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사실 일일이 쳐 내는 것보다야 범위 공격으로 한 번에 쓸어버리는 것이 편하다.
보통 기사들과는 달리 로건에게는 이럴 때 쓸 만한 비전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건은 굳이 칼을 휘둘러 쏟아지는 바람의 칼날을 상대했다.
초월적인 감각이 주변에 쇄도하는 무형의 칼날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힘을 아껴야 해.’
로저 비프로스의 저 광기는 이 전투 역시 쉽게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하게 했으니까.
그런데 로저 비프로스가 쏟아 내는 바람의 칼날과 그 사이사이 쏟아지는 아슬란의 공격을 연달아 막다 보니 문득 이상한 영감이 떠올랐다.
이 정신없는 공격을 보다 효율적으로 막아 낼 방안.
심지어 그런 수법을 수차례 직접 경험해 보기도 했기에 떠올리기도 쉬웠다.
‘될 거 같은데?’
아직 생생하게 느껴지는, 리베라티오 백여 개를 한 번에 터트렸던 감각.
그리고 비슷한 공격을 전면에서 막아 내던 찬란한 ‘은빛 포스블레이드’의 모습.
뇌리를 간지럽히던 영감은 곧 실체가 되어 그의 손안에서 펼쳐졌다.
촤라라락.
1~3m 간격으로 줄어들고 늘어나는 단순한 변화만 보이던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어느 순간 끈처럼 가느다랗게 압축되며 무려 7m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고는 주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휘어지며 주변을 강타했다.
촤아아악!
“됐다!”
적의 특기를 흉내 내어 순식간에 로저 비프로스의 마법을 파훼해 버린 로건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단순히 포스블레이드의 응용기 하나가 늘어난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수준이 진일보했음을 느낄 수 있는 성과였다.
그동안 막막하기만 하던 신검 비전의 4식, 불꽃 가르기에 대한 감도 잡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웃음, 아니 정확히는 그를 웃게 만든 채찍 같은 포스블레이드는 바로 앞에서 지켜보던 누군가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감히!!”
눈동자까지 붉게 달아오른 아슬란의 전신에서 형태가 뚜렷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한계 이상으로 힘을 끌어 올리는 오버히트를 넘어서서 생명력 자체를 불태우는 듯한 역동적인 힘의 폭증.
로저 비프로스의 마법이 사라진 공간에 아슬란이 벼락처럼 쇄도했다.
‘지금이다!!’
오랜 친우의 기술이 방금 그를 죽인 적의 손에서 부활했다.
그 분노도 분노지만, 아슬란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기에 이토록 무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기회.
그의 친우가 만들어 낸 저 채찍형 포스블레이드는 실용성과 응용성은 뛰어나지만, 근본적으로 포스블레이드의 절삭력은 약화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휘어지는 포스블레이드의 어느 지점이라도 동급 이상의 힘으로 강타하는 순간 맥없이 끊어지는 단점.
그 단점은 플란츠를 약자에게는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동급 중에서는 약한 기형적인 강자로 만들었다.
플란츠 역시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버리고 새로 연마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경지를 뛰어넘는 한순간의 영감으로 탄생한 특이한 포스블레이드는 그 특성이 절대 바뀌지 않았으니.
그리고 그것은 지금 저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천재성을 원망하며 죽어라!’
마침 타이밍도 최상.
쏟아지던 바람의 칼날 대신 놈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놈을 묶는 사슬이 되어 움직임을 강력하게 제한하는 것이 보였다.
주군의 마법이 만들어 낸 짧은 틈.
그는 일순간 증폭된 힘으로 붉은 번개를 쏟아 냈다.
‘무슨 수를 쓰건 무시하고 단번에 뚫어 버린다!’
그 각오 하나로 전력을 다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예상대로 적의 몸이 속박된 상태에서도 황금빛 포스블레이드는 자유롭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플란츠의 그것과는 달리, 아슬란의 붉은 번개에도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감싸고 돌며 ‘아주 약간’ 방향을 틀어 버리는 황당한 재주를 선보였다.
‘어?!’
필생의 힘을 다해 쏟아 낸 일격이 허공으로 틀어지는 순간.
황금빛 포스블레이드는 허공에서 그의 팔과 검을 피해 휘어지며 정확하게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뱀……?!’
마치 살아 있는 뱀과 같이 유려하고 날카로운 움직임 또한 그의 친우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것.
‘대체 어떻게……?’
아슬란은 시야가 깜깜하게 물드는 그 순간까지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흡!”
파아아앙!
물결 가르기의 가벼운 응용만으로 전신을 옭아매던 로저 비프로스의 속박 마법은 풀려나갔다.
자유를 얻은 로건은 그제야 쓰러지는 아슬란의 시체를 뛰어넘어 로저 비프로스를 향해 돌진했다.
주위에는 연달아 쓰러지는 적 기사들뿐.
상승세를 탄 맥라인 기사단 또한 그대로 적 진영을 향해 돌진했다.
“막아!!”
비명과 같은 로저 비프로스의 고함.
황급히 앞을 막아서는 기사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적들은 가벼운 까딱임만으로도 요동치듯 변화하며 전방을 휘감는 황금빛 채찍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약하디약한 적을 쓸어 내기 위해 굳이 동작도, 에너지 소모도 큰 신검 비전이나 철혈검의 강검을 쓸 필요는 없었다.
로건은 차분하게 눈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며 적장을 향해 다가갔다.
드디어 오랜 악연을 십여 미터 전방의 눈앞에 두었을 때.
과거에는 여유가 가득했던 푸른 눈동자가 광기로 희번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너, 너만은 기필코……!!”
기이한 열기가 담긴 목소리와 함께 일순간 사위를 압도하는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백작님!”
“아악!”
“이, 이럴 수는…….”
로저 비프로스의 주변에서 마나를 공급하던 바람의 마법사 열두 명이 갑자기 비쩍 말라 버린 채, 흰빛이 아닌 붉은빛 마나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뒤섞인 희고 붉은 마나는 로저 비프로스의 지팡이 안에서 광풍이 되어 쏟아졌다.
“죽어!!”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외침과 함께 로건의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존재하던 공기 전체가 일순간 적의 손발이 된 것 같은 느낌.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려워지는 것을 시작으로, 주변을 둘러싼 공기가 일시에 신체를 압박하며 사지를 찢어 버릴 듯 각기 다른 방향으로 압력을 가해 왔다.
그리고 그 밖에서는 투명한 바람이 수천 개의 투명한 송곳으로 변해 전신으로 쏟아졌다.
하나라도 격중되는 순간 몸에 바람구멍이 날 것 같은 살벌한 위력이 생생히 느껴졌지만, 그 이면에 자리한 이질적인 느낌이 더욱 로건을 경악하게 했다.
‘마나가…… 아니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훨씬 밀도 높고 이질적인 힘을 포함한 기운.
로건은 최근에도 간접적으로나마 비슷한 힘을 체험해 본 적이 있었기에 그 이질적인 느낌의 정체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마력(Magic force).
6서클에 오른 마법사, 마도사만의 권능이라 불리는 힘.
로저 비프로스가 편법으로나마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결국 로건 역시 숨겨 둔 비장의 한 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룩스!’
애검 룩스에서 시작된 따스한 빛이 순식간에 그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대가급 드워프가 평생에 한두 개나 만들어낸다는 혼이 실린 명품 무구.
그러한 명품이 오랜 시간 주인의 영혼과 공명하고 온전히 길이 드는 순간 고유한 특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은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거짓말처럼 전해지는 전설이었다.
그 주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법 같은 힘이 깨어난다는 클래스 미상의 자연 마법, 내추럴 아티팩트(Natural artifact)의 힘.
룩스는 지난 전투에서 후안 더글라스의 마법을 막아 내며 그 특성을 각성했다.
그리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로건이 일전에 한 번 경험해 본 것과 비슷한 마법이었다.
‘시간 가속.’
아슬란의 애검 벨로치타스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이 로건의 영혼을 감싸 안았다.
그때처럼 의식만 가속되어 무언가 불편하고 이질적인 감각이 아닌, 본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듯한 익숙한 느낌.
의식뿐만 아니라 육체마저 온전하게 가속된 고유의 마법이 발현된 것이다.
왜 룩스를 통해 발현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법이 이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 이유나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합!’
그의 전신에서 황금빛 포스의 파도가 연달아 쏟아지며 온몸을 압박하는 바람의 힘을 찢어 냈다.
물결 가르기, 16겹의 황금빛 파도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보호막은 분명 강력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쏟아지는 수천 개의 바람 송곳니, 말살의 폭풍(Exterminating Storm)을 막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로건에게는 일순간 속박을 끊어 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귀신 그림자.’
시간 가속과 풍신의 부츠의 힘이 더해진 검공의 비전은 일순간에 로건이 공간을 단축한 것처럼 마법의 범위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파아아앙!
전면을 반원형으로 감싼 황금빛 포스블레이드, 플란츠의 그것을 오히려 진화시킨 스네이크 블레이드가 그의 앞을 가로막는 수십 개의 바람 송곳니를 찢어발겼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로저 비프로스의 얼굴이 보였다.
마법의 후유증인지, 아니면 정말 그냥 미친 것인지.
한때 여유가 가득했던 푸른 눈동자는 뒤집힌 채 흰자위만 보이고, 일그러진 얼굴에는 여기저기 실핏줄이 징그럽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토록 긴 시간 이어온 악연의 끝이 겨우 저런 모습이라니.
왠지 모를 허무함을 느낀 로건은 굳은 표정으로 놈을 향해 돌진했다.
‘이쯤에서 끝내자.’
유난히 강렬하게 빛나는 황금빛 빛줄기가 로저 비프로스의 미간을 강타했다.
그런데.
꽈아아아앙!
‘막아?!’
전면을 감싼 투명한 보호막이 깨어지며 형편없이 밀려나는 로저 비프로스의 모습.
더구나.
“로……건 맥라인!”
어처구니없게도 다시 번뜩이기 시작한 푸른 눈에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로건은 공격을 멈추지는 않았다.
유연하게 휘어진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막 다시 생성되기 시작한 보호막을 우회하여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마법사의 목을 물어뜯었다.
스각.
솟구치는 핏줄기와 함께 다시 사라져 가는 보호막.
급속도로 흐려져 가는 로저 비프로스의 눈빛에 로건이 내심 안도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같이 죽자!!”
우우웅.
놈의 손에 들린 지팡이에 급속도로 모여들기 시작한 마나가 다시금 요동치며 로건의 몸을 속박했다.
하지만.
“혼자 죽으시길, 백작.”
차가운 한마디와 함께 황금빛 포스블레이드가 지팡이를 든 손을 잘라 냈다.
“아악!!”
지팡이가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광기에 물든 얼굴이 급속한 변화를 보였다.
금발이 한순간에 새하얗게 바래고, 튀어나온 실핏줄은 검버섯이 되어 순식간에 1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을 만들었다.
“이, 이럴 수는…….”
마나도 생명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반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
잘려 나간 오른쪽 팔꿈치에서 연신 뿜어져 나오는 피도 검게 죽어 있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곧 죽을 것이 뻔히 보이는 적. 오랜 악연의 마지막 모습에 로건은 왠지 가슴 한구석이 조금 허전해졌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소?”
아직 사방에서 항전하는 이들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소수.
전장의 승리는 맥라인으로 확정된 지 오래였다.
“크, 크흐흐흐. 네놈! 네놈만 아니었으면……!”
“유언은 그게 끝?”
로건의 검에 번뜩이는 황금빛을 보면서도 욕설을 퍼부으려던 로저 비프로스.
주저앉은 그의 눈이 흘깃 로건의 뒤쪽을 향하더니, 하나 남은 손으로 후방을 가리키며 별안간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크크크크. 이것으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너도, 너희 가문도 바로 내 뒤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푸하하하!”
그 불길한 손짓을 따라 뒤를 돌아본 로건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회오리바람을 휘감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문양.
5백여 기의 기사단과 그 가장 앞에서 돌진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본 로건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빌어먹을!”
“크크크. 너희도 끝…….”
“닥쳐!”
촤아악.
단숨에 로저 비프로스의 목을 잘라 버린 로건이 전장을 정리 중인 가문의 병력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위켄 칼리아! 폭풍검의 군대다! 어서 전장을 정리해!”
한고비를 넘긴 줄 알았던 맥라인에게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