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저놈들은……?”
한눈에도 질이 좋아 보이는 번쩍이는 갑옷에 200여 명이나 되는 인원수.
하지만 그 가슴에 새겨진 저울 문양은 절로 상대방을 실소하게 했다.
“용병 기사단? 저놈들이 선봉이라고? 1왕자파가 미쳤나?”
아무리 대귀족들이 몸을 사린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봉은 중요한 자리.
변경백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더라도 그 직계의 휘하라던지,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춘 이가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로스는 절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카이로스 가문에서 직접 훈련한 것이 아니라 왕국 전역, 혹은 제국에서까지 자유 기사나 포스유저인 S급 용병을 끌어들여 만든 기사단.
자수성가한 사이먼 카이로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덕분에 용병 기사단, 황금 기사단 등 돈에 팔린 기사들이라는 오명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200명이라는 대인원에 걸맞지 않게, 단장조차 고작 중급기사라는 질적인 문제 또한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약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단장, 알렌의 표정은 완벽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 기사단이 앞장서야겠다.
전후 사정을 완전히 잘라먹은 말.
알렌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그의 주군, 아니 고용주는 하수인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 자가 아니었다.
‘대회전의 시작, 그 선봉이라니……. 내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카이로스 영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만 아니더라도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자리였다.
– 가족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평생 책임지겠다.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그 한마디뿐.
빙하의 마탑 마법사들이 자신과 단원들에게 몇 가지 보조 마법을 걸어 주고 있었지만,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출진하기 전, 그들의 수장이라는 자가 건네준 품속의 물건을 생각하면 이건 그냥 조금 더 버티다 죽으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쓰레기들.’
알렌은 투구에 가려져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며 전투의 개시 신호, 아니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 출진하라!
뿌우우우우.
고함과 함께 울린 나팔 소리에 그는 힘없이 랜스를 들어 올렸다.
“카이로스 기사단. 돌진……!”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같은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단원들 대다수가 그저 겁먹지 않고 돌진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알렌은 억지로 투지를 끌어 올렸다.
‘반드시 죽는다는 법은 없어! 그것만 성공시키고 재빨리 뒤로 빠지면…….’
하지만 운명은 그런 그의 소박한 기대조차 비웃는 것 같았다.
마주 달려오는 적의 선봉, 적 기사의 랜스 끝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포스는 완연한 상급기사의 그것이었으니까.
투구 속 알렌의 눈동자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 * * 카이로스 기사단의 등장에 놀란 것은 맥라인도 마찬가지였다.
“카이로스?!”
“왜……?”
놀란 부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지만, 그런다고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현실의 원인이나 파악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었고.
“사이먼 카이로스 자작이 미친 건가.”
장인이 아니라, 사이먼 카이로스 자작.
그 말 한마디에 로건은 혹시나 했던 아버지에 대한 염려도 지웠다.
그리고 그 순간, 출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 전군 진격!
아련히 들리는 진군 명령과 함께 맥라인 군은 2왕자파 지휘부 근처에서 함께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2주 전에 비하면 완전히 달라진 입지를 보여 주는 전력 배치.
그 중심에서 로건은 카이로스 기사단이 완전히 분쇄되는 것을 혀를 차며 바라보았다.
누구라도 예상했을 광경.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광경이 연이어 펼쳐졌다.
꽈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아군 기사단의 선두를 뒤덮는 냉기.
그 시발점은 충돌과 함께 무너진 선봉의 카이로스 기사들에서부터였다.
쓰러진 카이로스 기사단의 선두에서 반경 백여 미터를 휘감는 냉기의 파도가 피아를 가리지 않고 연이어 터져 나왔다.
“블리자드!”
“5서클 마법을 저렇게 연달아?!”
“스크롤……!”
6서클 마도사나 만들어 낼 수 있는 5서클의 스크롤.
그나마도 재료조차 희귀하기 그지없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준 아티팩트급 전쟁 자원이 얼핏 보기에도 다섯 개 가까이 연달아 폭발했다.
“허……?!”
그 위용에 로건 역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란디아 유일의 마도사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 온 전술 무기들.
전생의 대회전에서 2왕자파를 패배시킨 무기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블리자드 스크롤. 놀라는 반응을 보니 저들도 처음 사용했나 보군. 후안 더글라스가 비축한 스크롤이 저게 전부도 아닐 텐데.’
다행히 5서클 마법 스크롤이라는 것이 그리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 위력과 방향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전방에서 마법사가 날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결국 블리자드 스크롤은 자폭과도 같은 방식으로밖에 활용할 수가 없었다.
‘뭐, 저들은 그조차 몰랐던 것 같지만.’
로건은 충돌의 중심부에서 만들어진 냉기의 구역 안에서 나뒹구는 기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중첩된 냉기의 영역 반경 3백여 미터 내에 살아남은 기사들은 몇 보이지 않았다.
‘약체’ 카이로스 기사단을 미끼로 타르탄 변경백 휘하의 자작 가문 기사단 셋을 동시에 날려 버린 것.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막중한 피해였다.
첫 충돌은 사실상 1왕자파의 판정승이라고 할 수 있었다.
“후안 이놈! 여기서 끝장을 보자는 건가!”
지휘부에서 터져 나온 분노 섞인 고함.
그 고함과 함께 깃발이 어지럽게 휘날리자 2왕자파의 핵심 전력들이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도 가야겠구나.”
“예.”
– 진격하라!
– 진격……!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고함들을 들으며 맥라인 역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건의 시선은 아군의 중심부에서 엄청난 속도로 뛰어나가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오러유저. 하프 자이언트, 루터 카일.’
반 거인(Half Giant).
신화시대에 용과 대적했다는 위명이 전해지는 위대한 종족, 거인족의 이명이 붙은 남자.
그는 그 이명만큼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며 말보다 훨씬 빠르게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가히 폭풍과 같은 기세를 보여 주는 그의 앞으로 그보다 훨씬 작은, 너무 비교되어 마치 소인처럼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집의 한 사람이 바람처럼 다가왔다.
“자, 오늘이야말로 끝장을 보자. 덩어리!”
“너야말로 박살을 내 주마! 말 뼈다귀!”
루터 카일의 손에서 자신의 덩치만 한 거대한 워 해머가 상서로운 붉은 빛을 뿜어내며 왜소한 인영을 짓이기기 위해 튀어 나갔다.
‘오러!’
로건 역시 현생에 들어와 처음 보는 파괴의 권능.
아직 경지가 부족한 이가 오러를 마주하면 정신마저 부서질 뿐이라며 스승조차 보여 주지 않은 기적의 힘.
그 위력이 멀리 떨어진 뒤쪽에서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압도적인 거인의 기세 앞에서, 위켄 칼리아는 조용히 뾰족한 세검을 꺼내 들었다.
새하얀 마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흐르는 것이 범상치 않은 아티팩트임을 짐작게 했지만, 눈앞에 닥쳐든 위협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작고 위태로워 보이는 광경.
하지만 폭풍검(The Storm blade) 위켄 칼리아가 그의 애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 생각은 180도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콰콰콰콰콰.
새하얀 빛을 발하는 4~5m 규모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돌진하는 거인을 그대로 집어삼키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꽈아아아앙-!!
곧 엄청난 폭음이 터지며 전장의 중심부에서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콰콰콰콰.
콰아앙!
“그 질긴 목숨, 여기서 끊어 주마!”
“누가 할 소릴!”
거리가 멀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수준이 그에 못 미치기 때문인지. 로건은 초월적인 감각으로도 두 초인의 전투를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초인 중에서도 각기 ‘육체’와 ‘속성’에 극단적으로 특화된 두 초인의 싸움은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얻는 것이 있었다.
‘저기서 저렇게, 오…….’
전생에서 초인들이 싸움을 벌이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지려 노력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전.
전생의 그 기억이 초인들의 싸움에 더욱 집중하게 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마음 편히 그 싸움에만 집중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로건!”
“예. 알고 있습니다!”
로건은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중앙의 치열한 전투에서 시선을 돌렸다.
초인이 부딪치는 중앙 전장의 주변으로 길게 늘어선 대병력이 어느새 표정까지 눈에 보이는 거리에 들어와 있었다.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 역시 외부자가 아닌바.
그와 맥라인은 이번 전투에서 2왕자와 요르단 발터마임 공작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야 했다.
“빅토르!”
“예!”
로건이 소리를 치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빅토르와 1,500명의 석궁기마병이 순식간에 그들을 앞질러 튀어 나갔다.
두두두두.
양 진영에서 가장 먼저 튀어 나가는 것은 전통대로 여전히 기사들.
빅토르의 석궁기마병은 아군 기사단들의 틈에서 돌진해 오는 적군을 향해 석궁을 겨누었다.
“석궁만 막아 내면 놈들은 별거 아니다.”
맥라인 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적 전방의 기사들, 자히드 기사단이 일제히 방패를 들었다.
맥라인의 무기에 대한 정보는 이미 1왕자파 전군에 들어가 있었고, 기사라면 저 기마대의 공격을 대비한 준비를 모두 하나씩은 하고 있었다.
자히드의 기사들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선회!”
석궁기마병은 그대로 방향을 직각으로 꺾어 우측으로 내달렸다.
“뭐, 뭐야?”
자히드 기사단의 대장, 롬멜은 그런 놈들을 쫓고 싶었지만, 이미 근거리에 다른 기사단이 그들을 노리고 랜스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칫!’
울브스를 박살 낸 놈들을 자신들이 짓밟는다.
그 명예를 노리던 그로서는 아쉬울 노릇.
하지만 이미 멀어진 놈들보다야 눈앞의 기사단이 먼저였다.
꽈아앙!
롬멜은 랜스 끝에 걸린 적의 몸통을 거칠게 털어 냈다.
애초에 목표였던 맥라인 군대의 앞에 끼어든 어느 자작의 기사단 따위는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충분히 할 수 있어!’
그저 이놈들을 얼른 정리한 뒤, 그 뒤에 있을 원래 목표를 처리할 생각뿐.
“돌격하라! 적진을 꿰뚫어라!”
롬멜은 250명 중 불과 20여 명의 손실로 기사단 하나를 분쇄한 자랑스러운 자신의 부하들을 독려하며, 다시 앞으로 말을 몰았다.
나뒹구는 패잔병들보다는 더 큰 목표를 잡기 위하여.
그런데 그 순간, 쿼렐의 비가 그의 눈앞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쏴라! 쏴! 흐트러진 틈을 노려라!”
카이솔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깃대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맥라인의 병사들은 정확히 석궁을 쏘아 댔다.
병사 중에는 토모도 성 전투를 비롯한 치열한 전장을 몇 번이고 거치고 살아남은 정예병들이 다수.
그들은 자신들이 기사를 쓰러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기사단을 두고도 그리 겁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베테랑들을 중심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총교관의 지시에 따라 석궁을 쏘았다.
돌진하는 기세를 멈춘 기사단이 정신없이 화살을 쳐 낼 뿐, 다시 진격해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병사들에게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아아앙!
적 기사단 사이에서 터진 폭발에 그 강력한 이들이 허점을 드러내며 연달아 쓰러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들의 한참 뒤쪽에서 그 폭발하는 무기를 던져 대는 흉악한 인상의 마법사는 지금 한없이 든든한 아군이었다.
“우측 2열! 틈이다! 집중사격하라!”
카이의 지시에 따라 타격을 입은 기사들을 노린 연사 석궁의 세례가 쏟아지며 자히드 기사단의 기사들이 하나둘 몸을 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맥라인의 기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맥라인 군대에선 기사단이 돌격하고 병사들이 그 뒤를 따르며, 마법사가 그들을 보조하는 전통적인 돌진 진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사단을 스쳐 지나가며 우회기동하는 빅토르의 석궁기마대는 철저하게 적 ‘병사’들만을 노리며 석궁을 쏘아 대고 있었고.
돌진하는 적 기사단은 무려 ‘병사’들이 막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병사들의 보조가 아닌 직접적인 공격수로서 적 기사단에 피해를 주었다.
정작 최강의 전력인 기사단은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군의 희생을 최대한 줄인다고 생각하세요.”
“누가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한답니까?! 그런 멍청이는 여기 없습니다!”
헤인켈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 쓰러져가는 적 기사단의 목만 딴다! 이 쉬운 걸 못하는 놈 있나!”
“없습니다!”
“좋아! 전군! 돌격!”
헤인켈의 외침과 함께 맥라인 기사단이 허물어져 가는 적 기사단의 빈틈을 향해 돌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