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2주 전과 비슷한 광경이 다시금 벌어졌다.
알룬 성의 서문이 열리고, 그 성의 주인들이 다시금 손님맞이를 위해 나섰다.
무려 5백이 넘는 기사단.
그리고 두 명의 초인.
가장 앞에 선 여덟 명의 병사가 들어 올린 가마까지 모두가 같은 모습이었지만.
“내려라. 내 친히 그들을 맞이하겠다.”
가마 주인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분위기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충! 패드릭 맥라인이 정당한 왕위 계승자이신 로메인 폰 그란디아 전하를 뵙습니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귀환하였음을 신고 드립니다!”
임무의 성공적 수행?
공개적으로 트집 잡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얍삽한 단어 선택에 요르단이 뭐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그 전에 왕자가 먼저 나섰다.
“아하하하! 그래. 패드릭 경, 그대의 성과를 치하하오. 그리고 맥라인의 병사들, 그대들 모두 수고가 많았다!”
귀족들도 눈 아래로 깔아 본다는 로메인 왕자가 대충이기는 하나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치하를 건네다니.
정작 병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 의미를 알고 있는 귀족들은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변경백 이상으로 대접하겠다는 거군.’
‘실세가 하나 더 생겼어.’
‘이거 잘 보여야겠는걸.’
귀족들이 저마다 머리를 굴리는데.
그 정점에 서 있는 이가 그 추측에 정점을 찍었다.
“최고의 전공을 세운 용사들을 환영하라! 맥라인에 경의를!”
“우와아아!”
요르단 발터마임의 외침과 함께 성을 뒤덮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뒤에 서 있던 한 사람의 얼굴은 그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졌다.
* * * 외부에서 떠들썩하게 맥라인을 환영한 2왕자 파벌의 준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알룬 성의 안쪽, 가장 깊숙한 내성의 저택에 맥라인의 자리를 배분하고 병사들이 쉴 곳 역시 따로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고 곧장 내성의 대전에서 환영 행사가 진행되었다.
전시임을 고려해 참가자들 모두가 갑옷을 입고 있었고 술이 빠진 음료에 소소한 다과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2왕자파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귀족이 자리에 참석하고 있었다.
사실상 최정예 전력들 대부분이라고 봐야 했다.
‘아 비프로스 일당은 제외하고.’
피곤하다며 자리를 피한 로저 비프로스는 그 누구도 막지 않았다.
그들과 맥라인의 갈등을 모르는 이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 환영 행사의 주빈이라고 할 수 있는 맥라인의 사람들은 고작 두 명.
패드릭과 로건뿐이었다.
– 2왕자는 내가 맡겠다. 무슨 말이든 웃어넘기면 되겠지. 실권은 알려진 대로 너한테 다 줬다고 할 테니 내 말실수로 우리가 발목 잡힐 일은 없을 거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려는 듯, 2왕자와 무슨 얘기인지 모를 귓속말을 나누며 웃고 있는 패드릭의 주변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었고.
로건 역시 회색 머리 거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터라 다른 귀족들은 멀리서 멀뚱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피식 웃은 로건은 마음과는 다르게 요르단 공작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우선 약속한 대로 후방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은 이 자리를 빌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아니, 아니야. 솔직히 무리한 상황이었지. 그걸 우회해서 전공을 세웠으니 충분하네.”
웃음기 어린 어조.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은 누가 봐도 기뻐 보였지만, 눈만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마주 보지 않았다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연기.
‘열화검은 무슨, 차가운 뱀 같은데.’
속으로 냉소를 내뱉은 로건은 그래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허, 이해라니. 당연한 것을. 공을 세운 자에게 충분한 대가를. 내가 평생을 지켜 온 원칙 중 하나일세.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처음에 의심해서 미안했네. 하지만 우리로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제라도 기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하하. 그래. 나야말로 이해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그런데 그렇다면 제 조건은 받아들여진 것으로 봐도 될까요?”
공작의 말을 끊고 들어온 로건의 질문.
그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터였다.
대전에서 알게 모르게 그들의 대화를 주시하고 있던 2왕자파 모든 귀족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꽂혀 들었으니까.
그에 요르단 발터마임의 얼굴이 살짝 굳는가 싶더니.
“그럼!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네. 자네들 덕분에 우리가 승리한다면, 뭘 못 해 주겠나? 그런데…….”
“그럼 비프로스의 영지 인정과 칼리아 후작령의 절반, 그리고 백작의 작위까지 기대해도 된다는 말씀이시겠죠?”
다시금 말을 끊고 들어온 반문에 요르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지고,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허…… 흠흠.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내가 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세. 왕자님도 계시고. 자네, 젊은 패기도 좋지만 윗사람의 사정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어색하게나마 다시 웃으며 말하는 공작.
하지만 로건의 어깨에 올려진 손에는 사람의 심령을 자극하는 기세가 은밀히 파고들고 있었다.
‘음?’
감각만으로 따졌을 때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자부하는 로건이 간신히 그것을 느꼈을 정도였다.
몸 안의 포스를 위축시키고, 그에 따라 심리적으로 움츠러들게 만들면서도 당사자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
로건으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기가 막힌 수법이었다.
‘포스가 몸과 마음에 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도 초인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재주일까.
속으로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로건은 그 기세에 제압된 척,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아…… 예. 제가 조금 과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젊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요르단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지만, 로건 역시 이미 원하는 것을 얻은 후였다.
고개를 숙인 채 슬쩍 훑어본 좌중.
놀란 표정을 한 귀족들의 수군거림이 점차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것을 보며 로건이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을 때.
요르단 공작이 그제야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자네들이 사용했던 그 무기들이 엄청나던데, 혹시 그것을 파벌에 공유할 생각이 없나? 그렇다면 이번 전쟁 정도야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맥라인의 핵심을 날로 먹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음성.
로건의 어깨에서 떨어지지 않은 손은 여전히 그 은밀한 기세를 그의 몸 안에 흘려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 그건. 죄, 죄송합니다, 각하. 이미 만들어진 물량을 제외하고는 남는 여유분이 없어서 저희도 딱 사용하는 만큼만 가지고 있습니다.”
“아…… 그게 정말인가?”
공작의 눈이 뱀처럼 빛남과 동시에 주변의 귀족들이 움찔할 정도의 강렬한 기세가 퍼졌다.
그리고 로건의 몸 안에 들어오던 은밀한 기세도 그에 호응하듯 순식간에 그 덩치를 키웠다.
그 순간 심장을 죄어 오는 지독한 ‘공포’.
이 사람의 말에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소름 끼치는 감각 속에서도 로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그렇습니다, 각하. 죄송…… 으음……!”
“아, 이런. 아쉽군. 음, 자네 피곤한가?”
“아, 아뇨, 저는 괜찮…….”
“아니. 아니야. 피곤해 보여. 아무래도 이거 내가 막 전투를 마친 영웅을 너무 과하게 붙잡고 있었나 보군. 조금만 즐기고, 푹 쉬게. 아무래도 곧 다음 전투가 있을 것 같으니.”
웃으며 어깨를 툭툭 털어 준 요르단이 돌아설 때.
로건은 마치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멍하니 그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속내는 달랐지만.
‘이게 초인이 할 짓거리냐? 이 썩을 놈이…….’
우웅.
심령을 지켜 준 포스코어의 진동을 숨긴 채 은밀하게 빠져나가는 기세에 몸을 맡기자, 정말 그 수법에 당한 것처럼 자연스레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그의 곁에 다른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로건 공자. 그 무기에 대해서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
“혹시 잠시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 멋진 활약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저는…….”
변경백들을 제외하면 굳이 기억해 둘 가치조차 없는 자들.
하지만 로건은 그들 하나하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곤란한 질문은 적당히 피해 갔다.
‘차라리 전투가 편하겠는데. 망할.’
그리고 그가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내쉴 때.
“그런데 물량이 없다면 샘플이나 설계도만이라도 제공해 줄 수 있지 않겠나?”
갈색 머리 푸른 눈, 평범한 인상의 변경백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루첸…… 탈로스 백작님.”
“음, 그래. 기억해 주니 고맙군. 내가 좀 흐릿한 인상인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파벌의 주축 중 하나를 몰라볼 수 있을까.
“몰라볼 리가 있겠습니까. 대화를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로건은 그의 과한 겸손에 손사래를 치며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루첸의 푸른 눈동자가 살며시 빛났다.
“영광이라면, 내 말대로 해 주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인 만큼, 로건은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내뱉었다.
“설계도야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제작에 들어가서 실전에 투입할 때까지 걸릴 시간을 고려하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역량을 집중하면 단시간에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굳이 못 해 드릴 것도 없지요.”
“오, 정말인가?”
물론.
연사 석궁은 딱 울브스가 쓰던 수준으로 위력이 약하게, 그리고 리베라티오는 완전히 거짓으로.
그것을 증명해 볼 시간 따위는 없을 테니까.
“뭐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이제 한 배를 탄 사이인데요.”
로건은 속마음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하며 빙그레 웃었고.
“허허. 정말 해 주겠다는 말인가? 그래도 그렇게 욕심을 버리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내가 이거 사람을 잘못 봤나 보군.”
루첸은 호탕하게 웃으며 로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조촐한(?) 행사가 끝난 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로건이 한 말이 한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
“내 땅을 감히 누구 마음대로!!”
와장창!
푸른 눈이 붉게 달아오른 중년인의 주변에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 * * 2왕자 파벌에서 로건을 비롯한 맥라인의 전공을 크게 치하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야는 보급 기지 격파보다는 카이런 울브스를 패퇴시켰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쌍둥이 성의 한쪽만 해도, 외부에 퍼진 마을을 제외하고 내부에 거주하는 성민들만 거의 3만 명에 달했다.
그들의 식량을 징발하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식량 부족은 면할 수 있다…… 라고 그들은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세 개의 보급 기지가 모두 불타 버린 1왕자파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농민들의 생활에 별 관심이 없던 귀족들은 전혀 의외의 곳에서 농민들의 어려움을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여름의 농번기, 작년 수확기 때 얻은 식량을 지금까지 넉넉히 보관하고 있는 농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성내의 물자를 모두 징발했지만 잘해야 일주일분입니다. 외부의 마을을 징발한다면 몇 달치 식량 정도는 나오겠지만, 그 틈을 적들이 그냥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성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건가.”
“……더 이상 식량을 구하지 못한다면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하…… 쥐새끼 놈들이 정말 철저하게 독을 풀었구나. 투렌은 그렇다 치고, 알스턴과 피렌츠는 대체 어떻게 알고……. 내부에 첩자라도 있는 것인가? 이 빌어먹을 놈들이!”
“저…… 각하,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제가 추측되는 것이 있습니다.”
“황공하긴 뭘 황공해. 그럼 당장 말해야지!”
“그게…… 알스턴과 피렌츠 모두 카이로스의 곡물 창고로 쓰던 성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인데 그들이 그 박쥐 놈들의 사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부관의 목소리를 들은 후안 더글라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 결과.
다급해진 1왕자파의 군세가 다시 알론 성의 성문을 열고 등장했을 때.
상인 용병단, 혹은 황금기사단 등의 오명으로 불리던, 자작가 중에서도 약하다고 평가되던 카이로스 기사단은 그 1왕자파 군세의 가장 선봉에 서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