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늑대 깃발! 울브스입니다!”
“울브스? 카이런 이놈이?!”
아버지가 이를 가는 모습이 보였지만, 로건은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범인의 몇 배 이상 예리해진 로건의 시야에 이상한 물건들이 보였던 것이다.
4천이 넘는 적 병사들이 하나같이 들고 있는 익숙한 물건들.
더구나 이 시대의 일반적인 진형과는 정반대로 병사들의 뒤쪽에 위치한 적 기사단.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진형배치였다.
오직 한 가지 무기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맥라인만의 진형.
‘연사 석궁?!’
예상치 못한 사태에 로건의 눈빛이 흔들렸지만,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어차피 언제고 석궁이 풀릴 것은 예상했잖아.’
로건의 시선이 흘깃 옆으로 향했다.
토모도 성에서 다수의 석궁을 가져간 비프로스.
만약 퍼진다면 비프로스부터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지. 리이나……. 그래, 그때부터군.’
생각해 보면 울브스는 임포릭을 팔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연사 석궁에 관심이 있었다.
언뜻 떠오르는 은발 미녀의 얼굴을 곧바로 지워 낸 로건이 스스로 장비하고 있던 석궁을 꺼내 들었다.
연사 석궁에 리베라티오의 위력을 담은, 폭탄궁이라 이름 붙인 소모품 아티팩트였다.
“로건?”
때가 올 때까지 완전히 숨기기로 했던 무기를 꺼내 드는 모습에, 패드릭이 당황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하지만.
“적들이 연사 석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초전에 박살 내야 합니다.”
로건은 그 말과 함께 헤인켈에게 신호를 보내고 미리 폭탄궁을 지급한 인재들을 주변으로 끌어모았다.
아버지와 헤인켈, 자신을 포함해도 고작 열여덟 기.
로니안, 빅토르, 에일렌을 비롯하여 석궁기마병 중에서도 기사 수련생으로 분류된 우수한 병사들, 개중에서도 포스의 흡수가 유난히 빨라 이른 시일 안에 기사가 될 것 같은 이들에게만 쉽게 죽지 말라고 배정한 무기들.
로건은 그중 병사들 열두 명을 모조리 불러모았다.
만일을 대비해 지휘부의 폭탄궁은 남겨 놓더라도, 이들에게 나누어 준 무기는 소모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고작 여기서 주춤하면 안 돼. 압도적으로 짓밟아야 한다.’
물론 모조품이 원본보다 나을 확률은 낮았다.
하지만 그 짐작을 시험해 볼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신호하면 적들을 향해 폭탄궁을 일직선으로 발사한다.”
“예?”
“적 병사들이 연사 석궁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리 뛰어난 시력을 가지고 있어도 확인이 힘든 거리.
하지만 로건의 말을 의심하는 자는 없었다.
모여든 이들은 일제히 푸른 빛이 은은히 감도는 석궁을 꺼내 들고 전면을 겨눴다.
그리고 적이 500여 미터 앞까지 다가왔을 때.
“쏴!”
단순한 명령과 함께 병사들 12명의 손에서 쏘아진 24발의 푸른빛 쿼렐이 연이어 허공을 가로질렀다.
로건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적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리.
하지만 직선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푸른빛 쿼렐들은 빽빽하게 모여 있는 적 병력을 무리 없이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악!”
“뭐, 뭐야!”
“마법! 마법이다!”
뒤쪽의 울브스 병사들의 진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콰콰콰콰쾅!
“아악!”
“사, 살려 줘!”
“불이야!”
삽시간에 흐트러지는 진형.
병사들 시선에서는 적이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갑자기 아군 전력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불과 12개의 폭탄궁에서 쏘아진 120개의 폭발 쿼렐이 만들어 낸 커다란 균열.
그 상황에서도 돌진을 시작한 적 진영은 점차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건은 그 모습을 보며 그 균열을 몇 배는 더 크게 만들 신호를 보냈다.
‘벌써?’
석궁기마대의 뒤쪽에서 삼십여 대의 수레를 끄는 병사들을 독려하던 클레이튼은 생각보다 이른 폭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들리는 고함과 비명.
“클레이튼 님!”
지휘부에서 흔들리는 깃발이 예정된 작전의 변경을 알려 왔다.
“얘들아! 지금이다!”
“예!”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클레이튼은 본인 역시 10여 개의 중급 마정석을 들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르게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학파의 비전 마법을 사용했다.
“일어나라!”
크그긍.
땅 위로 집어 던진 마정석들이 저마다 넓은 범위의 흙덩이를 뭉쳐 내며 사람의 형상으로 다시 일어섰다.
클레이튼이 만들어 낸 15개체의 3m짜리 골렘과 제자들이 만들어 낸 11개체의 골렘.
그리고 가장 빠르게 만들어진, 하지만 유난히 작은 1.5m짜리 골렘이 자기보다 더 작은 소녀의 명령에 따라 수레를 향해 뛰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골렘들이 저마다 손아귀에 한 움큼씩 푸른색 돌멩이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적까지 거리 400m!”
클레이튼의 고함과 함께, 골렘들은 일제히 같은 동작을 취했다.
인간이 아닌, 마법으로 이루어진 골렘들은 단기간의 훈련만으로도 정확한 각도에 정확한 힘으로 정해진 동작을 수행할 수 있었다.
“던져!”
쿠웅.
살짝 힘을 주는 순간 붉게 달아오른 돌멩이들은, 인간을 초월하는 괴력을 지닌 골렘의 손아귀에서 전방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꽈과과과과과광!
전장에 파멸의 전주곡이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이게 뭐야!”
언제나 단아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던 카이런 울브스가 냉정을 잃어버리고 연신 소리를 질렀다.
적들을 밟아 버릴 회심의 무기들이 사용해 보기도 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영주님, 마법입니다!”
“적진에 마도사라도 있는 거야?! 이게 말이 되냐고!”
마도사가 있어도 이렇게 한 번에 수천의 대군을 폭격하는 것은 무리였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전장.
결국 카이런 울브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기사단! 기사단을 돌격시켜라! 난전으로 돌입한다!”
서로의 군대가 섞여 들게 되면 이런 무지막지한 마법(?) 투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믿을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단지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보병들 일제 장전! 돌진해 오는 기사들을 향해 일제사 준비!”
총교관이자 보병부대장인 카이솔론의 명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쏴!”
달려오는 기사단을 향해 이제는 맥라인의 상징이 된 쿼렐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타다다다당!
울브스 기사단의 돌진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사 석궁에 대해 미리 대비를 한 것인지, 화살만으로 무너지는 기사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탄 말은 그렇지 못했다.
히이이잉!
선두부터 말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
카이솔론의 신호를 받고 맥라인의 또 다른 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궁기마대 좌우로 전개! 두 부대로 나눠 사거리를 유지하며 무너진 병력을 공략한다. 무리하지 말고 치고 빠진다!”
“예!”
히이이잉!
자신들과 같은 평민 출신의 기사, 같은 훈련을 받았던 빅토르의 외침과 함께 석궁기마대가 일시에 내달렸다.
그들은 석궁의 공세가 집중되는 중앙 전장의 좌우로 산개하여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사실상 발이 묶인 적 기사들을 향해 석궁을 들어 올렸다.
“쏴라!”
파바바박.
“아악!”
적 기사단에서 처음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3천이 넘는 병사들의 쿼렐 공세는 훌륭하게 막아 냈지만, 곧바로 옆구리로 쏟아지는 또 다른 쿼렐의 세례는 기사들에게도 재앙이었다.
하지만 쏠쏠한 전과를 낸 석궁기마병은 계속해서 기사들을 노리는 대신 혼란에 빠진 적 병사들의 진형을 향해 돌진했다.
“모조리 초토화시킨다!”
“예!”
– 네가 일반 병사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선두에 선 빅토르는 주군의 말을 되새기며 검 대신 석궁을 들어 올렸다.
일반적인 기사라면 반발했을 수도 있는 조치.
하지만 빅토르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적 병력을 최대한 빨리 쓰러트려야 리아가 더 안전해진다.’
그러니 어떤 수단을 쓰건, 적 병력을 빨리 분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이 빅토르에게는 최선이었다.
훗날, 어찌 보면 전생의 귀족 학살자(Nobel Slayer)라는 별명보다 더욱 흉악한, 학살자(The Slayer)라는 이명을 만들어 낸 빅토르의 마음가짐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아아악!”
적진의 후방에서 터지는 비명들이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빅토르가 이끄는 석궁기마대가 울브스의 병사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는 뜻.
이에 맥라인 최강의 병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들. 가자.”
“예!”
맥라인의 최상급기사 둘을 포함한 기사 153명.
그리고 군주의 명을 따라 마지못해 합류한 페레타의 기사 62명.
총합 200명이 넘는 기사들이 하나둘 낙마하는 울브스의 기사단을 노리며 출발했다.
“사격 중지!”
“중지하라!”
적절한 시기에 외쳐진 카이솔론의 지시에 죽음의 비가 멈추자, 울브스의 기사들은 움찔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때, 반수 이상이 낙마하고 다친 200여 명의 울브스 기사단을 향해 쌩쌩한 맥라인의 기사단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기사단의 가장 앞에서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수백 발의 쿼렐을 빈틈없이 막아 내고 있던 자.
울브스의 유일한 최상급기사이자 울브스의 기사단장, 소드 브레이커(The Sword Breaker) 닉 마셀은 돌진해 오는 적 기사단을 보며 살기를 폭발시켰다.
고작 영주 하나가 상급기사인 것이 전부인 시골 영지 놈들이 신무기에 잠깐 낭패를 본 자신들을 우습게 보고 정면으로 덤빈다고 여긴 것이다.
“아만! 라세르! 준비해! 주제를 모르는 놈들을 박살 낸다!”
“예!”
“맡겨 두쇼, 단장!”
크고 작은 덩치의 두 부하가 그의 좌우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중심으로 울브스의 기사들이 점차 기세를 끌어 올렸다.
“울브스를 위하여!”
“위하여!”
‘화끈하게 제압한다. 그리고 전세를 바꾼다.’
닉 마셀은 후방의 비명을 억지로 무시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했다.
전투의 승패는 결국엔 언제나 기사, 혹은 마법사들의 전투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
마법사보단 기사의 수가 월등히 많은 세상이니, 기사단의 승패가 곧 전쟁의 승패나 다름없었다.
‘병사들의 무기 따위.’
적 기사단만 격퇴하면 승기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시작부터 완벽히 처리해야 했다.
그는 가까워지는 적의 선두, 새파랗게 어려 보이는 붉은 머리 애송이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뒈져라!”
꽈아아아앙!
살기 가득한 음성과 함께 그가 들고 있는 강철의 대검이 일순간 깨져 나가며 강렬한 포스를 실은 수십개의 파편이 전면으로 쏘아졌다.
왕국 3대 부호 중 하나인 울브스의 기사단장쯤 되는 그가 아티팩트나, 미스릴 보검도 아닌 커다란 강철 대검을 대여섯 자루씩 짊어지고 다니는 이유, 그의 고유한 기술인 브레이크 웨이브(Break Wave)였다.
그는 그 공격이 애송이를 난자하고 적 기사단 선두를 뒤집어엎어 버릴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콰아아아앙!
붉은 머리 애송이의 전면에서 쏟아진 황금빛 파도가 그가 만들어 낸 브레이크 웨이브의 파편을 쓸어 내고 역으로 그를 덮쳐 온 것이다.
“말도 안…….”
닉 마셀은 당황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또 다른 대검을 꺼내 휘둘렀다.
다행히 완벽하게 발휘된 포스블레이드가 여력을 잃은 황금빛 파도를 반으로 갈라 냈다.
하지만.
쩌어어어엉!
적의 검에서 솟구친 2m가 넘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곧바로 그의 대검을 파고들었다.
달려오던 기세, 들고 있는 검의 질, 그리고 무엇보다 본질적인 기량의 차이.
그 모든 것이 만들어 낸 결과는 아주 싱거웠다.
쩌억!
붉은빛 검날이 감싸져 있던 크고 아름다운 대검의 끝이 힘없이 잘려 나가는 것을 본 순간.
닉 마셀은 본능적으로 뒤로 굴렀다.
그리고 그것이 잠시나마 그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었다.
파아아아앙!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
서늘해진 가슴에 눈을 부릅뜨는 순간.
번쩍!
상대의 검 끝에서 쏘아진 황금빛 빛줄기가 허망하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흑!”
“컥!”
“아악!”
닉 마셀의 가슴을 통과하고 쏘아진 황금빛 빛줄기가 뒤편에서 몇 명의 비명을 더 만들어 냈지만, 그는 더 이상 신경 쓸 수 없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 서늘한 바람이 그의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으니까.
채 몇 초가 지나기 전에 의식이 흐려지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은 그 짧은 시간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닉 마셀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황금빛 포스블레이드의 모습을 꺼져 가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이렇게 허망하게.’
촤아악!
몸과 분리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머리.
그의 각막에 붉은빛의 또 다른 포스블레이드가 부하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새겨졌지만, 이미 영혼이 떠나간 머리는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