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실패……? 그레이나 모건이 작위에 비해 좀 부족하기는 해도 둘이 합치면 웬만한 자작급 전력은 될 텐데?”
“전멸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정황은 저도 잘…… 맥라인 놈들의 여력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허허. 미치겠군. 변경백의 군대를 두 번이나 박살 내 버린 전력도 모자라서 영지에 남아 있는 전력만도 자작가 이상이라……. 일개 남작령이 꼼수로 백작령 하나 먹었다고 반년 만에 이렇게 전력이 폭증한다? 그 신무기를 고려한다 해도 이게 말이 되나?”
후안 더글라스가 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하……. 박쥐가 아니라 독사였어.”
아무리 마도사라 할지라도 일반 영지민들에게 기사도 잡을 수 있는 무기를 쥐여 주고 훈련까지 시킨다는 발상은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것이 그의, 아니 대륙 귀족들 대다수의 한계였다.
다만, 적어도 그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만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사 석궁의 생산을 서둘러라. 사거리를 늘이는 것도 잊지 말고, 생산되는 대로 성벽에 실전 배치해!”
“예!”
“그리고 그 망할 일회용 아티팩트 분석 결과는?”
“그게, 성분 몇 가지는 찾아냈다고 합니다만…… 어떻게 배합한 것인지는 아직 시간을 더 들여 봐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은 무슨…… 못한다는 거겠지. 어떻게든 대량의 샘플을 확보하거나 제작자를 찾아야 한다. 놈들 내부로 침투시킬 첩자는?”
“그게 또 새로운 소식이 있습니다. 저희가 벌인 전투 이전에 놈들의 중심부에서 소란이 있었다는데…….”
“뭐?”
수하에게서 맥라인에서 있었던 사건에 관해 전해 듣는 후안 더글라스의 표정이 점점 더 구겨졌다.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결과적으로는 보안이 더 엄중해져서 근처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체 어떤 놈들이?! 누가 내게 보고도 없이 일을 벌인 거야! 어떤 멍청한 새끼가!!”
“그게, 그와 관련해서 조금 이상한 전언이 들어와 있습니다. 2왕자파에서…….”
이어지는 부관의 이야기에 달아올랐던 공작의 표정이 금세 가라앉았다.
그리고.
“……허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재미있군. 재미있어. 좋아, 한번 계획대로 해 보라고 해.”
1왕자파가 웅크리고 있는 하룬 성.
그 안에서도 변화는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다.
* * *
이렇게 시간을 끌어 봐야 나아질 것은 없다.
이제는 지지부진한 전선에 변화를 줘야 할 시기.
로건은 그런 판단하에 예전부터 그려 온 큰 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안을 하기 위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한 시기를 엿보고 있을 때, 수뇌부 회의에서는 엉뚱한 주장이 튀어나왔다.
“제가 이미 실험을 다 해 봤습니다. 맥라인이 넘겨준 제작법으로는 그 폭탄이 절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맥라인이 올바른 제작법을 말하고 파벌 차원에서 무기를 생산하기를 바랍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로저 비프로스가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소리를 질렀다.
로건으로선 황당할 뿐이었지만, 리베라티오의 제작법을 엉터리로 넘긴 것은 사실인지라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실험을 해 보셨다고요? 이 상황에서요? 그리고 타밀 가루와 테메스의 풀은 지금 시기에 나지도 않는 재료인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애초에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전한 엉터리 제조법이었는데.
“다행히 본인이 실험을 위해 개인적으로 구비해 놓은 재료가 있었소이다. 그리고 ‘무참히’ 실패했지요.”
“백작님께서 실수를 저지르신 것은 아니구요?”
“로건 맥라인, 말조심해! 내가 5서클 마법사…….”
탕. 탕.
“백작. 공적인 자리이니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도록.”
“……죄송합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의 5서클 마법사가 못마땅한 심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가 던져 놓은 폭탄은 아직도 유효했다.
“그리고 로건. 비프로스 백작의 말이 좀 과하기는 했지만, 없는 얘기를 지어낼 친구는 아니네. 그 제작법을 증명해 줄 수 있겠나?”
“……예?”
“완성품을 보급해 오는 것을 보면 재료가 있다는 뜻이니, 우리 눈앞에서 제작하는 법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몇 개 정도라면 괜찮겠지?”
지금의 위상이야 맥라인에 밀려 예전 같지 않다지만, 여전히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저 비프로스의 말이 공작의 마음을 움직인 듯했다.
그리고 그 말에 로저 비프로스가 크게 호응했다.
“맞습니다! 만약 증명하지 못한다면 각하와 파벌을 기만한 것이니 맥라인에 책임을…….”
“로저! 과하네. 예의를 지키라고 말했을 텐데?”
공작의 말 한마디에 로저 비프로스의 안색이 더욱 붉어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자신을 노려보며 눈을 부릅뜨는 것이, 로건을 의아하게 했다.
‘왜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지?’
만약 이렇게까지 판을 벌여 놓은 상태에서 그의 말이 틀릴 경우, 로저 비프로스는 뒤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떨어진 입지가 더욱 바닥을 치고, 파벌의 눈치만 보게 될 터인데…….
‘그만큼 확신하고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이곳에 실험 기구 따위가 있을 리는 없고, 따로 실험할 공간도 없지. 실제로 실험해 봤을 리는 없어. 그럼 어떻게……?’
문득 통신구로 동생과 주고받은 대화 중 일부가 떠올랐다.
– 그리고 형님. 확실하지는 않다지만, 기사의 말로는…….
로건의 머릿속에서, 불확실했던 정황상의 증거 두 개가 조합되어 하나의 확신으로 거듭났다.
‘너였구나.’
1왕자파가 아니라 비프로스였다.
납치된 드워프들이 말하는 재료와 자신이 건네준 제작법을 대조해 보았다면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실험 따위는 하지 않았어도.
새삼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여기서 화를 내는 것은 미련한 짓일 뿐이었다.
그리고 들키면 끝장이 날 수도 있는 모험까지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나온 것을 보면, 로저 비프로스의 심리는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리수가 한 번 성과를 거뒀으면, 두 번, 세 번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때때로 이성을 완전히 가리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이용할 수 있겠어.’
로건은 곧 그 모든 것을 몇 배로 갚아 줄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공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어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간단한 거짓 하나.
그것만으로도 공작의 시선에 어려 있던 의심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은 그와 비례하는 속도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제가 도의적 차원에서 건네 드린 무기의 제작법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이 답답한 현 상황을 타개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저 안의 적들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아시겠지만, 최근에 저희 영지가 1왕자 파벌의 지방 병력에게 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변경백과 공, 후작 중 그 누구도 놀라는 이는 없었다.
‘역시나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지.’
로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적어도 맥라인을 습격했던 세력들과 대치 중이던 2왕자파의 에스렌 백작에게서는 먼저 연락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알려 주지는 않았고.
‘이런 게 무슨 동맹이라고.’
적을 이기고는 싶지만, 내 피해는 최소로.
대신 다른 아군은 되도록 피해를 좀 많이 봤으면 좋겠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여실히 보이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연합체.
이 엉터리 연합이 망한 까닭을 새삼 또 하나 알 것 같았지만, 당연히 어설프게 그 마음을 노출하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간신히 물리치기는 했지만, 저 성안에서 놈들이 다른 수작을 부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일이 저희 영지에만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으니 정벌을 서두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로건은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 웃었다.
현재 내전에서 맥라인이 가진 위상과 그 신무기의 특수성 때문에 영지가 습격을 받은 것이지, 당장 다른 파벌의 영지가 습격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파벌의 본 진영과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변경백의 영지들을 점령한다 해도, 당장 지장을 줄 수 있는 것은 보급 정도.
이미 반년이나 끌어온 내전이지만 아직 누구도 이 전쟁이 올해를 넘어 몇 년씩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맥라인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영지가 공격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자 공작이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말을 돌렸다.
“흐음. 잘 물리쳤다니 다행일세. 다른 영지를 걱정해 주는 것도 고맙고. 하지만 이대로 지금 상황만 유지해도 우리로서는 아쉬울 게 없어. 성안의 식량이 다 떨어지는 순간 놈들은 최후의 발악을 하거나 전선을 또 뒤로 물리거나 선택을 해야 할 것이야. 그리고 그때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욱 유리해지겠지. 지금 괜한 희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었고, 그에 로건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의 제안을 꺼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제안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음?”
“그 괜한 희생, 저희가 감당하겠습니다.”
“……뭐?”
공작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좌중의 시선이 로건에게 몰렸다.
‘굳이 왜 이러나 싶겠지.’
더구나 지금은 맥라인의 참전으로 2왕자파가 우세 속에 있으니까.
‘전생에서도 올겨울이 지나서야, 본격적으로 난장판이 벌어졌지.’
지금과는 경우가 좀 다르지만, 전쟁이 오래갈 것 같다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 전쟁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
서로의 머리를 노리는 암살전과 핵심 전력의 힘겨루기를 병행하는 전쟁에서, 대치 상태는 유지하되 여력을 쥐어짜 상대방의 영지를 초토화하고 용병과 징집병을 한계까지 동원하는 총력전으로.
자연히 내년의 농사부터 박살이 나니 물자를 강제 징발하고, 물자를 징발하니 유민이 발생하고, 또 그 유민은 화전민이나 산적이 되어 전국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왕국 전역이 전쟁의 무대가 되어 온갖 참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에 내전을 정리해야 한다.’
로건이 굳이 지금 나서는 이유는 그것을 위한 작전의 발판이었다.
“저희 맥라인이 가장 위험한 위치에서 하룬 성 공략에 앞장서겠습니다.”
그 호언장담에 공작의 눈빛이 변했다.
“……자세히 말해 보게.”
“저희 맥라인이 놈들의 시야를 피해 남쪽 산맥을 우회하여 동쪽 성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간은 며칠 걸리겠지만, 위장만 잘해 주신다면 1왕자 군의 허를 찌를 수 있을 겁니다. 저희가 동문을 공략하는 것에 맞춰서 본진이 총공격을 감행한다면 퇴로를 막은 상태에서 압박이 될 것 같습니다.”
“허……?”
로건의 말은 가장 단순하지만 명쾌한 해결책이었다.
어느 누구도 희생하려 하지 않기에 지지부진해진 전쟁이었으니, 누군가 먼저 희생을 한다는 전제만 깔리면 변화는 쉽게 일어난다.
“……맥라인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간 아무래도 자네 쪽이 위험할 텐데? 만약 궁지에 몰린 놈들이 탈출을 강행한다면 동쪽으로 몰릴 테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 잘 풀린다면, 맥라인이 1왕자 군의 마지막 발악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마지막 발악이 한 방향으로 몰린다면, 변경백이 아니라 설령 공작가나 후작가라 할지라도 멸문을 각오해야 할지도 몰랐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동시에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성이 따르는 작전이었다.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입니다.”
“허어?”
요르단 발터마임으로서는 기꺼울 노릇이었다.
신무기 덕분이라고는 하나, 변경백 두 가문을 합친 것만큼의 전과를 보여 준 맥라인이 그렇게까지 해 준다면 굳이 공성전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그렇기에 의심도 들었다.
“왜지?”
굳이? 네가? 희생을?
여태 가져온 전과만으로도 1등 공신은 떼 놓은 당상인데?
요르단의 짧은 반문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로건은 그 모든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대신 이 작전으로 전쟁이 잘 끝난다면, 일전에 약속해 주신 것에 더해 추가적인 대가를 받고 싶습니다.”
대가.
욕심쟁이의 의심을 불식시키는 단어.
그에 요르단의 눈빛이 또 한 번 바뀌었다.
“대가? 무엇을 원하는 거지?”
“맥라인의 후작위 책봉과 칼리아 후작령의 전부를 원합니다.”
“……미친.”
무심결에 나온 로저 비프로스의 욕설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제안.
하지만 로건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각하와 왕자 저하께서 서한으로 확언해 주신다면 저와 제 가문의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해내겠습니다.”
추가적인 조건이 붙는 순간, 공작의 안색도 굳어졌다.
“허…… 허허. 과해. 과하다. 서한이라니?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도 남에게 내보일 근거가 있어야 가문의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명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도한 대가와 무리한 요구.
로건은 그것으로 공작의 의심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공작의 욕심과 의심은 그의 생각보다 과했다.
“……좋네. 단, 작전 수행 전에 그 마법 폭탄 세 수레 분량은 두고 가게. 아무래도 자네 가문이 빠진다면 본진에서 공성전의 화력이 좀 떨어질까 염려되니.”
한참을 고민하던 공작에게서 나온 말.
그 말을 들은 로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여기서 거부한다면 기껏 떠올린 계획을 시행할 날은 또다시 멀어질 것이다.
‘비프로스의 말을 아직 염두에 뒀다 이거지? 흥. 그래 봤자…….’
어차피 아무리 원본이 많다 한들, 제작법을 유추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전생의 제국이 그랬듯이.
그리고 그때 맥라인은 이미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로건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공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고마운 결단이야. 대업이 이루어지는 날, 자네가 말한 그 모든 것은 현실로 이루어질 걸세. 기꺼이 서류를 남겨 놓지.”
“감사합니다, 각하.”
로건 역시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의외의 제안이 이어졌다.
“저희 비프로스도 단독으로 하룬 성의 남문을 공략하겠습니다.”
굳은 표정의 로저 비프로스가 불쑥 끼어든 것이다.
‘뭐?’
로건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좌중의 다른 시선 역시 비슷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다들 소리 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변경백 두셋을 합친 전력이나 후작가 수준의 전력으로 취급되는 것이 현 맥라인 가문이었다.
근거지도 잃어버린 비프로스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기만 하는 상황.
즉, 맥라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비프로스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였다.
로저 비프로스의 제안은 거의 자살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로저, 자네 무리하는 것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맡겨 주십시오! 저는 과한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충심으로 대업을 위해 희생하겠습니다.”
호오.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미친 게 아니라면, 다른 속셈이 있겠지.’
아니, 분명히 있겠지.
로건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떠오를 때.
요르단 공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허허. 뭐 자네가 그리 나오겠다면 좋다. 그대들의 제안을 기초로 작전을 세워 보지. 이곳에서 이 내전을 끝낼 수 있도록.”
“좋습니다!”
더 이상 반론은 나오지 않았고, 다른 변경백들이 맥라인과 비프로스의 자발적 희생을 칭찬하며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회의가 막 파한 자리.
“열심히 해 보십시오. 뭐, 그래 봤자 결과야 뻔하겠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우리의 관계가 어찌 될지 기다려지는군요, 백작 각하.”
피식 흘린 웃음과 함께 건넨 로건의 귓속말.
제발 수작을 부려 달라는 속셈으로 일부러 도발까지 한 것이었고.
“물론이네. 대업을 함께하는 사이에 선의의 경쟁도 좋겠지.”
로저 비프로스는 굳은 안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짐짓 태연한 미소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로건은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이 반드시 무슨 짓을 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