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발동할 마법의 시전 효과일 뿐이다. 참아라!”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내뱉은 그는 마정석을 동원해 연달아 마법을 구사했다.
이제는 위켄 칼리아가 상대할 애초의 목표가 아닌 다른 적들을 목표로.
성벽을 넘어서던 발터마임 기사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해지며 연달아 허점이 노출됐고, 밀리던 전세는 차츰 균형을 되찾아 갔다.
‘요르단 네놈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
왕자를 보호하면서도 전력에 직접 보탬이 될 수 있는, 마도사로서의 장점.
아무리 동급의 초인으로 취급받더라도 요르단 발터마임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튀어나와라, 요르단.’
이런 것에 열 받은 요르단이 직접 튀어나와 준다면, 최후의 최후까지 쓰지 않고 놈들 곁에 남겨 둔 비수가 2왕자의 목을 칠 것이다.
후안 더글라스의 눈이 간악하게 빛났다.
“위켄 칼리아가 벌써 왔다고?!”
요르단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하는 자는 없었다.
하늘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바에야, 전투 현황을 모조리 꿰고 있는 것은 무리였으니까.
요르단 역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기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맥라인의 이탈에 어떻게든 그것을 아끼고 연구하려 했건만 그것이 악수였다.
“괜히 아꼈군. 그것을 써라!”
“예!”
“계속해서 밀어붙여! 곧 내전을 끝낸다!”
“예!”
요르단의 지시와 함께 성벽 밑으로 몇 대의 수레가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성벽 위 곳곳에서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꽈아아앙!
꽝!
콰르릉!
“뚫어라! 계속 진격해! 병사들도 서둘러!”
리베라티오의 화력은 다시금 기울어 가던 전세를 2왕자 측으로 되돌렸다.
그렇게 기세를 탄 2왕자 군의 진격이 계속되고.
1왕자 군은 위켄 칼리아의 가세와 높은 성벽이라는 무기에도 점차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왕자 군 역시 비장의 무기를 남겨 두고 있었다.
“전부 터트려!!”
성벽 위 곳곳에서 빙하 마탑의 마법사들이 소리치는 순간.
새하얀 냉기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며 사방에서 폭발하던 리베라티오의 영향력을 극소화시켰다.
그러자 2왕자 군이 가지고 있던 리베라티오의 물량은 금세 바닥날 수밖에 없었다.
“블리자드 스크롤!! 아직도 저렇게나 남아 있었나. 음흉한 놈!”
“고작 여기서 비장의 수 하나를 모조리 털어 버리게 되다니.”
양측의 두 수뇌가 비슷하게 욕설을 쏟아 내는 순간에도 성벽에서는 연달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격하는 자도, 수비하는 자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상황.
“놈들의 무기는 끝났다! 모조리 작살내 버려!”
“놈들도 수를 다 썼다! 끝장을 내라!”
맥라인이 빠진 상황에서 승기를 확정 짓고자 하는 2왕자 군.
더 이상 기세를 잃어버리면 미래가 불투명한 1왕자 군.
물러설 수 없는 양 파벌의 전투는 내전이 개시된 이래 가장 치열한 전장을 만들어 냈다.
결국 그날의 전투가 끝났을 때.
양측은 막대한 피해를 본 채로 또다시 대치 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날의 전투가 가져온 결과는 이전의 그 어떤 전투보다 의미가 컸다.
자신의 직속 세력이 훼손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며 전투를 벌여 왔던 양 파벌의 대귀족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개전 이래 최대의 손해를 입은 것이다.
비슷한 규모의 대병력이 격돌하는 정상적인 전쟁이라면 당연히 일어날 일이 ‘이제야 비로소’ 발생한 것이었지만, 대귀족들에게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피해였다.
전투 직후의 두 세력이 모두 피해 수습에만 여념이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내전의 향방은 다시 한번 바뀌기 시작했다.
* * * 큰 고비를 넘긴 후,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해진 정보는 맥라인 부자를 미소 짓게 했다.
“여기까지는 모두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잘됐습니다. 이제 서로에게 쌓인 원한 때문이라도 적당히 싸우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래. 결국은 그렇게 되었구나.”
로건은 로저 비프로스가 1왕자 군에 정보를 흘린다면 자신들을 요격하기 위해 변경백 둘 정도의 군대, 혹은 그에 준하는 병력이 튀어나올 줄 알았다.
함정을 파서 그들을 이겨 내고, 동쪽 성문 공략에서 큰 피해를 가장한 다음 파벌에서 빠지는 것.
그것이 맥라인의 원래 계획이었다.
하지만 비프로스의 군대가 직접 뒤를 따라옴으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비프로스의 정보를 받고 자신들을 요격하러 나온 병력이 위켄 칼리아 본인을 포함한 칼리아 기사단이라는 것은 예상외의 위기였지만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고.
결국엔 모든 것이 당초 계획보다 좋게 풀렸다.
이제는 이 내전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이 정말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로건은 그 벅찬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 다음 계획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패드릭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로건. 이대로 파벌 싸움에서 빠지는 것은 안 되겠느냐?”
아직 부상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창백한 안색 때문에 더욱 심각하게 들리는 물음.
그에 로건은 단호히 답했다.
“예. 1왕자든 2왕자든 집권한 이후에는 절대 저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2왕자파는…….”
“요르단 발터마임은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않는 자입니다. 최선의 경우를 가정해도 분명 강력한 압박이 들어올 겁니다.”
“……그래. 확실히 일리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네 계획이 정말 가능하겠느냐?”
“가능하게 만들어야지요.”
“허……. 하나 네 계획대로라면 한동안은 그저 관망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수도에 다녀와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말씀드린 계획이 그대로 진행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패드릭은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뒤에나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 큽!”
쿨럭. 쿨럭.
“아버지!”
갑작스럽게 터진 기침에 옅은 피가 배어 나왔다.
로건이 놀라 벌떡 일어서자, 패드릭은 손을 내저으며 아들을 만류했다.
“아아. 괜찮다. 아직 내상이 남아 있어서니까. 거의 나았어.”
“……최상급 포션으로도 제대로 치유가 안 된 겁니까?”
“너도 오러유저를 상대해 봤으니 알 거 아니냐. 그 지독한 기운, 그 기운이 관통했는데 이 정도인 것만도 다행이지.”
창백한 안색의 패드릭이 억지웃음을 지었지만, 지켜보던 로건은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이제 상급 포션도 남은 게 없습니다. 빨리 돌아가서 사제에게 보이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럴 거다. 걱정하지 마라. 그때까지 버티는 거야 무리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내 걱정은 말고. 너도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 같던데 조절 잘하거라. 오러가 생각보다 더 지독하더구나.”
“저야 뭐…….”
말을 하는 로건의 안색 역시 그리 좋지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굳이 포션을 쓰지 않아도 며칠이면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루 이틀이면 회복될 것 같습니다.”
“……허. 내상은 네가 더 심각했던 것 같은데.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구나.”
글쎄. 그것이 젊음 때문일까요.
우우웅.
로건은 미약하게 진동하는 심장의 포스코어를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시면 반드시 사제를 부르세요. 괜히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시고.”
“당연하지, 녀석아. 이 애비가 그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 글쎄요. 그러셨던가요.
로건은 헛웃음을 삼키기 위해 바로 화제를 돌렸다.
“저는 지금 바로 수도로 가 볼까 합니다.”
“지금? 바로?”
“예.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테니까요.”
“그래. 그러려무나. 네 말에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까지 믿어 줘야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하기는, 어차피 내가 반대해도 저지르고 볼 생각 아니었더냐.”
“아…… 하하. 서, 설마요.”
뜨끔한 표정의 로건이 시선을 피하자, 패드릭은 피식 웃으면서도 이내 다시 우려 섞인 말을 꺼냈다.
“그래도 조심하거라. 정말 조심해야 한다. 만약 수도행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당연하죠. 클레이튼 님께 부탁해서 머리 색과 눈동자 색도 모두 바꿀 겁니다. 장비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가능한 노숙을 할 생각입니다. 정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싸구려 여관에 묵을 거구요.”
“……그래. 그래라. 그래도 혹시나 주시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떠도는 용병과 귀족의 몸가짐은 대충 봐도 차이가 나기 마련이니까.”
패드릭의 걱정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으나, 로건은 속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참아야 했다.
“그런 거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왕년에…….”
“왕년?”
“흠, 흠. 그…… 용병이었던 사람들에게 철저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 네 연기력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무력이 아니구요?”
피식.
로건의 너스레에 패드릭은 그제야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래. 그것도.”
아들의 무력이 이제는 자신을 확연하게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패드릭은 뿌듯한 미소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날 밤.
맥라인의 진영에서 튀어나온 한 인영이 바람처럼 동북부로 사라졌다.
맥라인의 군대가 영지로 귀환하는 길.
대공자가 초인과의 접전에서 얻은 부상이 재발하여 짐마차를 하나 비우고 타인의 접근을 제한한 채 집중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이 맥라인 군 내부에 돌았다.
소문을 뒷받침해 주듯 마차 주변에 정예 기사들이 엄중한 경비를 서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병사들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대공자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 * *
“들여보내 주시오!”
“우리도 이 나라의 국민이오!”
“성문을 개방하라!”
천년 왕국 그란디아의 수도.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는 고성, 그랑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질릴 정도의 인파로 가득했다.
내전으로 전국이 소란스러워지고 있는 지금.
‘가장 안전한 도시’인 그랑을 찾아든 유랑민들이 최근 부쩍 그 수를 더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런 유랑민들이 미처 몰랐던 것은 원래부터 그랑의 인구는 수용 가능한 인원보다 넘치도록 많았다는 것.
그랑의 내, 외성에 사는 ‘시민’보다는 외성 밖에서 연명하는 ‘거주민’의 수가 월등한 대도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주민들조차 지금은 그랑 내부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불사조의 문양을 새긴 기사들이 그들이 진정 지켜야 할 국민들을 가차 없이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악! 왜! 왜?!”
“더 접근하면 베겠다! 물러서!!”
소란스레 울려 퍼지는 비명과 그보다 더 큰 노호성.
그리 보기 좋지 않은 광경에 갈색 머리, 갈색 눈의 용병이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저런 겁니까?”
“낸들 알것소? 저 미친 것들이 지들만 살겠다고 사람을 받질 않으니…… 나 참 환장하겠구만! 나가 꼬박 2주일을 걸어서 여까지 왔는디! 어메, 속에서 천불이 날 것 같소! 젊은이, 용병이요?”
“아, 예. 뭐 일단은…….”
“용케 여까지 왔구먼. 거 파벌인가 뭐시기 인가가, 각지의 하급 용병들부터 전부 징발하기 시작했다던데.”
“아. 그렇습니까? 다행히 제가 운이 좋았나 보군요.”
용병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면서도 묘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전생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다면 지금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 인파들은…….
“귀족들이 지들끼리 싸운다고 난리 칠 때는 그나마 괜찮았슈. 근데 이제는 막 여기저기 성마다 다 사람을 끌고 가고, 곡식을 털어 가니 이거 원 살 수가 있나.”
한탄을 토해 내는 초췌한 인상의 중년인의 말에 용병, 로건은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이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하급 용병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총력전을 벌이겠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벌인 일의 결과.
전생에 벌어졌던 일들이 원래보다 2년은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해야 했을 일이야. 이 난리를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입술을 질끈 깨문 그의 모습이 어느 순간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그러니까 자네가 용병이면 저쪽 기사들한테 말 좀…… 어메? 그새 어디 갔댜?”
답답한 상황을 호소하던 한 유랑민만이 갑자기 사라진 대화 상대를 찾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