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1km가 넘는 거리를 두고 물러선 두 진영의 수장이 그 가운데 벌판에서 마주했다.
툭.
데구르르.
“로저 비프로스의 머리입니다. 좀 늙었지만. 더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아니, 빠지겠다는 말을 믿도록 하지. 하지만 만약 그 말을 번복한다면…….”
“쓸모없는 맹세 따위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시지요. 우린 이제 전쟁에는 학을 떼서 절대 다시 참여할 일 없을 테니.”
로건의 말에 위켄 칼리아가 이를 갈았다.
“흐…… 좋아. 자네라면 그리 말할 만한 능력이 있지. 나중에 다시 보자고, 로건 맥라인.”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2왕자파의 공격이 곧 시작될 테니까.”
“뭐?”
“당신이 공격해 온 순간, 이미 통신을 날렸거든.”
사실은 이제 곧 날릴 예정이지만.
“뭣이?! 이런……!”
“나한테 화낼 시간 없을 텐데?”
“너, 나중에 두고 보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위켄 칼리아는 로건을 견제하는 듯, 노려보는 자세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바람이 그의 몸을 운반하는 것처럼, 발을 움직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저절로 미끄러지듯 후퇴하는 모습.
그마저도 정말 질풍처럼 빨랐기에 그는 어느새 칼리아 기사단의 후미에 서 있었다.
– 전군, 회군! 최고 속도로 본진을 향한다!
그리고 그제야 로건은 돌아서서 간신히 내리눌렀던, 치밀어 오르는 핏물을 뱉어 냈다.
쿨럭.
“크으…….”
“대공자님!”
흐릿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로건은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태연한 척 연기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빨리 통신을 해야 하는데…… 놈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게 만들어야…….’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도 잠시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 * * [비프로스의 습격. 또 그 직후에 1왕자 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각하.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통신구 속에 보이는 창백한 안색의 청년.
그의 붉은 눈에는 지독한 경멸이 담겨 있었다.
평상시라면 두 눈을 뽑아 버렸을 건방진 태도가 심히 거슬렸지만, 요르단 발터마임은 차마 무어라 큰소리칠 수 없었다.
통신구 너머로 처참한 상태의 맥라인 군이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불찰이네.”
평생 해 보지 않은 구구절절한 변명.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라고 준 무기를 자네들에게 사용할 줄이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익숙하지 않은 저자세로 말해 봤지만.
통신구 너머의 상대에게는 도무지 먹히지 않았다.
‘당연히 그게 나였다고 해도…….’
요르단 발터마임은 절로 이가 갈렸다.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상대를 설득해야 했다.
비프로스 군이 박살 난 마당에 맥라인까지 잃는다?
애써 잡은 승세가 또다시 사라질 판이었다.
“내 말을 좀 듣게! 놈이 한 짓은 정말…….”
[파벌을 위해 모든 것을 공개하고 희생을 자처한 우리입니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았지요. 각하라면 어찌하시겠습니까?]일방적으로 말을 끊은 것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통신구를 통해 들려오는 차분한 어조 속에서 짙은 분노가 느껴졌으니까.
“로건 공자. 진정하고 내 말을 좀…….”
[밀리던 전황을 우세하게 바꾸고, 희생을 자처하며 전쟁을 끝내고자 한 충심을 이렇게 보답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각하의 도량이 이렇게 좁은 줄은 더욱. 제가 1왕자파로 투항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내 말 좀 들어!!”
[지금 누가 화를……!]“정말 내가 자네를 치고자 했다면 로저 하나만을 동원했겠나?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차분히 생각을 해 보라고! 그건 놈의 독단이야!”
놈을 달래려다 오히려 자신이 흥분하게 생겼다.
하나 진정성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는 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애써 자제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그나마 통한 듯했다.
[흠……. 그거야 확실히 그렇지요.]“그러니 오해하지 말게! 자네가 본 피해는 내가 얼마든지 보상해 주지. 일단 진정하고 대화를 해 보자고.”
[후우……. 각하, 그럼 어찌 보상해 주실 겁니까?]“흐음. 일단 전쟁이 끝난 후, 자네가 원하는 보상에 더해…….”
[하……. 끝. 난. 후요?]로건의 비꼬는 어조에 요르단은 일순간 혈압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최근 수십 년 사이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 봤지만.
[지금 장난하십니까? 뒤통수를 맞고, 피해 볼 거 다 본 상황에서 전쟁이 끝난 후? 하하. 지금 각하께서 제 복장을 뒤집어 놓으시려고 작정을 하셨군요?]어디서 건방지게 혓바닥을.
부글거리는 분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쳤지만, 요르단은 이번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 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들어주지.”
결국 그가 깊은 한숨과 함께 사실상 항복 선언을 뱉어 냈다.
무엇을 말하던, 당장은 맥라인을 잡는 것이 이득이었다.
‘나중에 모른 체하면 그만이니까.’
그런 생각이었지만, 상대는 그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단 저와 제 가문은 영지로 돌아가겠습니다.]“뭐?!”
[이 상황에서 더 전투를 지속하기에는 무리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죄송하지만, 이제 더 이상 파벌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하여 맥라인은 이 전쟁에서 아예 빠질까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시거든, 처음 약속하신 것만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생각을 다시 해 보게, 로건. 맥라인의 가치는 자네 생각보다 더해. 당장 임무는 수행하지 않더라도 돌아와 무기만 제공해 줘도 우리 승리는 확정적일 걸세. 굳이 참전을 강요하지는 않을 테니…….”
요르단이 다급한 마음에 나름의 회유책을 쏟아 냈지만.
[호되게 뒤통수를 맞아 놓고 무기를 제공하라고요? 각하. 죄송하지만 제가 그렇게까지 호구는 아닙니다.]로건의 태도는 단호하기만 했다.
“말했듯이 그건 로저의 독단……!”
[그것을 믿으니까 그나마 1왕자 군으로 가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파벌을 돕기도 어렵습니다.]“자네……!”
[향후에 생각이 바뀌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저희 맥라인은 이만 전장에서 이탈하겠습니다.]“안 돼! 조금만 더 생각을…….”
[마지막 의리로 정보를 하나 알려 드리자면, ‘어제’ 저희를 습격한 것은 칼리아 기사단이었습니다. 위켄 칼리아 후작도 함께였지요.]“……뭐?!”
그놈이 거기 왜?
첩자들 보고도 없었는데?
게다가 폭풍검이 있었는데도 네가 살아남았다고??
너무 뜻밖의 정보에 요르단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데.
[그럼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전후에 약속된 보상은 꼭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지지직.
일방적으로 끊어지는 통신.
잠시 멍해졌던 요르단 발터마임은 이내 분을 참지 못하고 집무실 책상을 거칠게 걷어찼다.
쾅!
“루첸 탈로스! 탈로스를 오라고 해! 그리고 전군 출정 준비해!”
– 예? 예! 각하!
문밖에서 들려오는 당황하는 목소리가 요르단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빌어먹을! 대체 상황이 왜 이따위로……!?”
* * *
“드디어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기를 끝낸 대배우가 열렬히 환호성을 질렀다.
양 파벌의 균형을 맞추고 싸움을 붙인 다음에 쏙 빠져나가기.
막막하게만 보였던 계획이 멋들어지게 성공하는 순간이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켜보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허허. 정말 이렇게 쉽게 된다고?”
“훌륭하십니다, 공자님. 계획이 훨씬 빨리 이뤄졌군요.”
관객들의 감탄에 로건은 흥분했던 얼굴을 싹 지운 채 미소로 답했다.
“1왕자파에도 타격을 제법 입혔고, 2왕자파에서는 비프로스를 치웠지요. 리베라티오도 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 2왕자 군이 생각이 있다면 곧 다시 공성전을 시작할 겁니다. 저희가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저들이 듣기 전에. 그리고 저희는…….”
“전장을 빠져나가 놈들이 서로 싸우고 망가지기만 기대하면 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그 뒤는?”
“생각이 있습니다. 차차 말씀드리죠.”
“그래, 잘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패드릭은 웃으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모두 일어서라! 연극은 모두 끝났다!”
통신구 너머, 피 칠갑을 하고 여기저기 쓰러져 있던 병사들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끝? 진짜 끝입니까?”
“그래. 집에 간다!”
“우와아아!”
목만 남기고 땅속에 몸을 파묻었던 기사, 핸더슨도 눈을 번쩍 떴다.
“나, 나 좀 빼내 줘!”
“야 이 미친놈아! 누가 굳이 땅까지 파고 들어가래?!”
“이래야 실감이 나지!”
“하여간 엉뚱한 데 열심은…….”
디그롬이 한탄하며 삽을 들었다.
하지만 그런 한탄 속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신체 능력이 뛰어난 자가 고련을 통해 낮은 확률로 발현한다는 이능, 포스(Force).
아직 재능의 여부를 가리는 방법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그것과는 달리, 마나(Mana)의 재능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낸다.
대부분 어린 나이부터 미약하게나마 마나를 느끼거나 사용할 줄 알게 되는 이들은 곧 마나유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마법사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재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그런 경향을 보이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런 이들이 마탑의 골방에 처박혀 수십 년씩 실험하며 경지를 올린 다음에 되는 것이 바로 고위 마법사라는 극소수의 인종들이었다.
때문에 고위 마법사 중에는 성격 파탄자가 많았다.
그리고 그 성격 파탄자들 대다수가 비슷한 유형의 패턴을 보였다.
바로 자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모든 사람을 자신의 아래로 본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왕실의 공주였던 어머니를 두고 공작가의 후계자로 태어나, 일찌감치 마법의 천재라 추앙받다가 불과 마흔의 나이에 6서클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후안 더글라스는 그런 성격 파탄자 마법사의 정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평상시의 고귀한 신분이 오히려 그 오만함과 선민의식을 가려 주는 수준.
하지만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궁지에 몰린 순간, 그 뒤틀린 성격이 고스란히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막아! 막으라고! 대체 그 쉬운 걸 왜 못 하는 거야!”
갑작스레 시작된 놈들의 파상 공세에 점차 밀리기 시작하는 자신의 군대.
성벽을 넘어오는 적 기사 놈들의 수가 점점 많아질수록 그 초조한 감정은 더해져만 갔다.
무식하게 숫자만 많은 발터마임 기사단 놈들은 자신의 제자나 사손(師孫)들로 이루어진, 5대 마탑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빙하의 마탑 마법사들도 완전히 막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원인은 한 가지, 아니 한 놈이었다.
기껏 배치한 수백 기의 연사석궁병도 무용지물로 만들며 성벽으로 뛰어오른 거인.
콰지직.
성벽 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마법에 당해 얼음 안에 갇혀 버린 루터 카일이 점차 빙벽에 금을 만들어 내며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마정석을 가져와! 있는 대로!”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직접 숨통을 끊어 버릴 테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정석을 소비하여 효율이 떨어지는 장거리 마법으로 견제하는 것뿐이었다.
그나마도 준비한 마정석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위험한 양자택일을 해야 할 터였다.
왕자가 암수에 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이 직접 전장에 나서던지, 아니면 놈이 병력을 무너트리는 것을 지켜보던지.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이 자리를 박차고 애송이 한 놈을 잡겠다고 튀어 나간 부하이자 사위인 또 다른 초인 녀석이 영 마음에 거슬렸다.
변경백 둘의 정예만 보내자는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굳이 직접 나선 놈.
“위켄 그놈이 감히 내 말을 무시했다 이거지.”
평상시라면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대범한 척 웃어넘겼을 일이 고스란히 분노가 되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빙결의 마도사가 무의식중에 방출해 낸 그 분노로 주변 대기가 차갑게 얼어붙어 근처 부관들은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시, 신호를 보냈으니 다시 오실 겁니다!”
“근처에 이미 도착하셨답니다!”
그나마 그의 분노를 조금 누그러트리는 소식이 들리고 얼마 후.
파아아앙!
빙벽 속에 갇혔던 거인이 튀어나오는 순간에 맞춰, 그의 맞수 역시 다시 서쪽 성벽에 도착했다.
– 폭풍검이다!
– 위켄 후작님이다!
그제야 한숨을 놓은 후안 더글라스는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지휘부를 돌아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