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갑자기 터지기 시작한 폭음과 함께 병사들이 무너질 때부터, 카이런 울브스의 표정 역시 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뭐, 뭐야? 마법?!”
하지만 그가 아는 마법은 이렇게 장거리에서 산발적으로 적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괜히 4서클 이상의 최고급 마법사나 초인인 마도사가 같은 경지의 기사에 비해 더 우대받는 것이 아니다.
그런 희소 자원이 아니라면 전쟁에서 마법사의 역할은 그저 보조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영지의 몇 되지 않은 마법사들이 기사단의 선두에 강화 마법을 걸어 주고 뒤로 빠진 것처럼.
“스크롤, 스크롤입니다! 아무래도……!”
“헛소리!”
왕국 3대 부호 중 하나인 자신도 전투에서 스크롤을 이렇게 쏟아붓지는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의 사정거리는 마법사가 직접 쓰는 것보다 스크롤이 더 짧았다.
도무지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공격으로 인한 혼란.
그때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한 카이런 울브스의 표정은 닉 마셀의 목이 날아가며 기사단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 절정에 달했다.
“이, 이런 미친! 어떻게 이럴 수가?!”
짓씹은 입술에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그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이 짧은 교전 시간 동안 입은 손실이 6개월이 넘는 내전 동안의 누적된 손실에 버금갈 정도였다.
아니, 가장 중요한 전력인 기사단의 피해만 따지면 훨씬 더 컸다.
무엇보다 최상급기사 닉 마셀이 죽었으니까.
“후, 후퇴! 후퇴하라!”
여섯 명의 호위기사에 둘러싸인 그의 입에서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고, 대기하던 부관이 명령에 따라 미친 듯이 깃발을 휘둘렀다.
적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자신의 세력을 깎아 먹는다?
그런 희생으로 충성심을 인정받고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었다면 내전은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파벌 가릴 것 없이 고위의 귀족들은 몸을 사리고, 저마다 휘하의 중소 귀족들 병력만 앞세워 전투를 치렀기에 지지부진해진 전쟁이었다.
카이런 울브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벌의 승리 이전에 자신의 세력 보존이었다.
“석궁을 쏴! 적 기사단을 막으라고!!”
적을 박살 내고 공훈을 세우게 만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회심의 무기는 적의 발길을 묶는 정도로밖에 활용하지 못했다.
그나마.
“쏴라!”
고함과 함께 쏘아진 적들의 연사 석궁이 사정거리나 위력, 모든 면에서 한층 더 뛰어났다.
결국, 사방을 둘러봐도 자신의 병력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광경밖에 안 보였다.
‘원본보다 낫다고? 어디가? 그놈들을 그냥………….’
부드득 이가 갈렸지만, 그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남은 병력이라도 보존해야 했고, 그 이전에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했으니까.
“쫓지 마라! 전열을 정비해라!”
전장의 중앙에서 붉게 솟아오른 아버지의 포스블레이드.
로건은 이미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주하고 있는 적 기사단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선두를 무너트리자마자 발 빠르게 후퇴를 선택한 울브스 백작의 판단이 웃기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울브스 기사단은 대다수가 그 목숨을 보전했지만, 수확은 있었다.
‘그래도 최상급기사는 잡았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상급기사 두셋을 처리한 것 같았다.
울브스 기사단은 다시는 맥라인의 앞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걱정했던 적의 연사 석궁 역시 원본보다는 확연히 약했다.
‘우리를 깔본 건가?’
대체 뭘 믿고 나선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대승입니다, 공자님!”
함박웃음을 짓는 헤인켈의 표정이 과하지 않을 정도의 압승이었다.
“우리 피해는?”
“기사단은 중상자 다섯, 사망자 둘. 병사들은 100여 명의 중경상이 전부입니다.”
“……좋군.”
단순히 좋다고 말할 수준이 아니라 환상적인 결과였다.
이게 어디 비등한 전력끼리의 회전에서 나올 수 있는 수치이던가.
하지만 로건은 자꾸만 들뜨려는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뒤를 돌아보았다.
막 부딪치기 시작한 양 진형의 군대가 주춤해 보이는 것은 자신만의 착각은 아닐 터였다.
‘더 보여 주지. 앞으로 우릴 어찌 대해야 할지 견적을 내 보라고, 요르단 발터마임 공작.’
로건의 미소와 함께 울브스를 박살 낸 맥라인이 그대로 전진했다.
“미친…….”
저도 모르게 나온 욕설에 2왕자 로메인 폰 그란디아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요르단 공작을 비롯한 2왕자파의 수뇌부 역시 거의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으니까.
대다수가 눈앞의 회전보다는 멀리 ‘그’ 전장에 시선이 가 있었다.
투신하겠다고 온 놈들이 혹시나 배신하지는 않을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벌인 회전.
얼핏 치열해 보이는 대전은 결국 힘없는 중소 귀족들만 갈려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주력이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은 1왕자파 역시 마찬가지.
어느 한쪽이 특별히 틈을 보이지 않는 한, 휘하의 귀족들이 모두 갈려 나가지 않는 한 이 ‘뻔한’ 대치는 지지부진하게 지속될 것이었다.
특별한 명분보다는 눈앞의 이득을 위해 뭉친 세력들.
가장 힘이 강한 자들이 오히려 몸을 사리며 약한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
그리고 어느 정도 덩치가 있는 아군은 함부로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이기적인 전쟁이 바로 이 내전의 본질이었으니까.
“저게 어떻게 가능한 겁니까? 지금 부딪친 지 한 시간이나 됐습니까?”
“변경백의 전력이 순식간에 3할이 깎여 나갔습니다. 저 정도면 적어도…….”
열심히 떠들던 부관이 옆에 있던 누군가의 눈총을 받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초인이 포함된 공작령이나 후작령과 고작 남작의 군대를 비교하는 것은 좀 그랬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드러난 결과만 봐서는 카일 후작령 수준은 되겠군.”
“각하!”
요르단의 단언에 오히려 주변이 화들짝 놀랐다.
“뭐가 문제인가. 저 전력이 곧 우리의 힘이 되는 것인데.”
“공작 말이 맞아. 진짜 배신이었다면 꽤 고생했겠는걸?”
왕자의 말에 요르단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고생이 아니라 치명상을 입었겠지.’
맥라인의 전력도 전력이거니와, 저런 전력을 얕보고 있었던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만큼 이 초전의 결과만으로도 맥라인을 향한 의심은 대부분 씻겨 나갔다.
‘비프로스의 영지 인정과 칼리아 후작령의 절반, 그리고 백작의 작위…… 그런 건방진 요구를 할 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라…….’
헛웃음이 나오는 결과.
하지만 그럼에도.
‘시건방진 짓거리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묻도록 하지.’
요르단 발터마임의 눈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시린 한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죄. 그리고 ‘자신이 보낸 수하들을 해한 죄’.
그는 평생 손해를 보고 그냥 참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그와는 별개로 입 밖으로 나오는 명령은 올곧았다.
“맥라인이 곧 적들의 후방을 공격할 거다. 신호를 보내라. ‘진짜’ 전면전이다.”
그나마 떠들썩한 2왕자파의 반응과는 달리, 반대편 세력의 수뇌부는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내가 뭘 본 거지? 나 몰래 장난하는 건가? 아니면 울브스가 내 생각보다 오합지졸이었던 건가?”
“……박쥐 놈들이 생각보다 강한 독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로히터 왕자의 독백에 후안 더글라스가 넋두리처럼 답했다.
쾅!
“그래서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꼬락서니를 보고만 있을 거야?!”
“왕자님, 지금은 방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후안 더글라스가 가리키는 곳은 측면이나 후방이 아닌 전방.
중앙에서 부하들의 싸움을 지켜만 보던 정예 전력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후방으로 돌아간 놈들이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전방에서도 몰아닥칠 겁니다. 제 곁에서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이런 빌어먹을…… 이게 무슨…….”
로히터 왕자의 욕설 섞인 독백은 후안 더글라스 공작의 심정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줄타기나 하던 박쥐 놈들이 대체 어떻게…….’
의문은 여전했지만, 당장은 이 위기부터 넘기고 봐야 했다.
“오늘은 손해를 좀 볼 각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안 더글라스의 말과 함께 1왕자파의 진형이 수뇌부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소극적인 방어 진형은 금세 전방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일시적으로 밀리는 전세를 만들어 냈지만.
정작 양 파벌 수뇌부들 대부분의 시선은 여전히 전장의 변화가 아닌 맥라인의 움직임을 향했다.
그런데 한참 후.
“계속…… 멀어지는데요?”
누군가의 중얼거림처럼.
맥라인의 군대는 대부분의 예측대로 후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계속해서 전장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저놈들 대체 뭐 하는 거야?”
양 진영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음성.
하지만 그 목소리에 대답이 나올 리는 만무했다.
* * *
“애초에 정말 우리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냥 교란하다 죽으라는 말이었겠죠. 그대로 후방을 노렸다면 저희도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래도 돌아가서 할 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이렇게 하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그냥 돌아가도 대접이 달라질 것 같긴 합니다만.”
아들의 여유 있는 웃음에 패드릭은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런데 고작 내전에서 이게 의미가 있겠느냐? 장기전에서나 써먹을 방법이라 파벌들도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이미 충분히 장기전입니다. 그리고 더 길어지겠지요. 아마도 그 누구의 생각보다 더요. 그러니 이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글쎄다. 지금 1왕자 파벌의 보급 기지를 없애 봤자 알론 성에서 징발하면 그만 아니겠느냐. 성민들이야 좀 힘들어지겠지만.”
“수확기까지는 아직 몇 달은 더 남았습니다. 징발로 버틸 만한 기간은 아니지요.”
“그래도…….”
“적어도 후방의 성으로 1왕자군을 물리는 효과는 있을 겁니다. 하룬 성까지만 물러서게 만들면, 그란디아 평야의 곡식을 앞에 두고도 수확을 못 하게 만들 수는 있죠. 그렇게 못 한다면 수확기 이후에는 2왕자파가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로건의 말은 전쟁의 정석과도 같은 말이었다.
다만 겨울에 시작된 전쟁이 농번기를 넘어 수확기, 그 이상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점차 승세를 잡아 가는 1왕자파는 이 이상 긴 장기전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고, 몰리고 있던 2왕자파 역시 같은 이유로 먼 미래를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지.’
양 진영 모두 비축한 식량이 떨어져 가는 시기.
그럼에도 급하면 근처의 마을이나 성민에게서 징발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귀족들.
그들의 뒤통수를 치기에는.
맥라인의 군대는 전장을 벗어나 그대로 쌍둥이 성에서 하루쯤의 거리에 있는 투렌 성에 다다랐다.
현재 1왕자파가 보급 기지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열어라!”
로건의 호통에 성벽 위가 금세 떠들썩해졌다.
“저, 저놈들 뭐야?!”
“저, 전투 준비!”
1왕자파, 더글라스 공작령에서 하룬 성을 지나 2왕자파의 쌍둥이 성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목.
투렌 성을 차지하고 난 이후 보급 임무를 맡은 1왕자파의 병력은 더글라스 공작령의 가신인 브레드 피콕 자작이었다.
50명이 채 안 되는 수의 기사단에 1,000명에 가까운 병사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파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힘든 전력이었다.
상급기사 하나도 없는 피콕 자작의 군대는 더욱.
그런 군대가 사실상 보급의 핵이라고 수 있는 투렌 성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지금 내전에 임하는 1왕자 파벌 수뇌부의 생각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우리에겐 기회고.’
로건은 적이 싸움을 준비하는 순간 그대로 공격을 명했다.
그리고 투렌 성이 함락되는 데에는 고작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맥라인에서 치른 희생은 고작 기사 둘의 사망과 병사 백여 명의 중경상뿐.
아주 쉽고 완벽한 승리.
그 승리의 끝에 얻은 것은 쏟은 노력에 비해 너무도 달콤한 것이었다.
“……얼마라고?”
“밀만 해도 200여 톤에, 잡곡을 합치면 그 세 배도 넘습니다. 적어도 5만의 군세가 한 달은 먹을 만한 식량입니다.”
“허…… 그만큼이나 있다고? 누가 봐도 뻔한 보급 루트인데?”
“공자님 말씀대로 아닙니까? 보급 기지를 순식간에 점령할 만큼의 병력이 빠져나가면 그냥 바로 전면전을 걸어서 적을 쓰러트리면 된다고. 그만큼 팽팽한 전선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긴 한데. 허…….”
너무 쉬워도 문제일까.
허탈하게 웃어 버린 로건이었지만, 지시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만큼을 제외하고는 모두 태워 버려. 그리고 바로 다음 목표로 이동한다.”
“그런데 투렌 성이야 너무 뻔하니까 그렇다 쳐도, 다른 보급 기지에 대한 정보가…….”
“내가 알아. 그냥 따라오기만 해.”
그건 또 언제…….
헤인켈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란디아 3대 상단 중에 하나, 그리고 가장 큰 곡물 상단. 카이로스의 창고들. 같은 1왕자파라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베론 카이로스에게서 뜯어 낸 상행 루트. 그중 몇 군데에는 확실히 보급 물자가 존재할 터였다.
맥라인의 군대는 그로부터 일주일에 걸쳐 근방 세 개의 성을 차례차례 점령했고.
그중 두 개의 성에서 투렌 성에 버금가는 거대한 물량의 식량을 불태워 버리는 전과를 올렸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얻은 피해조차 미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1왕자파가 자신들의 병력이 먹을 식량 석 달치가 고스란히 증발했다는 소식에 당황하고 있을 때.
맥라인은 전장을 멀리 우회하여 다시금 알룬 성에 돌아왔다.
2왕자파에 합류를 선언한 지 고작 3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