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전군 방어 진형! 버텨라!”
생각했던 비장의 한 수가 어처구니없는 수법에 가로막혔지만, 로저 비프로스는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며 소리쳤다.
“마법사들 집합!”
그리고 품 안에서 영롱한 푸른빛을 띠는 지팡이를 꺼내 들고 급격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지팡이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마나가 로저의 곁에 모인 바람의 마법사들의 마나까지 휘감으며 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마법을 완성했다.
우우우우웅.
희미한 빛을 휘감은 거대한 돌풍이 비프로스 진형을 휘감는 순간.
타다다다당.
맥라인의 석궁기마대가 쏘아 댄 쿼렐들이 병사들이 가볍게 들어 올린 나무 방패에도 튕겨 나가고, 그 뒤를 따라 허공을 뒤덮은 리베라티오 역시 그 돌풍에 휘말려 허공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콰아아앙.
우우웅.
콰콰콰쾅!
당황한 석궁기마대는 적들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고, 하늘을 메우며 떨어지던 리베라티오 역시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게 가능한 겁니까?”
고작 십수 명의 마법사가 3, 4천 단위의 대부대를 감싸는 보호막을 펼치다니.
조금 전 더욱 믿기 어려운 짓을 저지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에 클레이튼이 황당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헛기침과 함께 원하는 답을 말해 주었다.
“……마도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 정도 범위라면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겁니다. 일단 마도사가 쓰는 마법이라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인 무식한 방어입니다.”
“그럼 지금 보이는 저건요?”
“저 지팡이가 엄청난 아티팩트인 듯합니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무리를 하는 걸 겁니다. 분명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설령 수명을 갈아 넣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한두 시간 정도일 겁니다.”
클레이튼의 단언에 로건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의 시야에는 확연히 들어오는 로저 비프로스의 표정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기사단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고작 저 보호막 하나 믿고 방어만 한다라……. 반격도 안 하네요? 화살이나 좀 깔짝대는 게 다가오지 말라고 시위하는 꼴인데.”
“시간을 끌겠다는 거지. 클레이튼 님, 한두 시간 확실합니까?”
돌진을 준비하던 패드릭이 갑자기 다가와 끼어들었다.
“예, 영주님.”
“한두 시간 안에 적이 믿고 있는 것이 준비될 것으로 생각하면 너무 과한 걱정일까요?”
“아닙니다.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5서클 마법사가 저리 무리를 할 리가 없으니까요.”
설마 진짜 그 정도로 멍청할 리도 없고.
나직하게 덧붙인 클레이튼의 부언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어찌할 테냐, 로건.”
“뭘 어찌하겠습니까. 선택지는 하나뿐이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로건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단 전원, 돌진 준비! 내가 앞장서겠다. 놈들을 정면으로 깨부순다!”
“예!”
맥라인이 자랑하던 무기들이 모조리 막히고 있었지만, 좀 전에 로건이 만들어 낸 기적을 본 맥라인 기사들의 사기는 여전히 드높았다.
더구나 무기가 안 통하면 통하게 만들면 그만이다.
“이상한 마법으로 외부 공격을 막아 낸다면, 내부에서 터트리면 되지.”
골렘들 대신 리베라티오를 집어 든 기사들이 리베라티오 두세 개씩을 가슴팍에 쑤셔 넣었다.
“가자!”
우우웅.
로건을 비롯한 선두의 기사들에게 클레이튼이 부여한 싯누런 색의 마나가 깃들고, 맥라인 기사단이 전면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로건은 자신들의 돌진에 반응하여 적 진영 중앙으로 모이는 적 기사단을 보며 왜인지 피가 끓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방어 우선이라도 가만히 서서 기사단의 차징 공격을 받아 낼 수는 없을 터.
“돌격하라!”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적 기사단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와 주면 더 고맙지.
“던져!!”
로건의 외침과 함께 맥라인 기사들이 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붉게 물든 폭탄을 집어 던졌다.
포스유저의 강력한 힘을 실은 폭탄이 안전한 보호막 바깥으로 튀어나온 적 기사단을 노렸다.
그러나.
“어림없다!”
적들의 선두에 선 두 기사.
새하얀 채찍 같은 포스블레이드가 찬란한 빛으로 전방을 휘어 감고, 5m 가까이 치솟아 오른 붉은빛의 포스블레이드가 그런 은빛 포스블레이드를 보조했다.
꽈아아아앙!
소수의 기사가 낙오하기는 했지만, 거의 피해 없이 그대로 돌진해 오는 비프로스 기사단.
그 모습을 보며 로건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쉽게는 안 된다 이거지?’
회귀 이후부터 로건이 중시해 온 것은 언제나 효율성과 효과성이었다.
가능하면 기습, 기습이 아니라면 압도적인 무기로 초토화 후 돌격.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만 무력을 한계치까지 활용하여 적들과 대치해 왔다.
지금껏 맥라인의 승리를 만들어 온 그 효율성과 효과성의 공식은 틀림없이 옳았지만,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는 조금은 불만이 쌓여 있었다.
더구나 지금 정면으로 맞서는 이들은 서로에게 쌓인 원한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숙적.
로건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그 숙적을 대등한 환경에서, 정면으로 짓밟고 싶은 비이성적인 광기를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광기를 거부할 생각이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그에게는 자신을 가질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으니까.
‘첫 일격부터 압도적으로, 화끈하게!’
우우웅.
심장에 자리잡은 포스코어. 그 핵에서 뿜어진 포스가 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코어를 거치며 연달아 배수로 증폭되었다.
안장 아래 등자에 걸린 풍신의 부츠에서 시작된 마나가 충실히 전신의 신경을 자극해 가속하고.
고삐를 쥔 괴력의 건틀릿에서 시작된 마나는 온몸의 뼈와 근육에 힘을 더했다.
그와 동시에 증폭된 마나가 애검 룩스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대로 검을 뽑아 휘두르기만 해도 3m 이상의 포스블레이드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차징 공격에서 랜스조차 필요 없게 만드는 최상급기사만의 무기.
하지만 로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재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비전을 따라 포스가 일정한 경로로 꼬이고 증폭되며 훨씬 강력하고 위험한 힘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두두두두두.
기사들 전부가 상대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모조리 쓸어 주마!”
폭이 2m에 달하고, 길이는 20m가 넘는 거대한 황금빛 검이 나타나 비프로스 기사단의 선두를 가로로 양단했다.
쩌어어어억.
전장을 가로지르는 황금빛 거인의 검.
그 검이 만들어 낸 광경은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 일순간 전장의 광기마저 잊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적들의 가장 선두에 있던 두 최상급기사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그 칼날을 가뿐히 피해 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직 그들뿐이었다.
“으아아악!”
그 뒤를 따르던 20여 명의 기사는 그 거대한 황금빛이 만들어 낸 죽음의 원 안에서 신체의 일부 혹은 절반이 갈라진 채 비명을 토했다.
히이이이잉!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비프로스의 기사들은 한순간 뿌려지는 붉은선혈과 함께 말이 고꾸라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대열.
반대로 기세가 충천한 맥라인 기사들이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꽈아아앙!
“아아아악!”
강렬한 충돌음. 비등한 수의 기사들이었지만, 그들의 격돌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만들어 냈다.
“저, 저런?!”
본진에서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는 순간.
아티팩트와 보조 마법사들의 힘으로 만들어 낸 6서클 바람의 마법, 광역 다중 보호막(Wide Multiple Barrier)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쏘아지던 석궁기마대의 쿼렐이 그 틈을 뚫고 들어가 비프로스 진영 전역에 쏟아져 내렸다.
“아아악!”
“가, 각하!”
“큭!”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다시금 보호막의 중심을 잡을 때까지.
그 짧은 순간 죽어 나간 병사만 1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로저 비프로스는 석궁기마대의 선두에 선 푸른 머리, 오드아이의 기사 놈을 노려보다가 다시금 전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중요한 것은 저 궁기병들이 아니었다.
‘기사단이 무너지면…….’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던 그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놈을 죽여!”
진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비프로스 기사단의 지휘관인 아슬란과 플란츠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비프로스의 쌍검은 다른 곳을 돌볼 정신이 없었다.
“같이 죽자!”
“어림없다, 이놈들!”
팔다리 하나씩이 잘리거나, 혹은 다른 부위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급기사 다섯이 적 영주를 공격하고 있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들보다 한참은 어린 한 사람을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거침없이 검을 휘두를 뿐.
“뒈져라!”
플란츠가 뽑아낸 새하얀 채찍 같은 은빛 포스블레이드가 로건의 사방을 휘어 감고.
아무 말 없이 이를 악다문 아슬란이 순간적으로 가속하며 이상하게 번뜩이는 송곳 같은 붉은 검을 로건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흣!’
그리고 로건이 허공을 향해 도약하며 공격을 피하는 순간.
둘은 차가운 미소로 그 어리석은 선택을 비웃으며 허공에 뜬 로건의 몸을 난도질했다.
스가각.
쩌어억.
하지만 길게 뻗은 희고, 붉은 포스블레이드가 허공을 어지럽게 난도질하는데도 응당 터져 나와야 할 핏물은 흔적도 없었다.
두 사람이 뜻밖의 상황에 미처 당황하기도 전에, 엉뚱한 곳에서 피 분수가 솟구쳐 올랐다.
푸슈슉.
“커, 커윽?!”
어느새 플란츠의 등 뒤에서 나타난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그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것.
풍신의 부츠와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른 귀신 그림자의 조합이 만들어 낸, 거짓말 같은 결과였다.
“우리 이제 슬슬 그만 볼 때도 됐잖아. 잘 가.”
촤아악!
시끄러운 전장의 한가운데.
한순간 얼어붙은 최강자들 사이에서, 싸늘한 한마디와 함께 한 사람의 목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
과거 토모도 성에서 경험했던 놈의 수법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경지에 어울리지 않는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놈.
하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자신과 플란츠 둘이 함께라면 여유 있게 대응 가능하리라 판단했었다.
그러나 휘둘러지는 황금빛 기둥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허공으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으로 놈이 예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 순간 서늘해진 가슴이 불길한 직감을 전해 왔지만, 어차피 이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직감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최악의 모습으로 그 형태를 드러냈다.
촤아악!
“플란츠!”
아슬란은 오랜 친우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 눈이 뒤집혔다.
놈들에게 빼앗긴 벨로치타스를 대신해 받은 한 등급 낮은 아티팩트 소드, 모빌리타스(Mobilitas)에 힘을 불어넣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가속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첨에서 극한까지 압축된 붉은 포스블레이드가 엄청난 탄성으로 뻗어 나가며 벼락처럼 쏟아졌다.
눈앞에 쓰러진 친우의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비기(?技), 붉은 번개(Red Lightning).
그것이 친우의 영혼을 위로해 주기를 바랬지만.
파아아앙!
그 바람은 허망하게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다.
그리고.
스각.
“동작이 너무 커.”
조롱 섞인 음성이 귀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화끈한 충격과 함께 옆구리에서 불같은 통증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또다시 눈앞에 번뜩이는 황금빛.
“아……!”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른 흥분이 죽음의 공포에 잠식되는 순간.
자신의 뒤쪽에서 쏟아진 폭풍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콰콰콰콰!
“칫!”
방심하고 흥분한 틈을 타 두 놈을 모두 보내 버리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전신으로 쇄도하는 바람의 칼날은 그냥 무시하고 검을 휘두르기에는 너무 매서웠으니까.
다만 당황스럽기는 했다.
‘부대 전체를 보호하는 마법을 쓰면서도 이런 마법을 쓴다고?’
로저 비프로스가 그사이 무슨 전설의 대마도사라도 된 걸까.
로건은 쏟아진 폭풍의 칼날 너머에 도사린 적의 실력에 놀라면서도 번개같이 칼을 휘둘렀다.
카가가강!
어지럽게 난무하는 수십 개의 형태 없는 칼날을 정신없이 쳐 내는데.
“아아아악!”
적진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응?’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자 쏟아지는 쿼렐의 세례 속에 무너지는 적병들이 보였다.
기존에 존재하던 거대한 보호막이 이제는 로저 비프로스와 마법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범위에만 뻗어 있다는 것도.
‘미친! 병사들을 다 버리고 나 하나를 잡겠다고?’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 순간.
눈앞으로 불쑥 붉은 검이 튀어나왔다.
‘큭!’
스각.
예리하게 옆구리를 스쳐 지나가는 포스블레이드.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을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트린 아슬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칼날의 폭풍 속으로 사라졌다.
아. 깝. 다.
아슬란이 입 모양으로 남긴 메시지에 로건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 상대해 주마.’
상대방이 억지로 무리수를 둔다면 이쪽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로건의 검에서 솟구친 황금빛이 더욱더 진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