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작전(?)을 전달하자마자 헤인켈이 거세게 반발했다.
“시험이 있을 거라는 거야 예상했지만, 이건 너무 합니다! 그냥 우리끼리 죽으라는 말 아닙니까!”
“합류하기 전도 아니고, 이미 합류한 지금 다시 갈라져 나가 적진의 뒤를 노려라? 농담이겠지, 로건?”
패드릭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지만.
로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현실입니다. 공작이 제 생각보다 더 속이 좁더군요.”
“허허. 그래서 대안은 있느냐?”
“없습니다. 그냥 해내야지요.”
태연한 대답에 막사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것도 잠시,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의견들이 터져 나왔다.
“작전을 따르는 척하다가 바로 후퇴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본진으로 유인하는 방향으로…….”
“명령 거부로 2왕자파가 우리를 쳐 낼 핑계가 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지금 출발해서 성을 멀리 우회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다 발각되면 1왕자파의 전면 공격을 받게 됩니다!”
“연사 석궁을 최대한 활용해서 유격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거리를 유지한 채 치고 빠진다면 큰 피해를…….”
“5천의 대군으로 유격전이라니! 차라리 기사들과 석궁기마대만…….”
“조용, 조용!”
탕. 탕.
시끄러운 좌중을 정리시킨 로건이 모두 조용해진 것을 확인한 후 차분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1왕자파가 우세해졌다고 한들, 아직 큰 차이가 벌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잡기 위해 많은 병력을 빼지는 못할 겁니다. 잘해야 변경백 하나 정도의 군대가 오겠지요. 이미 오랫동안 합을 맞춘 하나의 군대 정도.”
“예전의 비프로스 정예군 정도라는 말이지 않느냐.”
패드릭의 말에 막사 내에 있던 수위기사들과 헤인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중 대다수는 토모도 전투의 경험이 있는 이들.
당시의 비프로스와 비슷한 전력의 군대와 회전을 벌인다는 상상에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 것이다.
비프로스가 변경백들 중에서도 강력한 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그런 어두운 분위기를 보며 로건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유격전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그나마 현실성 있겠군요. 헤인켈 경, 그 가능성은 어떠하리라 봅니까?”
“……사거리를 유지한 채 치고 빠지는 유격전을 벌인다 해도, 석궁기마대가 적 기사단까지 뿌리칠 수는 없습니다. 기사단을 막으려면 저희도 기사단이 나서야 하고, 기사단끼리 맞붙기 시작하면 그 순간 전면전이 됩니다. 기사단을 버리는 패로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에 다시 막사가 조용해졌다.
“결국엔 승리한다 해도 피해가 엄청날 것입니다. 그래서야 저희가 지금 파벌에 합류한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렇겠군요. 하지만 전면전이 벌어져도 큰 피해 없이 이길 수 있다면요?”
“……예?”
“클레이튼 님. 충분히 가능하겠지요?”
로건의 시선이 막사 구석으로 향하자 모든 이의 시선이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좌중의 시선을 받은 험악한 인상의 중년 마법사는 자신감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무슨……?”
“마법사님?”
“이게 무슨 말이야?”
좌중이 다시 소란스러워지자 손을 들어 진정시킨 패드릭이 로건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첫 전투부터 그것을 쓰자는 말이더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는 게 저뿐입니까?”
헤인켈이 억울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은 패드릭, 로건, 클레이튼 셋뿐이었다.
“마탑과 공방에서 힘을 합쳐 준비한 신무기가 있습니다. 미리 말을 하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헤인켈 경.”
“신무기……요?”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고, 그런 만큼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하하. 뭐, 그런 것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정말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무기……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믿겠습니다.”
금세 밝아지는 헤인켈의 표정.
가문의 중역임에도 중요한 비밀에 대한 언질을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런 단장을 따라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위기사들 역시 마찬가지.
수년간의 폭발적인 성장과 전투로 쌓인 굳건한 신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에 로건도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맥라인 가문이 2왕자파에 합류했다? 허…… 그놈들이 미친 건가, 아니면 요르단이 미친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후안 더글라스의 바로 뒤에서 답이 돌아왔다.
“어느 쪽이건 죽을 목숨이 늘어난 것뿐입니다.”
“하하. 너무 냉정한 것이 아닌가 카이런. 그래도 옛 동문 아니던가? 한때는 자녀끼리 약혼도 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미 끝난 인연일 뿐입니다.”
은발에 검은 눈동자를 지닌 수려한 외모의 중년인은 공작의 말에 담담히 대답했다.
“냉정하구만. 아쉽지는 않나? 그래도 옛 고토까지 복원한 가문인데. 그 연을 잇고 있었다면 놈들이 우리 편을 들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야.”
빛나는 백금발에 새파란 눈동자.
다른 성을 이은 공작이긴 하나 눈앞에 있는 후안 더글라스의 몸속에 그란디아 왕실의 피가 진하게 흐른다는 증거를 보며, 카이런 울브스는 속으로 냉소했다.
부계보다 모계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이 마도사의 욕망은 더 오를 수 없는 신분의 한계를 깨고 원래대로라면 앉지 못할 자리에 앉는 것.
그 길을 막는 이가 있다면 누구라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엇나간 맥라인은 그의 심중에 이미 제거 대상일 뿐이라 짐작했다.
답이 정해진 질문.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며 정해진 답을 뱉을 뿐이었다.
“그랬었다면 각하와의 연을 잃었겠죠. 훨씬 큰 것을 얻었는데 어찌 작은 것에 연연하겠습니까.”
“허허. 그래도 나는 좀 아쉽구먼. 우리의 인연이야 어차피 이어질 것 아니었는가?”
“……그 미련, 다음 전투에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호오? 자신 있는가? 놈들은 비프로스를 물 먹인 것들인데.”
“그조차 꼼수일 뿐입니다. 그리고 놈들이 가진 비장의 무기 역시 이미 저희 가문에서 입수한 지 오래입니다.”
“비장의 무기?”
“훈련이 끝난 정예병이 이제야 합류했습니다. 다음 전투에서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래? 뭐, 기대해 보지.”
1왕자파의 성에서 오간 짤막한 대화.
맥라인의 파벌 합류가 가져다준 여파는 아직은 고작 이 정도뿐이었다.
아직은.
* * * 외부에는 드러나지 않은 치열한 암살전이 다시금 서로 무위로 돌아가고, 한동안 뜸했던 전면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외로 먼저 칼을 빼 든 것은 밀리고 있던 2왕자 쪽이었다.
– 출진하라!
뿌우우우우!
힘찬 나팔 소리와 함께 알룬 성의 동쪽 성문이 열리고 엄정한 표정의 기사들이 말을 몰고 나오기 시작했다.
몇 개월간의 전투에도 1천에 가까운 수를 유지하고 있는 발터마임 기사단을 필두로 끝없이 병력을 쏟아 내는 성문.
5만에 가까운 병력이 모두 쏟아져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만 해도 두 시간이 훌쩍 넘었고, 자연히 그 시간 동안 상대편에서도 대응하듯 대군이 튀어나왔다.
적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로브를 입은 수백 명의 마법사 집단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워낙 큰 숫자이다 보니 전체적인 규모도, 움직임도 양측이 비슷하게만 보였다.
유일한 차이라면 성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성벽을 우회해 2왕자 군의 오른편에 정렬한 맥라인 군 정도.
알게 모르게 적군과 아군의 모든 시선을 끌어모은 가운데, 그 전면에 선 패드릭이 다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하나 잘못되는 순간 우리는 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의 시선은 적군보다는 아군임에도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2왕자 군에게 꽂혀 있었다.
“당장이라도 놈들을 공격하고 싶게 만드는군.”
“뭐, 당연한 겁니다. 지금의 이 회전도 아마 우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먼저 벌인 것일 테니까요.”
그리 말하는 로건의 태도는 담담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죽일 놈들을 최대한 빨리 죽이고 전쟁을 끝낸다.’
이것은 그 목표를 위한 첫발.
그런 생각을 하는 로건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1왕자 군만이 아니라, 2왕자 군의 정예들까지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전장을 메우는 커다란 고함이 울려 퍼졌다.
– 돌격하라!
뿌우우우!
동시에 울리는 나팔 소리와 성벽 위 여기저기에서 휘날리는 깃발들.
쿠궁.
동시에 내디딘 대군의 첫 발걸음은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박력이 느껴졌다.
그런 느낌 때문이었는지, 패드릭의 지시는 한 박자 늦게 나왔다.
“우리도 출발한다!”
좌우에서 크게 흔들리는 깃발이 5천의 대군 구석구석까지 군주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양쪽에서 천천히 총합 10만의 대군이 가까워지는 사이.
맥라인은 유난히 튀는 움직임을 보이며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전장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 진영의 수뇌부 모두가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첫 만남에 수모를 주고 말도 안 되는 작전까지 맡겼는데 그냥 움직이네요, 공작?”
로건이 뇌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2왕자 로메인은 새파란 눈동자보다 더욱 차가워 보이는 눈빛으로 우회하는 맥라인 군을 보고 있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합니다, 왕자님. 곧 진심인지 아닌지가 드러나겠지요.”
역시나 냉정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요르단의 얼굴에는 약간의 의혹이 떠올라 있었다.
‘정말 작전 그대로 간다고?’
투항을 가장한 기습까지 예상했던 그로서는 전혀 뜻밖의 움직임.
자연히 맥라인의 움직임을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당연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박살이 나겠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맥라인 군을 바라보는 로저 비프로스와.
‘흐음. 과연?’
흥미 가득한 눈빛의 루첸 탈로스 등.
전군에 흩어져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는 2왕자파의 수뇌부들도 저마다의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적들이 아닌, 맥라인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맥라인의 움직임은 그들보다는 1왕자 군에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저 미친놈들이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후안 더글라스의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는 1왕자파 수뇌부 대다수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켜보기만 할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병정놀이하듯이.”
푸하하하.
전시 상황, 게다가 격돌 직전임에도 부관의 한마디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최근 몇 번의 회전에서 우세를 보인 파벌의 우위가 만들어 낸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여유는 곧 자신감의 표현이라, 후안 더글라스 역시 굳이 웃음소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순간적으로 한층 더 어지럽게 흔들리는 깃발 신호에서도 증명되었다.
“테란 자히드 백작에게서 우회하는 병력의 요격을 맡겨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리마 타힐 백작에게서 같은…….”
“오스틴 트럼벨 백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울브스에서도…….”
불과 얼마 전까지 시골 어딘가의 남작가일 뿐 이름조차 몰랐던 가문.
내전의 시작과 함께 꼼수로 백작령을 차지했다 한들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저 숫자 역시 그저 오합지졸일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 당연했다.
후안 더글라스 역시 웃으며 명령했다.
“카이런 울브스에게 맡겨라. 일전에 장담한 것도 있으니 확실한 성과를 보이겠지.”
“예!”
그렇게 내려진 간단한 결정 끝에, 1왕자파에서 5천이 넘는 일군이 떨어져 나왔다.
“확실히 악연은 악연이야.”
카이런 울브스는 멀리 보이는 불꽃 문양의 깃발을 보며 살짝 미간을 좁혔다.
삼십여 년 전, 수도의 아카데미에서 만난 한낱 남작의 자제는 실로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그 재능에 이끌린 것은 카이런 자신 역시 마찬가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의 미래를 보고 자녀끼리의 혼약까지 걸었다.
하지만 그 재능은 그저 한때였는지, 서른이 되기 전 상급기사가 되었던 그 ‘친구’는 그 후 20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었다.
비록 상급기사만 해도 강력한 전력이라고는 하지만, 사오십 대의 상급기사는 울브스 가문에만도 열 명 가까이 존재하는 재원.
변경의 시골에서나 큰소리를 칠 만한 경지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식의 파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파혼한 가문이 파혼 이후 연신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그 무력의 근원인 신무기 역시 누구보다 빨리, 어렵사리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라리 다른 변경백을 상대했다면 승산이 있었을 텐데.”
이번엔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실패 이후에 나서서 더 큰 성과를 노려 볼까도 싶었지만, 그렇게 아군의 세력을 깎아 봤자 대승적인 차원에서는 손해였다.
그래서 먼저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자네에게서 비롯한 무기로 자네를 망하게 만들겠구만. 미안하네, 패드릭.”
카이런은 들릴 리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원래부터 압도적인 기사 전력. 거기다 신무기까지 가지고 있으니.
‘질려야 질 수가 없지.’
카이런 울브스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맥라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꽈과과과광!
전혀 예상치도 못한 광경 앞에서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