은 벌써 세 번째 설명을 줄줄 뱉고 있는 형의 얼굴을 보며 말을 막았다.
“음?”
“꼭 필요한 일이겠지요?”
“……그래. 엄밀히 말해 이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니까 가문의 직계가 모두 갈 필요는 없다.”
“최악의 사태가 생긴다면 제가 가문을 이어야 할 테고요.”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형님. 저도 이제 어린 나이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 하시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필요성도.”
그 말에 로건은 입을 다물고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제 고작 열여덟 살. 하지만 키는 어느새 자신과 비슷하게 자랐고, 빛나는 붉은 눈이 자신감 어린 미소와 함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게만 생각했던 동생의 얼굴에서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는 힘든 상황에서 홀로 가문을 이끌고 제국과 싸우던 오러유저의 얼굴이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그에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인 로건이 나직이 웃음 지었다.
“하하. 그래. 내가 잔소리가 심했던 모양이다.”
“다녀오십시오. 돌아오실 때까지 영지는 제가 지키겠습니다. 확실히.”
“……믿겠다.”
동생의 어깨를 두드리며 돌아서는데, 묘하게 뿌듯한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어느새 든든하게 자란 동생을 온전히 믿고…….
“그래도 혹시나 만약의 경우에 말이다…….”
“형님. 제발 좀…….”
체면이 조금 무너지기는 했지만, 노파심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때니까.’
결단코 자신이 걱정 과한 꼰대이기 때문은 아니다.
로건은 그렇게 스스로를 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