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달조차 저문 어두운 밤.
2왕자파 파벌의 중심에서 일단의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문의 깃발을 내리고 횃불조차 최소화한 채 움직였으나, 수천에 이르는 인원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움직이는 소리 말고도 군데군데 잡다한 소음이 일었지만, 애초에 이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눈 밝고, 귀 밝은 이들은 그 움직임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고.
애초부터 그들, 맥라인을 주시하고 있던 몇몇 눈동자들은 발 빠르게 그들의 주인에게 동향을 보고했다.
작전 2일 차.
맥라인이 서남부로 빠져나가 산맥을 우회하기 시작하던 그때.
“네가 말한 정보원의 보고다. 꼬리가 붙었다는구나. 그것도 불과 하루 거리에. 놈들의 군대가 아예 이쪽으로 직접 움직였어. 논의된 진군 방향과 완전히 다르게.”
“흐음. 정보만 흘릴 줄 알았는데 아예 도박을 걸었군요……. 애초에 이러려고 나선다고 한 건가? 뭐, 차라리 잘됐습니다.”
“잘됐다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두 번은 더 위험을 감수해야 했었는데 놈들이 더 좋은 구실을 주는군요. 굳이 계획대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요.”
“호오…… 그럼?”
“마침 후방 공격을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 딱 보이네요. 산등성이를 돌아서서 나오는 높은 구릉이라.”
“그래. 딱 하루 정도 쉬어 가기 좋겠구나.”
맥라인 부자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맥라인의 모든 지휘부가 소집되었다.
“예? 비프로스요? 그놈들이 제정신이 아니군요. 미친 거 아닙니까?”
헤인켈의 목소리는 막사에 모인 모든 기사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 텐데요. 놈들이 정말 미친 게 아니라면 뭔가 방도를 준비해 놨겠군요.”
에일렌의 맑은 목소리에 막사에 모인 모두의 시선이 다시 로건에게 향했다.
로건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예상했던 것은 놈들이 흘린 정보로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이었다. 변경백 둘 정도의 전력을 예상하고, 사전 경로에서 조금 비껴가서 함정을 파 둘 생각이었지.”
로건의 말에 기사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무리 이전과는 비할 바가 아닌 전력을 갖춘 맥라인이라지만, 동시에 변경백 둘의 전력을 상대하면서도 피해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굳어진 기사들의 표정을 본 로건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오면서 오히려 상황이 좋아졌다.”
“예?”
“굳이 작전대로 나가서 크든 작든 피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우리는 비프로스만 정리하고…… 이 전쟁에서 빠진다!”
로건의 말에 기사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커졌다.
그리고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데도 군대가 진군하지 않아 병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때, 예상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후방에 군대 출현!! 불꽃 속에 핀 장미! 비프로스의 군대입니다!”
“왔구나.”
“전군 후방 경계! 전투 준비!”
명령을 내린 로건이 앞장서서 후방으로 향하고, 지휘부는 일사불란하게 병력을 반전시켜 후방을 향했다.
자연히 다가오던 비프로스의 군대는 당황하며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산맥을 우회하여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높은 구릉의 위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목표’들.
정찰대가 일찌감치 그들을 발견했지만, 가던 길을 돌리거나 멈출 수는 없었다.
높은 지대에 있는 그들 역시 이미 본대를 발견했을 테니까.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왜 저기에서……. 빌어먹을 놈들, 설마 눈치를…….”
“각하. 어떻게 할까요. 만약 눈치챈 거라면…….”
아슬란의 무거운 표정이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에도 옮겨 갔다.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저희만으로는 놈들을 처리하기 힘듭니다. 예정대로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거리가 얼마나 남았지?”
“약속 장소까지는 하루 정도 더 가야 합니다. 하지만 대군의 전진속도로 하루지, ‘그’와 정예들뿐이라면 몇 시간이면 가능하겠지요.”
“……좋아. ‘그들’에게 통신을 보내 사정을 알려라.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겠다고도 전하고.”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일단 우겨야지. 여기서 남문으로 가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예? 하지만…… 믿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확증도 없이 우리를 바로 공격하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공격을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싸우는 수밖에.”
“각하. 그랬다간…….”
뿌드득.
“어차피 이젠 돌이킬 수 없어. 빨리 통신을 보내! 놈이 온다.”
“예, 각하. 부디 조심하십시오.”
“흐. 맥라인 놈들을 상대하며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처참하게 구겨진 안색의 로저 비프로스가 천천히 홀로 말을 몰았다.
다그닥. 다그닥.
서로의 경계심을 말해 주듯.
천천히 서로를 향해 움직이던 두 기의 말은 100m도 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이내 포스를 가득 담은 로건의 목소리가 로저 비프로스의 귀에 박히듯 파고들었다.
“이 길에는 웬일이십니까, 백작 각하. 비프로스의 진군로는 이쪽이 아닐 텐데요?”
“진군로는 현장 지휘관의 재량 아닌가. 우리 역시 적들의 시선을 피하고자 이 길을 택한 것뿐이네.”
마법을 동원한 로저 비프로스의 음성이 양측 부대에 모두 들으라는 듯이 울려 퍼졌지만.
로건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작전 시기를 맞추기 어려울 텐데요. 이곳에서 하룬 성 남문으로 가려면 산을 타 넘어야 합니다.”
“다 방법이 있네. 이래 봬도 내가 5서클의 마법사가 아니겠는가.”
“5서클의 마법사가 아니라 전설에 나오는 대마도사도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만.”
“걱정은 고맙네만, 대업이 코앞인데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짓 같네.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상황에서 말입니까?”
너희를 뒤에 두고 그냥 움직여라?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한 반문에, 로저 비프로스는 웃으며 답했다.
“흠. 뭐, 자네가 다른 계획이 있다면 우리가 먼저 지나가도 되겠는가? 자네가 말했듯이 우리가 갈 길이 바빠서 말이야.”
“먼저 지나가시겠다?”
“자네가 괜찮다면 말이야.”
“흠. 그럼 그러시죠.”
생각보다 너무 쉽게 나온 답변 때문일까.
“뭐……?”
로저 비프로스의 안색이 살짝 굳어지기는 했지만, 그의 답변에 지체는 없었다.
“아…… 하하. 이해해 줘서 고맙네. 전군, 속보! 맥라인의 군대를 지나쳐 간다!”
그러나.
돌아선 그의 얼굴은 잔뜩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저벅저벅.
구릉 위를 오르는 비프로스의 군대.
그리고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맥라인의 군대.
양측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양측 지휘부는 물론 병력들의 표정 역시 긴장감이 서리고 있었다.
결국 비프로스는 연사 석궁의 사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거리에서 진군을 멈췄다.
“허허. 자네 말과는 달리 그냥 비켜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백작님의 군대 역시 이상하게 긴장하고 있는 것 같군요. 왜 그러시죠?”
“아무리 우리끼리 원한이 있다고 한들, 아군끼리 이렇게 대립할 때가 아니라고 보네. 우리를 못 믿겠다면 자네들이 갈 길을 가는 것이 어떤가. 우리는 멀리 떨어져서 한참 뒤에 다시 움직이겠네.”
애써 긴장을 감추려는 로저 비프로스의 말에, 로건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안 그러셔도 됩니다.”
“뭐?”
“아까 진군로는 현장 지휘관의 재량이라고 하셨죠? 저희 역시 좀 방향을 바꿔 볼까 합니다. 일단 회군해서요.”
“지금 무슨…….”
“전군 진군! 본진으로 돌아간다!”
“예!”
구릉 아래 멈춰 선 비프로스군 앞으로 맥라인의 군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저 비프로스의 안색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얗게, 파랗게, 그리고 붉게.
“지금 뭐 하는……?!”
“피차 연기는 그만하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발터마임 공작께 통신을 넣어 볼까? 이게 정말 현장 지휘관 재량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지?”
태연한 로건의 응대에,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로저 비프로스의 입에서 끝내 예정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전투 개시!! 모두 준비한 대로 움직여라!”
동시에 로건 역시 검을 꺼내 들었고.
“전군 돌격! 비프로스를 끝장내라!”
어설픈 연극이 끝나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왜 바로 도망가지 않을까?’
로건은 그것이 이상했다.
지금의 맥라인과 비프로스의 차이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설픈 연극 뒤에 높은 확률로 전투가 벌어질 것을 짐작하면서도 로저 비프로스가 물러서지 않고 다가온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전투 개시 직후에 바로 풀렸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놈의 목소리와 함께 적 진영에서 튀어나오는 천여 기의 기마.
그 손에 들린 치가 떨리는 무기들을 보며 로저 비프로스는 부드득 이를 갈았다.
“자, 저 원수 놈들에게 뜨거운 선물을 해 주자! 준비해!”
“예!”
로저 비프로스의 지시와 함께 진영의 중심에 일렬로 선 비프로스 기사들이 일제히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푸른 돌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자기 무기에 자기가 당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야.”
로저 비프로스의 잔혹한 웃음과 함께 붉게 변한 돌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전면에서 직선으로 쏟아져 오는 붉은 돌들.
포스유저들이 강력한 힘으로 던져 낸 익숙한 형상의 무기가 무서운 속도로 전면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열심히 말을 달리고 있던 빅토르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리베……!!”
급박한 마음에 짤막하게 전해진 명령.
하지만 석궁기마대의 평소 훈련 수준을 말해 주듯, 반응은 재빨랐다.
개중에 반사 신경이 뛰어난 소수는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날아오는 붉은 돌들을 향해 석궁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세기의 명궁도 아닐진대, 어떻게 수백 개의 돌을 모조리 격추할까.
소수의 쿼렐이 날아오는 폭탄을 맞추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그대로 붉은 빛을 내며 석궁기마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빅토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순간.
그들 머리 위의 허공에서부터, 거대한 황금빛 그물이 펼쳐졌다.
꽈아아아앙!!
‘큭!’
충동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이대로 석궁기마대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놔둘 수는 없다는.
로건은 귀신 그림자와 풍신의 부츠의 힘을 동원하여 번개처럼 석궁기마대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뻗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장거리 공격기인 무쇠 가르기의 황금빛 빛줄기가 검첨에 맺히는 순간, 이성이 무의식에 제동을 걸었다.
우웅.
‘이걸로는 부족하다.’
일점의 모든 것을 꿰뚫고 나아가는 파괴의 빛은 물론 위력적이지만 넓은 범위에 산발적으로 떨어져 내리는 리베라티오를 모조리 쳐 낼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은 굳이 그렇게 강력한 파괴력도 필요 없었다.
그저 폭탄을 터트릴 정도의 약한 힘으로 넓은 범위를 커버하기만 하면 된다.
위기 상황에 이루어진, 이성과 무의식의 절묘한 합주.
그것이 평상시에는 억지로 의도해도 되지 않았던 신검 비전의 변식(變式)을 만들어 냈다.
로건의 검 끝에 맺힌 황금빛이 다섯 갈래로 퍼져 나가고,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전면을 향해 뻗어 갔다.
그것은 하나하나를 보았을 때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번개의 형상이었고, 다섯 줄기가 모두 합쳐진 광경은 하늘에 거대한 황금빛 그물이 펼쳐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황금빛 그물은 ‘딱 폭탄이 터질 만한 수준’의 힘만을 싣고 석궁기마대 위 전면을 가로막았다.
꽈아아아앙!!
“아아악!”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들 손에서 날아오른 리베라티오의 수에 비하면 고작 십수 기 정도로 피해가 멎은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뭐, 뭐야!”
“무슨……?”
“대공자님이다!”
“멈추지 마! 진격해! 적이 코앞이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빅토르의 고함과 함께 석궁기마대는 다시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당황한 적 기사단을 향해 석궁을 들었다.
파바바박.
타다다다당!
쿼렐의 세례를 받은 비프로스 기사단의 돌진하던 기세가 주춤할 때.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적진 깊숙한 곳에서 노기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
적장의 당황하는 목소리에는 아군의 혼란을 완전히 수습하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놈들에게 이제 폭탄은 없다.’
그것이 빅토르와 석궁기마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계속 쏘면서 측면으로 산개!”
빅토르의 외침과 함께 석궁기마대가 본래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프로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