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단장님!”
뒤에서 그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헤인켈은 자신의 주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기사단 단장으로서 실격이라 말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고, 확연히 부족한 수준으로 고수들의 싸움터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행동이기도 했다.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중상을 입은 뒤인 데다가, 오히려 아군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돌격이었다.
이성이 멀쩡했다면 그 자신도 욕을 내뱉었을 것 같은 한심한 짓거리.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주군!!”
포스로 강화한 자신의 애마가 그조차 생전 처음 느끼는 속도로 가속하고.
호신을 위해 최악의 경우에만 사용하라고 지급된 폭탄궁은 탄창을 아끼지 않고 순식간에 열 발이 모두 비워지며 새하얀 폭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적의 초인을 향해 쏘아졌다.
초인의 시선을 한순간이라도 자신에게 돌리면 대공자가 주군을 구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에 이어진 억지에 가까운 기대.
하지만 하늘이 그 간절함을 받아들였는지 전혀 다른 각도의 두 방향에서도 붉게 빛나는 화살들이 연달아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허어?!’
그가 놀라는 사이 도합 30발의 폭탄궁이 기적 같은 타이밍으로, 기적같이 한 지점에서 부딪히며 연이어 폭발했다.
그 작은 기적은 초인조차 움찔하지 않을 수 없는 위력의 폭발을 만들어 냈고.
‘지금!’
그것은 늙은 기사가 자신의 주군을 구해 내기에는 충분한 틈이 되었다.
콰직.
에일렌은 바로 직전까지 로건을 죽일 듯 몰아세우던 초인이 등 뒤에서 다가온 다른 적과 싸우는 것을 본 뒤에야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탄창이 바닥난 폭탄궁을 바닥에 던져 밟아 부쉈다.
혹시나 적에게 노획되어 분석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에일렌은 자신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똑같은 타이밍에 폭탄궁을 쏟아 낸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은 타이밍이었어.”
“별거 아닙니다.”
재미없는 녀석.
붉고 푸른 두 눈의 특이한 외모에 자신보다 한 살 더 어린, 하지만 검을 배운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포스유저 중급에 올랐다는 진짜배기 천재.
그리고 왜인지 자신이 기사단 훈련에 합류했을 때부터 자신을 삐딱하게 대하는 녀석이었다.
‘언제 한번 그 얘기도 해 보긴 해야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잠시 나 좀 지켜 주게!”
다급한 음성을 토해 낸 클레이튼이 ‘처음 보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거대하고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에일렌과 빅토르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순간.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 * * 칼리아 군을 발견한 직후.
“클레이튼 님! 쓰십시오!”
“예?!”
클레이튼은 로건이 던진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로저 비프로스가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마법을 사용하게 해 주었던 아티팩트.
얼핏 느껴지는 마나만 해도 최소 5클래스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준다고 덥석 받을 만한 물건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물건을 던져 준 로건이 계획에도 없던 초인과 충돌하기 시작했으니까.
“스승님! 대공자님이……!”
“보고 있다!”
빅토리아의 비명 같은 외침에 클레이튼이 황급히 마나를 끌어 올리자, 지팡이가 힘찬 진동과 함께 그 힘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클레이튼은 로저 비프로스가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마법을 쓸 수 있었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허……? 이럴 수가……!’
지팡이에 새겨진 주문 가속, 마나 증폭, 마나 효율 개선의 효과가 연달아 적용되며 클레이튼의 마법을 평상시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거 어쩌면……?’
대지 계열 서클 마법사들에게는 초인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는 ‘그 마법’도 지금이라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충분히 가능해!’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나는 정신이 넘쳐 나는 마나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 결과.
클레이튼은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비티 컨트롤(Gravity control)!!”
머릿속에서 그린 듯이, 이상적으로 시전되는 6서클의 마법.
비록 아직은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야만 시전이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마법사들이 동급 이상의 지팡이 아티팩트를 가장 선호하는 본질적인 이유.
그 위력을 몸소 체감하며 클레이튼은 희망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의 결과는 전장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위켄 칼리아는 갑자기 온몸을 짓누르는 육중한 무게에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갑자기 몸무게가 수십, 수백 배로 불어난 느낌.
일반인, 아니 웬만한 기사들도 그대로 피를 토하고 짓이겨졌을 것 같은 무게감이 그를 압박했다.
그 무게감은 질주하던 몸의 균형을 뒤흔들었고.
파아아아앙!
추락하는 애송이를 끝장내기 위한 일격마저 어이없이 허공으로 빗나가게 했다.
꽈아아앙!
“큭!”
요란한 착지가 이어지고, 초인답지 않게 그만한 충격에도 몸이 흔들리는데.
탁.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토해 낸 피의 흔적으로 입가가 온통 붉은색으로 흥건해진 적 애송이는 오히려 자신보다 몸이 가벼워 보였다.
그 이질감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마법!’
그것도 자신이 그 징조를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고급의 마법이 분명했다.
전신을 속박하는 무형의 힘을 억지로 뿌리치려 해 보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끄으응.”
쿵. 쿵. 쿵.
폭풍검, 바람을 지배하는 자 등의 이명으로 불리는 자신의 움직임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둔한 움직임.
하지만 끈적끈적하게 전신에 눌어붙은 무형의 힘은 아무리 오러를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옭아매는 힘의 근원이 자신의 몸 근처에 없다는 뜻.
‘설마?!’
이런 이상한 마법은 평생에 몇 번 겪어 보지 못했지만 그나마 그 몇 되지 않은 경험 때문에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초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마법.
오러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무형의 힘.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6서클의 마법!!’
마나(Mana)를 뛰어넘어 마력(Magic force)이라는 힘으로 발휘되는 다중 속성의 마법만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도사가 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의 출현에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눈앞의 적의 외침.
“초인은 내가 잡아 두겠다! 적들을 쓸어 버려!!”
아무리 마도사의 마법에 움직임이 느려졌다고 한들 자신이 이 애송이에게 당할 리는 없었다.
오러유저와 포스유저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했으니까.
자신이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 오러도 유지 못 할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자신이 당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앞장서서 진형을 헤집고 기사단이 놈들의 군대에 쐐기를 박는, 그가 그린 큰 그림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안 돼! 이대로는 피해가……!’
로저 비프로스의 긴급한 요청에 무리하게 질주해 온 것부터가 무리였을까.
본대를 모두 끌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신무기로 무장한 맥라인 군은 전력의 차이를 가뿐히 무시하는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는 상황.
‘내가 여기 묶여 있으면 안 돼!’
그 계산이 그의 분노를 부추겼다.
“빌어먹을! 애송이!! 도망만 가지 말고 덤벼라!”
그런데.
파아아앙!
자신이 만들어 낸 범위 공격을 억지로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적이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병력을 물리시지요. 후작 각하. 저희는 이 이상 전쟁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전투 중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어조.
그에 대한 위켄의 답은 간단했다.
“헛소리!”
우우웅.
속도로 잡지 못한다면 운용하는 기운의 총량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
직접 검과 몸에 일으킨 오러만은 못하겠지만, 그의 넘치는 속성력으로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이라면 저 애송이 놈을 힘으로 짓누르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저놈의 저 거대한 황금빛 거검을 보기 전까지는.
“빌어먹을!”
콰아아아앙!
쿵. 쿵.
비틀거리면서 물러서는 상대.
놈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둔해진 몸 때문에 저 무식한 공격을 그대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뿌드득.
‘대체 이게 무슨……?!’
저 무식한 거검을 형상화한 공격은, 오러와 포스라는 근본적인 상성의 차이를 넘어서서 충격을 누적시켰다.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었지만, 분명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적 역시 그것을 눈치챘다는 것.
“이대로라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해!”
물론 연달아 무리하게 속성력을 동원하고 충격을 받았다 한들, 아직 여유는 있었다.
다만 온몸을 옭아매는 이 마법의 근원을 아직도 찾지 못했고, 더 무리한다 해도 이리 느려진 몸으로 놈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우리는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니까?!”
자연히 평상시라면 어림도 없었을 적의 헛소리에 귀가 기울여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2왕자파에 뒤통수를 맞았는데 우리가 왜 전쟁을 계속하겠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이 자리에 끌어들인 비프로스의 습격으로 신뢰가 완전히 깨어져 버렸을 테니까.
“우리 맥라인은 이제 파벌 싸움에 관여할 생각이 없어! 군대를 물려! 이대로 2왕자 군만 좋은 일을 할 셈인가?!”
하지만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입만큼, 적의 공격 역시 끊이지 않았다.
연신 자신이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을 파괴하며 집요하게 허점을 노리는 뱀 같은 포스블레이드.
그 유연한 움직임은 느려진 몸으로는 반격도 쉽지 않았다.
몸에 오러를 둘러 억지로 방어하는 것이 최선일 뿐.
콰콰쾅!
다시금 충격을 받은 적이 비틀거렸지만, 느려진 몸은 그 뻔한 빈틈도 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온몸에 오러를 휘감고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그에게도 무리한 일.
이대로 전투가 이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아니, 아니야. 그런다고 내가 설마.’
불길한 상상을 드높은 자존감이 억지로 짓누르는데, 적이 그 찰나의 표정을 읽은 듯했다.
“자존심 때문에 거부한다면 당신부터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하. 어림없는…….”
“기사단, 정렬! 위켄 칼리아부터 노려라!”
“예!”
체감상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아직도 자신의 기사단은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창백한 안색의 적이 황금빛 뱀 같은 포스블레이드를 뿌리며 그의 사방을 휘어 감았다.
“내가 억지로라도 묶어 두겠다. 박살 내!!”
“이 미친……?!”
우우웅.
그그그그.
바람의 오러가 황금빛 포스블레이드의 압박을 손쉽게 밀어 냈지만.
까드득.
“어림없다!”
놈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그래비티 컨트롤로 인해 수백 배의 무게를 지고서도 날 듯이 움직이던 위켄 칼리아의 움직임이 평기사의 눈에도 잡힐 정도로 현저히 느려졌다.
“기사단, 돌격!”
두두두두.
그 순간, 드높았던 자존심이 마침내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너희부터 공격을 멈춰라!”
전쟁 중에 먼저 공격을 멈춰라?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조건.
하지만 초인으로서의 자존심은 혓바닥을 멋대로 나불거리게 했다.
‘이런 빌어먹을.’
말을 뱉어 낸 자의 안색이 먼저 확 굳어지는데.
“전군 공격 중지! 공격을 중지하라!”
놈이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어주었다.
‘다행이야.’
로건은 심각한 내상 탓에 목구멍으로 솟구치던 핏물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놈이 조금만 더 버텼으면 큰일 날 뻔했다.
클레이튼의 알 수 없는 마법 덕분에 초인을 궁지로 몰아붙였지만, 정말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선다면 아군의 피해가 얼마나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나부터 한계야.’
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쥐어짜 내는 포스는 이미 거의 말랐고, 내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은 이 순간에도 시야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5분만 더 전투를 지속해도 제풀에 쓰러질 것 같은 느낌.
더구나 지금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위켄 칼리아를 죽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요르단 공작의 뱀 같은 미소가 머릿속에 스치자 로건의 얼굴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두 파벌은 아직 더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그러니 위켄 칼리아의 입에서 나온 사실상의 항복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로건은 놈이 부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기력을 돋구며 바로 다시 소리쳤다.
“다섯을 세겠다. 그 안에 당신의 군대가 진군을 멈추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어떤 피해를 보든 간에 당신은 죽는다.”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가 초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허물어트렸다.
위켄은 이를 악물며 크게 소리쳤다.
“전군! 정지하라! 전투 중지!!”
바람의 힘을 실은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질주해 오던 그의 군대까지 도달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발발한 전투는 그보다 더욱 갑작스레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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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가문의 회귀자-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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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
뒤에서 그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헤인켈은 자신의 주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기사단 단장으로서 실격이라 말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고, 확연히 부족한 수준으로 고수들의 싸움터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행동이기도 했다.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중상을 입은 뒤인 데다가, 오히려 아군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돌격이었다.
이성이 멀쩡했다면 그 자신도 욕을 내뱉었을 것 같은 한심한 짓거리.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주군!!”
포스로 강화한 자신의 애마가 그조차 생전 처음 느끼는 속도로 가속하고.
호신을 위해 최악의 경우에만 사용하라고 지급된 폭탄궁은 탄창을 아끼지 않고 순식간에 열 발이 모두 비워지며 새하얀 폭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적의 초인을 향해 쏘아졌다.
초인의 시선을 한순간이라도 자신에게 돌리면 대공자가 주군을 구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에 이어진 억지에 가까운 기대.
하지만 하늘이 그 간절함을 받아들였는지 전혀 다른 각도의 두 방향에서도 붉게 빛나는 화살들이 연달아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허어?!’
그가 놀라는 사이 도합 30발의 폭탄궁이 기적 같은 타이밍으로, 기적같이 한 지점에서 부딪히며 연이어 폭발했다.
그 작은 기적은 초인조차 움찔하지 않을 수 없는 위력의 폭발을 만들어 냈고.
‘지금!’
그것은 늙은 기사가 자신의 주군을 구해 내기에는 충분한 틈이 되었다.
콰직.
에일렌은 바로 직전까지 로건을 죽일 듯 몰아세우던 초인이 등 뒤에서 다가온 다른 적과 싸우는 것을 본 뒤에야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탄창이 바닥난 폭탄궁을 바닥에 던져 밟아 부쉈다.
혹시나 적에게 노획되어 분석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에일렌은 자신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똑같은 타이밍에 폭탄궁을 쏟아 낸 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은 타이밍이었어.”
“별거 아닙니다.”
재미없는 녀석.
붉고 푸른 두 눈의 특이한 외모에 자신보다 한 살 더 어린, 하지만 검을 배운 지 몇 년 되지도 않아 포스유저 중급에 올랐다는 진짜배기 천재.
그리고 왜인지 자신이 기사단 훈련에 합류했을 때부터 자신을 삐딱하게 대하는 녀석이었다.
‘언제 한번 그 얘기도 해 보긴 해야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잠시 나 좀 지켜 주게!”
다급한 음성을 토해 낸 클레이튼이 ‘처음 보는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거대하고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에일렌과 빅토르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는 순간.
전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 * * 칼리아 군을 발견한 직후.
“클레이튼 님! 쓰십시오!”
“예?!”
클레이튼은 로건이 던진 물건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로저 비프로스가 자신의 수준을 뛰어넘는 마법을 사용하게 해 주었던 아티팩트.
얼핏 느껴지는 마나만 해도 최소 5클래스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준다고 덥석 받을 만한 물건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물건을 던져 준 로건이 계획에도 없던 초인과 충돌하기 시작했으니까.
“스승님! 대공자님이……!”
“보고 있다!”
빅토리아의 비명 같은 외침에 클레이튼이 황급히 마나를 끌어 올리자, 지팡이가 힘찬 진동과 함께 그 힘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클레이튼은 로저 비프로스가 어떻게 그런 무지막지한 마법을 쓸 수 있었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허……? 이럴 수가……!’
지팡이에 새겨진 주문 가속, 마나 증폭, 마나 효율 개선의 효과가 연달아 적용되며 클레이튼의 마법을 평상시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거 어쩌면……?’
대지 계열 서클 마법사들에게는 초인으로 향하는 길목이 되는 ‘그 마법’도 지금이라면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충분히 가능해!’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나는 정신이 넘쳐 나는 마나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그 결과.
클레이튼은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그래비티 컨트롤(Gravity control)!!”
머릿속에서 그린 듯이, 이상적으로 시전되는 6서클의 마법.
비록 아직은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야만 시전이 가능하지만.
‘언젠가는…….’
마법사들이 동급 이상의 지팡이 아티팩트를 가장 선호하는 본질적인 이유.
그 위력을 몸소 체감하며 클레이튼은 희망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의 결과는 전장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위켄 칼리아는 갑자기 온몸을 짓누르는 육중한 무게에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갑자기 몸무게가 수십, 수백 배로 불어난 느낌.
일반인, 아니 웬만한 기사들도 그대로 피를 토하고 짓이겨졌을 것 같은 무게감이 그를 압박했다.
그 무게감은 질주하던 몸의 균형을 뒤흔들었고.
파아아아앙!
추락하는 애송이를 끝장내기 위한 일격마저 어이없이 허공으로 빗나가게 했다.
꽈아아앙!
“큭!”
요란한 착지가 이어지고, 초인답지 않게 그만한 충격에도 몸이 흔들리는데.
탁.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토해 낸 피의 흔적으로 입가가 온통 붉은색으로 흥건해진 적 애송이는 오히려 자신보다 몸이 가벼워 보였다.
그 이질감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답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마법!’
그것도 자신이 그 징조를 느끼기도 힘들 정도로 고급의 마법이 분명했다.
전신을 속박하는 무형의 힘을 억지로 뿌리치려 해 보았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끄으응.”
쿵. 쿵. 쿵.
폭풍검, 바람을 지배하는 자 등의 이명으로 불리는 자신의 움직임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둔한 움직임.
하지만 끈적끈적하게 전신에 눌어붙은 무형의 힘은 아무리 오러를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옭아매는 힘의 근원이 자신의 몸 근처에 없다는 뜻.
‘설마?!’
이런 이상한 마법은 평생에 몇 번 겪어 보지 못했지만 그나마 그 몇 되지 않은 경험 때문에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초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마법.
오러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무형의 힘.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6서클의 마법!!’
마나(Mana)를 뛰어넘어 마력(Magic force)이라는 힘으로 발휘되는 다중 속성의 마법만이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도사가 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의 출현에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눈앞의 적의 외침.
“초인은 내가 잡아 두겠다! 적들을 쓸어 버려!!”
아무리 마도사의 마법에 움직임이 느려졌다고 한들 자신이 이 애송이에게 당할 리는 없었다.
오러유저와 포스유저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했으니까.
자신이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 오러도 유지 못 할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자신이 당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앞장서서 진형을 헤집고 기사단이 놈들의 군대에 쐐기를 박는, 그가 그린 큰 그림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안 돼! 이대로는 피해가……!’
로저 비프로스의 긴급한 요청에 무리하게 질주해 온 것부터가 무리였을까.
본대를 모두 끌고 오지 못한 아쉬움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가뜩이나 신무기로 무장한 맥라인 군은 전력의 차이를 가뿐히 무시하는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는 상황.
‘내가 여기 묶여 있으면 안 돼!’
그 계산이 그의 분노를 부추겼다.
“빌어먹을! 애송이!! 도망만 가지 말고 덤벼라!”
그런데.
파아아앙!
자신이 만들어 낸 범위 공격을 억지로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적이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병력을 물리시지요. 후작 각하. 저희는 이 이상 전쟁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전투 중에 어울리지 않는 정중한 어조.
그에 대한 위켄의 답은 간단했다.
“헛소리!”
우우웅.
속도로 잡지 못한다면 운용하는 기운의 총량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
직접 검과 몸에 일으킨 오러만은 못하겠지만, 그의 넘치는 속성력으로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이라면 저 애송이 놈을 힘으로 짓누르기에는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저놈의 저 거대한 황금빛 거검을 보기 전까지는.
“빌어먹을!”
콰아아아앙!
쿵. 쿵.
비틀거리면서 물러서는 상대.
놈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둔해진 몸 때문에 저 무식한 공격을 그대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으니까.
뿌드득.
‘대체 이게 무슨……?!’
저 무식한 거검을 형상화한 공격은, 오러와 포스라는 근본적인 상성의 차이를 넘어서서 충격을 누적시켰다.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었지만, 분명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적 역시 그것을 눈치챘다는 것.
“이대로라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해!”
물론 연달아 무리하게 속성력을 동원하고 충격을 받았다 한들, 아직 여유는 있었다.
다만 온몸을 옭아매는 이 마법의 근원을 아직도 찾지 못했고, 더 무리한다 해도 이리 느려진 몸으로 놈을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우리는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니까?!”
자연히 평상시라면 어림도 없었을 적의 헛소리에 귀가 기울여졌다.
“그게 무슨 소리지?”
“2왕자파에 뒤통수를 맞았는데 우리가 왜 전쟁을 계속하겠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자신을 이 자리에 끌어들인 비프로스의 습격으로 신뢰가 완전히 깨어져 버렸을 테니까.
“우리 맥라인은 이제 파벌 싸움에 관여할 생각이 없어! 군대를 물려! 이대로 2왕자 군만 좋은 일을 할 셈인가?!”
하지만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입만큼, 적의 공격 역시 끊이지 않았다.
연신 자신이 만들어 낸 바람의 칼날을 파괴하며 집요하게 허점을 노리는 뱀 같은 포스블레이드.
그 유연한 움직임은 느려진 몸으로는 반격도 쉽지 않았다.
몸에 오러를 둘러 억지로 방어하는 것이 최선일 뿐.
콰콰쾅!
다시금 충격을 받은 적이 비틀거렸지만, 느려진 몸은 그 뻔한 빈틈도 노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이렇게 온몸에 오러를 휘감고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그에게도 무리한 일.
이대로 전투가 이어진다면 최악의 경우…….
‘아니, 아니야. 그런다고 내가 설마.’
불길한 상상을 드높은 자존감이 억지로 짓누르는데, 적이 그 찰나의 표정을 읽은 듯했다.
“자존심 때문에 거부한다면 당신부터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
“하. 어림없는…….”
“기사단, 정렬! 위켄 칼리아부터 노려라!”
“예!”
체감상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아직도 자신의 기사단은 도착하기도 전이었다.
창백한 안색의 적이 황금빛 뱀 같은 포스블레이드를 뿌리며 그의 사방을 휘어 감았다.
“내가 억지로라도 묶어 두겠다. 박살 내!!”
“이 미친……?!”
우우웅.
그그그그.
바람의 오러가 황금빛 포스블레이드의 압박을 손쉽게 밀어 냈지만.
까드득.
“어림없다!”
놈은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그래비티 컨트롤로 인해 수백 배의 무게를 지고서도 날 듯이 움직이던 위켄 칼리아의 움직임이 평기사의 눈에도 잡힐 정도로 현저히 느려졌다.
“기사단, 돌격!”
두두두두.
그 순간, 드높았던 자존심이 마침내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너희부터 공격을 멈춰라!”
전쟁 중에 먼저 공격을 멈춰라?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조건.
하지만 초인으로서의 자존심은 혓바닥을 멋대로 나불거리게 했다.
‘이런 빌어먹을.’
말을 뱉어 낸 자의 안색이 먼저 확 굳어지는데.
“전군 공격 중지! 공격을 중지하라!”
놈이 정말로 그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어주었다.
‘다행이야.’
로건은 심각한 내상 탓에 목구멍으로 솟구치던 핏물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놈이 조금만 더 버텼으면 큰일 날 뻔했다.
클레이튼의 알 수 없는 마법 덕분에 초인을 궁지로 몰아붙였지만, 정말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맞선다면 아군의 피해가 얼마나 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단 나부터 한계야.’
우웅.
심장의 포스코어가 쥐어짜 내는 포스는 이미 거의 말랐고, 내장에서부터 느껴지는 짜릿한 통증은 이 순간에도 시야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 5분만 더 전투를 지속해도 제풀에 쓰러질 것 같은 느낌.
더구나 지금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고 위켄 칼리아를 죽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누구 좋으라고.’
요르단 공작의 뱀 같은 미소가 머릿속에 스치자 로건의 얼굴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두 파벌은 아직 더 피 터지게 싸워야 한다.
그러니 위켄 칼리아의 입에서 나온 사실상의 항복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로건은 놈이 부상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기력을 돋구며 바로 다시 소리쳤다.
“다섯을 세겠다. 그 안에 당신의 군대가 진군을 멈추지 않는다면, 오늘 우리가 어떤 피해를 보든 간에 당신은 죽는다.”
핏발이 선 붉은 눈동자가 초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허물어트렸다.
위켄은 이를 악물며 크게 소리쳤다.
“전군! 정지하라! 전투 중지!!”
바람의 힘을 실은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질주해 오던 그의 군대까지 도달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발발한 전투는 그보다 더욱 갑작스레 끝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